6월12일 (목)         졸업50주년기념 제주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A조에 속해서 김영갑 사진 갤러리, 거문오름, 제주 동문시장을 돌아보고 공항으로 간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우리가 묵고 있는 휘닉스 아일랜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섭지코지도 돌아보고 등대에도 올라가본다.


 

 

 

 

 

 

 

 

 

 

바로 섭지코지 밑에서 채취하여 말린 돌미역을 앞에 놓고 무료하게 앉아계신 할머니......      여행 짐보따리만 크지 않았더라도 몇개를....


 

 

 

 

오늘의 첫 방문지 김영갑 갤러리.


 

 

 

 

사진작가 김영갑은 1982년부터 제주도를 오르내리며 사진작업을 하던 중에 그곳에 매혹되어 1985년부터는 아예 제주섬에 정착하였다.


 

 

생전에 사진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김영갑.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억새 등....      제주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는 사진작업에 영혼과 열정을 모두 바쳤다.


 

 

 

 

폐교였던 초등학교 분교를 개조하여 만든 김영갑 갤러리 모두악은 2002년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김영갑은 투병생활을 한지 6년 만인 2005년에 그가 손수 만든 모두악 갤러리에서 고이 잠들었다.


 

 

 

 

거문오름으로 가는 길에서 보이는 송당리 승마장.         어찌된 일인지 대로변 4거리의 승마장에 울타리도 없이 그대로 방목되고 있는 말들. 


 

 

거문오름으로...       2007년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거문오름.


 

 

거문오름에 오르려면 적어도 탐방 2일 전까지 예약을 해야하며 하루에 300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탐방을 시작하는 시간도 오전 9시부터 30분 간격으로 50명씩 출발하고 정오인 12시에 마지막 조가 떠나게 된다.         정상에만 오르는 코스는 약 1.8Km 로 1시간 가량 소요된다.         전체코스는 약 10Km 로 3시간30분이 소요된다.


 

 

오늘 A 조에는 약 140명으로 많은 인원이 4대의 버스로 움직이는 중이다.          첫번째 버스로 도착한 친구들은 미리 예약된 50명 차례에 맞게 탐방에 나섰다.         그리고  나머지 친구들은 여러 전시실에서 매우 유익한 자료와 동영상 등으로 거문오름을 관람하게 되었다.


 

 

거문오름은 용암동굴계를 형성한 모체로 알려져있고 분화구에는 깊게 패인 화구가 있으며 그 안에 작은 봉우리가 솟아있다.        실제로 용암이 튀는듯이 앉아있는 의자가 마구 흔들리고 바람이 마구 불어대는 격동의 극장 안에서 거문오름의 형성을 관람 중이다.


 

 

이제는 마지막 방문지인 제주의 동문시장으로 간다.


 

 

제주 동문시장.       노랗게 먹음직스러운 제주 감귤들.


 

 

 

 

 

 

 

 

먹어본 적도 없고, 구경한 적도 없고, 처음 들어보는 전복젓갈, 소라젓갈, 소라전복젓갈.....       더 이상 작은병은 없다니 우리도 소라 전복젓갈을 작은병 하나에 2만원 어치를 샀다.       너무나 먹음직스러워서 사기는 했는데, 여행 중에 이놈을 어찌 먹고 다닐지 사자마자 걱정거리가 되었다.


 

 

 

 

주위가 아무리 시끌벅적해도....       아이구,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잠을 주무시는구나.


 

 

일렬로 누워서 밝은 불빛 아래서 더욱 빛나는 은갈치.


 

 

 

 

 

 

공항으로 가기 전에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토끼와 거북이 식당에서 고등어조림으로 한다.         제주에 도착한 첫날 저녁 50주년 전야제 식사 때에 옥돔으로 시작해서 다음날에는 은갈치조림, 저녁에는 50주년기념 부페, 다음날에는 흑돼지구이, 그리고 오늘은 고등어조림이다.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친구들의 노고도 대단하지만 식당에서 음식까지 세세하고 치밀하게 준비를 해서 정말로 여러 동문들로부터 찬사가 이어졌다.


 

 

 

 

 

 

 

 

식사 후 잠시 바로 식당의 길 건너편 바닷가로...


 

 

바닷가 도로변에 박혀있는 제주도 사투리 문구......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가르쳐주고 간다.        둘이서 어디 갔었어 ?


 

 

 

 

 

 

 

 

야구부 출신 동문인 재혁군 그리고 도명군 부부.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제주공항에서 서울로.


 

 

드디어 김포공항에 안착.


 

 

6월13일 (금)           화동1번지....       옛 경기중고등학교....      지금은 도서관이 되어있다.         제주에서의 행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바로 다음날 옛날의 교정을 돌아보려고 해외팀 일부와 행사를 치룬 동기회 임원들이 함께 모였다.


 

 

아직도 건재한 옛 고등학교 본관건물 앞에서 남학생들만....


 

 

그리고 여학생들도 함께.


 

 

 

 

 

 

 

 

옛 고등학교 건물 현관 앞.      충직군과 근영군의 사진을 찍어주는 경호군.


 

 

명호, 근영, 경호, 충직, 용주, 제군들.


 

 

 

 

 

 

점심식사는 학교 정문에서 200m 직진하여 있는 옛 수도육군병원 자리 건너편의 황생가 칼국수집에서 막걸리를 곁들여서......


 

 

40년 만에 귀국한 근영군이 머나먼 옛추억에 담긴 막걸리 양재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주고 받고....   또 주고 받고....    오고가는 술잔 속에 쌓이는 우정.       50년...  반세기만에 다시 만나서 추억을 더듬으며.....   병주, 광용, 희열, 세환, 훈석, 제군들.

 

 

 

 

 

 

 

마지막으로 출간된 2012년 60회 동기수첩을 열심히 보고 있는 근영군과 지켜보고 있는 중무군.         졸업50주년 행사는 마무리되었지만 우리는 1주일을 더 서울에서 머물고 카나다로 떠난다.        그동안 3번이나 들락날락하여서 서울에 있는 시간은 많았어도  잠시 스쳐지나온 시간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제 남은 며칠을 서울에서 마치고 43일간 인도네시아의 발리, 일본의 간사이지방, 50주년 제주도여행과 모국방문의 여행을 끝내고 6월19일 카나다로 돌아간다. 

 

 

6월11일 (수)       우리가 속한 B조가 한라산 윗세오름에 가는 날이다.      그리고 오후 3시반부터는 산방산 유람선, 신방 탄천온천, 저녁식사 후에는 새연교 야간관람이 예정되어 있다.       한라산 윗세오름까지 잘 따라갈 수 있을지.....   아침부터 걱정이다.


 

 

영실탐방로 입구의 주차장은 벌써 만원이다.       주말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릴지..... 


 

 

 

 

옛날에 500장군이 있었는데 이들은 제주섬을 만든 설문대 할망의 아들들로 주로 한라산에서 사냥을 하면서 살았다.          하루는 500장군의 맏형이 사냥이 제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난 나머지 허공에다 대고 활시위를 당겨서 분을 풀었다.        그런데 그 화살이 하늘을 꿰뚫고 날아가 옥황상제의 옆구리를 건드리고 말았다.        크게 노한 옥황상제가 홧김에 한라산 정상에 있는 바위 산을 뽑아서 던져버렸다.          뽑힌 자리에 생긴 것이 백록담 이고, 뽑아던진 암봉이 날아가 사계리 마을 뒤편에 떨어졌는데 이게 바로 산방산 이라 한다.          윗세오름 등반이 끝나면 산방산 유람선을 타고 산방산 탄산온천에도 들려서 온천도 한다.


 

 

 

 

 

 

오늘의 윗세오름 등반은 영실탐방로의 1,280m 에서 시작해서 1,700m 의 윗세오름까지 간다.       그리고 970m 의 어리목 탐방로를 향해서 내려가는 코스이다.       돈내코탐방로 쪽으로도 하산할 수 있다.          한라산에는 5개의 등산로가 있는데 영실탐방로, 어리목탐방로, 성판악탐방로, 관음사탐방로, 돈내코탐방로가 있다.        영실탐방로와 어리목탐방로는 백록담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윗세오름 까지만 올라갈 수 있다.


 

 

등반을 시작해서 얼마지나지 않아서 벌써 오르막의 험악한 돌길을 만난다.     음...음...     경사가 비교적 급한 영실분화구 능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평탄한 지형이라고 어느 안내서에서 보았는데.....      막상 등반을 해보니 약간은 부정확한 안내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쉬어가는 곳에서도 사진사의 촬영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 된다.


 

 

 

 

윗세오름은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에 있는 오름으로 새끼오름 이라고도 한다.        한라산 등산로 5개 중의 하나인 영실등산로의 1,700m 고지에 크고 작은 3개의 오름이 남북방향으로 연달아 이어져있다.      이 3개의 오름을 합쳐서 윗세오름이라고 부른다.       백록담에 가까운 것부터 붉은오름, 누운오름, 새끼오름 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뒤로 쳐저서 부지런히 쫒아가는데 선두그룹은 시야에 보이지 않고....     이때에 멀리 윗쪽에서 들려오는 오, 쏠레미오...  시원한 노래소리가 한라산을 뒤흔든다.        카메라의 망원렌즈로 당겨보니 광승군의 독창이 시작되었고 사진사가 열심히 촬영 중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절경들...        한라산.      높이가 1,950m 의 남한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다.       금강산, 지리산과 함께 삼신산 (三神山) 이라 불러왔다.       정상에 백록담이라는 지름이 약 500m 가 되는 화구호가 있다.        백록담 (白鹿潭) 은 흰 사슴이 물을 먹는 곳이라는 뜻이다.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구상나무 군락지에서 하얗게 말라버린 구상나무들.      구상나무는 높고 추운지대에서 잘 서식하는데 한라산의 경우는 1,400m 에서 서식했지만 이제는 더 높은 정상부근으로 밀려났단다.        온난화 기후변화의 결과이리라.


