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tanbul.       이스탄불은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 콘스탄티노플 이라고 불리었다가 1453년 오토만 제국 이후로 터키식 발음인 이스탄불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제 이스탄불을 둘로 가르고있는 해협을 오르내리는 Bosporus Cruise 가 터키에서의 마지막 투어가 된다.         여행중 우리 두 사람은 목에 항상 이것을 (Neck Pouch) 걸고 다녔다.         터키에 와서 기념품으로 파는 것을 $2 에 구입한 것인데, 우리 두사람에게는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주목적은 Sunglass Clip 을 보관하려고 구입한 것이었으나, 카메라의 Extra Battery, Extra Memory Chip 과 잔돈도 넣고다니며 편하게 사용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분기점인 Bosporus 해협은 길이가 32km 이며 폭이 넓은 곳은 3500m 좁은 곳은 700m 이다.       흑해에서 지중해를 거쳐서 대서양으로 가려는 러시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배들이 이 Bosporus 해협을 꼭 거쳐야 한다.        터키의 통제를 받는 터키의 영해이다.  

 

 

 

 

 

 

 

 

 

해상무역이 발달하면서 이스탄불을 무역 중심지로 만든 Bosporus 는 비잔틴시대에 최초로 여름궁전이 세워지면서 그 중요성을 더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해안선을 따라서 세워진 요새들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이 성은 Bosporus 해협 북쪽에 위치한 Rumeli 성이다.     걸림돌이 되어온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기 위하여 오스만 터기제국 초기인 1452년에 건축한 성이다.       이로써 Silk Road 의 마지막 관문인 Bosporus 통행권을 장악하여 흑해로부터의 위협도 차단하였고 비잔틴제국에 경제적 압박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전략적인 요새로 오스만 제국에게는 환희의 승리를...     비잔틴 제국에게는 비운의 종말을 안겨다주었다.       지금은 관광명소로 여름에는 음악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양측 해안에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전통적인 터키마을, 울창한 숲이 곳곳에 있으며 레스토랑, 찻집, 별장 등이 있다.

 

 

 

 

 

유럽쪽 (서) 해안은 주로 고대의 유적지, 관공서, 상업지역이 들어서있고, Asia 에 속하는 동쪽 해안은 주로 거주지이며 호화 별장등이 해안에 줄지어있다.

 

 

 

터키 육군사관학교.

 

 

 

오직 배를 이용하여서 건널 수 있었던 이 해협은 1973년 최초의 Bosporus 다리가 개통되면서 아시아와 유럽이 최초로 연결되었고, 2번째 다리가 1988년에 개통되었다.

 

 

 

 

 

 

 

배에서 내리니 오후 5시쯤 되었다.    부두에는 벌써 Date 족들이 길가에 주저앚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기가 정말로 회교국가가 맞는지....      자유롭고 분방한 젊은이들이 보기에 좋다.       완전히 개방된 회교국가 이다.

 

 

 

터키에서는 무스림 여성들이 쓰는 머리수건인 히잡 을 한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좀 더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Istanbul 에서는 노년층에서 약간 볼 수 있었고, Izmir 에서는 한사람도 볼 수 없었다.      가장 보수적인 Konya 에서는 어린 아이들까지도 히잡을 하고 있었으나, 터키의 어느 곳에서도 두눈만 내어놓고 전신을 가리는 검은 무스림 여성 옷인 아바야 는 전혀 볼 수 없었다.

 

 

 

 

 

 

 

 

 

Farewell 저녁식사가 우리가 묵고 있는 Grand Hotel Halic 옥상의 식당에서 열린다.      무사히 여행을 마치게 되어서 기쁜지 오늘은 음식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늘 저녁식사도 5코스인데 Salad 부터 엄청난 양이다.      Soup 에 이어서 나오는 Apitizer 를 먹고나니 벌써 모두들 더 이상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가득 채워져있는 포도주도 맛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모두들 마지막 아쉬운 시간에 인사 나누고...    왁자지껄....     웃음꽃이 만발한다.

 

 

 

 

 

 

 

 

 

 

 

 

 

아,  우리도 긴 여행을 무사히 즐겁게 마치었으니 한장 찰칵해야지.     터키에 널려있는 무수한 유적들, 다른곳에서 보기 힘든 자연환경의 신비로움, 친절한 사람들, 맛있고 독특한 터키의 음식들, 6월에 만발한 ,이 모든 것들에 흠뻑 매료되어 여행을 마치게 되었다.      다시 찾아보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터키가 아마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 될지도 모르겠다.

 

 

 

호주에서 온 Colin 과  Bye Bye, 아쉬운 작별을 하고.

 

 

 

Kansas City 에서 온 Kathy 와도 작별 인사를 나누고.     Kathy 는 내일 모래 토요일 6월20일 미국서 날아온 아들의 결혼식이 여기 이스탄불에서 열린다.     터키가 사돈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축하합니다.

 

 

 

Montreal 에서 온 모녀 Nedege 와 Teresa, Puerto Rico 의 막내도 모두들 Bye Bye.

 

 

 

여행을 하며 우리가 크게 감동받았던 L.A.에서 온 어머니 Gayle 과 학교 선생님인 아들 Craig.      유적지를 좋아하는 81세 노모의 여행을 Escort 하려고 함께온 아들 Craig 는 16세, 14세의 십대 아이들을 둔 가장으로 Wife 와 아이들의 동의를 구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다녔다.       81세이신 어머니가 정정하시기도 하지만, Craig 와 같은 효자 가  이 시대에 미국에도 있다.

 

 

 

 

 

우리들의 여행은 6월19일 (금) Turkish Airlines 으로 Istanbul 에서 독일의 Munich 로 날아가서, Air Canada 로 갈아타고 Toronto 로 날아간다.       집으로... 집으로...

 

 

아침에 일어나 내려다 본 Canakkale.        Canakkale 는 인구 6만 정도의 소도시 휴양지이지만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며 에게海 (Aegean Sea) 와 흑해 (Black Sea) 를 연결하는 Mardanelles 해협의 입구에 있어 교통의 요충지이다.

