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에서 독일로 다시 들어오니 고속도로가 시원해 보인다.        더우기 이제는 체코 경찰들 처럼 돈을 챙기려는 단속은 없을터이니 후련하다.        유럽의 고속도로는 북미의 고속도로처럼 중앙에 넓은 DITCH 가 아닌 MEDIAN 으로만 분리되어 있다.        독일의 고속도로는 북미처럼 넓고 크게 되어있지는 아니하지만 그래도 정말로 잘 관리되어 있다. 

 

 

 

고속도로 위로 지나가는 LOCAL ROAD 의 다리도 멋있게 꾸며놓았다. 

 

 

  

 

 

SERVICE STATION 도 놀라울 정도로 깔끔, 정결하고.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다니며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청정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풍력발전기이다.       역시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좀 다르다. 

 

 

 

POLAND 소속의 버스.       우리를 오스트리아, 독일, 헝가리, 체코를 지나서 다시 베르린으로 태우고 가는 이 버스의 유리창 앞에 놓여있는 마스코트 인형도 정이 많이 들었다. 

 

 

 

동서 베르린으로 나뉘어있다가 1990년 통일이 되면서 동베르린을 흡수한후에 수도는 본에서 베르린으로 옮겨졌다.       동베르린의 허름하고 총알자국이 선명하던 우중충한 건물들은 통독이후 10여년간에 걸쳐서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되었다.         또한 수많은 공공건물의 신축은 베르린을 몰라보게 바꾸어놓았다.

 

 

  

 

 

신축된 베르린의 중앙역.          북경으로 가는 기차도 여기서 떠난다.        옛 분단시절에 중공에서 동독으로 유학했던 중공의 유학생들이 공부를 마치고 귀국할 때 본국정부에서 보내준 항공료 대신 기차표를 사고, 나머지 돈으로 쇼핑을 하고 갔다고  한다.        그 당시 기차로 북경까지 1주일이 걸렸다고 하던가. 

 

 

  

 

  

 

 

명품거리로 유명한 쿠담 (KUDAMM) 거리.        옛 서베르린 지역이었다.

 

 

 

파리의 개선문을 본따서 만든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ER TOR).       이 문은 1788년부터 1791년까지 3년에 걸쳐서 완성되었다.        문 위에는 4마리의 말이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가 타고 있는 전차를 끌고있는 모습의 동상이 있다.         처음에는 도시의 성문이었던 것이 도시가 점점 커지면서 시내 중심에 위치하게 되었다.         르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의 사진을 보면 장벽 바로 뒤에 서있던 이 문은 통일 이후 장벽이 사라지고난 후에도 그대로 남아 독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유럽연합국가 (EU) 들의 공통화폐인 유로화의 동전은 각 나라별로 동전의 뒷면을 다르게 만드는데, 독일에서 만드는 50Cent 동전의 뒷면에는 브란덴부르크 문의 형상이 새겨져있다.

 

 

 

관광객을 태우는 마차들 그리고.....  

 

 

 

성조기를 들고 미군군복을 입고는 관광객들과 사진을 함께 찍어주고 돈을 받는 장사꾼들.        장엄한 역사의 현장이 상혼 (商魂) 으로 가려지고 있는 것 같다.

 

 

 

이 모델 사진은 하필이면 왜 여기서....

 

 

  

 

  

 

 

학살당한 유태인들의 추모비도 멀리 보이고. 

 

 

 

도로에 밖혀있는 이 돌들은 옛 분단의 장벽을 헐어낸 자리에 그대로 남겨두어 비극을  영원히 잊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국회의사당 (REICHSTAG).        독일 역사를 가장 잘 대변하는 건물로서 1997년에 새로 얹은 현대식 DOME 유리지붕을 관광하는 사람들의 기다리는 줄이 엄청나게 길게 늘어져있다.

 

 

 

BIKE TAXI.       1유로씩 돈을 낸 승객들이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고, 운전사는 그저 핸들만 잡고 있다.

 

 

 

국회의사당 앞에 세워진 추모비들.         공산주의를 극히 싫어했던 히틀러에게 무참히 처형당했던 의원들의 추모비들이다.

 

 

  

 

  

 

 

동서 베르린으로 나누어져 있을 때 다리의 중간이 끊겨져있던 것을 다시 철물구조로  이어놓고 비극의 현장을 영원히 보존하고 있다. 

 

 

 

지금도 부분적으로 남겨두고 있는 장벽.        1961년 8월부터 28년 동안 서베르린을 섬을 에워싸듯이 둘러싸고 있었던 장벽이다.        1990년 독일통일에 의해 무너지기까지 공산주의와 빼앗긴 자유의 상징물이었던 베르린 장벽.       이 장벽은 공산동독에 의하여 단 하루밤 사이에 뚝닥 만들어졌었다.       지금도 일부 남아있는 장벽에는 많은 작가들이 그림을 남겼고 마구 그려진 낙서들은 어지럽고 흉물스럽다. 

 

 

 

쿠담 거리에 있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한때 높이 113m 의 종탑을 가지고 있던 교회는 1943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많이 파괴되었다.        지금은 63m 의 종탑 하나만 윗부분이 파괴된 그 때의 모양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시민들은 이 탑을 구멍난 이 (TOOTH) 라고 부른다.         후손들이 전쟁의 비극을 잊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대단하다.         아~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언제나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이 교회앞 광장거리는 거리공연 예술가들이 많이 있다.        주로 행인들을 대상으로 한 즉석연주와 무언극, 춤 등을 보여주고 용돈을 벌어가는 생계형 ARTIST 들이다.

 

 

 

 

  

 

  

 

 

베르린은 다른 유럽의 도시들과는 달리 젊은이들이 많아서 모든 것이 활기차 보인다. 

 

 

 

베르린은 서울의 약 1.4배 크기이다.        잘 가꿔진 거리와 울창한 녹지환경이 유럽에서 가장 북미의 도시들을 닮은 것 같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저녁을 LOWENBRAU 에서 한다. 

 

 

 

유럽에서는 대체로 음식들이 짰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이 SOUP 는 너무 짜다.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뜨거운 물을 달라고 하여서 물과 섞어서 먹어본다.         그래도 엄청 짜서 다들 거의 남기고 만다.        무지막지하게 짜다. 

 

  

 

예쁘게 만들어놓은 감자도 무지하게 짠데, 이 놈은 물에 섞을 수도 없고...     내 접시에 있는 고기는 완전히 숯덩이 이다.

 

 

 

아 ~   그래도 아이스크림은 일품이구나.

 

유럽여행의 마지막 밤을 베르린에서 보내고 아침에 일어났다.      6월7일 토요일.      아침식사를 마치면 공항으로 떠나야한다.       여행의 마지막 날 BREAKFAST.        뜨거운 물을 부어놓은 컵 라면이 상 위에 함께 있다.       혹시라도 여행중에 몸에 이상이 생겨서 입맛을 잃으면 먹어볼까하고 딱 한개를 가방에 넣어왔다.        그런데 이 놈이 매일 가방을 꾸릴 때마다 이리저리 성가시게 굴더니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다.       이제까지 끌고다니던 놈을 버리자니 억울하고 다시 집으로 끌고가는 것은 더 억울한 것 같아서 오늘 아침에 해치우기로 결론을 내렸다.       아 ~  그런데 컵 라면이 이렇게 맛이 없었던가...     생각해보니 이탈리아에서 머무는 1주일 동안 맛있는 NOODLE 을 매일같이 즐겼으니...  