 

 

 

 

윗세오름 가운데 봉인 누운오름 자락을 돌면서 등산로가 90도 가량 꺽이는데, 이 모퉁이에 샘이 하나 있다.         위세오름에서 가장 가까운 노루샘이다.        영실탐방로 에서 오르면 윗세오름까지 가는 동안 유일한 샘이다.


 

 

 

 

 

 

윗세오름에 거의 다 달으니 철쭉꽃이 만발해 있고 백록담 남쪽 화구벽이 보인다.       한라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여유롭게 즐길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250m 를 더 올라서 앞에 보이는 화구벽을 넘으면 백록담이 펼쳐진다.         49년 전 푹푹찌는 여름 8월에 방학을 이용하여 제주도에 왔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미련하게도 그 더운 여름에 제주시에서부터 걷기 시작해서 2박3일만에 백록담에 올랐다.           기진맥진하여 백록담에 오르니 오늘 같은 쾌청한 날이 아니고 안개가 부분적으로 뒤덮여서 백록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백록담의 물에 손을 담갔더니 올챙이들만 바글바글하였던 기억이 난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예로부터 한라산 정상에 오르면 멀리 남쪽 하늘에 있는 노인성 (老人星) 을 볼 수 있는데, 이 별을 본 사람은 장수한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윗세오름 광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점심을 하고 있는 우리팀.       모두 36명이었던가?      누운오름과 붉은오름 사이에 있는 윗세오름의 광장에는 간이매점과 통나무집 대피소가 있다.


 

 

 

 

헉.헉.하면서 힘들게 짊어지고 올라왔지만 꿀맛 같았던 도시락.

  

 

 

 

 

음...음....    어리목탐방로로 내려가는 길은 평탄하다고 했는데.....    돌길을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든것이 돌길을 내려가는 것이구나.    아구구구....      영실탐방로에서 오르기 시작해서 윗세오름에 올랐다가 어리목탐방로로 내려오는 등산코스는 약 5시간 정도 걸린다. 

 

 

 

윗세오름에서 내려와서는 다시 산방산 유람선을 타러왔다.       다리가 마구 후들거리고....   너무 무리를 했나.


 

 

 

 

 

 

유람선 안내원의 입심 좋고 코밐한 설명에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다.


 

 

산방산 (山房山) 이라는 말은 굴이 있는 산을 뜻한다.         해발 345m 이며 150m 쯤에 해식동굴이 있어서 산방산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산 자체가 거대한 용암 덩어리이다.         山房山에 보이는 山房寺, 그리고 노랗게 보이는 불상.


 

 

 

 

용머리 해안의 주상절리들.


 

 

절벽 위로 산방산 주변의 올레길 10코스의 멋있는 산책길이 보인다.


 

 

 

 

 

 

형제섬.


 

 

뜨거운 산방산 탄산온천물을 뒤집어쓰고 가벼워진 몸으로.....     저녁식사는 제주산 흑돼지구이.        위하여.....   위하여....   한쪽 구석에서는 오랫만에 함께 자리한 술꾼들의 건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위하여....


 

 

 

 

저녁식사 후에는 새연교 야간관람.


 

 

내일은 마지막 날이다.       김영갑 갤러리, 거문오름,  제주동문시장을 방문하고 서울로 날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간다. 

 

 

6월10일 (화)        조별로 관광을 떠나기 전에 270명 전체사진을 찍기 위하여 모여드는 친구들.


 

 

 

 

우리가 선택한 B조의 오늘 관광 코스는 올레 7코스의 외돌개길, 석부작 박물관, 칠십리 詩공원, 서귀포 새연교 이다.        바쁜 일정이 시작되는 날이다.        동창회에서 남녀 각각의 색깔로 지급한 Windbreaker 가 대단히 유용하게 쓰이는 날이다.


 

 

올레 7코스 외돌개길이 시작하는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관광버스로 가득하다.


 

 

올레 7코스의 첫구간이며 외돌개에서 속천골 직전까지의 4.1Km 가 오늘의 올레길 순방 일정이다.         짧지만 매우 인기있는 올레길 중의 하나이다.


 

 

 

 

멀리 보이는 섬이 범섬.


 

 

그리고 문섬.


 

 

멀리에는 새연교도 보이고...


 

 

돌, 바람, 여자가 많아서 3다도라 했던가.         바람이 어찌나 심하게 부는지 모자를 단단히 붙들어매고, 기념행사에 참가해서 지급 받은 Windbreaker 를 꺼내서 입었다.


 

 

 

 

 

 

 

 

삼매봉 아래 바다가 움푹 패인곳에 솟아있는 거대한 바위 외돌개.


 

 

한때 토론토에서도 몇년간 함께 지냈던 광승군 부부. 

         

 

 

조금 전에 외돌개에서 심하게 불어대던 바람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지금은 화창한 날씨에 기온이 마구 올라가고 있는지 더워지기 시작한다.


 

 

외돌개에서 시작되는 해안 산책로는 돔베낭길 이다.         길 주변에 소나무와 시원한 바다풍경이 잘 어울리는 길이다.          돔베낭 이라는 것은 제주 사투리로 도마나무 란 뜻이다.        나무 Deck 로 잘 정비해 놓은 길이라 돔베낭 길이라 부른다.


 

 

우리 B조를 따라다니며 사진촬영 중인 사진사 김군.


 

 

대형 색스폰 연주에 매료되었나.....    활짝 웃으며 걸어오는 명호군 부부.


 

 

 

 

오락가락 하던 바람도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으니 모두들 벗어젓기고...     쉬엄쉬엄....


 

 

서귀포 월드컾 축구장.       2002년 월드컾을 위해 건설되어 3경기를 치루었다.     그후로 거의 비어있다가 지금은 제주축구팀이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태풍에 천장이 날아가기도 했고. 

         

 

 

 

 

석부작 박물관.        1997년에 서귀포 귤림성으로 문을 열었다가 2007년에 박물관으로 등록되었다.           식물들의 군상에 따라 호흡하고 여유있게 걸으면서 치유와 휴식을 가져 볼 수 있는 곳이다.


 

 

석부작은 야생초와 돌을 아름답게 조화시킨 작품이다.       돌과 식물의 형태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작품 하나 하나가 작은 자연이라고 말한다.


 

 

 

 

 

 

 

 

소박하지만 강하고 영롱한 생명력을 지닌 야생화.       시원한 폭포수 아래에서 계절마다 자라고 있는 1천여종의 야생화, 금낭화, 메발톱, 꽃잔대, 설앵초, 돌단풍 등 제주의 들꽃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세월의 깊이와 생명의 강인함을 느끼게 해주는듯 말없는 돌에 뿌리를 내린 모습.

 

 

 

제주의 자연이 만들어낸 제주 현우암.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끼와 돌을 덮고 꽃향기를 더 해주는 석부작은 살아있는 예술이다.


 

 

 

 

천지연폭포 위쪽에 있는 칠십리 詩공원.       삼매봉 입구 600m 구간을 서귀포 칠십리 시공원으로 조성했다.       김춘수의 이중섭, 정지용의 백록담, 구상의 한라산,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 등등 제주도를 주제로한 유명시인 작품 13편과 노래 3편을 오석, 화강암, 애석 등 자연석에 새겨넣은 것이 있다고 했는데.....       우리 그룹들이 돌아본 곳에는 겨우 3개만 보였다.        나머지 비석들은 전부 어디에 꽁꽁 숨었는지.....        공원을 산책하기는 좋았지만.....


 

 

석부작 박물관에서 받은 황홀함 때문이었는지....     곧 이어진 칠십리 詩공원 방문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그래도 쉼터에 걸터앉아 뭣들이 이다지도 좋은지 껄껄껄, 왁자지껄, 50년 전의 교실 풍경 그대로이다.


 

 

숲섬 식당에서 점심식사는 은갈치 조림으로.


 

 

벗어놓은 신발들도 한상 가득 받았습니다.


 

 

 

 

 

 

새연교를 보러 서귀포항으로 왔다.


 

 

 

 

새연교는 서귀포항과 새섬 (Bird Island) 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새연교를 걸으면 서귀포 항구, 문섬, 범섬 등의 서귀포 앞바다와 한라산의 풍경이 보인다.


 

 

 

 

전속 사진사도 누르고....    친구들도 누르고....    학창시절에 함께 뛰놀던 친구들이 이제는 어부인들을 정중히 모시는 초로의 점잖은 신사들이 되어 함께 모였다.


 

 

 

 

1.2Km 의 산책로와 나무 Deck 길, 자갈길, 숲속 산책로 등으로 새연교와 연결되어 있는 새섬.


 

 

 

 

새연교는 한국에서 최남단에 위치한 다리로서 2009년에 개통되었다.       길이 169m 그리고 바람과 돛을 형상화한 높이 45m 의 주탑이 매우 멋있게 보인다.