 

 

 

 

 

호텔에서 이제 터키에서의 마지막 관광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초록색의 T-Shirt 를 입고있는 운전사 Bakki 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여행객들.

 

 

 

 

 

그런데 이 지역은 군사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어서 1차세계대전 때에 큰 전투를 벌렸었다 (Canakkale Battle).      전쟁을 일으킨 독일편에 있었던 터키는 이곳 Canakkale 에 상륙하려는 연합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려 양측 모두 엄청난 사상자를 낸 전투지역이었다.

 

 

 

이 해협을 Ferry 로 건너서 전투지역이었던 Gallipoli 를 둘러보고 Istanbul 로 이동한다. 

 

 

 

 

 

Ferry 에도 장사꾼이 나타났다.       L.A. 에서 온 Craig 에게 털양말을 어거지로 밀어주고 있다.      돌려주면....     다시 밀어주고...

 

 

 

 

 

이곳에 상륙했던 연합군은 영국, 불란서, Australia 와 New Zealand 軍으로, 터키와 연합군 양측에 모두 엄청난 사상자를 낸 치열한 전투로 1915년 4월부터 12월까지 계속되었다.       사망자는 연합군 4만5천 명, 터키군 9만 명, 부상자는 연합군 10만, 터키군 16만 명 에 이르렀다.       인도와 Newfoundland (Canada 연방에 합류전) 도 작은 군대를 보내었는데 당시의 Newfoundland 군인들도 49 명 이 전사하고 93 명 이 부상을 당했다. 

 

 

 

전투지역이었던 Gallipoli 에 도착하자 호주에서 온 Nancy 가 아주 착잡한 심정인지 심각하고 슬픈 표정을 짓는다.

 

 

 

호주에서 온 Michael 도 자세히 묘소를 둘러보고 있다.        가족을 고향에 남겨두고 전쟁터에서 숨진 가장들, 젊은 나이로 일찍 생을 마감한 20대 초반의 병사들.      역사에 누누히 전해 내려오듯이 자유는 용감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아무 노력없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용감한 군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 어지러워졌겠는가.

 

 

 

 

 

 

 

 

 

 

 

Mini Van의 이동판매 진열대에 Gallipoli 1915 란 모자와 호주 국기 가 찍힌 T-Shirt 를 팔고있다.

 

 

 

 

 

그래서 전투가 벌어졌던 Canakkale 의 Gallipoli 언덕은 전투에서 사망한 14만 군인들을 추모하는 국립공원이 되었으며 거대한 석조 추모비가 세워져있다.    

 

 

 

 

 

상륙하는 연합군과 방어하는 터키군의 치열한 전투는 밤낮으로 이어졌다.        아침이 밝으면 양측이 모두 전사하고, 언덕에는 오직 소나무 한그루 만이 남아있었다 하여 지금도 이 국립공원의 추모비가 있는 이곳에는 소나무 한그루가 중앙에 심어져있다.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던 Canakkale 해안의 Gallipoli.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터키군의 추모비도 망원렌즈에 잡힌다.

 


 

 

그 당시에 구축해놓았던 진지와 참호들도 아직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식당의 계산대 옆에 놓여있는 폭탄고추 항아리.      계산을 한 후에 먹고싶은 만큼 집어가게 되어있다.

 

 

 

약간 짭잘하게 볶은 밥에 Meat Ball 과 호박나물인데 호박보다 고추가 더 많이 섞여있다.      그런데 나는 폭탄고추 2개를 또 집었다.

 

 

 

해안을 따라서 2시간 정도 더 달리면 이스탄불에 도착하게 되는데 해안가의 아름다운 풍경이 아주 평화로와 보인다.      해안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작은섬들도 보이는데 Greece 에 속한 섬이라고 한다.        1차세계대전에서 패한 후에 Greece 에게 내어준 섬들이다.

 

 

 

버스에서 흔들리면서도 이렇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확실하게 자는 방법도 있다.

 

 

 

 

 

우리가 터키의 투어를 처음 시작했던 이스탄불로 다시 들어가고 있다.        터키는 인구가 7천6백만이고 41%가 농촌에 살고있다.        면적은 한반도의 3.5 이며, 언어는 알타이어에 속하는 터키어를 사용하며 아랍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터키는 3% 의 국토가 유럽에 속해 있고 97% 는 아시아쪽에 속해 있다.

 

 

 

터키는 1923년 이후 모든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도 98% 가 이스람을 믿으며 이스람의 영향력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강력하다.       관광업이 주산업을 이루며 한해 관광수입이 약 200억불에 이른다. 

 

 

 

 

 

터키는 여러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서쪽인 유럽쪽으로는 Greece, Bulgaria, 아시아 쪽으로는 Georgia, Armenia, Iran, Iraq, Syria .       그래서 오랜 옛날이나 지금이나 항상 강력한 군대를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Pergamum 에 있는 이 병원은 아플론의 아들로 건강과 藥 의 神 이었던 Asklepions 에서 이름을 따온 의료센터이다.     환자들이 수속을 마치고 제일 먼저 행하는 것은 정원 한가운데서 흘러나오는 샘물로서의 목욕이다.     지금도 흐르고 있는 물의 성분을 조사한 결과 치료에 도움이 되는 방사능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음이 판명되었다.      그리고 진흑 목욕을 병행하기도 했다.

 

 

 

목욕이 끝나면 지하터널을 통해 치료실로 들어간다.      80m 길이의 지하터널은 매우 조용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게다가 작은 구멍을 통해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속삭인다.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환자들이 도착하는 곳은 둥근건물로 되어있는 치료실이다.        치료실은 2층으로 되어있다.   

 

 

 

환자들은 잠자기 전에 반드시 신에게 기도드릴 것을 의사로부터 권유받고, 잠이 깬 후 의사들은 환자들의 꿈을 치료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유도하여 주기도 했다.     치료실의 남쪽 문으로 있는 테라스는 환자들의 일광욕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어,  치료실에 견공이 들어와 치료를 받고 곤히 주무시고 계시다.        여기는 시원한 곳이니까.

