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bizon 으로 가는길.        오늘아침에 Group Tour 의 마지막 숙소였던 Mercure Hotel 로 한근군이 와서 4년만에 다시 반가운 친구를 만난다.       한근군과는 고등학교, 대학 모두 동기동창이다.         한근군의 차로 Opera House 근처의 새로운 숙소에 짐을 던져놓고, 한근군의 권유에 따라서 밀레가 그림을 그리고 살았던 Barbizon 과 나폴레옹이 머물렀던 퐁탠블로 궁전을 보러간다.

 

 

 

 

 

파리의 남쪽으로 약 60Km 떨어진 Barbizon 은 마을 전체가 한장의 엽서처럼 아기자기하면서도 조용한 정적인 분위기가 여유와 평화가 그대로 간직된 작은 마을이다.       너무나도 조용한 작은 마을이라 밀레의 집을 찾는데 물어 볼 사람조차 길에 보이지 않는다.        이 가게에 들어가서 밀레의 집이 윗쪽으로 조금 더 가면 나온다는 대답을 얻었다.

 

 

 

마을의 길목에 세워놓은 밀레의 그림들.

 

 


  


 마을의 길목에 세워놓은 밀레의 그림들

 

 

피에르 루쏘 (Pierre Rousseau, 1812~1867) 와  장 프랑스와 밀레 (jean-Francois Millet, 1814~1875) 가 파리에서 이곳으로 왔다.      자연과 전원생활을 사랑했던 자연주의파 (Nationalism) 화가들이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이 마을에 모여서 살며 전원의 풍경을 주로 그렸기에 바비종파 (Barbizon School) 라고도 불리어졌다.

 

 

 

드디어 어렵지않게 찾아낸 밀레의 집.

 

 

 

1849년부터 그가 생을 마친 1875년까지 살았던 집이고 작업실이다.

 

 

 

집으로 들어가는 아주 조그마한 문.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그림들이 들어찬 작업실이다.         입장료 4유로.

 

 

 

 

 

저녁노을이 지는 들녘에서 가난한 농부 부부가 하루종일 일을 하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성당의 종소리를 듣는다.       농기구와 삽을 놓고 두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채 기도를 하고 있다.         캐어내다가 중단한 감자가 바닥에 아직 흩어져있고...     밀레가 그린 '만종' 이다.     '이삭줍는 여인들' 과 더불어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그림이다.        원본 그림들은 Orsay 미술관에 있다. 

 

 

 

밀레는 퐁탠블로 숲 근처의 샤이이 농장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의 대표작의 하나인 이삭 줍는 여인들의 그림에서 보는 것 처럼 추수하면서 땅에 흘린 이삭을 줍고있는 3여인의 모습과, 멀리에는 엷은구름이 낀 하늘 아래에 높이 쌓아올린 짚더미가 보이는 평화로운 농촌풍경이 펼쳐져있다.         한알의 알곡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농부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밀레는 9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림을 그릴 물감을 살 돈조차 여의치 않았던 가난한 화가였다.       밀레가 살다가 생애를 마쳤던 그의 거주지이자 화실은 지금도 예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소박한 그의 집안에는 그림들이 들어차있고 화구들이 놓여져있다.        작업실에는 습작과 스케치가 그대로 남아있다.

 

 

 

밀레는 프랑스의 노르만디 지방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도 농부여서 어려서부터 많이 보아온 농부들의 생활을 많이 그린 화가이다.

 

 

 

 

 

왼쪽은 밀레의 출생증명서, 오른쪽은 사망증명서이다.        불란서의 옛날 증명서들은 편지처럼 길게 쓰여져있다.

 

 

 

밀레가 살아 생전에 애용하던 성경책.        이렇게 출생증명서, 사망증명서, 성경책까지 보존하고 전시하는 것은 불란서 사람들의 특이한 보존, 보관하는 좋은 습성 때문이다.

 

 

 

밀레와 그의 부인의 사진.

 

 

 

정원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인데 이제는 너무 낡아서 2층의 살림방은 더 이상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밀레와 함께 Barbizon 으로 옮겨와 그림을 그렸던 화가 피에르 루쏘의 작업실은 지금은 Barbizon 파의 미술관이 되어있다.

 

 

 

 

 

 

 

머리숱도 그대로이고 흰머리 하나 보이지 않는 한근군은 절대로 늙지 않는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가 보다.

 

 

 

Barbizon 에서 Fontainebleau (퐁탠블로) 로 가는길.           주위의 경치가 매우 좋은  Barbizon 에서는 10Km 정도 되는 멀지 않은 거리의 드라이브 길이다.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약 60Km 정도 떨어져있고 베르사이유 궁전보다는 작지만 나폴레옹이 가장 좋아했다는 퐁탠블로 궁전.

 

 

 

 

 

프랑스 르네상스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프랑수와1세가 1528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루이16세에 이르기까지 7명의 왕들이 궁전건축을 계속하여 완성시켰다.        그후 나폴레옹이 궁전을 보수하였고 그는 1814년 이곳에서 그만 폐위를 당했다.

 

 

 

궁전에서 앞 광장으로 내려오는 계단은 아주 특이한 모양이다.        페리슈발이라 불리는 계단인데 말발굽 모양이다.      나폴레옹이 하야성명을 발표하려고 이 계단을 내려와 근위병들에게 고별사를 하고는 엘바섬으로 유배되었다.       그래서 계단 앞 광장의 이름이 백마광장이었으나 그후로 이별의 광장이라고도 불린다.      계단 우측에 나폴레옹 박물관이 있다.        나폴레옹은 이 궁전을 좋아해서 베르사이유나 다른 궁전들을 마다하고 이 퐁탠블로 궁전에서 주로 집무를 하였다.

 

 

 

 

 

 

 

 

 

 

 

12세기부터 퐁탠블로의 광대한 숲은 왕가의 사냥터였다.       숲 가운데에는 휴식을 위한 저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자리에 궁전과 정원이 세워지게 된다.        마차를 타고 몇백년 전의 퐁탠블로 숲을 상상해보면서 즐거워하는 관광객들. 

 

 

 

 

 

퐁탠블로 궁전의 정원은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만큼 넓지는 않지만 매우 아름답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을 설계했던 르노트르가 이곳의 정원을 조성했고 쉬농소 Castle 의 주인 메디시스가 만든 다이아나 정원, 영국정원, 연못 등이 있다.

 

 

 


 

 

 

프랑수와1세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 세를리오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한 거장들을 초빙하여 궁전 건축을 시작하였다.       지금은 Louvre 박물관에 있는 유명한 Mona Lisa 도 처음에는 퐁탠블로 궁전의 벽에 걸려있었다.

 

 

 

 

 

 

 

 

 

퐁탠블로 궁전에서는 프랑수와1세의 화랑, 앙리2세가 만든 무도회실 등이 유명하다는데 우리는 궁전 안에 들어가는 것을 그만 두기로 한다.         얼마 남지않은 시간에 궁전을 다 둘러보기도 어렵고....     그동안 너무나 많은 궁전과 Castle 을 보고 다녀서 조금은 지쳐있기도 하다.

 

 

 

 

 

 

 

내일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르세 미술관 (Musee Orsay) 을 하루종일 돌아볼 예정이다.        그리고 다음날은 로댕 미술관 (Musee Rodin) 과 Sorbonne 대학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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