 

 

드디어 저녁 6시에 휘닉스 아일랜드 2층 Banquet Hall 에서 졸업5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교가를 합창하고....


 

 

장병주 회장의 인사말과 부회장들 소개로 이어지고.


 

 

그리고 강 공동준비위원장의 인사.....


 

 

기념케이크 앞에서 모두들 건배를 하고.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들의 건배.     위하여.....     건배를 외치는 강 공동준비위원장, 허 전총동창회장, 이 차기60회 동창회장, 그리고 장 60회 동창회장.


 

 

 

 

식사 후에 이어진 가수들의 감미로운 노래들.       김도향군이 함께 몰고온 젊은 가수들의 선율이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김도향군이 무대에 섰다.


 

 

 

 

바보처럼 살았군요 등 그의 히트곡을 열창하고.....


 

 

 

 

 

 

 

 

졸업50주년 기념파티는 오랜 세월만에 만나보는 친구들의 설렘과 흥겨운 음악으로 모두들 한 덩어리가 되어 열기를 더해 갔다.

  

 

 

 

 

내일은 한라산 윗세오름에 가는 B조를 선택했는데 한라산 백록담의 정상 200m 전까지 오르는 코스이다.      돌길을 오르고 돌길을 내려오는 만만치 않은 코스라서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6월9일 (월)     오늘은 순천만정원, 순천갈대밭을 구경하고, 장흥 노력항에서 제주 성산포항으로 Ferry 로 이동한다.        그리고 서울서 항공편으로 제주로 간 본 팀들과 저녁에 졸업50주년 전야제에 합류할 예정이다.


 

 

아침에 일어나자 제철소 구내의 잘 꾸며진 주변 산책로를 거니는 친구들, 부지런하게도 여행 중에도 아침 조깅을 하는 친구, 그리고 수십 년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느라고 모두들 바쁘다.


 

 

 

 

 

 

경치 좋은 광양제철소 단지내를 아침 산책중인 남해팀들.


 

 

 

 

제철소 안에 이렇게 멋있는 산책로, 주거단지, 그리고 울창한 나무들로 가득하다니 매우 놀랍다.


 

 

 

 

흩어져있던 친구들, 카나다, 불란서, 미국, 한국, 50년 만에 모여서.....


 

 

50년 만의 만남이니...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명호군 부부를 사진에 담아내는 진태군.


 

 

중고등학교 뿐아니라 초등학교에서도 같은 반에서 함께 공부했던 진태군.


 

 

근영, 세복, 치순 제군들.


 

 

조그만 트럭 위에 무지막지하게 높게 소주병을 쌓아서 싣고 가다가 길가에 쏟아진 소주병들.         아이고 아까운 소주....        그런데 전부 빈 병들이다.           버스 속의 술꾼들이 안도한다.


 

 

 

 

 

 

순천만정원에서....        정원의 지도를 펴보이고 있는 앞줄 가운데의 근영군.


 

 

 

 

34만 평의 넓은 대지에 505종의 나무와 113종의 꽃이 심어져있는 정원이다.       순천시에서 국제정원박람회를 유치하여서, 2013년에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끝내고 순천만정원으로 개장한 곳이다.


 

 

23개국에서 참가하였던 각국의 정원과 여러 종류의 83개의 정원이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세계각국의 정원과 작가, 시민, 기업체 등이 참여하여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30여개의 다양한 모습....      물의 정원, 숲의 정원, 한방약초원, 수목원, 국제습지센터, 저류지 등의 다양한 정원을 보여준다.


 

 

 

 

 

 

 

 

맥주캔에 기르는 화초들.


 

 

 

 

 

 

풍차와 튤립으로 가득한 네덜란드 정원.


 

 

 

 

 

 

 

 

 

 

순천만정원에 있는 꿈의 다리.....     주로 New York 에서 작품활동을 하였던 작가 강익중이 175m 길이의 다리에 만들었다.        일명 물위에 떠있는 미술관 이라 불린다.


 

 

14만 명의 각국의 어린이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만든 거대한 공공예술 작품.


 

 

 

 

 

 

꿈의 다리 앞에서....


 

 

쉬어 갑시다 !       진태, 윤호, 훈석, 국언, 희열, 광승 제군들.


 

 

 

 

 

 

머리와 다리의 끝.


 

 

 

 

순천만정원에 이어서 여기는 순천 갈대밭....


 

 

3년반 전인 2010년 10월에 Zenia 와 내가 이곳에 왔을 때는 갈대축제라는 행사기간이었는데 완전히 인산인해로 뒤덮혀서 밀려가고 밀려오는...      갈대보다도 사람이 더 많은듯 했었다.         인파에 질리고 지쳐서 그때에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더 이상 가기를 포기하고 되돌아나갔던 곳이다. 


 

 

오늘이 월요일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다른 곳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세상에....  오늘은 이렇게도 조용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인산인해를 이루던 그 많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오직 이 젊은 커플만이 온 순천만을 독차지한 듯이 한가롭기 그지없다.


 

 

 

 

장흥의 노력항으로 가서 제주도의 성산포항으로 3시반에 떠나는 Speed Ferry 를 타러가기 전에 오리고기 전골로 차려진 점심식사.


 

 

 

 

 

 

 

 

2시간반 동안의 배멀미 끝에 드디어 제주도의 성산포항에 내렸다.         역시나 빠른 속도로 물 위를 가르며 내닫는 Speed Ferry 는 예외없이 배멀미가 심하다.


 

 

 

 

졸업50주년 전야제.....        50년 만의 만남으로 기쁨과 흥분이 교차하는....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시간이다.


 

 

 

 

동창악단들의 연주와.....


 

 

Mrs.오 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시작으로.....


 

 

 

 

동기생 60회합창단이 순남군의 지휘로 Oh, Danny Boy 등 여러곡을 선사하고....


 

 

 

 

테너 세흥군의 장내를 압도하는 열창과....


 

 

경중군의 색스폰연주.


 

 

그리고 용희군의 색스폰연주.


 

 

동기 분당회팀의 합창.          있을때 잘해.....    있을때 잘해.....       내 나이가 어때서.....    내 나이가 어때서......


 

 

합창단 대장 용구군과 합창단.          내일은 A, B, C 조로 나뉘어서 각각의 다른 곳을 관광을 하고 저녁에는 50주년기념행사가 열린다.

 

 

6월8일 (일)      일본에서 서울로 돌아와서 이틀 후에 다시 서울을 떠난다.           매해 6월10일에는 졸업기념일 행사가 있다.         금년은 졸업 50주년이 되는 해라서 제주로 3박4일의 50주년기념여행을 하는데 우리도 참석하게 되었다.           원래 4월에 시작하려던 여행일정에는 5월말에 카나다로 돌아가기로 되었던 것인데, 여행의 시작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5월로 연기되면서 졸업 50주년여행에 참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아침 10시에 서초구청 앞에서 광양제철소 견학을 위하여 남해팀 43명이 훈석 대장의 인솔하에 전라남도 광양으로 출발한다. 


 

 

이번 여행은 모두 270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인데, 여행의 본 팀은 내일 아침 김포에서 제주로 비행기로 날아가고, 해외에서 모인 친구들은 하루 먼저 버스로 서울을 떠나서 광양제철소를 방문하고 다음날 배편으로 제주도 성산포항으로 간다.        서울서 떠난 버스에서는 철강맨 용희군의 철강과 광양제철소에 대한 끝없는 설명과 익살스런 말솜씨가 남해팀 모두를 매료시켰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여행의 첫 식사.


 

 

휴게소에는 공주 근교의 3천 궁녀의 낙화암, 5층석탑, 궁남지, 백제왕릉원 등의 고적들과 사적지들을 소개하고 있다.


 

 

공주 10경 사진전시회도 하고 있고.....    고속도로의 휴게소를 문화공간의 일부분으로 잘 활용하는 것 같다.


 

 

 

 

철강회사 Posco (포항제철) 의 본사는 경상북도 포항에 있고, 포항과 광양에 제철소가 있다.          1968년 옛 포항제철이 창립되고, 1973년에 포항에 포항제철 공장이 준공되어서 한국의 첫번째 제철소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어서 광양에 제2의 제철소를 짓기 위해서 1982년부터 광양만의 바다와 뻘을 메꾸고, 5년만인 1987년에 광양제철소 1기 공장을 준공시켰다.         다시 5년후인 1987년에는 1천5백만 m2 (약 4백만 평, 여의도의 5배) 의 바다를 매립한 거대한 지역에 광양제철소의 마지막 공사도 완료되어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초대형 제철소가 탄생되었다.

 

 

 

Posco (포항제철) 의 광양제철소 정문을 들어섰다.        정문을 지났지만 여기는 그냥 큰 공장이 들어선 곳이 아니라 크나큰 도시가 들어서 있는 것과 똑 같다.


 

 

광양제철소.      어업과 김양식을 주로 하던 조용했던 바다......      크고 작은 13개의 섬들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2개의 섬만이 남아있고 모두 바다와 뻘을 매립하여 세계에서 가장 크고 초현대적인 제철소가 세워졌다.


 

  

 

 

공장을 세우기에 절대 불가능한 질퍽질퍽한 뻘 아래로 모래를 깊이 박아서 단단한 토지로 만드는 작업을 끝없이 지속하여......     용희군의 설명은 이어진다.