 

 

 

6월7일.       우리의 여행은 베르린에서 BRITISH AIRWAYS 로 런던으로 날아가서, AIR CANADA 로 갈아타고 끝을 내려하고 있다.        작년 9월6일에 시작한 유럽여행.      산 넘고, 물 넘고, 긴 긴 여행이 이제서야 끝이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BYE BYE  EUROPE,   HELLO  CANADA  !!! 

 

 

 

 

프라하 9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13세기 중엽에는 초기의 고딕 양식이 첨가되었다.       그후 프라하 출신인 카를4세에 의해 왕궁과 성 십자가 교회등이 고딕 양식으로 새롭게 건축되면서 체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1526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다시 르네쌍스 양식이 도입되었으나, 바로크 시대인 1753년부터 1775년 사이에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       시작부터 완성될 때까지 약 900년이 걸렸다.      1918년부터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프라하성의 내부.       오른쪽 지붕 위에 있는 깃발이 지금 대통령이 집무중이라는 표시이다. 

 

 

 

 

 

성 비트 성당 (ST. VITUS CATHERDRAL).        프라하성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최초의 설계자는 프랑스 출신의 마티아스였는데 1344년 카를4세 때에 착공하였다.        그후로 여러 건축가들이 작업을 이어갔다.        16세기 중엽에는 르네쌍스식의 철탑이 완공되고, 17세기에는 양파 모양의 바로크식 지붕이 드러났다.       18세기에 들어와서 오늘날과 같은 신 고딕양식의 완성된 형태를 갖추게되고, 1929년이 되어서야  완공되었다.       정문 바로 위를 장식한 지름 10.5m 의 장미의 창이 매우 아름답다.

 

 

 

성 비트 성당의 철문. 

 

 

 

성당 안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기법의 스테인드 유리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ALFONS MUCHA 가 제작한 아루누보 양식의 작품이다.         성당 지하에는 역대 체코 왕들의 석관묘가 안치되어 있으며 본당의 주위에는 체코의 수호성인 바출라프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화려한 예배당이 있다.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프라하 시가.

 

 

 

 

 

오늘 하루종일 엄청 걸으셨으니 그늘에 앉아서 잠시 쉬는 것도 좋을듯.      모두들 주저앉았다.       가이드도 주저앉았고...   몇분이 빠져있지만 다같이 사진 한 장을 찍는다.

 

 

 

 

 


셀레트나 거리의 확약탑.       1475년 지금의 구 시가지를 지키는 13개의 성문 가운데 하나이며, 대포 요새로 건설되었다.        루돌프2세 때인 17세기 초기에 연금술사들의 창고겸 연구실로 쓰이면서 화약탑으로 불리게되었다.         고딕양식의 탑으로 높이는 65m 이며 186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있다. 

 

 

 

 

 

저녁을 먹으러 들어온 이 식당은 수백 년간 포도주 저장창고 였었다고 한다.        유리창 하나 없는 넓지 않은 실내공간을 오밀조밀하고 깔끔하게 꾸며놓았다.         모든 유럽이 다 이렇게 조그마한 공간을 잘도 꾸며놓는다.

 

 

 

 


믿거나 말거나.        1499년부터 5백년간 영업중이라는 술집에 들어왔다.

 

 

 


이 친구들 한국민요, 사랑의 미로 등등 왠만한 한국의 유행가는 다 연주한다.         LA 에서 오신 Mrs. 최는 포크로 장단을 맞추시고, Mrs. 이는 멋지게 베사매무초를 뽑으시어 주위의 박수갈채를 받으셨다.

 


왕궁 근처이었던가.        왕궁으로  모두들 걸어가고 있는데  근처의 옛 건물에 분명히 유리창을 먼들었던 것 같은데 다시 막아놓은 건물들이 몇개 보인다.      막아도 철저하게 완전히 막아놓았다.           가이드에게 물어본다.          전쟁을 많이 해서 재정이 바닥이 났다든가, 궁전을 짓느라고 돈이 더 필요하고 하면 창문세도 걷었단다.         창문 숫자대로...       그래서 당시에 있던 창문을 막아버린 건물들이란다.        러시아에서는 턱수염 세금도 걷었다던가...    아~하~ 그래서 지금도 러시아 사람으로 턱수염 기른 사람을 아직까지 본 기억이 없구나.           솔제니친 외에는....

 


프라하성의 반대편 언덕을 트롤리카를 타고 올라가서 바라본 프라하성의 야경.

 

 

 

 

 


TOUR 를 하다보니 벌써 밤 11시가 되었다.        택시 4대에 나누어타고 호텔로 향한다.        요금도 다 지불하였고 운전수에게 어디로 가는지 다 이야기 하였으니 그냥 타고가기만 하면 된다고 하면서 가이드가 우리 택시를 제일 먼저 보낸다.        히피처럼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서 묶고있는 운전수가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15분 정도를 달리고 시내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칠흑 속으로 가고 있는데 은근히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이 친구가 뒤돌아본다.       으악 !     어느 호텔인지 아느냐고 물어온다.         그냥 이 길로 가면 나온다고 했는데 자기는 어디인지를 모르겠다고 한다.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아 ~  우리가 달리는 길은 점점 더 으스스하다.         가이드 전화번호가 있나....       호텔 이름도 모르고....     이 친구가 갑자기 흉악범으로 돌변하면 큰일이다.         차 안에는 ZENIA 와 나, LA 에서 오신 MR. LEE 부부 이렇게 4사람이 있으니 쉽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4사람 모두 숨죽이는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3~4분을 그러고 더 갔던가.          아 ~  저쪽 길에 서있는 버스가 우리를 태우고 다니는 버스이다.        가던 길을 되돌아와서 보니 앞 창문에 마스코트 인형이 있는 버스가 맞다.       버스를 보지 못했으면 아마도 공포에 질려서 엄청 헤매이고 다녔으리라.         호텔로 들어가보니 제일 먼저 떠난 우리팀이 제일 늦었다.          나중에 듣고 보니 여차하면 ZENIA 는 긴 머리를 붙들고 잡아당기려했었다 하고, MRS. LEE 는 구두를 벗어서 내리치려고 하셨다나....  ㅎㅎ    머리 긴 히피 운전기사님, 공여히 의심을 해서 미안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잊을 수 없는 이 호텔의 사진을 한장 남겨놓는다.

 

 

 

오늘 아침에는 오랫만에 된장국을 풀어서 마셔본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그저 그렇게 느껴진다.

 

 

 

AUSTRIA 의 빈에서 CZECH 의 프라하로 가고 있다.      예전의 체코슬로바키아는 동구권이 무너진 이후로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두 나라로 분리되었다.         그런데 옛 공산국가이었던 나라들은 아직도 고속도로가 건설중에 있거나 큰 도시 근처의 일부만 되어있다.        자동차들이 2WAY 에서 중앙선을 넘나들며 다니고 있다.

