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eau d'Malmaison ( 말메종城) 은 파리에서 서쪽으로 17Km 떨어져있는 Malmaison 에 있다.         나폴레옹의 부인이었던 조세핀이 살던 집이다.

 

 

 

1796년 2남매를 둔 33세의 젊은 미망인이었고 사교계에 널리 알려졌던 조세핀은 6년 연하인 나폴레옹과 만난지 3개월만에 결혼하였다.        결혼한 3년 후인 1799년에는 1622년에 건축된 말메종 Castle 과 주위의 대지 260 헥타르를 구입하게 된다.        아름다운 정원과 화려하지 않은 저택이 있는 말메종을 사랑한 나폴레옹과 조세핀은 이곳에 머물며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한 후에는 주로 퐁탠블로의 궁전에 거주해야했는데 조세핀은 말메종을 그리워했다.

 

 

 

Josephine 의 초상화.       나폴레옹의 아이를 낳지 못한 조세핀은 1809년 나폴레옹과 이혼을 하게 되었으나 조세핀을 사랑한 나폴레옹은 그녀를 말메종으로 보내서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게 배려하였다.        나폴레옹은 1810 Austria 공주 Marie Louise  와 결혼하여 아들 프랑스와를 얻게 된다.

 

 

 

나폴레옹이 죽을 때까지 사랑한 조세핀.        그녀는 사치가 대단하여서 엄청난 빚을 끌어다쓰면서도 옷과 장신구, 비싼 접시들을 끊임없이 사들였다.

 

 

 

 

 

오죽하면 이탈리아 전쟁터에 나가있던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보낸 편지에서 '돈 좀 그만 펑펑쓰시오' 라고 했겠는가.

 

 

 

서재.

 

 

 

 

 

 

 

 

 

 

 

 

 

전시되어 있는 나폴레옹이 전투에서 썼던 여러개의 칼.

 

 

 

 

 

다비드의 유명한 초상화.         Austria 를 처들어가기 위해서 말을 타고 Alps 를 넘어가는 나폴레옹의 초상화.

 

 

 

가운데에는 나폴레옹이 있고 주위에는 충성을 다한 그의 13명의 장군들.

 

 

 

접시들은 중앙에는 풍경화가 아름답게 그려져있고 접시 가장자리에는 3cm 정도로 둘러가며 금색으로 화려하게 칠해져있다.      접시 하나의 값이 무려 4만유로가 넘는다.         부르는게 값이니까!!

 

 

 

 

 

 

 

붉은 천과 금실로 화려하게 장식된 조세핀의 침실.        그녀는 이곳에서 1814 5월에 생을 마감했다.

 

 

 

 

 

잘 보관되어 전시되고 있는 나폴레옹이 쓰던 가위, 등등의 사소한 집기들.

 

 

 

금으로 장식되어 있는 조세핀의 드레스.       얼마나 비싼 옷인지....

 

 

 

결혼초기의 초상화.       조세핀이 데리고 온 두 자매도 보인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동생도 옆에 서있다.

 

 

 

 

 

 

 

조세핀이 최고가의 물건들을 마구 사들이며 발행했던 차용증서들이 몇해 전까지만해도 전시되어 있었단다.        어디에 있는지 한근군이 찾고 있는데...     이 넓은 전시실의 어디에 있는지 결국은 보지 못하고 말았다. 

 

 

 

평생 그녀를 잊지 못했던 나폴레옹은 유배를 떠나기 전에도 말메종을 찾아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조세핀은 넓은 공간의 정원을 좋아해서 약 200종류의 희귀한 꽃들을 심었다.        그녀는 특히 장미를 좋아해서 250종류의 장미정원을 만들었다.

 

 

 

 

 

Chateau d'Chantilly (샹티이城) 으로 가는길.        유명한 생크림 Cream de Chantilly 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이 길로 계속가면 벨기에 국경이 나온다.

 

 

 

 

 

파리 북쪽으로 41Km 떨어진 노네트강 연안에 있는 샹티이 숲 속에 있는 성이다. 

 

 

 

성의 주인이었던 Conde 공의 이름을 따서 Conde 박물관과 도서관이 있다.       그림 1,000, 스케치 2,500, 고서 3만권 등 희귀한 필사본과 고서들이 소장되어 있다.       늦은 시간이라 문이 닫혀있어서 아쉽게도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샹티이성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1671년 루이14세가 이곳에 초대된 날, 당시에 유명했던 요리사 Vatel 이 요리재료의 배달지연으로 왕의 식사를 준비 못하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신선한 생선을 내놓으려고 날자에 맞추어 배달을 원했으나....     중국의 진시황 때에는 식사 때마다 매번 새로운 요리를 내놓지 못하면 언제 목숨이 날라갈지 몰랐다고 하는데....     동양이나 서양이나 크게 다르지 않구나.

 

 

 

르네상스 양식의 샹티이성은 마치 수면 위에 떠있는 것 처럼 보인다.       프랑스대혁명 때에 파손된 것을 19세기에 복원한 것이다.       1차세계대전 때에는 프랑스군의 총사령부로 쓰여지기도 했다.

 

 

 

 

 

샹티이성은 2005 2 Valentine Day 에 유명한 축구선수 호나우두가 비행기를 전세내고 무려 70억원을 들여서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성에서 바로 보이는 몇백m 위쪽에는 18세기의 거창한 건물인 큰 마구간 (Stable) 과 말 박물관이 있다.  

 

 

 

지금도 마장에서 장애물경기, 마장마술 등의 경기가 열리고, 매해 5월에는 샹티이에서 불란서 최대의 경마경기가 열린다.

 

 

 

저녁노을에 붉게 물들은 샹티이 마을.

 

 

 

샹티이성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 근처에 있는 한근군이 멤버인 Bell-Fountain Golf Club 에 왔다.       저녁노을이 넘어오는 늦은 때이지만 한근군이 굳이 Club 을 꺼내와서 한번 휘두르고 가란다.       불란서에 와서 골프채를 잡을줄이야...     어찌 되었건 1번홀에서 몇번 휘둘러본다.       지금쯤 토론토의 골프친구들은 푸른 가을의 하늘 아래서 얼마나 즐겁게 휘두르고 다니는지 눈에 보이는듯 하다.

 

 

 

 

 

2011년 10월1일 토요일.       20일간의 불란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저녁노을에 비친 Toronto Downtown.  

 

 

여행 18일째인 오늘은 아침에 Metro 40분이나 걸리는 멀리 떨어져있는 Carrefour 에 다녀와서는 계속 쉬었다.      처음으로 관광을 하지 않고 지낸 날이다.

 

 

 

오늘 저녁으로 먹었던 일본 생라면집.      이 집에 온 것은 오늘이 두번째인데, 역시나 오늘도 문밖에 20~30명이 늘어서있다.       다른 여러 생라면 집들은 한가한데 이 집만은 항상 대만원이다.      식당 안으로 깊숙히 거의 80명 정도나 앉을 수 있는데도  언제나 오래 기다려야 겨우 차례가 온다.

 

 

 

Vegetable 생라면 8.5유로.      김치 생라면 9.5유로.      군만두 6개를 같이 주문하는 라면값은 1.5유로만 더 받는다.       양도 많고 국물맛도 좋고 면이 생라면이라 아주 좋다.       HIGUMA LAMEN.  32 Bis Rue Sainte Anne 7500

 

 

 

 

 

 

 

식사를 하고 나오니까 온 사방이 쏟아져나온 사람들로 대만원이다.       목요일 밤부터 벌써 주말이 시작되는가...     아니면 날씨가 예상외로 너무 좋아서 마지막 여름날씨를 즐기러 나온 인파들인가...     식당들, 클럽들 모두 줄서서 기다리는 인파로 밤 늦게까지 북적북적 흥청인다.

 

 

 

 

 

오늘이 벌써 여행 19일째 날이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앵발리드로 가는 길에 보이는 반가운 Canada 문화원, 그리고 옆에는 영국 문화원.

 

 

 

 

 

 

 

Invalides (앵발리드) 는 전쟁에서 부상당한 퇴역군인들을 위한 목적으로 1670년 루이14세의 명령으로 1676년에 완공되었다.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상이군인들의 병동이고 오른쪽과 왼쪽 뒤로 이어진 건물들은 군사박물관이 되어있다.

 

 

 

 

 

나폴레옹이 안장되어 있는 앵발리드의 Dome Church.       나폴레옹은 1769 815 Corsica 에서 8형제 중에서 2번째로 출생해서 1821 55일 유배중이던 대서양의 St. Helena 섬에서 5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민중들이 무능하고 부패한 루이16세와 왕정에 분노하여 루이16세를 처형한 후 사회가 매우 어지러운 때인 1799년에 쿠테타를 일으켜서 종신 통령에 취임한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다시 1804년 황제로 즉위한다.       그러나 1814년 영국, 러시아 , 프러시아, 오스트리아에 의해서 파리를 점령당하고 불란서 남부의 엘바섬으로 유배를 하게된다.   