 

 

 

 

최적의 생산 Process 를 구축함에 따라 양적생산은 품질저하를 가져온다는 인식을 송두리째 깨부수고, 양적생산과 최고품질의 2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광양제철소.        구택, 용희 그리고 동기 친구들 여러명이 Posco 에서 땀 흘리며 평생을 철강맨으로 있었다.


 

 

방명록에 서명하는 인솔대장 훈석군.


 

 

그리고 해외 동문대표 재성군.


 

 

 

 

남해팀의 첫 단체사진.


 

 

 

 

제철소가 들어선 광양은 우리나라 최남단 중앙에 위치한 요충지로 하동, 순천, 여수, 구레와 접한 광양만의 중심지이다.


 

 

 

 

Posco 가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광양제철소에서 쓰고 있는 FINEX 기술은 철강제품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신 기술이다.        기존의 고로와 달리 원료를 예비 처리하는 코크스 제조공장과 소결공장을 생략하고, 값 싼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유연탄을 원료로 사용해서 최고 품질의 쇳물을 만드는 기술이다.       생산원가를 15% 낮출수 있고, 비산먼지도 72% 나 낮추는 친환경 녹색기술로 평가받는다.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고 단지 미화를 위하여 심은 나무가 무려 550만 그루이다. 

  

 

 

제철소의 내부는 거대한 도시와 다름없다.      잘 정돈된 길, 그리고 구역별로 각급 학교, 문화공간, 상가, 주택단지, 체육시설 등등의 모든 것이 최신의 설비로 되어있다.      지금 보이는 곳은 제철소 공장직원들의 주거건물들이다.


 

 

그리고 학교 건물들.


 

 

 

 

광양제철소 영빈관으로 쓰이는 백운대.


 

 

 

 

Posco 의 영원한 발전과 끊임없는 혁신기술의 대한민국을 위하여......


 

 

 

 

 

 

해외에 흩어져있던 친구들이 최신, 최고 기술의 광양제철소에서 50년만에 재회하여 여행의 첫 날을 보내게 되었다.


 

 

 

 

 

 

저녁 만찬 후에는 영빈관에 마련된 노래방에서 왁자지껄 목청을 높여 뽑아대고....      친구여, 황성옛터, 하숙생, 이별, 60~70년대의 노래들.



 

 

 

노래하는 용득군과 세복군 그리고 춤추는 희열군.           내일은 제주도의 성산포항으로 들어가서 50주년기념행사에 합류한다. 

 

 

여행 6일째이다.          전기, 전자, 카메라 제품의 종주국 일본에 왔는데 별로 살 것은 없지만 그래도 구경을 하려고 오사카에서 크다는 요도바시 전기, 전자, 카메라 전문 백화점에 왔다.         이 백화점도 바로 오사카역 북쪽의 길 건너에 있다.        시계, 전화, 카메라, 전기제품 등이 각층마다 산더미 같이 쌓여있다.


 

 

 

 

카메라를 파는 2층을 대강 둘러보는데 정말로 이제껏 보지 못하던 물건들이 많다.        카메라 가방 코너에는 수백 종류의 다른 크고 작은 가방들이 진열되어 있어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역시 카메라의 왕국답게 카메라에 필요한 부속품들이 종류도 다양하게 어마어마하게 많이 보인다.

 

 

 

들어오는 1층은 Smartphone 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천장에는 눈에 익은 삼성의 Galaxy S5 를 선전하는 Banner 들이 잔뜩 걸려있다.         그런데 정작 삼성 전화기를 손에 쥐고서 들여다보니까 앞면에는 Samsung 대신에 일본 전화회사 이름이 찍혀있다.         전화기 뒷면에만 Samsung 이 보인다.          가능하면 Samsung 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했는가 보다.          일본에서 배워서 한국에서 만든 제품들이 이제는 그들의 제품을 능가하니까 기분이 좋을리 없을 법도 하다.          세계각국의 모든 도시에 흔하고 흔한 Samsung, LG 의 광고판을 이곳에서는 본 기억이 없다.         광고를 안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가 보다.

 

  

 

마지막 관광지인 난바로 떠나기 전에 Osaka 역에 설치된 커다란 지도 앞에서 확인을 한다.           요즈음 Smartphone 덕분에 여행이 많이 편해졌지만, 그래도 커다란 지도를 보면 움직이는 동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난바역에 지하철로 왔다.       도톤보리 바로 남쪽에 있는 난바는 4개의 철도와 3개의 지하철 노선이 지나는 역으로, Umeda 의 Osaka 역 다음으로 교통의 중심지이다.     백화점, 난바 마루이, 난바공원과 덴덴타운 등의 쇼핑몰과 식당들이 몰려있는 번화가이다.


 

 

Nanba Parks 는 난바역 남쪽에 있는 복합쇼핑몰인데 미국의 Grand Cannyon 을 이미지화한 특색있는 건물이다.         옥상에는 Parks Garden 이라는 정원이 있다.       사무실 빌딩이 Parks Tower 이고, 동쪽에 난바 City 건물도 있다.


 

 

 

 

 

 

 

 

난바 Parks 는 이 지역의 재개발계획에 따라 기존의 Osaka 야구장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건축을 한 것으로 2007년에 개장했다.           설계자는 John Jerde 인데 이 사람이 해운대의 우동에 있는 80층 짜리 주상복합 건물의 상가디자인도 했다.         우리는 관서지방에서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전부 둘러보고 오늘은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여기까지 왔지만, 일부러 힘들여서 이곳을 찾아서 오기에는 좀 망서려지는 곳이다.


  

 

 

 

 

 

난바공원에서 내려다본 난바지역의 빌딩들.           이곳만 그런지 Osaka 시내가 다 그런지는 모르지만 오늘은 날씨가 청명하고 Smog 도 전혀 없다.  

    

 

 

 

 

일본에서는 남자, 여자, 젊은이, 늙은이 모두들 자전거를 애용한다.          Osaka 같은 대도시에서도 곳곳에, 특히 지하철역 근처에는 커다란 자전거 주차장이 보인다.      환경보호와 에너지 절약, 신체건강에 모두 크게 기여하는 좋은 제도를 잘 활용하는 것 같다.


 

 

 

 

 

 

Osaka 역에 설치된 멋있는 장식물들.          도쿄, 규슈 방면의 신간센열차가 1964년에 새로 Open 한 새로운 Osaka 역으로 옮겨갔지만, Osaka 역은 Osaka 의 중심지인 Umeda 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주위에 번화가가 넓게 펼쳐져있다.          아직도 西 일본 최대의 역이다.         역 안이 하나의 대도시처럼 사방팔방으로 여러철도와 지하철 노선으로 이동하는 길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그리고 수많은 승강장으로 들어가는 Gate 로 대단히 복잡하다.        거기에 여러 백화점들, 상점들이 들어서있어서 매우 번잡한 역이다.


   

 

 

 

Osaka 역은 1874년에 관서지방에서는 처음으로 문을 열어서 Osaka 와 Kobe 의 철도 노선이 개통되었다.        지금은 세계에서 4번째로 바쁜 철도역이다.        Osaka 역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대대적으로 개축된 역사인데, 각지로 나가는 시외버스역에다 화물역까지 포함하고 있는 초대형 역이다.


 

 

이렇듯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복잡하고 번잡한 역의 안내판들은 대단히 알기 쉽게 되어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번잡한 역 안의 어느 곳에도 떨어진 종이조각 한장 조차도 보이지 않고 깨끗하다.


 

 

 

 

 

 

 

 

 

 

좌우로 모두 백화점과 대형상가를 이루는 건물들로 빼곡한 Osaka 역 길 건너편.


 

 

 

 

 

 

우리가 며칠동안 애용했던 곳 중의 하나인 Osaka 역 안에 있는 식료품가게들은 기억에 오래 남도록 깨끗하고 정결하다.         

 

   

 

 

 

 

 

오늘이 여행 7일째 마지막 날이다.       서울로 날아가기 위해서 Kansai 공항에 도착했다.         1994년에 문을 연 Osaka 만(灣) 의 인공섬에 만들어진 공항이다.         


 

 

인천공항처럼 멋있고 아름다운 공항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화제에 올랐던 공항이다.           동경의 나리타공항 건설 때에 극심한 주민들의 반대로 엄청난 시간과 재정의 어려움을 겪고나서, Kansai 공항을 건설할 때는 Osaka 만의 바다 위에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공항을 만들었다.          본래는 물 위에 13m 정도의 높이로 만든 인공섬이었으나 워낙 대량의 바위와 콩크리트를 퍼부어서 만들어진 섬이라 무거운 무게에 그동안 8m 가량이 가라앉아 현재는 5m 정도가 수면 위에 있다.


 

 

공항건물은 길이가 1.4Km 로 당시에는 세계에서 제일 긴 건축물이었다.        1995년에 Kobe 를 쑥대밭으로 만든 한신대지진 때에도 진원지에서는 6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도 20Km 떨어진 공항은 유리창 조차도 깨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슬라이딩 조인트를 사용한 덕분이었다.       1998년에는 시속 200Km의 태풍에도 견디어내었다.         2001년에 10개의 구조물에 뽑혀서 미국토목공학회가 주는 토목공학 세기의 기념비 상을 수상했다. 


   

 

 

 

 

 

 

 

Lufthansa 의 점보기 747 옆에 서있었을 때에는 거의 두배 정도로 커 보이던, 승객을 800명까지 실어나를 수 있는 대형여객기 Air Bus 380 타이항공의 여객기가 막 이륙을 했는데 지금은 자그마하게 보인다.