 

 

 

거북이도 여기서 자라고 있나 보다.        최연소 Puerto Rico 아가씨에게 잡혔다. 

 

 

 

이곳이 시원하니 떠나기가 아쉽다.     호주에서 온 노년의 Colin 과 Nancy 커플은 더욱 힘을 아껴야한다.      터키 투어가 끝나면 그리스 투어를 10일간  더 다니게 일정이 잡혀있단다.

 

 

 

 

 

사진도 그늘을 찾아서 찍고.

 

 

 

또 그늘을 찾아서 찍고.

 

 

 

기후가 좋으니 무너진 돌담 위에서도 무엇이든지 보기 좋게 잘 자란다.

 

 

 

 

 

터키에는 대리석이나 화강암은 없으니 이런 화강암은 대부분 그리스에서 들여와 조각한 것이다.       둘러본 병원이 그 당시에는 상당히 큰 규모였으리라 생각된다.

 

 

 

병원 입구에 원형극장이 있었는데 여기에 또......     이것은 무슨 원형극장인가 ?     아이구.....

 

 

 

 

 

오늘 점심은 그래도 고추가 조금 덜 섞여있다.     한국음식 우거지 비슷한 것과  Meat Ball 2개, 가지, 토마토.      터키는 쌀밥도 올리브 오일로 볶아서 내놓고, 거의 모든 채소는 올리브 오일로 조리되어 나온다.       Efes 맥주만 있는줄 알았더니 Tuborg 수입 맥주도 있구나.

 

 

 

이 집의 Beef 피데 는 다른 집과는 또 다르게 약간 모양을 내었다.    정통 터키의 식당들은 음식의 맛 뿐만 아니라 각자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예쁘게 장식된 음식들을 내어놓는다.

 

 

 

시원한 식당 안으로 몰래 들어와 주무시는 견공.       곧 쫒겨날 때 쫒겨나더라도 4다리 죽 뻗고......

 

 

 

터키에 왔으니 히잡도 한번 해봐야지.

 

 

 

 

 

이제는 Troy 로 간다.

 

 

 

드디어 트로이에 왔다.

 

 

 

 

 

전설처럼 내려오던 Troy 목마 의 이야기는 독일의 백만장자이자 고고학자였던 슐리만에 의해 1870년에 발굴에 들어가 1871년 9개층에 이르는 트로이 유적을 발견하게 된다.        3년간에 걸친 발굴로 슐리만은 엄청난 양의 유물을 발견한다.        그때에 보물상자도 발견하게 되는데 이 상자는 트로이보다 1,000년 전의 유물이다.        상자에는 1만6천여개의 금붙이로 만든 왕관까지 있었다.        이 유물들은 슐리만이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독일로 가져와 그의 사후에 박물관에 기증을 하였으나 2차대전 때 독일로 진주한 소련이 탈취하여 지금은 러시아에 있다.

 

 

 

멀리 벌판이 보인다.       당시의 격전지였던 이곳은 지금은 육지이지만  옛날 트로이 전쟁시에는 바로 앞이 바다였다고 한다.        퇴적에 의하여 바다가 뒤로 밀려난 것이다.

 

 

 

 

 

트로이 전쟁은 빼앗긴 미모의 왕비 Helen 을 되찾기 위하여 그리스의 연합군이 트로이를 공격하여 10년간 의 긴 전쟁을 벌렸으나, 트로이 城은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쉽게 공략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견고하고 튼튼한 성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Greece 는 선물이나 되는듯 큰 목마를 城門 앞에 만들어두고 마치 후퇴하는 것처럼 트로이를 떠난다.           목마를 두고 떠난 이유를 알기위해 점술사를 불러서 물어본 결과,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놓으면 적군인 Greece 에 재앙이 임하고, 성 밖에 방치해두면 트로이에 재앙이 올 것이라는 해석 이었다.      그래서 트로이 사람들은 Greece 군대가 배로 철수한 후에 견고한 요새의 문을 열고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놓는다.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놓고 승전의 축제를 벌이고 곤히 잠든 트로이 주민들에게 목마 속에 잠입해 있던 Greece 軍 들이 나와서 성문을 모두 열어 놓는다.   그리고 후퇴하던 것처럼 하던 Greece 군사들이 모두 돌아와 공격을 함으로 결국 트로이는 점령당하고 만다.      사진의 이 길이 트로이 목마가 성 안으로 들어갔던 길이다.

 

 

 

 

 

기념으로 만들어놓은 트로이 목마 조형물.

 

 

 

요즈음의 Computer 시대에도 마치 무슨 선물이라도 되는듯이 보이는 Mail 을 열어보면 Computer 바이러에 감염되는 일들이 종종 있다.     그래서 그런 종류의 바이러스를 이 전설에 빗대어 트로이 목마 바이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우리가 여행을 하고 있는 6월의 터키는 그야말로 온갖 꽃들이 만발하여 있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꽃도 많이 있지만 처음 보는 예쁜꽃들이 너무나 예쁘다.

 

 

 

 

 

 

 

오늘의 일정을 모두 끝내고 이제는 우리가 하루를 쉬어 갈 휴양지인 Canakkale 로 간다.        내일은 터키에서의 마지막 관광 일정이 된다.       그리고 다음날은 집으로.....

 

 

 

 

 

오늘 저녁도 드물게 Buffet 가 아니고 State Dinner 이다.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인가 기다리는 것도 좋다.     힘들게 왔다 갔다 하는 것 보다 무엇을 주던 그냥 받아 먹는 것이 더 편하다.        아 ~  그래도 Main Dish 는 Beef, Chicken, Fish 중에서 고를 수가 있구나.

 

 


 내일은 드디어 마지막 관광을 하는 날이다.

 

오랫만에 된장국으로 아침을 한다. 