 

 

 

유배된지 1년 후인 1815년, 오직 1,200명의 급조된 군대를 이끌고 엘바섬을 탈출하여 파리로 입성하여 다시 권력의 정상에 오르게 된다     불란서 남부해안에서 파리로 다시 올라오던 산악지대의 그때의 길을 나폴레옹 Route 라고 지금도 부른다.      우리가 여행 12일째에 하루종일 달려오던 길이다.       다시 돌아온 나폴레옹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1816 6 Waterloo 전투에서 웰링톤 장군에게 참패한 나폴레옹은 대서양의 St. Helena 섬으로 유배되어 5년 후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가 언젠가는 또다시 파리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항상 겁에 질려있던 불란서의 왕당파 정부는 나폴레옹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던 나폴레옹의 측근 부하를 사주하여서 음식물에 독극물을 집어넣어 독살시키게 된다      사랑하던 여인과의 결혼이 나폴레옹의 반대로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 것에 계속 앙심을 품고 있있던 최측근 부하에 의하여 그는 St. Helena 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1840Louise Phillipe 왕은 영국정부와 8년간에 걸친 협상끝에 St. Helena 섬으로부터 나폴레옹의 유해를 불란서로 옮겨와, 1806년 나폴레옹의 지시로 건립을 시작하여 30년 후에 완성된 개선문과 엘리제 거리를 지나서 Dome Church 에 안장하게 된다.         내가 그토록 사랑한 프랑스 사람들이 사는 센 강변에 나를 묻어주시오라는 그의 유언이 있은지 19년이 지난 후였다.

 

 

 

 

 

Dome Church 안에는 프랑스 역사에 크게 이름을 남긴 장군들이 잠들어있다.       나폴레옹의 관 6겹의 석관으로 만들어졌고 주요 12개의 전승지 이름이 새겨진 바닥 위에 놓여져있다.      12개의 기둥이 나폴레옹관을 중심으로 세워져있다.

 

 

 

'Tomb of Joseph Bonaparte'     이곳에는 나폴레옹뿐 아니라 그의 형 Joseph Bonaparte (1768~1860) 도 묻혀있다.       변호사, 외교관, 장군이었고, Naples & Sicily 의 왕 (1806~1808), 그후에는 스페인의 왕 (1808~1813) 이었다.      정문에 들어서서 왼쪽에 있는 St. Jerome’s Chapel 에는 지금은 독일의 일부지역인 Westphalia 의 왕이었던 막내동생 Jerome Bonaparte (1784~1860) 도 묻혀있다.      그는 후에 조카 나폴레옹3세가 제2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후로 Governer of Invalides, President of Senate, 그리고 Marshal of France 가 되었다.

 

 

 

'Tomb of Turenne'      리슐리의 집권기부터 루이14세까지 활약한 명장.        France 역사에 길이 남는 6명의 Marshal 중의 한 명이다.

 

 

 

'Tomb of Ferdinand Foch'      1차세계대전 때의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영웅이 되었으며 탁월한 전술가였다.       1918년에 Marshal of France 가 되었다.

 

 

 

'Tomb of Lyautey'       인도지나의 프랑스화를 완성시키고, 모로코의 반란을 진압했다.      1921년에 Marshal of France 가 되었다.

 

 

 

'Tomb of Vauban'       루이14세의 참모.      요새를 어떻게 구축하고, 또 적들의 요새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만들어낸 축성술과 고성술의 시조이다.      1703 Marshal of France 가 되었다.

 

 

 

Charles Fosse 1692년 작품인 '천국의 영광' 이 그려져있는 Dome 의 천장.

 

 

 

색색의 대리석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성당의 바닥 부문.

 

 

 

 

 

Dome Church 와 연결되어 있는 St-Louis-des-Invalides Church (군인교회) 는 닫혀있는데, 안으로 멋있는 교회의 모습이 들여다보인다.

 

 

 

 

 

Invalides 의 조감도.        건물의 중앙에는 Main Courtyard 가 있어 지금도 각종행사의 열병식이 열리는 장소이다.       그 뒤로 St-Louis-des-Invalides (Soldier’s hurch) 와 나폴레옹이 안치되어 있는 Dome Church 가 함께 붙어있다.

 

 

 

Dome Church 를 나와서 복도를 따라서 군사박물관으로 가고 있는데 군악대의 연주가 들린다.

 

 

 

오늘이 무슨날인지 모르지만, 지금 건물중앙에 위치해있는 정원에서 거행되고 있는 멋있는 열병식.

 

 

 

 

 

군사박물관은 4 Section 으로 나누어져있다.       <석기시대~13세기~17세기까지의 무기기념관>,  <1, 2차세계대전 (1871~1990) 기념관> 은 지나치고, 우리는 <Charles de Gaulle 기념관>과 <루이14세부터 나폴레옹3세까지 (1643~1870) 기념관> 을 돌아본다.      불란서의 군사박물관만을 보는 셈이다.

 

 

 

2차세계대전의 영웅,  Charles de Gaulle 의 기념관.

 

 

 

오후 2시부터는 한근군과 함께 말메종과 샹티이를 가기로 되어있다.        마음은 약간 급한데 너무나도 넓은 전시실에 압도되어 무엇을 먼저 보아야되는지 제대로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나폴레옹 황제의 초상화.

 

 

 

우선 관심이 많은 나폴레옹의 전시실을 돌아본다.        그가 사용하던 무기와 옷, 그리고 말안장, 장신구 등이 즐비하다.

 

 

 

나폴레옹의 형 Joseph 과 막내동생 Jerome.

 

 

 

대전투를 벌렸던 승전지들의 조감도도 많이 진열되어 있고....

 

 

 

 

 

 

 

 

 

Invalides 에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이제는 불란서에서의 마지막 외출이다.       Hotel 로비에서 한근군을 기다리는데 도미니카에서 왔다는 젊은 친구가 한참 동안 우리들과 불란서 여행이야기를 하다가 찍어주고 간다.       말메종과 샹티이는 예정에 없었는데 파리에 여러날 있었으면 여기는 들려야한다는 한근군을 따라나선다.   

 

 

 

 

Andre Sinet 가 그린 1915년의 로댕의 초상화.

 

 

 

'Iris – Messenger of Gods'    1895년 작품.       유명한 작품인데 조금은 민망한 자세이다.

 

 

 

Van Gogh 의 '탕기 영감'        같은 시대에 살았던 고흐의 그림도 몇개 전시되어 있다.      누가 보아도 반 고흐의 작품임을 알 수 있는 그만의 색감...    1887년 작품 '탕기 영감' 이다      고흐는 탕기를 모델로 3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중 가장 걸작으로 꼽힌다.       탕기 영감은 몽마르트에서 화방을 운영하며 가난한 화가들이 물감, 붓같은 화구를 집어들고 돈 대신 내민 그림을 아무말없이 받아주던 천사같은 노인네였다.

 

 

 

 

 

 

 

’Nymphs Playing’   1900~1910년 작품.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로댕의 모습.

 

 

 

 

 

 

 

미술관 바로 밖에서는 지금 한창 소들을 동원한 축산업자들의 데모가 진행중이다.       더운 날씨에 말 못하는 애꿎은 소들이 벌써 며칠씩이나 저렇게 혼나고 있는지...

 

 

 

 

 

소르본대학 바로 옆에 있는 AD 200년에 지어진 로마시대의 공중목욕탕.       수백 년간 공중목욕탕으로 사용되다가 그후에 Barbarian 의 침략 때에 거의 파괴되어서 벽의 일부만이 남아있다

 

 

 

 

 

 

 

로댕미술관을 몇시간 돌고나서 곧 바로 멀지 않은 Sorbonne 대학이 있는 라틴지구로 와서 늦은 점심을 한다. 

 

   

 

젊은학생들이 몰려있는 곳이라 식당들의 메뉴가 다른 곳에 비해서 매우 좋은 가격이다.       3코스 점심메뉴가 거의가 다 10유로 이다.       아이구, 또 Cream & onion Source 홍합찜이다.       파리에서 이렇게 좋은 가격의 식사도 있구나.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라 역시 다르다.

 

 

 

 

 

Sorbonne 대학의 한 건물.       소르본대학은 Latin Quarter 에 있는데 소르본대학을 중심으로 파리 5구와 6구의 일부를 Latin Quarter 라고 부른다.     크고 작은 대학들이 이곳에 모여있어 젊은이들이 많은 곳이다.       이곳은 중세시대에 대학수업이 라틴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Latin Quarter 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1253년 신학자 Robert Sorbon 이 가난한 16명의 신학생으로 시작한 기숙사겸 연구소가 시작이었다.       초기에는 신학부와 철학, 예술학부 등 인문학부만 있었다.        루이13세 때에 프랑스 최고의 고등교육기관 중의 하나로 자리잡았고, 교육과 사회개혁에 힘썼던 나폴레옹시대에 지금의 여러 대학건물들이 새로히 들어섰다.      Victor Hugo, Pierr Curie 등 유명 인사들을 많이 배출하면서 더욱 명성을 떨쳤다.