     

 

 

 

Kansai 공항이 개항하기 4년 전에 세워진 3Km 의 긴 다리.       48년 전에 처음으로 일본을 여행할 때 거의 한달을 지내면서 북해도까지 여러곳을 다녔으나 머리에 남아있는 것은 어느 어느 도시에 갔었다는 희미한 기억밖에는 없었다.         그 후로도 여러번 일본의 여러도시를 방문했고 다시 17년만에 찾은 일본이지만 지금 또다시 일본이 새롭게 보인다.

       

 

 

서울로 날아가면 이틀 후인 6월8일에는 광양으로 가서 1박을 한다.       그리고 다시 졸업50주년 기념여행에서 50년만에 친구들과의 재회의 설레임이 기다리고 있는 제주로 간다.  

 

 

공중정원전망대가 있는 우메다 스카이빌딩.         15층 우리 호텔방 창문 밖으로 이렇게 건물 전체가 카메라에 잡힌다.        오사카역에서 바로 북쪽을 新우메다 지역이라 부르는데, 우메다 스카이 빌딩을 중심으로 하는 복합상업구역이다.       이 빌딩은 높이가 173m 로 매우 높은데 1993년에 완공했다.        오늘은 이 건물의 옥상에 있는 공중정원전망대에 올라가본다.

 

 

 

오사카역과 신 우메다 지역 사이에는 옛 건물들을 모두 헐어내고 재건축을 위하여 정지작업이 한창인 넓은 지역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나 멋있는 건물들이 들어서게 될지 상상만하여도 대단할 것 같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오사카역 우메다 호텔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이 건물은 두 빌딩 사이를 연결하는 구름다리가 특이하다.        지하에는 옛날의 쇼와 초기의 오사카 거리를 재현한 타키미코지 라는 식당가가 있다.

 

 

 

 

 

두 건물을 연결한 에스컬레이터.         밖을 내다보면 어질어질 현기증이 나도록 지상이 저 아래로 까마득하게 보인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오사카의 전경은 오사카역을 중심으로 둘러싸인 고층건물들의 스카이라인, 그리고 반대편으로는 오사카만으로 흐르는 강과 다리들이 보인다.

 

 

 

 

 

파리의 에펠탑에서 내려다보이는 그런 정도의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실망이다.         역시나 둘쭉날쭉 고층건물들과 구획정리가 어지럽게 보이는 것이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있을 그런 전경이 아니다.         우리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었나 보다.        그리고 Smog 도 서울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사진이 선명치 않을 정도로 Smog 가 끼어있다.        그래서 야경이 훨씬 낫다고 했는가 보다.        우리도 차라리 밤에 와서 멋있는 야경을 구경하는 것이 좋았을뻔 했다. 

 

 

 

 

 

옥상에 있는 54 m X 54 m 넓이의 공중정원전망대는 높은 전망대에서 보는 고층건물들의 야경이 좋아서 오사카의 Date 장소로 유명한 곳 중의 하나이다.

 

 

 

 

 

아침 개장시간 10시가 되자마자 입장을 하고 보니까 방문객이 많지 않아서 조용하기 그지없다.           매점에서 무엇이든지 사서 한잔 마시려니 아직 5분이 더 있어야 오픈한다고 한다.        개장을 하고 1시간이나 지나야 매점을 여는가 보다. 

    

 

  

        

 

 

 

오사카만 (灣) 으로 흐르는 강에는 지나가는 유람선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종이배 하나도 떠다니는 것 없더니 갑자기 수상스키를 매달고 달리는 보트 한척이 지나간다.

 

 

 

 

 

우메다 공중정원전망대를 보고나서 오후에는 도톤보리의 먹자골목에 왔다.              1612년 아스이 도톤이라는 사람이 운하를 개척하기 시작했고, 그가 죽은 뒤 그의 사촌동생이 1615년에 운하를 완성했다.        길이 2.7Km, 폭이 28m 에서 50m 의 도톤보리 (도톤운하) 이다.        도톤보리에는 16개의 다리가 있다.        그중에서 도톤보리 다리에서 닛폰 다리까지가 흔히 말하는 관광지 도톤보리이다. 

 

 

 

운하의 양쪽 길이 도톤보리 River Walks 이다.

 

 

 

도톤보리는 오사카의 대표적인 번화가, 관광지로 각각의 간판들이 독특하다.       많은 음식점들이 먹자골목을 형성하고 있는데, 쇼핑가인 신사이바시 스지와 연결되어 있다.      오사카는 오랫동안 상업의 중심지로 부유하여서 식도락이 매우 발달하였다.        그래서 예전부터 오사카는 먹다가 망한다 라는 말이 있다.

 

 

 

 

 

 

 

아니...   먹자골목 도톤보리에 왠 인형이 서있는가.         쿠이다오레 타로 인형.        유명한 인형이다.       쿠이다오레란 먹다가 망한다는 뜻으로 식도락의 도시인 오사카를 상징하는 말이다.        이 인형은 멀리서 찍으면 괜찮지만, 인형 옆에 서서 같이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야만 한다.

 

  

 

복어전문집 다요시 본점.          통통하고 커다란 복어가 눈길을 끈다.        아 ~  이거 너무 들어가고 싶은 집이 많으니 저녁 먹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도톤버리의 랜드마크이고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식당 중의 하나인 라멘가게 이다.       킨류라멘.        킨류란 금빛의 용이라는 뜻인데 간판에 그려져있는 용을 보면 녹색이라 조금은 의아하다.       그런데 배부분이 금빛이다.         여기서는 메뉴가 오직 2가지 뿐이다.        라멘과 그리고 돼지고기가 더 많이 들어간 차슈라멘.

 

 

 

 

 

꼬치튀김인 쿠시가즈 가게인 다루마.        꼬치튀김 쿠시가즈는 오사카 중에서도 신세카이에서 시작된 음식인데 다루마가 원조이다.        도톤보리와 난바에만 5개의 지점이 있다.       다루마가 찡그리고 있는 얼굴의 남자를 마스코트로 사용하는 것은 꼬치튀김을 소스에 2번 찍어먹지 말라고 인상을 쓰고 있는 것이다.         즉 한번 입으로 베어먹은 꼬치튀김을 다시 소스통에 넣지 말라는 뜻이다.

 

 

 

 

 

길 가운데에 가지런히 정렬된 자전거들.       신사이바시 쇼핑가에서는 자전거 금지인데, 도톤보리에서도 오직 이 구간만은 자전거 운행이 허락되는 곳이다.

 

 

 

 

 

이 가게는 완전히 일본 현지인들로 대만원이다.         늘어선 줄이 꼬불꼬불 엄청 길고 비까지 약간씩 오락가락 하는데도 마냥 기다릴 모양이다.       무슨 음식을 파는 집인데 이렇게 인기가 대단한지 궁금하다.

 

 

 

식당 안을 들여다보니 둥그런 테이블에 모두들 둘러서서 먹고,마시고, 떠들고....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퇴근시간 후에 모여서 먹고 마시는 모습을 보니 여기도 동양이 틀림없다.        서양사회에서는 퇴근 후에는 집에 가기 바쁜데, 한국이나 일본은 모두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상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하고, 약간은 이상하게도 보인다.

 

 

 

우리도 어느 식당이든지 찾아서 들어가야 하는데.....    시장기는 벌써부터 왔는데 너무나 많은 집들을 기웃거리다보니 점점 더 어려워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는데....

 

      

 

 

 

 

 

회전초밥집.       겐로쿠스시      자동차공장의 Conveyor 시스템에서 착안해서 일본 최초로 회전초밥 시스템을 만든 가게이다.       1958년 오사카 근교의 히가시오사카에서 처음 개업했다.

 

 

 

겐로쿠스시 집에서 스시로 저녁을 하기로 했다.        대부분 한접시에 2개의 스시가 얹어져있는데 125엔부터이다.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스시도 여럿을 맛보았다.         식당내부는 그리 크지 않아 약 30석 정도인데 우리가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항상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도톤보리에만 3개의 지점이 있는, 건물에 걸어놓은 게의 다리가 슬금슬금 움직이는 간판으로 유명한 게 전문점 카니도리 본점.  

     

 

 

오시카에서 시작한 오사카의 명물, 밀가루 반죽 속에 문어를 넣어서 호두과자 처럼 구운 음식인 다코야키 가게 쿠쿠루.

 

 

 

 

 

내일은 오사카에서 마지막 관광을 하고 다음날에는 서울로 날아간다.      아침에는 전기, 전자, 카메라 상점들이 몰려있는 요도바시 백화점에 들리고 오후에는 난바공원에 간다. 

  

 

일본여행 4일째 오후 관광은 나라공원내에 있는 카스가 신사 (春日大社) 이다.         토다이지 (東大寺) 를 돌아본 후에 와사쿠사야마 기슭의 숲길을 따라서 남쪽으로 천천히 주위의 경치를 즐기면서 여유롭게 걸어도 30분 정도이면 충분하다.


 

 

 

 

 

 

 

 

춘일대사로 가는 길에는 양 옆으로 1Km 를 더 넘게 이어진 2천여개의 석등이 매우 인상적이다.          해마다 2월3일과 8월14일, 15일에 등불축제가 있다.       2천개의 석등과 신사의 경내에 있는 1천개의 등롱에 불을 밝히는 축제가 있다.