 

 

 

그러나 주위의 농촌 풍경은  평온하고 아늑해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4명이나 되는 체코 경찰관들이 버스를 세운다.      과속으로 달려서 SPEED GUN 에 잡혔나.....          알고 보니 쌍안경으로 지나가는 외국차들은 무조건 붙들어서 물고 늘어지고 있다.        이것 내놓아 보아라.        저것 내놓아 보아라.       이 증명서 보자, 저 증명서 보자.       무조건 질질 시간만 끌고 간다고 한다.       아무 잘못이 없어도 30분 정도는 이것 보자, 저것 보자 하면서 물고 늘어진단다.         우리 버스운전기사가 40 Euro  

($64)  를 건네주자 곧바로 보내준다.        체코에서 공산체제가 무너지고 벌써 15년이 지나갔지만, 구악은 아직도 많이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가 보다.

 

 

 

이 친구는 다른 동료 경찰 3명이 우리 버스기사를 괴롭히고 있을 때, 또 다른 먹이가 될 외국차량을 쌍안경으로 찾고있다.        체코 경찰의 실상 (實狀) 이 다 이런 것인가. 

 

 

 

드디어 프라하에 도착하여 KOBA 라는 한국식당에서 된장찌게와 상추쌈으로 포식을 한다.          이 집은 다른 한국식당들과는 달리 모든 것을 더 주문하는대로 푸짐히 내어놓는다.

 

 

  

 

 

1968년 1월 '프라하의 봄' 으로 불리었던 자유화운동이 쏘련연방이 주축이 된 바르샤바 조약군의 진입으로 무참히 짓밟힌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였던 PRAHA (PRAGUE) 에 왔다.         프라하는 흔히들 동유럽의 파리 (PARIS) 라고도 하고, 동유럽의 휘란체 (FLORENCE) 라고도 한다.        아,  좋구나 !!! 

 

 

  

 

 

프라하는 12세기에 이미 중부 유럽의 최대도시의 하나였으며, 14세기의 카를4세 때에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15, 16세기에는 고딕 건축의 전성기, 17세기에는 바로크 건축이 번성하였던 프라하는 2차세계대전 때에도 무사하였다.         이웃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가 거의 95%가 파괴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너무나 대조적이다.

 

 

  

 

 

프라하 구 시청사 벽에 걸려있는 '천문시계'  는 1410년 시계공인 MIKULAS 와 수학교수 SINDEL 이 공동 제작하였다.       1490년에는 달력이 추가로 제작되었고, 17세기 들어서는 움직이는 조각상을 덧붙이고, 1866년에는 사도들의 형상이 추가되었다.       2차세계대전의 피해로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보수를 거듭한 끝에 1948년에 다시 시계는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시계는 위, 아래, 2개의 큰 원형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위쪽 시계를 CALENDAR 룸이라고 한다.        천동설의 원리에 따른 해와 달 그리고 천체 (天體) 의 움직임을 묘사한다.        1년에 한바퀴씩 돌면서 年, 月, 日 을 나타낸다.        아래쪽을 프라네타 룸이라고 부르는데 12개의 계절별 장면들을 묘사하여 제작 당시의 보헤미아의 농경생활 (農耕生活) 을 보여준다.        매시 정각이 되면 칼렌다 룸 오른쪽 해골모형이 움직이면서 12사도 들이 2개의 창을 통해 천천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이어서 시계 위쪽의 황금색 닭이 뛰쳐나와서 울면서 시간을 나타내는 BELL 이 울린다.

 

 

  

 

 

프라하의 명물로 손꼽히면서, 매시 정각이 되기 직전부터 모이기 시작하는 관광인파가 구 시청사 앞의 광장을 뒤덮는다.

 

 

  

 

  

 

  

 

  

 

 

 

  

 

  

 

 

한국의 TV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에서 소원의 탑 이라고 드라마에서 멋대로 이름을 붙여서 촬영하였던 곳도 구 시청광장에 있다.

 

 

 

 

 

구경만 하여도 귀엽고 아기자기한 체코의 전통 기념품들. 

 

 

  

 

 

세계적으로 유명한 체코의 유리그릇, CRYSTAL 제품들.

 

 

 

 

 

 

  

 

 

구 시가지의 골목마다 멋있고 아름다운 카페들이 줄지어 늘어서있다.

 

 

  

 

 

카를교 (橋).       강 서쪽의 프라하성과 동쪽의 상인거주지를 잇는 다리인데 카를4세 때인 1346~1378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카를교라 부른다.       다리 양쪽 난간부에 상인들의 석상 (石象) 을 세웠고, 다리 양쪽에는 탑이 있다.        다리의 길이는 약 500m 인데 거리의 악사들, 화가들, 그리고 좌판을 벌려놓고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과 관광객들로 대만원을 이룬다.

 

 

 

젊은이들은 관광보다는 다른 것에 더 흥미가 있는가 보다.      모두들 다리 밑을 보고있는데....   남학생들이 모두 다리 밑에 있는가...

 

 

  

 

 

 

  

 

 

동료여행객들이 다리 위에서 한줄로 서서.... 

 

 

  

 

 

결혼식을 마친 신랑, 신부도 다리 위에서 걷고있고.         " 두분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 합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있다.      신부는 좋아하는데 신랑은 부끄러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겨우 포즈를 잡는다.    역시나 대중 앞에서는 여자들이 담대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여기에 손을 대면 소원이 이루어지는가 ?       우리도 해보고 싶은데 너무나 줄이 길어서 포기한다.       이 아가씨의 소원은 무엇일까... 

 

 

  

 

  

 

 

카를교 다리를 건너서 이제는 프라하성으로 들어간다.

 

 

 

 

 

 

HUNGARY 로 들어오자 유럽연합 (EU) 이전에 사용하던 국경검문소가 이제는 사용할 일이 없게 되자 그대로 비어있다.        그 옆에 위치한 식당은 지금도 영업중이다.      화장실도 사용하고 2시간 가량을 달려왔으니 쉬어갈 겸 이곳에서 내린다.        헝가리도 늦게 EU 에 가입은 되어있으나 아직 EURO 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헝가리 돈으로 바꾸어주는 환전소가 아직도 이곳에 보인다.

 

 

 

그런데 이 식당의 화장실은 철저하게 쇳 덩어리로 장막을 쳐놓았다.        동전 25Cent 를 넣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겔레르트 언덕 (GELLERT HEGY) 에 왔다.         HUNGRY 최초의 왕인 이슈트반 시절에 성 게레르트가 부다페스트 지역에 처음으로 카톨릭을 전파하다가 이교도들에 의하여 통속에 갇힌채로 언덕에서 굴러떨어져 순교하여 이름 붙여진 겔레르트 언덕이다.        해발 230m 로  도나우강과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언덕 정상에 있는 치타델라 요새는 1850년 AUSTRIA 가 헝가리를 감시하기 위해 건설했다.        2차세계대전 때는 독일군이 점령하여 방공호로 사용하여 지금도 성벽에는 총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관광지에는 어느 곳이든 이동상품 진열대가 죽 늘어서서 손님을 기다린다.     카우보이 모자와  빨간 스커프를 두루고있는 가운데의 목각인형은 실제로 담패를 태우고 있다. 

 

 

 

볼가강 다음으로 유럽에서 2번째로 긴 도나우강은 요한 스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로도 많이 알려져있다.       ALPS 북부에서 시작하여 AUSTRIA 의 빈, HUNGARY 의 부다페스트, YUGO 의 베오그라드등 큰 도시들을 지나서 흑해로 흘러간다.         겔레르트 언덕에서 보이는  도나우강의 왼쪽으로는 부다,  오른쪽이 페스트이다.        원래는 별개의 도시였던 것이 1872년 합병하여 부다페스트가 되었다.       부다에는 왕궁, 겔레르트 언덕 등 역사적인 건축물이 많다.       페스트는 상업,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서 중앙관공서, 국회의사당이 있다. 