 

 

 

라틴지구에는 책방들이 많이 있는데 지금 이 학생들은 수업 중인 것 같다.       책방 앞에서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을 아주 진지하게 듣고 있다.

 

 

 

 

 

소르본대학은 파리와 그 근교에 13개의 대학으로 나누어져있는데 Latin Quarter 에 있는 대학은 인문계열의 4개의 소르본대학이다.       프랑스는 1971년 대학개혁을 통해 파리의 국립대학을 13개 대학으로 개편했다.        이중 4개의 대학이 기존 소르본대학의 건물을 나누어 사용하게 되었다.       1대학 팡테옹 소르본, 3대학 New Sorbonne, 4대학 Sorbonne, 5대학 르네 데카르트 등 4개의 대학이 있다.

 

 

 

 

 

학교 앞의 분수가에는 학생들과 관광객이 뒤섞여 대만원이다     길 양쪽에 모두 열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금활동을 하고 있는데, 2유로를 받고 길에서 안마를 해주고 있다.     빈 손을 내밀고 도와달라는 것보다 효과가 더 좋을 것 같다.   

 

 

 

 

 

르본대학의 다양성은 대단하다.      학생의 30%가 프랑스인, 70%가 외국인 출신의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유롭고 열린 분위기 속에서 평등과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젊은 지성의 요람이다.      거의 무료나 다름없는 소르본대학의 등록금은 1년에 150불 정도이다.       여기에 도서관 이용료와 보험금을 합쳐서 450.      학생부담 총액이 일년에 600불 정도이다.

 

 

 

교내에는 학생외에는 출입할 수 없는데 어찌된일인지 수위아저씨의 덕택에 교내에 들어섰다.       역시나 우리외에는 방문객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밖에는 관광객과 젊은이들로 와글와글 하는데 이곳은 정말로 조용하고 차분한 학교의 분위기 그대로이다.

 

 

 

소르본대학의 입학과 졸업을하는 학생수를 보면 재미있다.       상과계통의 학과를 예로들면 2,500명이 입학해서 2학년 때에는 1,200명이 되고, 3학년에서 600명으로, 4학년은 300명, 그리고 4학년을 마치고 졸업하는 학생은 고작 150명이 된다.     '입학은 누구나 쉽게....   그러나 졸업과 학위는 까다롭고 힘들게…'

 

 

 

놀랍게도 교내의 벽에는 벽화가 그려져있다.

 

 

 

잠시 강의실과 복도도 구경해 본다.

 

 

 

학교 교내에 있는 Victor Hugo (1802~1885) 의 동상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시인이며, 소설가이며, 극작가이다.      방대한 문학작품을 써낸 작가이자 재능 넘치는 생화가였다.       소르본대학을 졸업했고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다.        바로 옆에는 Pierr Curie 의 동상이 서있다.      Hugo 의 모습 그대로...  왼손 검지를 귀에 대고...     램프를 만들어낸 것은 어두움이고, 나침반을 만들어낸 것은 안개이고, 탐험하게 만든 것은 배고픔이었다.       그리고 일의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의기소침한 나날이 필요했다.  -   Victor Hugo

 

 

 

Latin Quarter 곳곳은 학생과 관광객으로 뒤섞여 시끌벅적하다.      와글와글...    생기가 흐르는 젊은이들의 지역이다.      관광의 계절이라 더욱 붐비는 것인가.

 

 

 

 

 

라틴지구 바로 옆으로 흐르는 센강에는 관광객들을 가득실은 유람선들이 줄줄이 지나간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이 파리를 찾고 있는지 실감나는 곳이다.

 

 

 

 

 

 

 

 

 

젊은 학생들이 많이 있는 라틴지구 바로 옆에 낭만적인 센강이 흐르고 있으니....    대학의 젊은이들이 Date 하는 장소로서도 이보다 좋은 곳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강 건너에는 Norte Dam 성당도 바로 보이고....

 

 

 

 

 

 

 

 

 

파리경시청 입구의 늠름한 여자 경찰들.

 

 

 

파리경시청에서 한블럭 떨어진 곳에 있는 법무부청사.      불란서의 정부기관 건물들은 모두 이렇게 아름다운 것일까.      우리의 여정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       파리에서 이틀을 더 보내고 그 다음날에는 집으로 돌아간다.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1725년에 세워진 귀족의 저택이었다가 1929년에 로댕박물관 으로 문을 열었다.      조각가 Auguste Rodin 과 그의 제자 Camille Claudel 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먼저 정원이 펼쳐진다.       로댕이 자신의 모든 작품을 국가에 기증하고 이 건물에서 생의 마지막 9년간 (1908~1917) 의 작품활동을 했으며 그의 사후에는 박물관이 되었다.       아름다운 저택건물과 멋있게 펼쳐진 정원의 모습은 조각가인 로댕이 작업에 몰두하기 최적의 장소였다.

 

 

 

정원을 산책하면서 로댕의 대표작인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 등을 감상할 수 있다.

 

 

 

'The Thinker'      1903년 작품, 생각하는 사람.       사진을 찍는 모든 사람들이 턱을 고이고 같은 자세로 찍는다.       어린아이, 학생들, 젊은이들 모두들 턱을 고이고...

 

 

 

'Balzac'     1881~1882년 작품.       소설가 발자크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자료와 더불어 직접 그의 고향을 방문하여 그 지방사람들의 체격, 골격, 특징까지도 조사를 하였다.

 

 

 

 

 

'The Burghers of Calais - 칼레의 시민'      영국과 불란서의 백년전쟁 때에 영국군에게 침략당한 프랑스 북부도시 칼레를 구한 칼레시민 6명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학살위기에 처한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6명이 밧줄을 목에 묶고 영국왕 에드워드 앞에 가는 모습을 묘사한 조각품이다.

 

 

 

 

 

'The Gates of Hell'      로댕미술관의 대표작중의 하나인 '지옥의 문' 은 로댕이 이 작품에 20년을 매달려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으나 미완성으로 남긴 작품이다.       1880년 프랑스 정부는 새로 건립하기로한 장식미술관의 출입문을 로댕에게 의뢰하였다.       평소에 단테를 좋아했던 로댕은 단테의 '신곡' 에서 영감을 받아 장식박물관의 출입문을 '지옥의 문' 으로 하기로 결정한다.       단테의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으로 되어있는데 로댕은 지옥을 작품의 소재로 택하였다.

 

 

 

지옥의 문 꼭대기의 '세 망령'

 

 

 

정원의 한가운데에 있는 1897~1900년 작품.        노벨문학상 수상자 Victor Hugo Monument.

 

 


많은 석고상들이 진열되어 있는 정원의 한쪽에 위치한 유리벽.


 

 

 

 

 

한글이 보이는 Laptop 을 열어놓고 오래 전부터 꼼짝도 않고 Victor Hugo Monument 앞 Bench 에 앉아있는 젊은이는 한국분인데...     주무시고 계신지... 사색에 잠겨있는지...    우리가 정원에서 상당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처음 보았던 그 자세 그대로이다.      석고상이 되셨나?

 

 

 

박물관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서 첫번째 보이는 작품 '신의 손'        1896년 작품.      손가락을 잘 살펴보면 한사람의 손이 아니라 두사람의 손이 만나서 이루어진 형태이다.

 

 

 

미술관은 2층으로 전부 13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12전시실까지 '신의 손'  '청동시대' 등 명작품들이 제작연대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13전시실에는 로댕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유명화가들의 그림과 그가 수집했던 골동품들도 볼 수 있다.

 

 

 

6전시실에는 로댕의 작품과 Claudell 의 작품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예술가로서 보다는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으로 후세에 더 잘 알려져있는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로댕의 작품들과 비교해 볼 수 있다.

 

 

 

 

 

'St. John The Baptist - 청동시대'      1880년.      이 작품은 로댕이 벨기에에서 만든 작품인데 너무 섬세한 조각 때문에 많은 논란을 낳았다.      이후로 그는 조각가로써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Minerve or Pallas with the Parthenon'    1896년 작품.  

 

 

 

 

 

 

 

 

 

 

 

미술관에는 조각품들 뿐만이 아니라 Rodin 이 생전에 수집한 그림들도 여러점이 전시되어 있다.   

 

 

 

 

 

 

 

 

 

'Kiss    1886년 작품.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편에 나오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모습으로 실존 인물이라고 알려진 작품.

 

 

 

 

 

카미유 클로델의 1897~1903년 작품.       'The Wave or The Bathers'      그녀는 나중에 로댕과 헤어지고 고생하다가 가족들에 의해서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그녀 스스로 작품들을 다 부수어서 현재는 90점만이 남아있다.