      

 

 

 

 

 

석등의 덮개돌은 여러 모양으로 되어있는데, 그중에서 사진의 맨 앞에 있는 석등처럼 덮개돌의 처마끝이 말려올라간 덮개를 하고 있는 석등을 볼 수 있다.         이 모양이 고사리처럼 말려있다고 해서 와라비테 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양식의 석등이 카스가 신사 에서 시작되어서 카스가 석등이라고 부른다.  


     

 

길 양 옆으로 늘어선 석등들도 보기에 좋지만, 또한 거대한 아름들이 나무들도 가득해서 가슴이 트이고, 마음도 확 열어주는 것 같다.       매우 아름답고 멋있는 산책 길이다.


 

 

 

 

신사의 입구를 나타내는 도리이가 보인다.       카스가 신사는 원래 후지와라 가문에서 세운 오전에 구경한 코후쿠지 Temple 에 속해 있었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에 신사와 절의 분리정책에 의해서 분리되었다.


 

 

 

 

진열되어 있는 일본의 청주 술통.        신사의 입구에 왠 술통들을 쌓아서 올려놓았는지......    술을 섬기는 神도 있는지.... 


 

 

 

 

 

 

 

 

신사 주위에는 약 2천개의 석등이 있는데, 석등의 숫자를 다 정확히 세는 사람은 무병장수 한다는 황당무계한 전설이 있다.       서양에도 엉터리같은 전설도 있고 황당무계한 이야기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아시아의 여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도 이처럼 가는 곳마다 빠짐없이 나오는 지어낸 이야기들에 놀랍기만 하다.

        

         

 

 

 

 

 

춘일대사의 남쪽문.

 

 

너 ~ 이놈, 사진을 좋아하는구나.       빤히 쳐다보면서 꼼짝 않고 서있다.         마치 카메라 앞에서 멋있는 포즈를 잡아주듯이....


 

 

 

 

 

 

 

 

남문을 통해서 들어오면 정원 가운데에 있는 참배소.          참배소에서 참배를 하려면 입장료 500엔을 내어야한다.


 

 

참배를 원하는 입장객에게서 입장료를 받는 아가씨의 머리에 올린 쪽두리가 독특하다.        1천3백년 전의 옛날 나라시대의 풍습이리라.


 

 

 

 

중문을 지나야 본전 (本殿) 이 있는데, 4개의 동일한 건물이 있다.        4명의 신들이 각 신전에 안치되어 있어 4개의 신사가 본전을 구성하고 있다.


 

 

 

 

 

 

너무 높이 자란 나무라서 정원 안에서는 나무의 전체 사진을 다 담아낼 수가 없는 600년 나이를 자랑하는 측백나무. 


 

 

춘일대사 안에는 회랑에 달려있는 등롱도 여기저기 무수히 있고, 이렇게 큰 청동의 등도 보인다.


 

 

 

 

 

 

몇명의 소그룹을 안내하며 설명을 하는 안내양.       복장이 옛 백제시대의 조선옷 같이 보인다.        나라시대에 백제의 문화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던가....


 

 

 

 

 

 

 

 

신사의 많은 부속 건물의 회랑에 걸려있는 등롱. 


          

 

 

 

여기 방 안의 상 위에도 커다란 등이 있고, 저쪽 방의 천장에도 등이 달려있다.          온 사방에 널려있는 등.


 

 

 

 

 

 

더위를 피해서 우리도 신발을 벗고 이곳에 들어오기는 했는데, 이 학생들 지금 책상에 앉아서 무엇인가 열심히 쓰고 있다.        서양 아가씨도 무엇을 쓰고 있는데....   백일장 같은 것인가 하고 궁금하기도 했는데 아닌가 보다.         일어나서 나가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고......       대단히 궁금했지만 너무나 진지하게 열중하고 있어서 물어보지 못했다.       이 학생은 차례를 기다리고....


       

 

 

 

일본에서는 신사나 절에서 소원을 적은 나무판을 에마라고 하는데 주걱모양, 하트모양 등 다양하다.


 

 

 

 

이제는 다시 석등이 좌우로 열지어있는 길을 따라서 신사를 빠져나간다.           춘일대사는 본래가 나라시대의 중심세력이던 후지와라 가문의 수호신과 조상신을 안치한 신사였다.         768년에 건립되었고 일본전역에 걸쳐있는 카스가 신사의 총본산이다.       후지와라 가문의 선조가 흰 사슴을 타고 왔다는 전설에 따라 나라에서는 나라공원 전체의 방대한 지역에 사슴을 방목하고 있는 것이다.


 

 

신사 (神社, Shrine) 와 절 (寺, Temple) 의 차이점이 궁금하다.           일본은 전통신앙이 자리잡은 나라 중의 하나이다         신사는 원래 일본의 토착종교인 세상의 모든 사물에는 신이 존재한다고 하는 신도 (神道, Shinto) 를 믿는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라고 한다.          조선의 백제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신도 (神道) 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불교가 정착된 후에도 일왕을 대표하는 신도를 무시할 수 없었기에 세월이 흐르면서 불교와 신도 (神道) 는 서로 공존하게 되고 혼합되었다.              일본의 신사와 절은 건축양식이나 눈에 보이는 분위기 등의 외관적인 모습으로는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절에는 꼭 불상이 있고, 신사는 대부분 입구에 도리이 門이 세워져있어서 그나마 구분을 할 수 있다. 

 

 

 

후지와라 가문이 타고 왔다는 사슴 전설도 재미있지만, 샘물을 뿜어내는 사슴도 귀엽게 보인다.


 

 

 

 

 

 

나라에서의 관광을 끝내고 이제는 나라역으로 가는 시내버스로 이동을 한다.


 

 

그런데 버스 속의 건너편 좌석 승객이 읽고 있는 Tabloid 판 신문의 Head Line 이 주먹만하게 크다.        한국 침몰선근절.       인격개조 (人格改造).       한국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선장이 황당하게도 책임감없이 혼자서 먼저 도망간 이야기인가 보다.         침몰선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모든 관계자들의 인격개조가 필요하다는 기사인듯....          내일은 오사카의 시내 관광이 예정되어 있다.    

 

 

오늘이 벌써 일본 관서지방 여행 4일째이다.       나라市는 거대한 청동불상이 있는 동대사 (東大寺) 와 나라의 상징처럼 되어있는 사슴들이 뛰노는 나라공원, 2천여개의 길게 이어진 석등 (石燈) 으로 유명한 카스가 타이샤 (春日大社 ) 神社 등 수많은 문화재들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오사카에서 기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나라까지 가는 동안에는 주변에 일본 농촌의 풍경이 들어온다.        농촌의 풍경이 각국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주 작은 면적의 땅에도 벼농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다소 의외이다.


 

 

 

 

 

 

나라역에 도착하였다.        지금 현재의 나라는 인구 35만 정도의 작은 도시이지만, 서기 710년 수도를 후지와라쿄에서 나라로 옮겨와서 다시 784년 나가오카쿄 (교토) 로 옮길 때까지 74년간 일본의 수도였다.       이 시대를 나라시대라고 하고 이때의 문화를 텐표문화 (天平文化) 라고 한다.       나라시대에 백제로부터 불교가 들어와서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고, 거대한 불교사원을 지었다.


 

 

나라역에서 산조도리 거리를 따라서 20~30분 정도 똑바로 가면 유명 문화재들이 모여있는 나라공원에 들어서게 된다.


 

 

 

 

산조도리를 걷는 길에서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가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쑥떡 전문점, 기념품가게, 관광안내소, 카이카 왕의 무덤이 있는 왕실 고분 입구도 지난다.


 

 

 

 

월일신사 (月日神社).       일본에는 신(神) 들을 모신 신사가 엄청 많다고 하더니 지나는 길에는 이렇게 초미니 신사 (神社) 도 있다.


 

 

 

 

일본의 어느 도시나 있는 Arcade 식 쇼핑지역.


 

 

 

 

무슨 행사가 있는지 붉은 깃발들로 요란하게 장식된 어느 절 입구.


 

 

 

 

 

 

첫번째 목적지 코후쿠지 (興福寺) 에 도착하니까 사슴들이 떼거리로 몰려와서 제일 먼저 달려와서 반긴다.


 

 

 

 

 

 

지금 토후쿠지 절 안에서는 먹이를 얻으려고 달려드는 사슴들과 어울려서 사진을 함께 찍고 노느라고 모두들 절 구경은 뒷전이다.        사슴들이 사슴먹이인 시카 센배이를 사서 들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떼거리로 몰려든다.


 

 

 

 

이 놈은 초등학교 여학생의 공책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여학생은 지금 바쁘다.         카메라를 쥐고 있어야지....        이제까지 기록하면서 다닌 공책을 뺏기지 않아야지.....       사슴들이 종이 정도는 씹어서 먹기도 하고 뱉어내기도 한다.

 

 

 

 

여학생도 있는 힘을 다하고...   사슴도 쫒아가면서 사력을 다해서 물고 늘어진다.        한장의 종이조각이었으면 벌써 찢어졌겠지만 두꺼운 공책이라 사슴의 판정패로 끝나고 말았다.


 

 

 

 

난엔도.     813년에 처음 지었고 현재 건물은 1789년에 재건된 것인데, 이곳에는 국보급을 비롯하여 주요 문화재 2만점이 소장되어 있다.       1년에 단 한번 10월17일에 공개한다.