 

 

 

언덕 바로 남쪽에는 2차세계대전 때에 쏘련군이 HUNGARY 를 나치 독일로부터 구해준 것을 기리기위한 높이 34m 해방기념가 있다.         이 기념비의 여신상은 모스크바를 향해 세워놓았고 승리의 월계수잎을 높이 쳐들고있다.       결국은 쏘련의공산체제에 의한 또 다른 점령이  

되었는데 해방이라니.....

 

 

 

 

 

점심을 하러 들어온 식당의 처마에 매달려있는 이름 모르는 열매들.      옛 한국의 풍경과 너무나 흡사하다. 

 

 

 

굴라시 SOUP.      조금만 더 매우면 육게장 맛에 근접 (?) 할 것도 같다.

 

 

 

  

 

 

부다페스트의 LAND MARK 인 세체니 BRIDGE  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부의 성채 (HALASZBASTYA).       왕궁 언덕의 동쪽에 서있는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이 절묘하게 혼합된 건물로 1899~1905년 사이에 지어졌다.      19세기에 시민군이 왕궁을 지키고 있을 때 도나우 강의 어부들이 강을 건너서 기습하는 적들을 막기 위해 이 요새를 방어한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어부의 성채에서 내려다보이는 도나우 강변의 국회의사당.

 

 

  

 

  

 

 

부다페스트는 도시 자체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거리 곳곳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관광객들.

 

 

  

 

   

 

 

 

헝가리 고유의 전통 복장에서와 마찬가지로 호화롭고 아기자기한 수를 놓은 상품이 가득하다. 

 

 

  

 

 

2차세계대전 전쟁의 비극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파괴된 건물과 무수히 뚫려있는 총탄의 흔적들. 

 

 

 

베토벤이 한 때는 이곳에서도 살았었다.       지금은 NATIONAL DANCE THEATRE.

 

 

 

 

 

부다 왕궁. 

 

 

  

 

 

열심히 설명하는 현지의 가이드님.      모두 지쳐있는 관광객들...    매일같이 쉬지않고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고 들으니....    

아이고 !  뭐가 뭔지 ......    유럽의 역사 너무 너무 어렵습니다  !!!!!!! 

 

 

  

 

 

젊은이들도 지쳐서 앉아서 쉬는지, 사진을 찍고 있는지...       유럽 전체에 널려있는 것이 기념물이고 역사적 유물이니.....

 

 

 

영웅광장.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896년에 지어진 광장이다.        광장 중앙에는 36m 높이의 기둥이 있는데 맨 위에는 가브리엘 대천사의 조각상이 있다.      기둥 옆에는 마자르의 7개 부족장들의 동상이 있고 반원의 형태로 주랑 (柱瑯) 이 2부분으로 나누어져있다.       여기에 헝가리의 역대 왕들과 영웅들이 연대순으로 조각되어 있다. 

 

 

 

영웅광장 바로 길 건너에 있는 국립박물관.  

 

 

 

부다페스트의 시내 모습.       다시 AUSTRIA 의 빈으로 되돌아가서 쉬고, 내일 아침에는 CZECH 의 프라하로 간다.

 

 

  

 

 

 

오스트리아, 독일로 들어오면서 호텔의 아침 BUFFET 식사가 좋아졌다.         영국, 불란서, 이태리에서 겪었던 커피의 불편함도 없어졌다.        어제의 호텔도, 오늘 이 호텔도 미국식의 COFFEE 가 준비되어 있으니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다.

 

 

 

AUSTRIA 의 수도  빈 (WIEN) 에 왔다.      4년마다 열리는 유럽축구 2008년 개최지로 도시 곳곳에 'UEFA  EURO 2008' 깃발이 걸려있다.     스위스와 공동 개최국이다.

 

 

 

도나우강의  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빈 (WIEN) 은 음악에서도 수세기 동안 세계적인 중심지로서, 모차르트, 베토벤, 요한 스트라우스, 브람스 등 많은 음악가들의 본거지였다.        민속춤에서 파생된 왈츠도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빈에서 제일 번잡하고 화려한 케른트너 거리에 위치한, 한국인이 경영하는 일본식 식당에서 점심으로 오랫만에 스시와 불고기를 맛본다.

 

 

  

 

 

슈테판 성당 (STEPHANSDOM).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양식 건물로서 37m 에 달하는 첨탑이 있는 성당은 65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1359년에 완성되었다.      성당 이름은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 성인 슈테판에서 따온 것이다.     1450년에 만들어진 지하묘지에는 흑사병으로 죽은 약 2,000구의 유골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해 가운데 심장등의 내장을 담은 항아리와 백골이 쌓여있다.       모짜르트의 결혼식 (1782년) 과 장례식 (1791년) 이 치러진 성당이기도 하다.

 

 

 

성당 내부에 들어오니 천장, 벽면 곳곳에 백색의 장식물들이 늘어져있고, 푸른빛, 붉은빛의 조명으로 어안이 벙벙하다.      여기가 엄숙한 성당이 맞는가 싶다.        아,  그런데 이것이 유럽축구를 기념하는 뜻에서 이렇게 장식을 하였단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빈의 가장 번화한 거리인 케른트너 (KARNTNER) 거리에는 화려한 상점들, 카페들과 거리의 예술가들이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인간에 적합한 거주환경의 조성" 이라는 건축목표를 실현시키는 초현실주의 건축가인 훈데르트바세르 (FRIEDENSREICH HUNDERTWASSER)  가 지어놓은 건물이다.        모든 바닥이나 천장할 것 없이 거의 직선을 사용하지 않고 표면은 오목볼록, 모서리는 둥글둥글하게 만든다.        지붕과 발코니에는 많은 나무들을 심어서 건물을 정원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집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그는 15년간 무려 50개가 넘는 건축 프로그램을 맡았다.

 

 

  

 

  

 

  

 

 

음.     저 그림이 마음에 드는구나...... 

 

 

 

훈데르트바르트의 건물 사진인 오른쪽 위의 저 것도 아주 좋아보이고.......

 

 

 

결국 크고 작은 것 3점이나 잡으셨네. 

 

 

 

시민공원에서 멀리 보이는 호텔이 오래 전에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가 유럽에서 영화제 참석중에 서방으로 탈출했던 곳이다.      미국대사관으로 뛰어들어 망명을 했다. 

 

 

  

 

 

시민공원.        구 시가지에 위치하고 있는 시민공원은 1820년에 조성된 빈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다.       약 100년 전까지도 이 공원은 귀족들의 사교장소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공원 안에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조각상, 슈베르트의 기념상이 있다.       요한 스트라우스와 기념촬영을 하려는데 비가 내린다.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요한 스트라우스를 우산으로 받쳐주어야 하는데....

 

 

 

쇤브룬 궁전 (SCHLOSS SCHENBRUNN).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에 자극되어 당시에 많이 세운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궁전으로 방이 1,441개이며 실내장식은 대부분 로코코 양식으로 꾸며져있다.       나폴레옹도 1805년과 1809년에 이 궁전에 머물렀다.       넓은 프랑스식 정원이 아름답다. 

 

 

  

 

  

 

 

 

 

봄, 여름에는 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온 유럽을 휘젓고 다닌다.      역시 여행은  젊은 때에 다녀야 좋을 것 같다. 