 

 

 

미술관의 반 정도를 돌아보고 잠시 휴식을 위해서 정원으로 나오니 군사박물관이 있는 앵발리드 Dome Church 의 황금빛 Dome 이 보인다.        로댕미술관과는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있다.     

 

 

 

 

 

'지옥의 문'     3번째 Sketch.     1881.

 

 

 

 

 

사진으로 보는 로댕의 말년 모습.        Auguste Rodin 1840 112일 파리에서 하급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적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지만 국립미술학교에 3번이나 낙방했다.       이후 20년간 이름없는 조각가였던 그는 1880년 파리의 미술전에 출품한 '청동시대' 통해서 유명해졌다.       인체표현이 너무나 생생했던 탓에 살아있는 모델에 석고를 씌워서 만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파장을 일으키며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로댕박물관이 개관하기 12년 전인 1917년까지 이곳에서  마지막 9년간을 작품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Head of St. John The Baptist on a Platter'    1887년 작품.

 

 

우리가 머무르는 호텔은 루브르 박물관, 오페라하우스, 몽마르트가 모두 걸어서 15분 정도가 된다.       가까운 곳에 일본식당, 중국식당, 한국식당들이 몰려있는 거리도 걸어서 10분 정도이다.

 

 

 

 

 

우리가 묵고있는 숙소는 방이 30여개뿐인 4층의 작은 호텔인데 깨끗하고, 좁은 공간을 매우 잘 활용해놓은 곳이다.       주위에 레스토랑과 카페가 가득하고 교통이 대단히 편리하다.

 

 

 

교통이 좋은 곳이어서 이곳을 예약을 하고 왔는데 그만 파리의 이상고온이 계속되는 바람에 더위로 약간 불편했던 것을 빼고는 다 좋았다.

 

 

 

 

 

 

 

 

 

파리의 전철시스템은 아주 편리하다.       파리의 어느 교차로에서든지 아무리 멀어도 500m 이내에는 항상 지하철역이 있다.        아주 오래 전에 건설된 지하철이라 서울의 지하철처럼 근대적인 시설은 아니지만 깨끗하고 편리하게 운용되고 있다.         방문객들이 이용하기에도 아주 편하게 되어있다.       13개의 Metro (지하철) 노선과 5개의 RER (철도) 노선 그리고 교외의 일부지역에는 Tramway 도 있다.         우리가 머무르는 곳에서는 200m 반경에 3개의 Metro 노선의 지하철역이 있다.  

 

 

 

지하철을 타고 Orsay 미술관 왔다.        오르세 미술관 건물은 1804년 최고재판소 건물로 지어졌다가 불타버리고, 1900년 파리박람회 개최를 맞이하여 철도회사가 건설한 철도역이자 Hotel 이었다.        1939년에 철도역이 폐쇄되면서 이 건물의 용도를 두고 오래도록 논의가 오고가다가 불란서 정부의 최종결정에 따라서 1986년에 미술관으로 개관하게 되었다. 

 

 

 

장사진을 이루고 입장을 기다리는 인파들.       우리도 줄에 서서 약 30분 정도를 있었던 것 같다.       입장하면서 보니까 Security Check 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었다 

 

 

 

19세기를 중심으로 하는 오르세 미술관은 곧 파리의 명소가 되었다.       인상파 화가들의 많은 그림을 소장하고 있어서 인상주의 미술관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Louvre 박술관의 소장품 중에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모두 Orsay 미술관으로 이관되었다.        오르세 미술관은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1848년부터 1914년까지의 작품을 전시하도록 되어있다.       1848년 이전의 작품은 루브르박물관, 1914년 이후의 작품은 퐁피두센터에 전시하도록 분할되어 있다.

 

 

 

철도역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미술관으로 개조하였기에 우리가 보통 보아왔던 미술관이나 박물관들과는 달리 확실하게 독특한 느낌을 주고있다.         빛이 잘 들어오는 천장 덕분에 미술관 자체가 상당히 밝은 느낌을 주고, 넓고 탁트인 공간이 시원해보이는 것이 참 좋다

 

 

 

 

 

Orsay 미술관의 전시품들은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같은 시기의 주류파였던 Academism 화가들의 그림도 다수 전시되고 있다.

 

 

 

미술에 큰 관심이 없어도 왠만큼 알고 있는 Van Gogh.         오르세미술관은 작가별로 방을 나누어서 전시하고 있다.        고흐의 방은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다.

 

 

 

1889년에 그린 Van Gohh 의 자화상이다.        그는 평생 3개의 그의 자화상을 그렸는데 이것이 그가 머물렀던 불란서 남부의 조그만 도시 Arles 에서 파리의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어서 있었을 때에 그린 그의 마지막 자화상이다.

 

 

 

반 고흐는 동료 화가인 폴 고갱 (Paul Gauguin) 이 파리를 떠나서 Arles 에 온다는 소식에 들떠서 'Arles Van Gogh 의 방' 을 그린다.       하지만 고흐와 고갱이 Arles 의 같은 도시에서 함께 지낸 생활은 길지 않았다.         고흐가 고갱과 다투고서는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 사건도 있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고갱과의 만남이 슬픈 결말로 끝나게 된다.  

 

 

 

 

 

어렵고 힘들게 생활했던 고흐는 생전에 겨우 1장의 그림만이 팔렸던 무명의 가난한 화가였다.        그의 그림들은 그가 죽고도 11년이 지난 후에야 명성을 얻게 된다.

 

 

 

Aix-en-Provence 출신인 폴 세잔 (Paul Cezanne) 의 작품.

 

 

 

미술관 구내에 있는 식당에 길게 늘어선 줄.

 

 

 

우리가 파리에서 Orsay 미술관에 꼭 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가게되면 미술관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Toronto 에서 친하게 지내는 Mr.오의 Recommandation 을 기억하면서 식당에 올라왔다.         아침부터 긴 줄에 서있어서 그런지 아직 미술관의 그림들을 절반도 구경 못했는데 많이 지쳐있어서 쉬어갈겸해서 식당에 왔다  

 

 

 

아침에 미술관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에 시원하게 탁트인 공간에 놀랐었는데식당도 높은 천장에 탁트인 공간이 차분하고 우아한 느낌이다.        토론토의 후배 Mr.오는 불란서 여러곳과 파리의 귀중한 여행정보와 자료들을 Print 까지 하여주어서 여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곳 임에도 Reasonable 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으로 흡족한 식사였다.       두사람 식사비, 37.5유로 (52).

 

 

 

활을 당기는 헤라클라스의 조각상.        넓고 환한 미술관의 천장을 바라보며 활을 당기는 모습이 미술관 건물과 잘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

 

 

 

폴 고갱의 1892년 작품    고갱은 강렬한 색체를 사용하는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이다.       파리에서 그린 그림보다는 Tahiti 에서 그린 그림들이 더 강렬해 보인다.

 

 

 

르누이르 (1880-1920) 의 작품 '길레트 풍차에서의 춤'         파리의 몽마르트의 야외 무도회장의 그림이다.

 

 

 

밀레 (Jean-Francois Millet) 1857년 작품 '이삭줍는 여인'       우리가 그래도 조금은 알고 있는 중고등학교시절에 배운 유명한 그림들은 대부분이 Orsay 미술관에 있는 것 같다.

 

 

 

마네 (Manet) 1863년 작품.        Orsay 미술관은 회화가 주전시품이지만 조각뿐 아니라 사진, 그래픽, 가구, 공예품 등을 포함해서 19세기의 미술과 예술작품을 폭넓게 전시하고 있다.

 

 

 

클로드 모네의 그림.        우산을 들고 있는 아가씨의 모습과 바람이 불고있는 듯하는 서정적인 느낌이 좋아보인다.

 

 

 

 

 

호텔로 돌아가서 휴식을 하고 밤이 되어 샹제리제 거리에 나왔다.          거리 곳곳에서 묘기를 펼치고...     날씨가 좋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는지...

 

 

 

 

 

 

 

거의 40~60만 불에 도달한다는 이태리제 스포츠카 람바기니.        2대가 길가에 세워져있는데 한번 타는데 89유로라고 쓰여있다.        돈 받고 태워주는 영업을 하는 모양인데 89유로이면 거금 125불이다.

 

 

 

샹젤리제 거리의 Louis Vuitton 본점 매장.

 

 

 

 

 

개선문을 향해서 걸으면서 멀리서 보이는 밤의 개선문은 멋있었는데 막상 개선문의 앞에서는 낮에 보는 것 만큼은 좋아보이지 않는다.

 

 

 

캉캉쇼의 대명사처럼 유명한 파리의 Lido 캬바레.        그런데 Lido 캬바레만 이곳에 있고 캉캉쇼를 하는 다른 캬바레들은 모두 몽마르트에 있다.