 

 

 

Izmir 를 떠나고 있다.        Pergamum 으로 향해서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오늘은 아침에 Pergamum 을 관광하고 오후에는 Troy 를 보게 된다.   가는 도중에 터키석 (Turquoise) 을 판매하는 보석상으로 데리고 간다.     관광도 하고 터키 경제에 일조 (?) 도 하도록 일정이 잡혀있다.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고르셨는지 ?

 

 

 

 

 

Pergamum 은 높은 곳이라는 뜻에 맞게 Aegean Sea (에게海) 에서 24km 내륙으로 들어온 곳에 해발 300m 이상의 고원에 위치한 도시이다.

 

 

 

 

 

 

  

 

 

아크로폴리스 (Acropolis).    아크로폴리스라는 뜻은 고대 도시국가 체재에서 도시를 가리키는 폴리스 에 높은 이란 뜻의 아크로 가 붙여져 만들어진 단어이다.    그래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형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고대의 도시국가 체재에서는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가장 높은 언덕에 성채를 두르고 그 안에 신전과 공공기관 등을 두었다. 

 

 

 

현재의 Pergamum 市는 과거와는 달리 언덕 위가 아닌 언덕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아스크레피온 병원까지는 2km, 아크로폴리스까지는 6km 정도 떨어져 있다.

 

 

 

Pergamum 은 에우메스2세의 시대였던 BC 197년부터 약 40년간 최대의 전성기를 맞는다.      이 시기에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 세워지는데 무려 20만 권의 도서가 소장되었다.       소아시아에서 Hellenism 문화의 중심이 된 Pergamum 은 알렉산드리아의 문화와 조각술, 건축양식 등을 받아들여 훌륭한 공공건물들과 유명한 학교를 지었다.      그리고 거대한 제단이 있는 제우스 신전을 주축으로 디오니소스, 아스클레피오스, 아테네 등 4대 신전을 만들었다.

 

 

 

제우스신전 이 있던 자리.       지금은 소나무 몇그루만이 자라고 있다.

 

 

 

언덕 아래로 보이는 Pergamum 시를 가르키며 열심히 설명하는 가이드 Oktay 군.

 

 

 

언덕에서 다른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호수.

 

 

 

이 도시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시기는 알렉산더 大王 의 아시아 원정 때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 이후에 그의 대장중 한명이었던 리시마쿠스가 Pergamum 이 천연의 요새임을 알고 山 의 정상에 성채를 세우고 아크로폴리스를 차례로 만들어간다.      그후에 Pergamum 은 독립국가가 된다.

 

 

 

Pergamum 은 지난 100년동안 발굴작업이 진행되어 오고 있으며 지금도 발굴할 것이 더 많이 남아있는 대규모의 유적지이다.      발굴 초기에 많은 유물들을 독일에서 가져가 현재 제우스의 거대한 제단을 포함한 많은 유물들이 독일의 Pergamum 박물관에 있다.

 

 

 

목이 달아나 없으니 내가 대신 올라가 본다.

 

 

 

만세, 만세, 아크로폴리스 만세.       날씨는 덥지만 신전 아래의 큰 기둥들 사이에서 만세가 시원시원해 보인다.

 

 

 

 

 

 

 

 

 

음, 음, 오늘도 39도....     그래도 습기가 없어서 땀이 나지 않으니 옷이 전혀 적셔지지 않는다. 

 

 

 

버가모교회 혹은 붉은교회 (Red Hall Basilica).      Pergamum 시내의 번잡한 상가와 거주지로 둘러싸여 있는 이 교회는 원래 Serapis 신전 건물이었는데 붉은 벽돌로 지어져서 붉은 궁전 (Red Hall) 이라고도 한다.     나중에 기독교가 공인된 후 요한 계시록의 버가모 교회에 바쳐지기 위해 바닥을 높여 교회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붉은 교회 (Red Hall Basilica) 라고 불리운다.     초대교회의 신앙의 순결은 시간이 흐르며 점점 세속화 되어갔다.      이에 초대7교회 중의 하나였던 버가모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속화에 대한 경고를 듣게되고, 많은 유혹과 핍박에 일부 영향을 받으나 종교적 정절을 지켜 지금까지 이를 거울로 삼고 경고로 삼을 교회로 알려지고 있다.      요한 계시록 2장 12~17절에 버가모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건물의 상층부가 붕괴되어 있지만 남아있는 높은 벽만이 교회의 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이 교회를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하였다.

 

 

 

불쌍한 Donky.        덩치가 제주도 쪼랑말의 반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Donky 가 얼굴만 겨우 내어놓고 짐을 가득히 싣고 끌려간다.

 

 

 

긴 기둥들이 늘어선 길을 걸으면 아스크레피온 병원이 나온다.       BC400년경에 세워진 에스크레피온 병원 (Askelpion) 은 세계 최초로 정신치료를 실시 할 정도로 소아시아에 있어 최고의 의학 중심지였다.       약 400여년간 계속 번성하였던 병원은 그후에 대지진으로 파괴되었으나 아직도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그늘로 들어가고.

 

 

 

그늘로 모아서 가이드는 열심히 설명하고....     그런데 40명 그룹이 다 어디에 있는가 ?

 

 

 

흥미롭고 신기한 유적들을 벌써 2주간 계속 보고 다니니 이제는 그것이 다 그것으로 보인다.     터키에는 정말로 유적이 끝이 없다.     그늘에 앉아 쉬는 것이 지금은 최고의 낙이다.

 

 

 

그늘을 떠나기 싫은지 가이드 Oktay 군의 설명도 자꾸 길어지고 있는 것 같다. 

 

 

 

구룹중 최연소인 Puerto Rico 의 대가족 막내딸은 나무에 기대어 거의 드러눕고 있다.

 

 

 

왠 원형극장이 이렇게 많은지 곳곳에 나타난다.        온 사방에 원형극장이다.       옛날 그 사람들은 지독히도 풍류를 좋아했나 보다.