 

 

  

 

  

 

 

하루종일 여기저기 열심히 설명을 하면서 우리를 안내하는 현지의 가이드님.       바지 뒷주머니에 우산도 넣고 물병도 넣고.      비어있는 오른쪽 뒷주머니까지 사용하면 뒷 주머니 2개만 가지고도 한 살림  다 넣고 다닐수 있겠다.

 

 

 

 

  

 

 

저녁은 포도주 선술집들이 모여있는 호이리게 (HEURIGE)  에 가서 이곳 명물인 백포도주와 비엔나 소세지도 먹어본다.

 

 

 

곳곳에 주점들이 있는데 처마에 솔잎들을 매달아놓았다.        중세때에는 문맹자가 80% 이상이었다.     그때부터 선술집 표시를 솔잎으로 하였던 것이 지금껏 전통이 되었다. 

 

 

 

850년이나 되었다는 이 집으로 저녁을 하러 들어간다.

 

 

 

우리가 지금 들어가는 이 집은 밖의 MENU 판 가운데에 미국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톤이 다녀간 사진을 붙여놓고 있다.      상술 (商術) 은 동서양이 다 다를 것이 없다니까.....

 

 

 

우리가 들어간 이 집도 솔잎을 걸어놓았다.

  

 

 

그런데 이 식당은 안으로 들어서니까 유명인사들 사진을 수십장이나 걸어놓았다.       클린톤 위로는 소피아 로보이고, 옆으로는 교황까지 ????? 

 

 

  

 

 

ROAST 한 돼지고기도 맛이 있고, 비엔나 소세지도 좋다.  

 

 

  

 

 

악사들은 한국민요, 유행가를 쉴사이없이 마구 연주한다.         합창소리도 우렁차고....    음식 맛있고...    WHITE WINE 도 좋고.        우리가 떠나는 지금도 또다른 한국에서 온 젊은팀들의 합창소리와 악사들의 연주, 환호성으로 떠들썩하다.       내일은 헝가리의 BUDAPEST 로.....

 

 

 

 

 

 

 

 

 

 

미라벨 궁전의 미라벨 정원 (MIRABELL GARTEN).       독일의 뮨헨에서 다시 오스트리아의  짤즈부르크에 왔다.         미라벨 정원과 함께 영화 SOUND OF MUSIC  의 무대가 된 짤즈부르크.        미라벨 정원은 미라벨 궁전 안에 있다.        화려한 화단과 작은 분수가 잘 어우러진 이 예쁜 미라벨 정원에서는 강 건너 언덕 위에 우뚝 솟은 호엔 짤즈부르크 성 (城) 이 보인다.

 

 

 

언덕 위에 멀리 보이는 호엔 짤즈부르크 성.        정원의 왼쪽 건물은 미라벨 궁전.  

 

 

 

 

 

 

아 ~~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 미국의 어느 광고회사가 영화 SOUND OF MUSIC 장면을 광고용으로 촬영하고 있다.
 

 

 

 

 

소금의 산 (山) 이라는 뜻을 가진 SALZBURG 는 오래 전부터 암염 (岩鹽) 의 산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AUSTRIA 의 알프스 기슭에 위치한 짤즈부르크는 잘차흐강을 사이에 두고 신 시가지와 구 시가지로 나뉜다.          천재 음악가 모짜르트가 1756년에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호엔 성으로 오르는 언덕길에서 눈길을 끄는 묘지.       특이하고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호엔 짤즈부르크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짤즈부르크. 

 

 

 

 

 

호엔 성은 1077년 창건한 웅장한 중세의 고성이다.      11세기 후반 로마교황과 독일황제가 서임권을 둘러싸고 대립이 심해지고 있을 때 교황측의 게브하르트 대주교가 남부 독일의 제후들이 공격해 올 것에 대비하여 건설하였다.        성의 테라스에서 내려다보이는 짤즈부르크의 시내 경관이 아름답다.  

 

 

 

 

 

 

 

게트라이데 거리 (GETREDEGASSE).        호엔 짤즈부르크 성을 향하여 아름다운 쇼핑가를 이루고 있다.         짤즈부르크의 문화적 특성과 매력이 함축되어 있는 곳이다.        거리 양쪽으로 보석가게, 꽃집, 옷가게, 레스토랑, 카페들이 즐비하게 들어서있다.      주위에는 모짜르트의 생가와 구시청, 대성당, 미카엘 교회, 화랑, 박물관 등이 늘어서있다. 

 

 

 

 

 

 

 

 

 

 

 

모짜르트 생가 (MOZART"S HOUSE).           독특한 유머감각과 넘치는 창작적 기지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고전주의 OPERA 의 최고봉에 올라섰던 음악의 천재 MOZART.        1756년 1월27일 모짜르트는 12세기 무렵에 지어진 이 집의 3층에서 태어나 17세이던 1773년까지 살았다.      모짜르트는 35 의 젊은 나이로 일생을 마감한다.       모짜르트의 생가는 현재는 모짜르트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당시에 문 밖에 설치해놓았던 3개의 손잡이들은 각층으로 연결되어 지금의 초인종과 비슷한 역할을 하였다.        지금은 모짜르트 기념관으로 되어있는 이 집은 1층에 모짜르트가 사용했던 침대, 피아노, 바이올린, 악보 등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오페라  '마술피리' 를 초연 (初演) 할 당시 사용했던 소품들이, 3층과 4층에는 모짜르트의 가족들과 함께 짤즈부르크에서 생활하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모짜르트씨 계십니까 ?   

 

 

 

두건물 사이에 끼어서있는 HENRI J. SILLAM -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좁은 넓이의 건물이리라. 

 

 

 

 

 

게트라이데 거리에는 건물마다 가게의 특징을 철 (鐵) 에 표현한 예술적인 수공 간판들이 많이 달려있어 득특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거리로 알려지게 만든 철제간판은 문맹이 많았던 중세시대에 무엇을 판매하는 가게인지를 알리려고 하는데서 시작되었다.

 

 

 

CHOCOLATE 가게.       거의 전부가 모짜르트를 주제로 만든 CHOCOLATE 들이다. 

 

 

 

오스트리아의  SALZBURG 에서 바로 국경을 넘어 다시 독일로 들어와서 GOLDEN TULIP 호텔에 여장을 푼다.       호텔방에 가방을 집어던지자마자 모두들 동네의 PUP 으로 향한다.       TOUR 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시간적 여유가 조금 있으니 오늘이 아니면 또 없을 기회가 아닌가. 

 

 

 

독일의 맥주.     한잔씩 주~욱.      힘든 나이에....    고생들 하십니다.     내일은 다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  빈 (WIEN) 으로 간다.

 

 

 

 

 

 

독일로 들어와 첫 밤을 뮨헨에서 보냈다.      그런데 이 호텔의 아침 BUFFET 가 정말로 좋다.      COFFEE 도 미국식으로 준비되어 있어서 아주 좋다.

 

 

 

거리에 심어놓은 가로수를 단단히도 묶어 놓았다.      그러고 보니까 이탈리아를 떠나서 오스트리아, 독일로 들어와서 부터는 도시의 거리, 상점, 식당, 도로등 모든 것이 깔끔하고 정결하다.        심지어는 자동차들까지도 열심히 닦아서 먼지가 더덕더덕 붙어다니는 차를 보기 힘들다. 