 

 

 

Taylor Lautner.      9월28일 오후 830분...     이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지금 이 거리가 대혼잡이다.       유명한 스타인 모양인데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특히 배우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이런 십대들에게 우상인 젊은 Movie Star 를 전혀 알 도리가 없다.        여하간에 인도를 완전히 막아놓아서 어쩔 수 없이 나도 사진을 몇장 찍어본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그가 누구인지 찾아보니 독일, 네델란드, 그리고 Canada 의 Ottawa 근처의 인디안 원주민 혈통으로 미국 Michigan  Grand Rapids 에서 태어났다.      요즈음 마구 떠오르고 있는 십대들의 스타란다.

 

 

 

 

 

TV 방송의 차량과 기자들까지 엉켜서 대혼잡을 이루고 있다   

 

 

 

헐리우드 십대 스타들중에서 최고의 몸값 1위를 기록하고 있는 Taylor Lautner.       매력적인 몸매와 뛰어난 연기로 2010년 한해의 소득이 헐리우드 배우들중 고소득랭킹 4위를 차지했다고 하던가.

 

 

 

The Twilight 씨리즈영화인 New Moon Eclipse 에 출연했다고 한다.        이렇게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오래도록 이곳에서 기다렸는지...    그런데 이렇게 넓은 Champa-Elysees 거리의 인도를 몽땅 막아버렸으니 가던 길을 계속 가려면 길을 건너서 피해서 가는 수 밖에 없다.

 

 

 

아니 누가 저 차를 잠깐 타보겠다고 저렇게 엄청나게 돈을 쓰는 사람도 있을까 생각했는데, 아까 보았던 그 람바기니의 차가 지금 막 우리 앞을 지나가다가 Red Light 신호에 멈추어 서있다.       엄청난 돈을 지불했을 고객은 운전석 옆에 앉아있고...     어디까지 몇분 동안에 갔다오는 드라이브인지...

 

 

 

Champs-Elysees 의 거리는 늦은 밤부터 마구 쏟아져나오기 시작하는 젊은이들로 더욱 북적거린다.       우리들의 내일 일정은 Rodin 박물관이다.

 

 

Barbizon 으로 가는길.        오늘아침에 Group Tour 의 마지막 숙소였던 Mercure Hotel 로 한근군이 와서 4년만에 다시 반가운 친구를 만난다.       한근군과는 고등학교, 대학 모두 동기동창이다.         한근군의 차로 Opera House 근처의 새로운 숙소에 짐을 던져놓고, 한근군의 권유에 따라서 밀레가 그림을 그리고 살았던 Barbizon 과 나폴레옹이 머물렀던 퐁탠블로 궁전을 보러간다.

 

 

 

 

 

파리의 남쪽으로 약 60Km 떨어진 Barbizon 은 마을 전체가 한장의 엽서처럼 아기자기하면서도 조용한 정적인 분위기가 여유와 평화가 그대로 간직된 작은 마을이다.       너무나도 조용한 작은 마을이라 밀레의 집을 찾는데 물어 볼 사람조차 길에 보이지 않는다.        이 가게에 들어가서 밀레의 집이 윗쪽으로 조금 더 가면 나온다는 대답을 얻었다.

 

 

 

마을의 길목에 세워놓은 밀레의 그림들.

 

 


  


 마을의 길목에 세워놓은 밀레의 그림들

 

 

피에르 루쏘 (Pierre Rousseau, 1812~1867) 와  장 프랑스와 밀레 (jean-Francois Millet, 1814~1875) 가 파리에서 이곳으로 왔다.      자연과 전원생활을 사랑했던 자연주의파 (Nationalism) 화가들이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이 마을에 모여서 살며 전원의 풍경을 주로 그렸기에 바비종파 (Barbizon School) 라고도 불리어졌다.

 

 

 

드디어 어렵지않게 찾아낸 밀레의 집.

 

 

 

1849년부터 그가 생을 마친 1875년까지 살았던 집이고 작업실이다.

 

 

 

집으로 들어가는 아주 조그마한 문.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그림들이 들어찬 작업실이다.         입장료 4유로.

 

 

 

 

 

저녁노을이 지는 들녘에서 가난한 농부 부부가 하루종일 일을 하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성당의 종소리를 듣는다.       농기구와 삽을 놓고 두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채 기도를 하고 있다.         캐어내다가 중단한 감자가 바닥에 아직 흩어져있고...     밀레가 그린 '만종' 이다.     '이삭줍는 여인들' 과 더불어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그림이다.        원본 그림들은 Orsay 미술관에 있다. 

 

 

 

밀레는 퐁탠블로 숲 근처의 샤이이 농장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의 대표작의 하나인 이삭 줍는 여인들의 그림에서 보는 것 처럼 추수하면서 땅에 흘린 이삭을 줍고있는 3여인의 모습과, 멀리에는 엷은구름이 낀 하늘 아래에 높이 쌓아올린 짚더미가 보이는 평화로운 농촌풍경이 펼쳐져있다.         한알의 알곡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농부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밀레는 9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림을 그릴 물감을 살 돈조차 여의치 않았던 가난한 화가였다.       밀레가 살다가 생애를 마쳤던 그의 거주지이자 화실은 지금도 예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소박한 그의 집안에는 그림들이 들어차있고 화구들이 놓여져있다.        작업실에는 습작과 스케치가 그대로 남아있다.

 

 

 

밀레는 프랑스의 노르만디 지방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도 농부여서 어려서부터 많이 보아온 농부들의 생활을 많이 그린 화가이다.

 

 

 

 

 

왼쪽은 밀레의 출생증명서, 오른쪽은 사망증명서이다.        불란서의 옛날 증명서들은 편지처럼 길게 쓰여져있다.

 

 

 

밀레가 살아 생전에 애용하던 성경책.        이렇게 출생증명서, 사망증명서, 성경책까지 보존하고 전시하는 것은 불란서 사람들의 특이한 보존, 보관하는 좋은 습성 때문이다.

 

 

 

밀레와 그의 부인의 사진.

 

 

 

정원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인데 이제는 너무 낡아서 2층의 살림방은 더 이상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밀레와 함께 Barbizon 으로 옮겨와 그림을 그렸던 화가 피에르 루쏘의 작업실은 지금은 Barbizon 파의 미술관이 되어있다.

 

 

 

 

 

 

 

머리숱도 그대로이고 흰머리 하나 보이지 않는 한근군은 절대로 늙지 않는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가 보다.

 

 

 

Barbizon 에서 Fontainebleau (퐁탠블로) 로 가는길.           주위의 경치가 매우 좋은  Barbizon 에서는 10Km 정도 되는 멀지 않은 거리의 드라이브 길이다.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약 60Km 정도 떨어져있고 베르사이유 궁전보다는 작지만 나폴레옹이 가장 좋아했다는 퐁탠블로 궁전.

 

 

 

 

 

프랑스 르네상스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프랑수와1세가 1528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루이16세에 이르기까지 7명의 왕들이 궁전건축을 계속하여 완성시켰다.        그후 나폴레옹이 궁전을 보수하였고 그는 1814년 이곳에서 그만 폐위를 당했다.

 

 

 

궁전에서 앞 광장으로 내려오는 계단은 아주 특이한 모양이다.        페리슈발이라 불리는 계단인데 말발굽 모양이다.      나폴레옹이 하야성명을 발표하려고 이 계단을 내려와 근위병들에게 고별사를 하고는 엘바섬으로 유배되었다.       그래서 계단 앞 광장의 이름이 백마광장이었으나 그후로 이별의 광장이라고도 불린다.      계단 우측에 나폴레옹 박물관이 있다.        나폴레옹은 이 궁전을 좋아해서 베르사이유나 다른 궁전들을 마다하고 이 퐁탠블로 궁전에서 주로 집무를 하였다.

 

 

 

 

 

 

 

 

 

 

 

12세기부터 퐁탠블로의 광대한 숲은 왕가의 사냥터였다.       숲 가운데에는 휴식을 위한 저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자리에 궁전과 정원이 세워지게 된다.        마차를 타고 몇백년 전의 퐁탠블로 숲을 상상해보면서 즐거워하는 관광객들. 

 

 

 

 

 

퐁탠블로 궁전의 정원은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만큼 넓지는 않지만 매우 아름답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을 설계했던 르노트르가 이곳의 정원을 조성했고 쉬농소 Castle 의 주인 메디시스가 만든 다이아나 정원, 영국정원, 연못 등이 있다.

 

 

 


 

 

 

프랑수와1세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 세를리오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한 거장들을 초빙하여 궁전 건축을 시작하였다.       지금은 Louvre 박물관에 있는 유명한 Mona Lisa 도 처음에는 퐁탠블로 궁전의 벽에 걸려있었다.

 

 

 

 

 

 

 

 

 

퐁탠블로 궁전에서는 프랑수와1세의 화랑, 앙리2세가 만든 무도회실 등이 유명하다는데 우리는 궁전 안에 들어가는 것을 그만 두기로 한다.         얼마 남지않은 시간에 궁전을 다 둘러보기도 어렵고....     그동안 너무나 많은 궁전과 Castle 을 보고 다녀서 조금은 지쳐있기도 하다.