 

 

에페소는 거대한 항구가 있는 아시아 무역항로의 종착지였으나 이 같은 번영도 서기 17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한순간에 무너져서 폐허로 변하였다.

 

 

 

니케의 여신상.        여신상 치마의 앞주름의 사용권을 나이키 회사에서 $50 에 사가더니 지금은 세계적인 회사가 되었다.

 

 

 

Gate of Hercules.       말이나 동물들은 이 문 안으로는 더 이상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Hadrianus 神殿.     서기138년에 지어진 하두리아누스 신전은 에페스 시민들에 의해 지어져 로마의 황제였던 하드리아누스에게 바쳐졌다.      신전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돌담 위에 신과 여신들의 조각이 가득하며, 4명의 로마황제의 像이 들어차있다.        들어가는 입구의 Arch 위에는 첫번째 문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여신 테티, 두번째 문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 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Celsus Library (셀수스 도서관) 은 에페소 유적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 중의 하나로 화려한 전면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 도서관은 서기 135년에 이곳의 통치자였던 Celsus Polemaeanus 를 기념하기 위하여 지어졌다.      이 도서관에는 3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의 상단은 지혜, 문명, 지식 을 상징하는 정결한 여성상들로 장식되어 있다.        셀수스의 무덤은 중앙 적소 아래의 지하에 있다.

 

 

 

 

 

 

 

오늘도 39도....   계속해서 그늘도 없는 곳을 설명을 들으며 쫓아다니는 것 상당히 힘들다.        이곳 도서관 기둥의 그늘에서 한숨을 돌리며 더운 옷을 벗어던진다.

 

 

 

 

 

 

 

에페소는 사도 바울이 서기 53년부터 이곳에서 2년간 전도활동을 하며 강론을 펼쳤다는 사실로도 유명하다.      사도 바울의 방문 이후 이곳에는 교회가 부흥하였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투옥되어서 에페소 교회에 보낸 편지들이 성경에 나오는 에베소書 이다.

 

 

 

이태리의 소나무처럼 여기의 소나무도 둥글게 자란다.

 

 

 

그늘을 찾아서 설명을 듣고 있는 여행객들.      평균기온보다 10~12 도나 높은 날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계속된다.

 

 

 

 

 

원형 대극장에서 바다쪽으로 대로가 뻗어있는 이 길은 고대의 에페소 항구까지 뻗어있는 아칸디우스 도로이다.       헬레니즘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이 길은 길이 530m, 폭이 11m 인데 이 길을 따라서 값비싼 물건을 파는 상점들과 화랑들이 위치해 있었다.      고대에 에페소는 원래가 항구도시였으나 현재는 바다와 상당히 떨어져있다.       오랜동안에 걸쳐서 쓸려내려온 토사로 인해 해안이 밀려났기 때문이다.

 

 

 

 

 

 

 

Church of Mary (성모 마리아 교회).       서기 431년에 세워진 교회로서 성모 마리아를 기념하는 첫번째 교회였다.     6세기에 Dome 형의 Chapel 이 추가되었다.       뒷쪽으로 길게 터를 잡고있는 이 교회는 남아있는 기둥이나 벽등의 흔적을 둘러보아도 당시에도 상당한 규모의 교회였던 것 같다.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성모 마리아의 교회를 다녀갔다.

 

 

 

성모 마리아의 교회에 일부 남아있는 돌벽 사이로 보라색의 예쁜 꽃이 만발해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         에페스에서 1.2Km 떨어진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세계7대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이 신전은 BC 6세기 중엽에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 때에 지어지기 시작해서 120년만에 완성되었다.          에페소의 풍부한 재정능력에 의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 이상의 규모로 장대하고 화려하게 이오니아식으로 건축되었는데 BC 356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신전은 바로 재건에 들어갔고 에페소인들은 복구에 최선을 다해 기둥이 10m 인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8m 나 더높은 18m 의 초고급 대리석을 사용한 기둥을 127개나 세웠다.        바닥면의 넓이는 가로 130m, 세로 70m 였다.       또한 사방으로 계단도 만들었다.           이러한 아르테미스의 신전의 영화도 서기 3세기경 東 고트인들의 침입으로 신전은 모두 불태워지고 파괴되었다.      파괴된 신전에서 대리석을 옮겨다 에페스에 사도요한의 교회를 짓고, 이스탄불에는 소피아 성당을 짓느라 대리석을 가져다 썼다.        그리고 대리석을 가져가기 위해서 몰려든 사람들에 의해 신전은 완전히 폐허로 변하였다.         이렇게 1,600년간 폐허로 남아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은 1863년 영국의 고고학자 J.T. 와트에 의해서 발굴되고 철저한 고증에 의해서 복원해 나갔으나 현재는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지에는 외로운 기둥 하나만이 서있을 뿐이다.

 

 

 

 


망원렌즈로 잡힌 사진에는 (2009.06.17) 에는 기둥 위에 2마리의 새가 둥지를 틀고있다.      성경의 사도행전 19장 에도 아르테미스 신전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도요한의 교회.        서기 37년에서 42년까지 박해를 피하여 예루살렘에서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온 사도요한이 살았던 곳이자, 사도요한이 복음서를 기술하고 생을 마감한 무덤이 있는 곳이다.         그 무덤 위에 4세기경 처음으로 나무로 된 교회가 지어졌으나 비잔틴제국의 유스티아누스 황제시대에 (565~577년) 재건되어 오늘날의 형태로 남겨지게 되었다.        그후 에페소가 아랍인들의 지배하에 있었던 7~8세기에 교회는 20개의 타워와 3개의 문으로 이루어진 성벽으로 둘러싸이게 된다.       현재 여행객들이 출입하는 이 문이 주 성문인데 나머지 2개의 문은 동쪽과 서쪽에 있다.       사도요한의 무덤은 중앙 돔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지금도 발굴과 복원이 계속되고 있다.