 

 

 

단단히도 묶어놓았구만. 

 

 

 

 

 

 

 

뮨헨의 님펜부르크 궁전 (SCHLOSS NYMPHENBURG).               루트비히 3세에 의해 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따서 건립된 독일 최대의 궁전으로 1918년 왕권이  붕괴되기전까지 바이에른 왕이 여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분수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으로 꾸며놓아 바로크 건축의 전형을 보여준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을 설계했던 카르보네가 설계한 정원에는 소궁전들이 있다. 

 

 

 

이탈리아 출신 왕비의 향수를  달래주기 위해서 宮으로 들어가는 길 뿐만 아니라 궁전안에도 많은 인공호수와 강을 만들어 한 때는 '작은 베네치오' 라 불리기도 하였다.      본관에는 루트비히 1세가 궁정화가에게 그리게 한 뮨헨의 미녀 (美人) 36명의 초상화를 전시한 '미인화 (美人畵) 갤러리' 가 있다.\

 

 

 

 

 

 

 

 

 

 

 

 

 

 

 

 

 

1385년 이래로 바이에른 왕가와 비테르스바흐 왕가의 궁전으로 쓰이던 레지덴츠 궁전.       지금은 모두 박물관으로 쓰이는데 지금은 수리 중이다.

 

 

 

수리중인 건물을 실제 크기의 그림으로 덧붙여 놓았다.

 

 

 

 

 

이 성당은 뮨헨의 신 시청사로 가는 도중에 일행중의 한 분이 급히 근처의 화장실로 간 동안 길에서 모두들 기다리기가 무료하던 참에 마침 옆에 있는 이 성당에 잠시 들어왔다.        일정에도 없는 곳이다.        갑자기 잠시 들어오다 보니 성당 외부의 사진 한 장 없고, 성당의 이름도 모른다.      여하간 갑자기 들어온 이 성당도 대단하다.

 

 

 

 

 

 

 

 

 

 

이 성당은 현재 로마교황청의 교황인 베니딕토 16세 교황이, 교황이 되기전까지 지내던 성당이다.

 

 

 

이 성당에 마침 히잡을 한 많은 이스람 젊은여성들이 그룹으로 관광을 왔나 보다.        그런데 여행도 남녀가 완전히 따로 다니는지 남자라고는 설명을 하고있는 가이드 외에는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시내의 중심인 마리엔 광장에 있는 신 시청건물 은  지붕 한 가운데에 시계탑이 솟아있는 네오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겉 모습으로는 수 백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것 같지만 실제로는 100여년의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건물이다.         중앙의 종루에는 특수장치 인형시계인 글로켄슈필이 매일 오전 11시에 10분간 작동한다.        사람 크기만한 인형들이 출연한다.         처음에는 빌헬름 5세의 결혼식 가운데 실감나는 기마전이 한바탕 벌어진다.        다음에는 1517년 페스트가 만연하여 외출금지 되었던 당시에 페스트가 없어짐을 알리고, 기뻐서 신나게 춤추는 모습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와, 와,   인형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밀라노를 떠나서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로 가는 도중의 휴식시간에 이야기거리로 즐겁다.      여행할때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면 여행이 더 즐거워진다.     이 분들은 LA 오셨는데 동서유럽을 처음부터 끝까지 16박17일을 우리와 함께 하는 분들이다.

 

 

 

 

 

ALPS 산맥을 따라서 줄줄이 펼쳐지는 경치가 아주 멋있고 예쁘게 보인다.

 

 

 

 

 

 

 

 

 

Innsbruck 에 들어와서 첫번째 한 일은 점심을 먹어야 했다.

 

 

 

이 식당의 지하에 있는 화장실로 내려가는 계단의 중간 기착지 (INTER-MEDIATE LANDING PLACE) 의 이렇게 좁은 공간도 예쁘게 장식해 놓았다.

 

 

인스부르크는 눈 덮인 산과 멋있는 시가지의 조화로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절경이다.  

 

 

황금지붕 (Goldehes Dachl).        인스부르크의 구 시가지에 있는 황금지붕은 고딕양식의 건물의 3층 발코니를 덮고있는 지붕이다.     1420년 티롤 군주의 성으로 지어진 이 건물에 1497년 황제 막시밀리안1세의 지시로 발코니가 만들어졌고 그 위에 2,738개의 도금된 금박을 입힌 항금지붕이 되었다.       2층 난간에는 각 지방의 문장들이 섬세한 띠 모양으로 새겨져있으며, 3층에는 거실용 발코니가 있다.      지금은 이 건물의 내부는 동계올림픽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근처에는 황금독수리 호텔이 있는데 600여년의 유명한 호텔로 1780년에는 괴테가, 1832년에는 하이네가 묵었다 한다.

 

 

 

 

 

 

 

성 야곱 사원 (DOMKIRCHE ST. JAKOB).      1270년부터 역사에 기술되어 있는 성 야곱교회의 자리위에 만들어진 성 야곱성당은 1724년에 완성되었다.            이 성당은 단조로움 속에 숨어있는 비범한 인상을 더 강하게 풍기는 외형을 가지고 있다.         성당 전면에 타원형으로 나있는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 5개는 건물전체에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성당 내부로 들어오면서 엄청난 크기의 화려한 천정그림이 우리를 놀라게한다.

 

 

 

 

 

금으로 치장되어 있는 제단과 파이프 오르갠도 웅장하다.

 

 

 

 

 

 

 

인스부르크는 INN 강에 면하여 있으며, 동부 ALPS 의 교통의 요지로 발전하였다.        구시가지는 이미 12세기에 건설되었다.      1946년과 1976년 두번에 걸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던 곳이다.

 

 

 

 

 

 

이 식당 밖에는 1500년대부터 식당에 들린 유명인사들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1970년 후반부터는 노르웨이, 스웨덴, 태국의 왕족들 이름이 자주 보인다.
 

 

 

SWAROVSKI 의 본점이 여기 인스부르크에 있다.      매장이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본점답게 휘황찬란하다.       화장실을 찾아서 지하로 내려오니, CRYSTAL 로 입이 떡 벌어지는 EXHIBITION ROOM 을 만들어놓았다.       아래의 사진처럼 같은것을 찍었는데도 수시로 바뀌는 조명으로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바꾸어 놓는다.

 

 

 

 

 

 

 

화장실 역시 SWAROVSKI 의 명성에 걸맞게 간접조명으로 멋지게 만들어놓았다.         유럽을 여행하며 화장실 사진은 이것까지 3번을 찍었다.       이탈리아의 SERVICE STATION 에서 멋있는 꽃들로 장식된 화장실, 그리고 빈의 쉰부룬 궁전의 화장실.       쉰부룬 궁전의 화장실도 간접조명이 인상적이었다.

 

 

 

주차장에서 올려다 보이는 루디비히드1세가 만든 호엔슈반가우 CASTLE.     백조의 성을 만든 루드비히드2세의 아버지가 만든 성이다.     아버지, 아들이 모두 국민의 세금을 마구 낭비했다.

 

 

 

오스트리아에서 국경을 넘어 독일의 FUSSEN 으로 왔다.        EU 로 들어서고부터는 국경검문이 없으니 언제 국경을 지났는지도 알 길이 없다.       

휴쎈은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작은 도시들이 줄이어지는 로맨틱 가도 (街道) 의 시작점인 동시에 종착점이다.        이곳에 디즈니랜드 의 모델이 되기도 했으며 한국인들에게는 백조의 성  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노이슈반스타인 성 (SCHLO NEUSCHWANSTEIN) 이 있다.