 

 

 

 

 

 

 

내일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르세 미술관 (Musee Orsay) 을 하루종일 돌아볼 예정이다.        그리고 다음날은 로댕 미술관 (Musee Rodin) 과 Sorbonne 대학에 간다.

 

 

동료여행객의 일부가 베르사이유궁전으로 관광을 하러간 4시간 동안 나머지 동료여행객들은 자유시간을 갖는다.       우리는 베르사이유 궁전에 2번 갔었기에 다시 가지 않아도 된다.        집합장소인 Opera House 주위의 여러곳을 돌아다닌다.

 

 

 

어제 왔었던 콘돔광장의 승전기념탑도 다시 지나간다.

 

 

 

 

 

길 건너편에서는 North Carolina 에서온 Kateney 부부가 열심히 지도를 들고 연구중이다.       블렄마다 거의 다른 이름으로 바뀌는 옛파리 구역에서는 정말로 길 찾아다니기가 쉽지 않다.

 

 

 

Opera House.     흔히 가르니에 궁전 (Palais Garnier) 이라고 불린다.       나폴레옹 3세의 명에 의하여 건축가 Garnier 1875 2,200석의 화려하고 웅대하게 건축한 오페라극장.

 

 

 

 

 

 

 

 

 

Opera House 의 뒤편에는 조그마한 박물관이 붙어있고 Garnier 의 동상이 있다.       바로 길 건너편에서는 파리의 드골공항으로 가는 직행 Bus 20분마다 떠난다.      10유로.

 

 

 

 

 

일요일이라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고 있다.      아니면 느즈막하게 열려는지...      쉽지않게 찾아낸 간이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아가씨가 아주 친절하다.      공중전화를 물어보니 자기 전화를 쓰라고 내어주기도 하고...      불란서를 여행하면서 느낀점이 외국인 여행객에게 상당히 친절한 나라가 아닌가 싶다.       작은마을, 작은 도시, 그리고 대도시인 파리를 막론하고 모두들 친절하다.       여행일정표에 간단하게 메모하고 있는 Zenia.

 

 

 

 

 

 

 

La Madeleine.       콩코드광장에서 오페라하우스 방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 이 성당은  Mary Madeleine 을 기리기 위해서 1764년에 건축을 시작하였으나, 연이어 건축가들이 죽고 혁명의 시기를 거치면서 공사가 진척되지 않아 80년이 지난 1845년에 완성되었다.       성당정문의 벽에는 조각가 르메르의 최후의 심판이 조각되어 있다.

 

 

 

 

 

 

 

 

 

 

 

 

 

이 유명한 성당의 정면앞에 자리잡고 연습을 시작하는 교향악단이 있다.       최고의 환경과 최고의 경건함이 조화를 이루는 곳에서...     

 

 

 

 

 

 

 

 

 

Madelein 성당의 정면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콩코드광장의 오벨리스크.

 

 

 

 

 

 

 

또 다른 Opera 극장.

 

 

 

 

 

항상 웃고 다니는 시카코에서 온 동료여행객 Steve 부부가 건너편 길에서 손을 흔들고 지나간다.      자유시간에 모두들 파리시내를 누비고 다닌다.     카메라를 떨어뜨려서 그후로는 캠코더로 비디오만 찍고 다녔던 호주에서 온 동료여행객 John 은 지금 새로 샀다는 큰가방을 끌고간다.       짐이 엄청 늘었단다.      여행중에 쇼핑을 많이 하였나 보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모두들 바쁘다.

 

 

 

 

 

 

 

파리의 신도시 La Defense.        웅장하고 모던한 신 개선문도 있다.       라데팡스는 과거의 찬란한 예술을 담고있는 파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신 개선문을 비롯하여 신 Obelisk, 그리고 세계유수의 대기업들의 본사와 지사들이 위치한 곳으로 London 과 함께 유럽의 Business 중심지가 된다.

 

 

 

신 개선문 (La Grande Arche).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1989년에 파리의 신도시에 47층 높이의 건물을 만들었다.       에투알광장의 개선문이 안으로 쏙 들어갈 정도의 거대한 크기의 건물로 만들어서 국제회의, 진열실 등을 갖춘 최신의 구조물이다.

 

 

 

신 개선문에서는 멀리 개선문이 바라보이며 샹제리제거리, 콩코드광장, 루브르박물관까지 모두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이곳 호텔에서 오늘밤을 보내고 나면 15일간의 Group Tour 는 끝이난다       내일부터는 Opera House 에서 멀지 않은 호텔로 옮긴다.      대중교통이 편하고 돌아다니기 편한 곳으로 가서 닷새를 더 Paris 에 머무르게 된다     계속된 이상고온으로 입어보지도 못한채 끌고만 다녔던 긴팔 옷과 스웨터 등으로 가방만 불룩하다.

 

 

우리가 묵는 호텔에서 오늘밤을 지내고 내일 하루밤을 더 지내면 Group Tour 는 끝이난다.       오늘 일정의 마지막 순서인 Cabaret Show 를 보러 밤9시에 떠나는 일만 남았다.

 

 

 

언제 보아도 질리지않는 에펠탑.     낮에는 관광객들과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로 북적거리며 대만원인데, 밤에 불빛으로 밝힌 에펠탑은 철로 만든 조형물이 아니라 거대한 예술품 같아 보인다. 

 

 

 

 

 

Cabaret Show 를 보기 위해서 몽마르트에 도착하니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Moulin Rouge 앞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Moulin Rouge 는 1889년에 Open 하였고 Lido 와 함께 대표적인 Cancan 쇼의 무대이다.

 

 

 

이곳에서도 젊은이들이 높은 화단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느라고 야단들이다.          우리팀들도 대부분 노년층이지만 높은 화단에 올라서서 사진을 찍는다.     우리도 높은 화단에 올라가 본다.         Moulin Rouge 는 붉은풍차라는 뜻이다.          Cancan 쇼는 1900년대 초기에 파리 Montparnasse 의 작은 선술집에서 각자 춤추던 무희들을 모아서 큰 규모의 Cancan Dance 쇼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Montmartre 에 Cancan 쇼를 하는 카바레들이 몰려있다.

 

 

 

La Novelle Eve.        우리가 들어갈 이 Cabaret Cancan Show 의 제일 싼 가격이 62유로.       저녁을 포함한 제일 비싼 가격이 137유로이다.      Moulin Rouge 90~200유로.        엄청난 가격이다.        Champs-Elysses 에 있는 Lido 카바레에서는 90~280유로.       본고장의 캉캉쇼를 구경하는 것이 이렇게도 비싼 것인지.... 

 

 

 

길게 늘어진 줄이 어디까지 인지....    10시30분에 시작하는 Show 에 10시 정각에 도착한 우리팀 앞에는 벌써 긴줄이 늘어서있다.     최고의 이익을 남기는 산업은 역시나 관광산업이다.          캉캉쇼 하나로 불란서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얼마나 될까.

 

 

 

 

 

 

 

 

 

 

 

 

 

2층에서 내려다보이는 Show 가 시작하기 전의 객석      Show 가 시작하면 사진촬영 금지라, 아쉽게도 사진은 한장도 없다.       뭐 별로 특별한 Show 도 아닌데 그저 Cancan Show 의 본고장이라 이렇게 엄청 비싸게 받아도 Internet 으로 표를 구하느라고 야단이라니 정말로 믿기 어렵다

 

 

 

Show 가 끝난 시간은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토요일 밤이라 쏟아져나온 젊은이들 그리고 관광객들로 골목골목이 꽉 차있다.       내일도 파리시내를 관광하는 일정인데 Gruop Tour 의 마지막 날이다.

 

 

 

 

 

 

 

조용한 일요일 아침의 파리.        여행 14일째 아침이다.       일찌기 19세기에 만들어놓은 넓은 가로수 길과 아름답고 인상적인 건물, 박물관과 공원, 정원, 산책길 등 파리 곳곳에서 풍기는 웅장함과 독특한 분위기가 상큼한 초가을의 아침에 더욱 어울려보인다.

 

 

 

 

 

Eiffel Tower.       1889년 프랑스혁명 100년을 기념하는 만국박람회의 상징물로 지어진 구조물이다.       700명의 당대의 유명한 설계사들의 디자인을 물리치고 Gustave Eiffel 의 디자인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고 그의 이름을 따라서 Eiffel Tower 되었다.        1931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철제구조물로 안테나를 포함하여 320m (984 Ft) 의 높이가 되고 7천 톤의 무게가 된다.      300명의 철강기술자가 동원되어 2 (1887~1889) 동안 건축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1789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계단도 1789개로 만들었다.        250만개의 리벳, 15천개의 철제 그리고 40톤의 페인트가 소요되었다.

 

 

 

 

 

 

 

좋은 사진을 얻으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고생은 하여야한다.         이른아침의 강한 역광을 피하려고 Filter 도 사용하고...     힘든 자세로 벌써 몇분이나 지나도 꼼짝도 않고 있다.