 

 

 

도콘도.        이 코후쿠지 절은 본래는 건물이 175채나 되는 거대한 절이었지만 여러차례의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다.         나라시대의 권력가였던 후지와라 가문에서 710년에 가문의 절로 건립했다.        일본의 국보 중의 하나인 이 건물은 726년에 처음 지어졌고 1415년에 재건되었다.


 

 

5층탑은 높이 50m 로 교토에 있는 5층탑 다음으로 일본에서 높은 목조탑이다.        730년에 만들어졌고 여러차례의 화재 후에 1426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다음 목적지인 동대사 (東大寺) 로 가는 길에도 여러 신사가 있다.        신사의 입구에는 항상 도리이 (鳥居) 가 세워져있다.       2개의 기둥이 서있고 기둥 위를 연결하는 가사기 (笠木) 로 불리는 가로대 (Cross Bar) 가 놓여있는 형태이다.


 

 

나라에는 헤이조 왕궁터, 절, 신사 등등 8군데의 유명 고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코후쿠지, 토다이지 (東大寺), 카스가 신사 (春日大社) 등이 있는 넓은 지역 전체를  나라공원이라 부르며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다.        방목하는 사슴들과 어울리는 재미가 있어서 관광객들을 더욱 즐겁게 하는 곳이다.


 

 

 

 

 

 

 

 

 

 

약 20분 정도 걸어오면 동대사 입구로 들어가는 남문이 멀리에 보이고, 길 옆으로는 여러가지 기념품가게들과 음식점들이 들어서있다.


 

 

 

 

이곳도 가게에서 파는 사슴 센배이를 들고 나오는 관광객에게서 먹이를 가로채려는 사슴들이 떼거리로 몰려다닌다.      이 놈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여기가 맛있는 센배이를 받아 먹을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이라는 것을.....


 

 

 

 

 

 

 

 

일본 화엄종의 총 본산인 동대사의 본당인 대불사로 가려면 저기 보이는 남문을 지나고, 또 다시 나타나는 중문을 지나야한다. 


 

 

남문은 2층으로 보이지만 안에는 트여있다.        962년에 태풍으로 붕괴된 후에 1199년에 송나라 남부 건축양식을 따라서 다시 지었다.         목조를 거의 모든 건축물에 사용하였던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문화재와 유적들이 화재로 소실되거나 내란으로 훼손되어서 다시 재건되고 하였는데, 남문은 특이하게도 태풍으로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곧 나타나는 중문.

 

 

 

 

 

 

처음에 들어오는 누각문과 본당인 (대불전) 참배전 사이에 있는 문을 중문이라고 하는데, 입장권을 사야만 중문을 지나서 본당 다이부츠덴 (대불전) 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성인 500엔, 학생 300엔.       일본은 어느 곳을 가든지 노인할인은 없다.          대중교통, 입장권 어디든지 모두 성인요금, 학생요금, 이렇게 둘 뿐이다.      이곳에도 엄청 많은 수학여행 학생들이 왔다.


 

 

 

 

동대사의 본당인 다이부츠덴 (大佛殿).       일본의 국보이다.      동서로 폭이 57m, 남북으로 깊이가 50m, 높이가 49m 목조건축물이다.        교토에 있는 고에이도 다음으로 일본에서는 2번째로 큰 목조건물이다.           두 차례의 내란으로 파괴되어서 1709년에 다시 지었는데, 당시에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원래 건물의 2/3 크기로 재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1913년에 대대적인 보수가 있었고 1978년에는 다이부츠덴의 기와 11만 장을 다시 갈았다.

 

 

 

 

 

나라市의 핵심적인 관광지인 동대사 (東大寺) 는 나라시대 쇼무왕 때에 료벤 스님이 창건하였다.      절을 짓는데 연인원 200만 명이 동원되었다.     당시의 일본 인구를 5백만 명으로 추정하니, 왕권에 의해서 모든 국력을 기울여서 지은 절이다.


 

 

 

 

 

 

 

 

다이부츠 는 큰 불상이라는 뜻이다.          일본 국보이다.       높이가 15m, 얼굴 길이 5.4m, 귀 길이 2.5m 이다.          내란으로 파괴되어서 여러차례에 걸쳐서 다시 만들어졌다.         현재 불상의 머리는 에도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왼쪽에는 허공보살상.       지혜, 복, 덕이 허공과 같이 광대하다는 보살이다.


 

 

광목천왕 (廣目天王).        사천왕중의 한 명으로 수미산의 서방을 지키는 신이란다.         뭐 이리도 신이 많고....       불교에 잡다한 신들이 혼합된 것이 일본의 특유의 불교이다.           메이지시대에 이르러 불교사원과 신사를 구분하기 전까지는 무엇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대불전 안에 있는 큰 기둥 아래에는 구멍이 뚫려있다.         이 구멍을 통해서 나오면 극락왕생을 한다는 전설이 있단다.        구멍이 크지 않아서 성인들은 통과하기 어렵다.       매우 마른 사람들은 기어나올 수 있는데, 그렇다면 비쩍 마른 사람들만 극락왕생 한다는 것인가.....       전설은 다양해서 구멍을 통과하면 행운이 깃든다든지, 1년간 액땜을 한다든지 등등의 황당한 이야기들이다.


 

 

 

 

이 여학생은 동료 친구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극락왕생을 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여 빠져나오고 있다.


 

 

 

 

정원 가운데에 있는 테미즈야.       조금 전에는 꼬마들이 와글와글 해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그냥 지나갔는데 어쩐 일인지 지금은 아무도 없다.


 

 

곳곳에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는 모습.         교복이 없는 초등학생들은 색깔이 같은 모자로 단체를 이루어다닌다.


 

 

여기는 또 다른 구룹의 학생들이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는데, 뒤에는 사슴 2마리도 끼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를 기울인다.


 

 

나는 1966년에 이곳에 왔었는데 아무 것도 기억에 남은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오직 남문에 도달하자마자 나타난 사슴들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한때 일본의 수도였다는 사실만이 기억에 있다.         다시 와서 보니 엄청 넓은 나라공원 전체의 주변 경치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제는 여기서 늦은 점심을 하고 동대사를 떠나서 카스가 (春日大社) 신사로 가서 오후의 관광을 계속한다.

 

  

 

Kansai 여행 3일째 오후 관광은 교토의 청수사 (淸水寺) 이다.       금각사에서 나와서 시내버스로 다시 이동한다.        교토역에서는 동북쪽에 있으니 금각사에서는 동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시내 번화가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잘못 타는 바람에, 버스에서 내려서 몇 정거장을 거꾸로 다시 걸어오면서 계획에 없었던 교토시내 구경도 하게 되었다.


 

 

교토는 지금은 인구 140만 명의 중소도시이지만, 서기 794년에 일본의 수도가 된 이후로 1868년에 에도 (지금의 東京) 로 옮길 때까지 약 1천 년간 일본의 수도로서 정치, 종교, 문화, 예술의 중심지였다.


 

 

 

 

금각사에서 떠나서 중간에 버스를 제대로 갈아탔으면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데 거의 1시간이나 걸려서 청수사로 올라가는 길목에 들어섰다.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일본의 전형적인 골목길이 시작되더니 금방 길 양 옆으로 가게와 식당, 카페들이 나타난다.


 

 

 

 

교토 (京都) 시에서 허가를 받은 것을 나타내는 京 이라고 쓰인 상의를 입고 있는 인력거꾼.


 

 

푹푹찌는 더위에 경사진 골목길을 올라가는데 사람들은 엄청 많아지기 시작하고 이제는 골목길이 완전히 관광객으로 꽉 채워져서 움직이는 기분이다.


 

 

예쁜 기념품들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르는 수학여행을 온 듯한 학생들.


 

 

쉴 자리를 발견한 Zenia 는 부채를 펼쳐들고....     아 ~  일본은 서울보다 더 찜통 더위이다.       목욕탕의 후끈한 열기를 느끼듯이 습기가 대단하고 정말로 매우 덥다.

 

 

 

 

 

청수사로 올라가는 거리의 이름은 자완자카 이다.          예쁜 기념품, 부채, 인형, 가방, 비누, 찻잔, 다과, 카페 등등 작고 예쁘게 단장한 상점들이 가득한 거리이다.


 

 

길에는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이 많이 보이는데 대부분 타 도시에서 온 일본 내국인여행객들이다.          교토를 관광하는 여행객에게 현지에서 기모노까지 빌려주는 여행상품이 있는데, 여기서 기모노를 입고 다니는 여성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 여행상품에서 빌려입은 옷을 입고 관광 중이다.

      

 

 

 

 

 

 

여기도 단체관광의 가이드를 뒤따르는 그룹이 리더의 깃발을 바라보고 열심히 쫒아다닌다.         순식간에 미아가 되지 않으려면 깃발을 놓치면 안된다.


 

 

 

 

 

 

보기에는 매우 아름다운데....   이 날씨에 얼마나 더울까....


 

 

청수사의 입구에 도착했다.       계단을 오르면 청수사로 들어가는 인왕문이 깨끗한 붉은색으로 새로 단장을 한듯이 보인다.       뒤에 있어야 할 일본 최대규모의 3층탑은 아쉽게도 지금은 수리 중이라 가려져있다.        청수사는 년간 방문객이 300백만 명이 넘는 아주 유명한 절이다.


 

 

금각사에서는 일본 전통옷을 입은 사람들을 전혀 보지 못했는데 이곳에는 상당히 많은 방문객들이 입고 있다.        최선의 복장으로 참배를 하는가 보다.