 

 

 

 

 

 

 

 

 

멀리 조그많게 보이는 노이슈반스타인 으로 SHUTTLE BUS 를 타고 올라간다.       한 5~6분 정도 걸리나.

 

 

 

 

 

폭포 위에 만들어 놓은 BRIDGE 인  '마리안 다리'  에서 바라보이는 성은 너무나 황홀하다.

 

 

 

 

바이에른 왕국의 왕 루드비히2세가 1869~1886년 사이에 건축한 성이다.        음악과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바그너를 돕기도 했고, 그의 오페라  

'로엔그린'  중에서 백조의 전설에서 영감을 얻어 성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의 곳곳에 백조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 많다.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여 건축하기 시작한 성은 열악한 입지조건과 재정곤란을 무릅쓰고 계속 진행한 끝에 17년만인 1886년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그는 3개월 후 STERNBERG 호수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여, 루드비히드2세가 거주한 기간은 겨우 3개월 남짓이었다.

 

 

이 사진은 현재 우리집 COMPUTER 의 바탕화면이다.
 

 

 

 

 

 

 

 

 

 

 

올라갈 때는 버스를 타고 갔는데, 내려올 때는 일부러 천천히 걸어서 내려오면서 보는 경치도 아주 좋다. 

 

 

밑에서 본 호수보다는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산으로 병풍을 두르듯이 있는 호수가 너무 아름답다.
 

 

 

 

 

밑에서 본 호수보다는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산으로 병풍을 두르듯이 있는 호수가 너무 아름답다. 

 

 

 

이탈리아의  MILAN 에서 AUSTRIA 로 넘어오면서 계속 우리 일행을 태우고 다니는 폴란드의 운전기사 아저씨.     아주 점잖은 신사 분이다.      원래가 북미에 사는 폴란드 사람들도 대부분 매우 지적이고 교육열이 또한  대단하다.      우리들의 여행이 끝나는 베르린까지 같이 다니실 분이다.

 

 

 

여러가지 VEGITABLE 이 들어간 CREAM SOUP 인데.      음 음  맛이 아주 좋구나. 

 

 

저녁이 끝나면 뮨헨으로 가서 지내고.      내일 오전은 뮨헨을 관광하고 오후에는 다시 오스트리아의 SALZBURG 로 간다. 
 

 

 

 

 

 

로마에서 피사로 이동한다.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관광날이다.      우리를 1주일 동안 이탈리아를 안내하고 다니고 있는 MR. 高.       성악이 전공이라 그런지 목소리가 깨끗하고 부드럽다.       불필요한 덧붙임이나 쓸데없는 말을 반복하는 일없이 간결하고 알아듣기 쉽게 잘하는 재주도 있다.        게다가 인물도 훤한 미남이니 인기가 좋다.     아무리 보아도 축구선수 안정환보다 더 미남이다.        2002년 서울 월드컵 준준결승 (8강)  2 - 2   연장전에서 헤딩으로 골을 넣어  3 대 2 로 이탈리아를 이겨 우리를 열광케했던 선수.     그리고 그때 안정환은 더구나 이탈리아의 VENICE 프로구단  소속으로 있던 선수였기에 이탈리아에서도 큰 뉴스였었다.        그래서 이탈리아에 살고 있었던 그때의 기분이 어떠했는가 물어본다.        아차.       미스터 高의 봇물이 터졌다.       당시의 한국 골 3개가 들어가는 상황을 비디오 슬로모션 하듯이 자세히 설명을 한다.       아니 이럴 수가.....      알고 보니 이 친구 자신이 축구를 너무 좋아한다.       축구실력도 대단하고.      몇년째 이탈리아의 한인축구협회회장이란다.       미스터 高와 더불어 우리는 유럽여행 기간중에 제일 긴 1주일간의 이탈리아 여행을 즐겁게 마치게 되었다.

  

 

 

피사 대성당으로 가려면 피사 시내 한 곳에서 관광버스에서 내려서,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5분 정도 거리인 피사의 대성당으로 이동한다.       대성당 앞의 셔틀버스 내리는 곳이 소매치기들이 극성을 부리는 곳이라고 여러번 주의를 환기시킨다.      조심해야지...       음 음. 별일 없이 통과한다. 

 

 

 

PISA 는 중세에는 해양도시 국가로 군사적, 상업적 입지가 강력했으나, 1905년 이후 휘렌체에 정복되면서 소박한 도시로 변하였다.        아르노강 하구 부근에 있는 오래된 도시로,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이태리 최고의 조각가 조바니 파사노의 고향이기도 하다. 

 

 

 

대성당쪽으로 들어가는 성벽을 따라서 양 옆으로 늘어선 장사꾼들로 남대문시장 장터를 연상시킨다.

 

 

 

 

 

 

 

성벽 안으로 들어서니 대성당과 세례당 그리고 기울어져있는 피사탑이 보인다.        그런데 이곳은 다른 곳의 성당들과는 달리 아주 넓직한 잔디가 조성되어 있어 건물 전체를 사진에 담기에 아주 좋다. 

 

 

 

매년  1mm  씩 기울고 있다는 사탑.       흰 대리석으로 된 둥근 원통형 8층 탑으로 높이는 58m 이다.       294개의 나선형 계단으로 꼭대기까지 연결된다.      1174년에 착공하여 10m 높이에 이르렀을 때 지반이 내려앉아 공사를 중단했다가 다시 계속 건설하여 1350년에 완공되었다.        그후 여러 차례의 보수작업을 통해 기우는 것을 완화하려고 노력했지만 현재까지 여전히 남서쪽으로 계속 기울고있다.        갈릴레이가 이 탑에서 새털과 쇠공을 떨어뜨려서 낙하실험을 한 후에  "지표면 위의 같은 높이에서 자유 낙하하는 모든 물체는 질량에 무관하게 동시에 떨어진다"  는 낙체의 법칙을 발견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PISA 대성당이다.      1063년에 착공하여 1118년에 헌당되었다.

 

 

 

대성당 앞에 독립해서 세워진 세례당.      12~14세기 때에 건축되었으며 설교소리가 구석구석에 전달되도록 음향효과를 계산하여 설계되었다.    내부의 직경이 35m 이다.

 

 

 

기울어진 피사의 탚을 우리가 바로 세워봅시다.       자,  더 힘껏 밀어요.     똑바로 세우고 갑시다.

 

 

 

됐어 됐어.      그만 밀어도 되요.       똑바로 세운 것 같은데.     잘 세웠구나.

 

 

 

멀리서 다시 보니 또 기울어졌네.

 

 

 

 

 

PISA 에서 점심을 한다.       아이구 지겨워라!  또 파스타로 시작한다. 

  

 

 

 

마차를 타고 피사 시내를 돌아본다.       30분 동안 태워주는데 30유로를 받는다.        뒤에 보이는 PISA 탑이 똑바로 보인다.       이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탑은 똑바로 서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마차를 타고 가며 주위의 건물들을 둘러보니, 이 건물은 무슨 COLLEGE, 저 건물은 무슨 UNIVERSITY.       수도없이  많은 조그마한 건물들이 모조리 대학들인가 싶다.       이렇게 작은 2~3 층 건물에 왠 대학들이라니...... 