  

 

 

 

 

 

 

 

  

사도요한의 교회는 약간 언덕진 곳에 있는데 그 언덕의 바로 아래는 이와같이 근대식 도로와 상가를 이루고있다.

  

 


이제는 Izmir 로 가서 온전히 광관으로 지친 긴 하루를 마무리 한다.

 

 


에페소의 관광을 끝내고 터키의 3번째 대도시이며 2번째 항구도시인 Izmir 에서 묵고 간다.      Izmir 는 에게해의 진주, 아시아의 사랑, 아시아의 꽃, 아시아의 면류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이다.          과거에는 로마황제를 찬양하기 위해 최초로 황제신전을 세우기도 했던 로마에 대한 충성심이 높았던 도시였다.

  

 


Izmir 는 터키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로서 여자들이 스카프르르 두른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해변을 따라서 잘 정돈된 도로와 고원들이 늘어서있어 완전히 유럽의 한 항구도시를 보는 듯하다.

  

 

 

 


저녁을 마치고 해변을 산책중에 함께 여행하고 있는 Florida 에서 온 Joseph 과 Ligia 를 만났다.       카메라를 지참하지 않은 Joseph 가 석양의 해변을 배경으로 나에게 사진을 부탁한다.          그리고 취하는 포즈가....     아 ~   얼마나 멋있고 Romantic 한 광경인가.       밀레의 그림 만종이 생각난다.

 

 

 

 


해변가에 끝없이 늘어선 정취있는 레스토랑에 데이트 나온 젊은이들, 가족들로 만원이다.       정말로 터키의 다른 도시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선거때 투표를 하면 이곳에서는 회교주의를 강력하게 내세우는 정당은 1%의 지지밖에는 얻지못한다.      이 레스토랑에서 칼라마리 (오징어튀김) 를 주문하니까 색다른 터키식의 튀김을 내어왔다.        가지를 얇게 썰어서 꼬챙이에 꽂아서 타워처럼 멋있는 장식도 곁들였는데 맛도 일품이다.

 

 

 

내일 13일째의 관광은 Pergamum 과 Troy.

   


오늘은 6월15일 여행 12일째 날이다.        성경에 나오는 에배소서의 Ephesus 로 가는 날이다.


 

 

 

버스가 잠시 농촌의 작은길로 들어서자 목동이 엄청난 수의 양떼들을 혼자서 몰고가는 광경도 본다.

 

 

 

 

 

 

 

 

 

유명하다는 터키의 씰크 가죽 (Silk Leather) 의 판매장에서 Fashion Show 를 벌이더니, 함께온 여행객까지 끌고들어가 옷을 입혀 내보내서 폭소를 터뜨리고....... 

 

 

 

가죽을 종이장처럼 아주 얇게 처리하여서 매우 가볍기도 하지만  어거지로 마구 구겨놓아도 다시 원형대로 구김없이 펴지는 것이 신기하다.

 

 

 

 

 

Silk Leather 로 만든 아주 가벼운 핸드백도 있고.

 

 

 

자 ~   이제는 크레소스 山을 구불구불 돌아서 성모 마리아의 집으로 간다.     山을 오르는 중턱에 세워진 성모 마리아 像.     성모 마리아의 집은 에페스의 중심에서 8km 떨어진 곳에 있다.

 

 

 

 

 

 

 

사도 요한 (John) 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Mary  (마리아) 는 예루살렘에서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서 사도 요한이 마리아를 모시고 바울로 인해 복음이 왕성히 전해지고 있다는 에페소 로 오게 되었다.      에페소에 도착한 요한과 마리아를 위하여 에페소 성도들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인 불불산 남쪽 기슭에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에페소에서 크레소스 山을 구불구불 오르는 길을 타고오르면 나오는ㄱ자 형의 토담집이다.       성모 마리아는 이곳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

 

 

 

여러나라의 언어로 설명문이 준비되어 있다.

 

 

 

성모 마리아의 집 바로 앞의 옥외에 마련된 제단에서 이곳을 방문한 천주교 신자들이 미사를 드리고 있다. 

 

 

 

오래도록 베일속에 가려져서 성모 마리아의 임종 장소는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했었다.     독일의 돌멘이라는 시골의 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Catherine Emmerich (에메리히) 가 1878년 환상을 보게되는데, 그 환상에 예수 그리스도 승천 후의 사도요한과  성모 마리아의 에페소에서의 생애가 생생하게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에메리히 수녀는 12년이나 병상에서 보낸 사람이었으며 에페소에는 가본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 환상이 너무나 사실적이고 구체적이어서 당시의 시인 브렌타노는 에메리히 수녀의 환상에 기초해서 ’Anna Catherine Emmerich 의 환상에 의한 성모 마리아의 생애‘ 라는 책자를 펴내게된다.    1880년 이 책이 터키 Izmir 도시에 있었던 수도회의 신부 줄리앙 구예에게 전해졌고, 그는 책에 근거해서 성모 마리아의 집을 찾아내게 된다.       교황 요한23세가 1961년 이를 정식으로 승인하고, 1967년 교황 바오로6세와 1979년 요한 바오로2세가 이곳을 방문함으로써 성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되었다. 

 

 

 

성모 마리아의 집.       수녀 한분이 지키고 계신다.

 

 

 

 

 

 

 

성모 마리아의 집 안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한다.       그래서 집안의 모양를 보여주는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헌금을 하니 초를 2개까지 가지고 갈 수 있다고 적혀있어 초를 가지고 나온다.

 

 

 

 

 

이곳은 기독교인들 뿐아니라 이스람교도들의 순례지로도 유명하다.        소원과 기도를 적은 종이가 빼곡히 묶여있다.     

 

 

 

줄지어 늘어선 대열에 끼었다가 성수도 한 잔 마셔본다.

 

 

 

성모 마리아의 집을 보고 이곳의 식당에서 점심으로 주문한 햄버거의 고기가 Silk Leather 처럼 종이장같이 매우 얇다.