 

 

 

 

 

 

 

 

 

에투알 광장의 개선문 (Arc de Triomphe) 은 나폴레옹이 1806년에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건축가 샤를 글랑에게 건축을 명령하였으나 30년만인 1836년에 완성되었다.        나폴레옹은 개선문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높이는 50m 이고 폭이 45m 로 사진에서 보다도 실제로 보는 개선문은 매우 높고 거대하다.

 

 

 

 

 

파리 Obelisk.      고대의 이집트인들이 태양신을 섬기며 만든 Obelisk 는 세계의 곳곳에 세워져있다.     Pyramid 와 더불어 이집트의 상징의 하나인 Obelisk 16세기 중엽부터 Africa 에 진출한 유럽의 강대국들인 영국, 불란서, 이태리에 의해 대부분 유출되고 말았다.       파리의 콩코드광장에 서있는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의 Luxor 에 있던 3,200년이나 된 국보급인데, 공식적으로는 이집트의 국왕이 선물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나폴레옹의 이집트원정 당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훗날 이집트정부의 반환요구가 있기도 하였다.       영국 London 테임즈강가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1870년 영국이 배로 실어온 것이다.       가장 많이 가지고 온 나라는 이태리이다.        과거에 지중해를 장악했던 로마제국의 황제들이 이집트를 돌아다니며 무려 20개를 가져다가 로마시내 곳곳에 옮겨놓았다.

 

 

 

 

 

 

 

노틀댐성당에서 한블렄 떨어진 곳에 있는 파리시청      파리인구는 220만 명인데 위성도시를 합쳐서 인구 1천3백만 명이 거주한다.      파리시청은 주위에 대표적인 명물 노틀댐과 그리고 밤마다 변하는 세느강변의 황홀한 아름다운 곳에 위치해있다.

 

 

 

 

 

3번째 보는 파리의 노틀댐성당.       주위에는 언제나 수많은 관광객으로 만원이다.

 

 

 

 

 

노틀댐 성당에서 마주 보이는 건물은 파리경시청.

 

 

 

 

 

 

 

 

 

 

 

 

 

 

 

오늘은 일요일이라 미사가 열리고 있고 많은 관광객들도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성당의 뒷편에서 쉬고 있는 거리의 악사들.       거대한 콘트라베스에 피아노까지 가져다놓았다.      저 무거운 피아노를 어떻게 매일 운반하는 것인지....   내가 먼저 걱정이 된다.

 

 

 

 

황금빛 언덕의 완만한 경사로 이어진 포도밭의 중심에 있는 인구 23천의 조그마한 도시인 Beaune 에 왔다.      쏟아질 것 같이 푸르고 푸른 가을 하늘의 아침이다.      Cote d’Or Wine 으로 유명한 곳이다.

 

 

 

코트 도르 (Cote d’Or) 언덕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이 지역의 포도밭은 낮은 구릉의 언덕을 따라서 조성되어 있다.

 

 

 

 

 

 

 

이곳 부루고뉴지방의 Wine 산지는 남쪽으로 250Km 정도 길게 펼쳐져있다.           북쪽으로부터 Chablis, Cote d’Or, Cote Chalonnaise, Maconnaise, Beaujolais 지역으로 이어진다.       이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Wine 산지가 Cote d’Or 지역이다.       이곳은 보르도지방의 Merdoc 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품질의  Wine 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꼽힌다

 

 

 

이곳 부루고뉴지방의 Wine 산지는 남쪽으로 250Km 정도 길게 펼쳐져있다.           북쪽으로부터 Chablis, Cote d’Or, Cote Chalonnaise, Maconnaise, Beaujolais 지역으로 이어진다.       이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Wine 산지가 Cote d’Or 지역이다.       이곳은 보르도지방의 Merdoc 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품질의  Wine 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꼽힌다

 

 

 

 

 

안내인의 설명에 따르면 단지 농로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있는 다른 포도밭의 Wine 의 맛이 다르고, 심지어 같은 품종을 재배하는데도 농로 건너편의 Wine 의 맛이 다를 수 있단다.

 

 

 

 

 

이곳 저곳으로 옮겨가면서 다른 종류의 Wine 을 설명하고 나면 그 때마다 한잔씩 맛을 본다.      좋은 Wine 을 공짜로 마실 수 있는데....    너도 나도 한잔씩.

 

 

 

 

 

 

 

토양과 함께 비탈의 각도와 방향이 포도밭의 등급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비탈의 각도와 방향은 일조량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유명한 포도원은 거의 예외없이 남쪽이나 남동쪽 방향이며 비탈의 각도가 완만하여 햇볕을 골고루 많이 받는 지리적인 특성을 갖추고 있다.      아이구 이거...    나는 술을 즐기지도 않고, 술맛도 모르는데 뭐 아무려면 어떨까.

 

 

 

 

 

 

 

그런데 이거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설명을 할 때마다 한 잔씩 받아먹다가...     벌써 서너 잔은 될 것 같은데...

 

 

 

 

 

 

 

Paris 로 가는 고속도로 선상에 있는 Service Center 의 식당에서 점심을 한다.      메뉴는 4~5가지가 있는데 되는 것은 오직 2가지 뿐이다.     먹음직한 것은 모두 음식이 떨어져서 없단다.       오직 엉터리 빠에로만 있다.      고속도로의 식당들은 대체로 비싸지만 이 집은 엄청 엉터리 음식에 왕창 바가지 가격이다.      Salad 와 빠에로 18.55 유로.

 

 

 

 

 

파리에 들어와서 첫번째로 온 곳이 Louvre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은 4년 전에 그리고 3년 전에도 왔었는데 그때의 설레이던 감회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박물관에 들어간 동료여행객외의 나머지 동료여행객들은 약 절반 정도의 숫자인데 이미 박물관을 보았던 분들이다.      , 이제는 우리들의 자유시간이다.       다시 모이는 시간까지 발걸음 닫는대로 돌아다녀야겠다.

 

 

 

박물관의 광장에 있는 Carrousal 개선문.       나폴레옹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서 1805년에 세워졌다.        Avenue des Champs-Elysees 에 있는 Arc de Triomphe 개선문과는 모양도 다르고, 조금 작은 규모이다.

 

 

 

 

 

파리는 지금 예년의 평균기온 22~23도를 훨씬 웃도는 28~29도의 더위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약 10일은 동안은 계속 이상고온을 유지할 것이란 예고이다.       파리에 다시 여름이 왔다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있다.       Louvre 박물관 광장의 잔디밭을 메운 사람들...    얼마나 평화로운 풍경인가.      우리가 사는 북미나 서유럽에서 흔히 보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광경이다.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보다 좀 더 여유가 느껴진다.      Group Tour 가 끝나고도 우리는 5일을 더 Paris 에서 머무른다.       이제는 자유시간 동안 천천히 발길 닫는대로 기념품가게도 둘러보고, 갈 수 있는 곳까지 갔다가 다시 박물관 앞으로 오기로 한다.

 

  

 

장사진을 치고 문 밖에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손님들을 보니 유명한 식당인가 보다.     108년 전에 Open 한 식당인 것 같은데 무슨 비결이 있어서 이렇게 손님들이 몰려드는지....

 

 

 

 

 

 

 

 

 

 

 

Vendome 광장의 44m 높이의 기념탑은 1810년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노획한 대포 1,250 문을 녹여서 만든 것인데, 탑의 정상에는 나폴레옹 동상이 있다

 

 

 

Vendome 광장앞에는 리츠칼튼 호텔.       수시로 일일관광 버스가 멈추어 선다.       영국의 왕세자비 Diana Spencer 가 이 호텔에서 마지막 저녁을 하고 호텔에서 제공한 리무진을 타고 가다가 참사를 당한 이야기를 안내원이 설명을 하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여행 첫날의 첫 방문지가 Rouen 이었다.     불란서를 위험에서 구한 Joanne d’Arc 가 화형을 당한 곳이 Rouen 이었는데 그곳에는 작으마한 기념교회만 있었고 화형을 당한 자리에는 안내푯말만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황금빛 기마상이 바로 루부르박물관 건너편의 길에서 번쩍번쩍 빛나고 있다.

 

 

 

우리 그룹이 만나는 장소인 Musee Louvre (루부르박물관) 에 다시왔다.      1190 Phillippe-Auguste 에 의해서 건축된 궁전이었으나, 1793년 프랑스공화국 혁명의회의 결정에 의해서 박물관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박물관의 새로운 인기 조형물인 루브르 박물관 Main Entrance 이다.      Glass Pyramid Entrance 는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I.M. Pei 가 설계하였다.     1981년에 착공되어 1989년에 완성되었다.       착공 당시에는 에텔탑을 극렬히 반대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비난을 받았으나 지금은 Louvre 박물관의 Icon 이 되었다.