      

 

 

 

청수사는 더 들어가야 나오는지 아직도 모습을 들어내지 않는다.        Zenia 는 더위에 완전히 녹초가 되었는지 계단 밑의 인왕문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가 15분이나 지나서야 기력을 회복하고 다시 일어났다.        청수사는 일본어로는 기요미즈데라 라고 불린다.        헤이안시대 초기인 798년에 처음 지어졌는데 1633년에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명에 따라서 재건된 것이다.        수만 년 동안 오토와 산중에서 용출하는 오토와 폭포에서 흐르는 샘은 금색수 (金色水) 혹은 연명수 (延命水) 라고 불리며 일본의 10대 이름있는 약수의 제1로 꼽힌다.        그 오토와 약수가 있는 이 절의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되어 기요미즈데라 (淸水寺) 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청수사 내에는 지슈신사를 비롯하여 여러 신사가 있다.          다양한 부적과 향, 오미쿠지 (행운의 종이) 들이 걸려있다.


 

 

 

 

 

 

 

 

예쁘게 차려입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데 더위쯤은 별 문제가 아닌가 보다.


 

 

 

 

드디어 청수사로 들어오니 모두들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오토와 샘물을 마셔보려고 늘어선 긴 줄이 멀리 보인다.


  

 

 

 

지금 청수사 본당은 참배를 드리려고 길게 줄을 지어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무대처럼 넓은 난간에서는 교토시내를 사진에 담아내기도 하고, 바로 밑에 보이는 오토와 샘물터와 주변 경치를 찍는 사람들로 정신없이 바쁜 곳이다.


 

 

 

 

 

 

꼬마들도 차례를 기다려서 기도하고 소원을 빌고 있는데....     무슨 소원과 기도인지.....    공부 잘하게 해주시고, 시험에 꼭 통과하도록, 그리고 좋은 친구들 많이 만들고 잘 어울리게....


 

 

청수사 본당에서 내려오면서 보이는 지슈신사 (地主神社) 는 청수사에 오는 커플들이 반드시 찾는다는 곳이다.       사랑의 신이나, 질병치유의 신 등등....      소원을 들어준다는 신들이 있어서 인기있는 신사라고 한다.        연인을 맺어주고 사랑을 이루어주는 신을 모시는 신사라고 알려져서 젊은이들로 와글와글 엄청 붐비는 곳이다.

 

 

 

청수사의 본당 전체 건물은 내려오는 길 옆에서 제대로 볼 수 있다.           본당의 앞 부문에는 큰 무대가 있고 산허리에 놓여있는 긴 기둥들이 거대한 건물을 받치고 있다.      많은 참배자들을 수용하는 큰 무대와 본당은 에도시대에 세워졌으며, 절 전체의 넓이는 13만 평에 이른다.        청수사에서는 교토시내의 일부가 내려다보이는데, 아주 맑은 날에는 Osaka 도 멀리 보인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도 있다.

 

 

 

청수사는 거대한 172개의 나무기둥들이 받치고 있는데 못이 하나도 사용되지 않았다.        놀랍게도 모두 재목을 깎고 조립하여서 끼워맞춘 것이다.        2007년에는 세계7대 불가사의 21개 후보지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으나 최종 7개의 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과감하고 비장한 각오로 임할 때 기요미즈의 무대로부터 뛰어내릴 생각 이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실제로 통계에 의하면 1694년부터 1864년까지 170년간 234차례나 뛰어내리는 일이 있었는데 85% 정도의 사람들은 살아남았고, 15% 는 죽었다고 한다.       1872년부터는 목책을 세우고 강력한 대책을 세우면서 뛰어내리는 것이 금지되었다.


    

 

 

 

 

 

 

 

 

 

 

 

청수사 본당의 밑에는 오토와 폭포에서 흘러온 샘물이 3개의 물줄기로 흘러내린다.        이 약수를 마셔보려고 샘물 주위로 기나긴 줄이 늘어져있다.          3개의 물줄기는 각각 연애, 지혜, 장수 를 상징한다.          그러나 오직 2가지 물만을 선택해야 한다.         만약에 욕심을 부려서 3개를 모두 마시면 불운이 따른다고 믿는다.

 

 

 

밑에서 올려다본 기요미즈데라의 무대.


 

 

 

 

이제는 청수사를 빠져나가는 길을 따라서 걷는다.          청수사에서 고다이지 (高台寺) Temple 로 가는 길인 산넨자카 (三年坂) 거리로 들어서서 여유롭게 구경하는 일정을 마치면 오늘 하기로 계획된 관광은 다 마치는 것인데 갑자기 길 찾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다.         워낙이 넓은 지역이라  초행길에 쉬운 일이 아니다.        묻고 물어서 알아낸 정보는 싱겁다.       청수사로 들어올 때있던 상점들이 늘어서있는 길을 거꾸로 내려가다가 200m 쯤에서 오른쪽 골목길이 산넨자카 거리라고 한다.


 

 

 

 

왔던 길을 잠시나마 다시 내려가면서 보는 상점들은 각각의 개성들이 독특하고, 세련된 상품들로 가득하다.       오른쪽으로 뚫린 산넨자카 골목길로 계속가면 다시 오른쪽으로 고다이지 (高台寺) Temple 로 가는 길이 나온다.         오늘 일정에는 방문계획이 없지만 고다이지 Temple 은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부인 네네가 토요도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한 사원이다.        그녀도 이 절에서 비구니가 되어 여생을 보냈다.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을 통일한 일본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우리에게는 조선을 침략하려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고약한 침략자였다. 

      

 

 

 

 

 

 

 

 

지금 걷고 있는 산넨자카 (三年坂) 거리는 황당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산넨자카 거리를 걷다가 넘어지면 3년간 재앙이 찾아온다고 하여서 산넨자카 라고 불리는데 더욱 황당한 것은 각 상점에서 파는 호리병박을 몸에 지니면 재앙이 지나간다고......


 

 

 

 

 

 

산넨자카와 곧 이어지는 니넨자카 (二年坂) 거리는 교토관광의 일번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기모노 차림의 여성들, 게이샤도 보이고, 인력거.....     그리고 京요리 (교토식 일본요리) 식당들과 예쁘고 깜찍한 상품들로 가득찬 가게들로 매우 흥미있는 곳이다.


 

 

 

 

넘어지지 말고 조심스럽게 걸읍시다.


 

 

하 ~  기모노의 색상과 디자인이 무궁무진 하구나.        그런데 저렇게 꽁꽁 싸서 입었으니 얼마나 더울까.....


 

 

요지야 (yojiya) Cafe 앞에서.       기름종이로 유명한 교토의 토종 브랜드인 요지야는 1904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상품은 기름종이, 유자 Lip Balm, 핸드크림, 화장품, 손거울 등등 다양하다.


 

 

 

 

인력거꾼이 또 나타났다.         관광객들도 주요 손님이지만 지금도 이곳에 건재하고 있는 게이샤들이 공연을 나갈 때에는 아직도 전통적인 인력거 사용을 고수한다고 한다.


 

 

 

 

京 (京都) 요리 식당.        무엇이 그리 급해서 그냥 지나쳤는지....      여유롭게 저녁을 하고 천천히 기차를 타고 돌아왔으면 되었을 것을....    여행이 끝나고 되돌아보면 아쉬운 것이 어디 이것뿐인가.       경요리 (京料理) 는 교토요리를 뜻하는 것인데, 교토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해산물을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구하기 어려운 얼마 안되는 식재료를 최대한 이용해서 깊은 맛을 내고 다양한 음식을 만들었다.        재료의 풍미를 살린 섬세한 맛, 눈으로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장식등이 특징이다.


 

 

옆 길에서 게이샤들이 나타났다.         맨 앞에 서서가는 좀 더 나이든 리더를 따라서 저녁 공연장으로 이동을 하는가 보다.


 

 

 

 

전통적인 가부끼 화장을 하고 전통 기모노 복장에....    머리에 꽂은 장식들은 싼 것이 몇십 불이고 비싼 것은 몇백 불이다.            기모노는 평균적인 가격이 몇천 불부터 시작한다.         일본의 전통의상을 입으려면 비싼 옷에 비싼 장신구가 필요하다.

 

 

 

갑자기 나타난 화려한 복장의 게이샤들을 사진에 담아내려는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공연을 하러 이동중인 것 같은데도 한사람 한사람 원하는 여행객들과 모두 사진을 함께 찍어준다.


 

 

산넨지카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니넨지카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올라가면 고이다지 절이 나오는데 우리는 그냥 똑바로 걸어서 야사카 신사 (八坂神社) 쪽으로 걸어간다.        지금 지나온 산넨지카, 니넨지카 모두 황당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넘어지면 3년동안 혹은 2년동안 어쩌구 저쩌구.....     이 길을 걷다간 제명에 살 수 있겠나.....     일본의 정취가 흠뻑 젖어있는 이 길을 따라서, 두리번거리며 가게들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넘어지지 않고 재미있게 즐기다가 간다.

 

        

 

니넨지카가 끝나는 이곳에서 오른쪽의 큰 길로 올라가면 야사카 신사이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신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門 인 커다란 도리이 (鳥居) 가 서있다.       우리는 이제 오사카로 돌아가서 기력을 회복해야한다.         내일은 또 다른 고적의 도시 나라 (奈良) 로 가서 사슴들과 어울리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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