 

 

 

에페소는 BC 1,500~1,000년 사이에 처음 세워졌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3,000~3,500년전이다.        전설에 의하면 아테네의 왕자의 지휘하에 그리스의 이주민들이 아나틀리아에 처음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때 현인들에게 그들의 새 도시가 어디에 세워질 것인가 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들이 예언하기를 야생 멧돼지 한마리와 물고기 한마리가 그들을 새 도시로 이끌 것이라고 했다.        어느날  야외에서 생선을 굽다가 그 중 한마리가 Pan 에서 미끄러져 숲속으로 떨어졌고 이와 함께 튄 불똥이 숲에 번지자 사나운 멧돼지 한마리가 불을 피해서 뛰쳐나왔다.         예언자들의 말을 기억한 왕자 Androklos 는 바로 그 자리, 즉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곳에 새 도시를 세웠다. 

 

 

 

 

 

 

 

에페소는 그후 라디아 왕국의 지배도 받았고, 페르시아에 정복되었고, 다시 알렉산더 大王 의 손으로 넘어갔다.     알렉산더 大王은 아르테미스 신전의 아름다움에 빠져 이곳을 정복했고 에페소는 이때부터 더 융성해지기 시작했다.      그후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이곳을 높이 10m, 총 길이 9km 의 성벽으로 요새화 시켰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원형극장, 경기장, 체육관 등의 유적은 이 당시에 지어진 것이다.

 

 

 

 

 

당시의 유료 화장실.       Florida 에서 온 Marlon 君이 시범을 보이고 있다. 

 

 

 

 

 

 

 

Marble Street.        대리석으로 Ephesus 의 도서관까지 깔려있는 Marble Street.

 

 

 

 

 

 

 

 

 

 

어디를 걸어도 널려있는 유적의 흔적들.

 

 

 

차를 타고 돌아서 노천온천의 하단부에 오니 조그마한 멋있는 호수가 있다.       그 옆으로는 온천수가 흐르는 수로를 만들어놓았다.

 

 

 

 

 

우리가 묵을 Lycus River 호텔에 왔으니 저녁식사 시간 때까지는 Thermal Pool 에서 온천을 해야지.

 

 

 

정원의 온천으로 나오니 벌써 부지런하신 여성 동료여행객들이 벌써 얼굴에 흑토팩을 하고 즐거워하고 있다.   미용에 좋다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더구나 무료인데...

 

 

 

 

 

 

 

 

 

LA에서 온 Craig 도 바르고, 나도 바르고.

 

 

 

 

 

너도 바르고 나도 바르고 모두들 바른다.      그리고 이 온천물에 그대로 씻으라고 한다.

 

 

 

젊은이 늙은이 모두들 즐겁다.        온천수의 온도는 보통 섭씨 42~56 도 정도이며 이곳 파묵칼레의 온천은 초당 400 리터의 물을 쏟아내고 있다.

 

 

 

 

 

 

 

호텔의 온천수는 여기에서 아래로 조금씩 흘러내린다.

 

 

 

 

 

온천을 하다가 바로 수영장으로 들어간다.       역시 온천은 나이 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젊은이들이야 뛰어놀고 수영할 수 있는 수영장이 좋겠지.

 

 

 

 

 

 

 

 

 

 

 

저녁 테이블에 앉으니 작은 산들이 호텔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이 평화로와 보인다.

 

 

 

오늘 저녁에는 바베큐틀에서 구워지는 생선이 모든 사람들에게 인기가 대단하다.       나도 한마리를 들고왔다.       터키에서 흔히 마시는 Efes 맥주도 마신다.

 

 

 

 

 

생선구이 맛이 상당하다.     같은 테이블의 호주에서 온 Colin 은 벌써 3마리나 해치웠단다.      나도 밥을 더 가져오고 한 마리 더 들고온다.   길게 잘라진 생파도 있고 Hot Sauce 도 있는 것이 터키사람들 식성이 한국사람 기호와 조금 비슷한 것이 있는가 싶다.      그런데 이거 휴가와서 마구 먹어대니 야단이다.

 

 

 

 

 

L.A 에서 팔순의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온 효자 아들 Craig.

 

 

 

날은 저물어가고 있고.....      전자 올갠으로 생음악을 연주하고 있으니 흥은 더 돋아오르고....

 

 

 

어디서든지 음악이 나오면 흔들어야하는 섬나라 Puerto Rico 친구들이 음악에 맞추어서 노래를 불러대더니 드디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호주에서 온 우리 여행객들 중에서 제일 연장자인 GeorgeMavis 도 춤을 춘다.         황혼에 두 사람은 Dance Club 에서 만나서 교제하다가  4년 전에 결혼한 신혼의 커플이다.        항상 함께 손잡고 다니는 원앙이다.       여행이 끝나고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터키여행을 끝내고 그리스를 잠시 여행중이던 George 가 아테네에서 그만 소매치기를 당하는 불상사를 당했으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했다고.        하필이면 이렇게 착한 노인네를 털다니......

 

 

 

드디어 우리 구룹 모두가 호텔의 클럽으로 옮겨왔다.        이 흘륭한 한밤의 격렬한 운동으로 며칠만에 처음으로 꿀잠을 잘 수 있었다.

 

 

 

 

 

 

 

내일은 Ephesus (에베소) 로 가서 관광을 하고 Izmir 에서 하루를 묵게 된다.       Ephesus 는 성경에 나오는 에베소書의 에베소이다.

 

 

 

 

오늘은 파묵갈레로 가는 날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화창한 날이다.        아침을 먹으려 내려오니 건너편 해안의 경치가 너무 멋있어 보인다.

 

 

 

 

 

오늘은 특별히 뜨거운 물에 즉석 된장국을 풀어서 마셔본다.        별미로 아주 맛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별 맛을 모르겠다.        입맛이 많이 바뀌어 터키의 입맛인 고추맛 으로 변했나 ?

 

 

 

 

 

오랫만에 된장국을 조금씩 드시더니 기분들이 좋으신가 보다.