 

 

 

박물관에는 유명한 미술품, 조각품, 전쟁에서 이겨서 획득한 전리품으로 귀중한 역사적인 유물등이 있다.        레오나드 다빈치의 'Mona Lisa' 1820년 그리스의 Milo 에서 찾아낸 BC 200년 전에 조각된 'Venus de Milo' 1513~1520년에 제작된 미켈란젤로의 'Dying Slave' 가 대표적인 유명 소장품이다.

 

 

 

 

 

젊은이들의 사진찍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다.      요즈음은 모두들 두 팔을 활짝벌리면서 껑충 뛰어오르거나 이렇게 높이 올라서는 것을 좋아하나 보다.

 

 

 

 

 

 

 

루브르 박물관의 화장실이 놀랍게도 유료화장실이다 !!!        무려 1유로나 받고 있는 루브르박물관의 지하에 있는 화장실.     

 

 

 

1유로를 내고 들어온 화장실의 너무나도 간단한 남자용 소변기.      불란서는 대대로 최고의 아름답고 예술적인 건축물만 지으면서 어찌하여 화장실 문화는 아직도 후진국 수준인지....

 

 

Grasse 에 있는 Fragonard 향수회사에 왔다.       Cannes 에서 7km 떨어져있는 Grasse 는 오랫동안 프랑스의 주요 향수 생산지로 자리잡고 있다.

 

 

 

16~18세기에 불란서 남부지방에서는 향료 식물재배를 하였다.     그러다가 오늘날의 역사적 계기가 된 것은 1709년 새로운 형태의 향수 Eau de Cologn 이 첫선을 보이면서 향수의 혁명을 이루어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이곳에 있는 향수제조의 대가들은 자연의 선물인 향기를 연구하여 6천여종 이상의 향을 만들어왔다.     이 마을에는 향수의 도시답게 자스민, 센티폴리아 장미, 미모사, 오렌지색 사과꽃, 그리고 냄새가 사람을 취하게 하는 나르시스 등이 재배되고 있다.

 

 

 

무수히 많은 꽃들에서 향료를 추출하고 걸러내어 향을 테스트를 한 후에 1리터의 향수가 나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볼 수 있다.

 

 

 

Grasse 에는 약 40개의 향수공장과 회사가 있는데 이중에서 3개의 회사만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그중 하나인 Fragonard 17세기에 무두질 공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곳인데 지금은 유명한 향수회사이다.  

 

 

 

 

 

 

 

Sample 로 주는 향수의 냄새도 몇개를 거치고 나면 제대로 분별하기 힘들다.

 

 

 

 

 

많은 여성 동료여행객들은 지금 향수에 취해있는데 좋은 냄새를 풍기는 작은 비누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이다.

 

 

 

오늘은 프랑스 남부의 해안지역에서 Lyon 까지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는 일정이다.      알프스산맥의 자락을 타고 계속 올라가는 것인데 아주 험악하고 위험한 길이 계속 이어진다.      Grasse 를 떠나고부터는 하루종일 아슬아슬한 고개길, 절벽길, 험악한 돌산을 돌고 돌면서 달린다. 

 

 

 

처음에는 기막히게 좋은 경치들에 환호하던 동료여행객들도 이제는 더 이상 흥미가 없다.       강원도의 20분 정도의 절벽길은 기억에 오래 남아있지만, 이렇게 하루종일 절벽길과 꼬불거리는 길을 지나다보니 점점 빙글빙글 도는듯 하다.   

 

 

 

프랑스 남부 French Riviera 에서 Lyon 으로 오는 길이 이렇듯 험할 줄이야...      우리가 오늘 계속 달리고 있는 이 길이 Napoleon Route 이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정복하러 나섰으나 혹독한 추위에 물러서고 말았고 이 틈을 타서 나폴레옹을 몰아내려던 수구세력들이 나폴레옹을 엘바섬으로 유배시켰다.    1815년 그는 엘바섬에서 단 1,200명의 군대를 꾸려서 다시 불란서 남부의 해안에 상륙하여 파리로 진격하게 된다.      그가 거치는 곳곳마다 국민들과 군의 힘을 합쳐가며 다시 권력의 정상에 오르게 된다.       불란서 남동부에서 파리로 진격하던 그 길을 지금도 나폴레옹 Route 라고 부른다.

 

 

 

 

 

암벽과 험악한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점심도 하고 쉬어간다.

 

 

 

몇 개 되지도 않는 식당을 기웃거리는데에도 멀리 암벽의 꼭대기에 지어놓은 교회가 망원렌즈에 잡힌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이는 길목이나 암벽 위의 웅장한 곳에는 큰도시, 작은도시, 작은 마을 어디든지 대부분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자리잡고 앉아있는 식당밖에는 동료여행객들이 지나다니고, Anne, Katilin, Danny. Iris 등이 쉬고있다.       아슬아슬한 길을 오전내내 달려왔으니 모두들 지쳐있다.         이 작은마을에 지금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거의가 다 우리팀들이다.

 

 

 

 

 

 

 

스파게티와 함께 나온 요란하게 치즈가 뿌려져있는 Salad.

 

 

 

조그만 동네에 이렇게 예쁘고 자그마한 시청건물 (Town Hall) 도 보이고.   

 

 

 

마을은 아주 작은 동네인데 그래도 물을 뿜고있는 중앙광장의 분수대.

 

 

 

 

 

몇 개 안되는 조그만 길들도 예쁘다.

 

 

 

 

 

 

 

또다시 버스에 오르고  험악한 나폴레옹의 Route 를 따라서 Lyon 으로 간다.       불란서는 국토의 80% 가 평야지대이고 고대로부터 지금까지도 농업국가이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가고 있는 이 지역이 Italy 와 Swiss 에 접한 불란서의 동쪽지방이다.      거의가  알프스 산맥의 자락으로 펼쳐진 지역이다. 

 

 

 

 

 

다른 관광일정이 없이 계속 힘든 길을 달려왔으니 중간중간에 산속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쉬어간다.       평시에는 가까이 하지않았던 콜라도 시원하게 한잔 들이키고...

 

 

 

 

 

 

 

 

 

 

 

 

 

우리가 쉬는 동안 가이드 Simeon 군은 다른 관광버스의 여성가이드와 지금 데이트 중이다.

 

 

 

가이드 Simeon 군은 26살의 젊은이 답지않게 많은 인원의 Group 를 리드하는 능력도 뛰어나고, 매우 원만한 성격의 청년이다.     특히 자유시간 전에 방문하는 지방의 고유음식을 설명하고 추천할 때에는 정말로 먹음직스럽고 재미있게 한다.     대부분의 가이드들이 직업상 친절하고 매사를 무난하게 처리하지만, Simeon 군은 여러 동료여행객들로부터 뛰어난 가이드라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       특출한 그의 역사 실력과 코믹한 말솜씨로 지루해지기 쉬운 옛 역사이야기를 가는 곳마다 적절히 알기쉽고 재미있게 들려준다.

 

 

 

 

 

 

 

오늘 벌써 3번째로 쉬어가는 곳이다.      산속의 조그마한 Rest Area 같은 곳인데 단체사진도 함께 찍는다.

 

 

 

 

 

오늘 계속해서 나폴레옹 Route 를 달리고 있다.      이제 오늘밤 Lyon 에서 하루를 지내고 Paris 에 도착해서 이틀을 더 지내면  Group Tour 는 끝나게된다. 

 

 

 

직업사진사가 우리를 전부 모아놓고 찍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자기의 Camera 를 큰 쟁반 위에 올려놓으면 가이드 Simeon 군과 운전사 Nono 군이 하나씩 집어서 찍는다     대략 30개 정도의 Camera 를 하나씩 찍어나간다.      호주에서 19명, 미국에서 18명, 카나다에서 3명, 영국에서 2명, 말레이지아에서 2명, 이렇게 모두 44명이 불란서를 Paris 에서 시작해서 시계의 반대 방향으로 여행중이다.    

 

 

 

운전사 Nono 군과 가이드 Simeon .      하루종일 험한 길을 잘 달려왔다고 박수도 받았다.

 

 

 

 

 

 

 

CNN 뉴스에서는 New York 의 호텔에서 여자종업원을 건드렸다가 기소되면서 망신을 당하고 있는 IMF 총재였던 Mr. Khan 이 오늘부로 기소중지 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불란서의 차기대통령 후보군에 올라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이렇게 추락하다니...

 

 

 

몇년 동안 여행중에 잘 쓰고  있는 효자이다.       시계, Alarm, 손전등, 온도계.     팔방미인이다.

 

 

 

지도를 한장씩 나누어주었으면 좋으련만....    답답해서 여행중에 Angers 라는 도시에서 책방에 들어가서 5.5유로나 주고 샀다.      여행할 때 이 놈이 없으면 어디로 어떻게 다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지도없이 다니는 여행은 앙꼬없는 찐빵이나 다름없다.      내일은 Paris 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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