 

 

 

 

 

여기 이 골목도 여기저기 대학이 늘어서있다.       유학생 장사를 하는 대학들인가 ? 

 

 

 

피사의 구시가를 지나가는데 이탈리아에 이렇게 한적한 도시가 있었던가 싶다.       왁자지껄한 이탈리아의 도시가  아닌 것 같기만 하다.    오래된 도시라지만 너무나 한적하다.

 

 

 

쥐 죽은듯 조용한 피사 시내. 

 

 

 

 

 

피사 구 시가지에 있는 광장에 마차를 잠시 세운다.       보통 광장에는 인파가 넘치고 카페가 있고 한데 여기는 조용하다.

 

 

 

 

 

다들 모여서 사진을 한장 찍는다.       오늘 투어가 끝나면 서유럽투어만 하시는 분들과 이탈리아만 여행하시는 분들은 북미로 돌아간다.       런던부터 시작해서 동유럽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하시는 분들은 우리를 포함해서 7명 이다.        그런데 내일부터의 동유럽투어는 오스트리아, 독일, 헝가리, 체코를 둘러보게 되는데, 동유럽투어만 하시는 6명의 새인원이 합류한다.         한국에서는 패키지여행을 '굴비여행' 이라고도 한단다.   ㅎㅎ     한꺼번에 묶여다니는 이번 굴비여행은 런던에서 20명 (마리) 으로 시작되었다.        이탈리아부터는 합튜한 여행객이 늘어서 33명이 되었다가 이제는 26명이 빠져나가고, 다시 6명이 추가로 엮이게 (?) 되어 13명 (마리) 이 동유럽투어를 계속하게 된다.

 

 

 

 

 

성당 앞에 이렇게 넓직한 잔디밭이 있는곳은 여기가 처음이다.

 

 

 

성벽 안에도 일렬로 죽 늘어선 기념품가게들.

 

 

 

부엌에서 쓰는 앞치마를 몇개 골라보고. 

 

 

 

손녀에게 줄 T-SHIRT 도 고른다. 

 

 

 

무슨 기념품을 골랐는지 즉석에서 벌어지는 품평회도 재미있다.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 도시 밀라노로 이동한다.      내일 아침에는 오스트리아로 넘어가 동유럽의 첫 투어를 인스부르크에서 시작한다.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밀라노에서 먹는다.        역시 스파게티로 시작한다.       이탈리아에서의 첫 식사, 마지막 식사를 모두 스파게티로 장식한다.       나는 워낙 NOODLE 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탈리아에서 매일 먹었던 스파게티를 즐기고 떠난다. 

 

 

 

 

 

 

카프리 섬으로 접근한다.      카프리 섬은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州의 나폴리만 입구와 쏘렌토 반도의 앞 바다에 있는 작은섬이다.       섬의 인구는 7천 명.     서쪽은 약 600m 의 고지를 이루고 섬 전체는 용암으로 뒤덮여있다.       올리브와 과일등을 재배하며 온난한 기후와 빼어난 풍경으로 유명하다.

 

 

 

 

 

로마의  아우구스티누스 황제와 티베리우스 황제가 사랑한 휴양지답게 아름다운 경관과 절벽을 끼고 세워진 조그마한 마을들 곳곳에는 매력이 가득하다.      두 황제의 별장지가 아직도 남아있다.       15세기에 해적을 피하여 높은 지역에 형성된 취락이 현재 섬에 있는 카프리와 아나카프리 2개의 마을의 기원이다.       나폴레옹 전쟁 때에 영국해군에게 점령된 것 외에는 나폴리왕국 또는 시칠리아왕국의 영토였다. 

 

 

 

 

 

 

 

 

 

관광객들과 카페로 가득한 부둣가.

 

 

 

 

 

작은 싸이즈의 미니버스를 타고 아나카프리로 간다. 

 

 

 

조그마한 동네를 잠시 지나더니......

 

 

 

절벽길로 계속 올라가는데 이탈리아의 운전사들 완전히 곡예사 같다.         마구 밟는다.        길은 엄청 좁은데 내려오는 버스와 마주치면 가이드의 표현으로는 깻잎 한장 차이로 지나간다.        급히 멈추어서 서로가 후진, 전진을 하여 겨우 비껴가기를 여러번 한다.          내려가는 버스는 암벽쪽으로 붙어서 내려가지만 올라가는 버스는 바다 절벽쪽으로 붙어서 올라간다.      버스창문 밑을 내려다보면 절벽 밑의 바다물만 보인다.        아찔아찔 정도가 아니라 까무라칠 정도이다.       가이드가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당부한 말이 떠오른다.        담력이 약한 분은 오른쪽 창가에 앉지 말라고 했던 것 같다.         좁고 좁은 구불구불 절벽길을 미친듯이 질주를 한다.       겨우 (?) 30Km 로 달린단다 !!.      여기 보다도 더 아슬아슬한 길이 어디에 또 있을까.       아래 사진의 화살표가 구불구불 절벽길이다.       까마득히 멀리 내려다보이는 바다에는 아주 조그마하게 보이는 요트들도 떠있고.

 

 

 

 

 

 

 

(빌려온 사진)        화살표가 버스가 마구 달리고 있는 절벽길이다.       이렇게 뱅뱅돌아서 아나카프리 마을로 간다.       정상에 오르는 LIFT 를 타러가는 것이다.

 

 

 

(빌려온 사진)

 

 

 

휴, 휴, 겨우 무사히 올라왔다.        식은땀이 나는 경험이다.        내려갈 때는 암벽쪽으로 붙어서 내려가니까  더 이상 걱정은 않기로 한다.

 

 

 

 

 

아나카프리 마을에서 LIFT 를 타고 5분 정도를 올라간다. 

 

 

 

 

 

 

 

LIFT 를 타고 올라가면서 내려다보이는 카프리 섬마을.

 

 

 

솔라로 산 (MONTE SOLARO).          해발 589m 로 높지 않은 산이다.       용암으로 뒤덮인 섬에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다.

 

 

 

 

 

그림 같은 경치가 한없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풍경은 카메라에 담으면 다 되는줄 알았었는데 여기는 그렇지 아니하다.

 

 

 

 

 

 

 

 

 

 

 

 

 

 

 

정상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씩 마셔본다.     ~~   도저히 카메라로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모두 담는 것이 불가능하다.

 

 

 

 

 

 

 

 

 

BYE,  BYE,  카프리.       이런 섬에서는 며칠을 푹 묵어가야 하는것 아닌가.      우리가 나폴리로 떠나는 배를 타러가는데 그 배에서 내려서 섬으로 들어오는 일본인 젊은 커플이 짐가방을 끌고 온다.        며칠 쉬러 오는 것이 무척 부러워보인다.

 

 

 

 

 

 

 

 

 

로마시대에는 여성용 정조대만 있었는줄 알았는데, 부두가의 가게에 남성용 정조대도 기념품으로 팔고있다. 

 

 

 

배를 타고 이제는 카프리에서 나폴리로 떠난다.       16유로.     1시간30분이 걸린다. 

 

 

 

 

 

 

 

배를 타고 가면서 폼페이를 뒤덮었던 베스비우스 화산도 보인다.       언제 또 폭발할 것인가 ? 

 

 

 

 

 

 

 

나폴리 부두에서 버스를 타고  로마로 다시 돌아간다.       내일은 이탈리아의 마지막 TOUR 날이다.       PISA 로 이동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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