 

 

 

안탈랴를 떠나니 다시 돌이 섞인 지형으로 바뀐다.       아~   터키에는 돌과 석회가 섞인 지형이 많다.

 

 

 

 

 

점심으로 밥과 Meat Ball 을 골랐는데 고추가 절반이다.        터키에 있는 동안 정말로 고추를 많이 먹는다.

 

 

 

드디어 Hierapolis 에 왔다.   

 

 

 

파묵칼레 는 석회층으로 인해 만들어진 경이로운 노천온천과 고대도시 Hierapolis 의 많은 유적들이 한곳에 몰려있다.

 

 

 

 

 

Hierapolis 는 BC 190년에 Pergamum 의 왕조였던 유메네스2세에 의해서 처음으로 세워졌는데 약 60년 후에 이곳을 정복한 로마인들은 이 도시를 성스러운 도시 (Hierapolis) 라고 불렀다.

 

 

 

 

 

 

 

이곳에는 고대의 유적 뿐아니라 중세의 Castle, 빌립사도 순교교회, 원형극장, 노천온천 등 유적지가 널려있어 안내판도 요란하다.

 

 

 

 

 

Hierapolis 에 있는 이 원형극장은 서기 2세기경 로마황제 Hadrianus 때에 지어진 것으로 1만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다.        그후 약 100년 후에 개축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으며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빌립사도의 순교교회 (Martyrium of St. Phillip) 는 Hierapolis 원형극장 뒷편 언덕의 경사의 오른쪽에 있다.      원형이 약간 보존되어 있는 상태이다.    빌립사도는 그의 아들과 함께 이곳에 집을 짓고 히에라블리 교회를 세웠다.     빌립사도는 포교활동중 로마의 황제에게 핍박을 받아 돌에 맞기도 하였고 결국은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빌립은 4명의 딸과 함께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그를 기념하는 교회를 세운 것이 빌립사도의 순교교회 이다.      이곳 파묵칼레에서 약 6.5km 떨어진 곳에 있는 초대 일곱교회중의 하나였던 라오디게아 교는 몇차례의 지진으로 교회터로 추정되는 유적 하나와 조그만 야외극장만이 남아있다.

 

 

 

 

 

 

 

클레오파트라가 이곳에서 온천을 즐겼다하여 일명 클레오파트라 온천 으로도 불리는, 잘 꾸며진 노천온천 (Antique Pool) 인데 유료이다.

 

 

 

 

 

아름답게 꾸며진 노천온천은 때마침 활짝핀 꽃들로 그림같이 아름다운 분위기이다.     가이드가 오늘 우리가 묵을 호텔의 정원에도 Thermal Pool (노천온천) 이 있으니 이곳에서는 온천을 생략한다고 하는데 좀 아쉽다.

 

 

 

 

 

우리 투어그룹의 노년층들은 노천온천의 뜰에 앉아서 바로 뒷동산처럼 보이는 원형극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돌리며 쉬고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유적, 유적들이 보인다.       터키 전국에 유적이 깔려있는 것이다.         터키에는 3만곳의 유적지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지금 현재 2,400군데가 발견되어 발굴 중이다.        그 가운데 약140군데의 유적만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고  한다.        터키를 열려있는 박물관이라고 하던가 !!!

 

 

 

 

 

 

 

 

 

카페에서 시원한 콜라로 한숨을 돌리고 본격적으로 자연 그대로의 노천온천을 보러 나가야지.

 

 

 

 

 

파묵칼레의 노천온천은 수천년 동안 깊은 지하수에서 온천수들이 쏟아져나와 거대한 원형의 욕탕을 형성하였다. 

 

 

 

대지 상부에서 흘러내려온 석회성분이 섞인 물이 오랜시간에 걸쳐서 결정체를 만들고 점차적으로 쌓여서 광활하고 신비한 경관을 만들어낸 것이다.    굳어진 광할한 석회층의 패인 곳에 흘러내려온 온천수가 담겨 야외온천을 만들고 있다.

 

 

 

 

 

자,  이제 우리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 봅시다.

 

 

 

 

 

희고 풍부한 미네랄 내용물들이 석회질 바위와 융화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곳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졌으며 인근에 순례객들을 위해 Hierapolis (성스러운 곳) 가 세워졌다.

 

 

 

이곳 파묵칼레의 석회층을 바라보면 목면을 뭉쳐놓은듯이 보이는데 파묵칼레는 터키어로 ‘Cotton Castle‘ 이라는 뜻이다.     작은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온천수를 맞으면서 즐거워하는 사람들.

 

 

 

이곳의 온천수에는 풍부한 칼슘, 마그네슘, 황산, 중산탄염 등의 성분을 가지고 있어서 심장질환, 소화기 장애, 신경통 등에 특수한 효능으로 로마의 황제들과 클레오파트라도 이곳을 자주 찾아서 요양을 하였다.         이 온천에는 예로부터 기적을 바라는 많은 순례객들이 찾아와 아픈 몸을 담그고 치료가 되기를 기원하였다.

 

 

 

 

 

 

 

 

 

온천수의 치료로 효험을 많이 받았는지 즐거운 표정들이다.

 

 

 

 

열매를 맺지 않는 석류나무.      주위에는 선인장들도 마구 자라고 있다.

 

 

 

 

 

 

 

Roman Hellenisyic Gate Tower.       아직도 보수중이다.        BC 300년에 만들었던 타워이다.

 

 

 

 

 

로마시대의 목욕탕. 

 

 

 

목욕탕의 지하에는 놀랍게도 Heating Chambers 도 만들어져있다.

 

 

 

 

 

 

 

Perge 에서 Aspendos 로 가는 중간에 옛 Rome 시대에 물길을 만들어놓았던 Aqueduct 가 많이 무너져내리고 일부가 그대로 남아있다.

 

 

 

가게의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찬 오렌지를 짜서주는 쥬스를 시원하게 한잔씩 들이킨다.      작은 컵  2리라.  $1.40     큰 컵 4리라  $2.80       몸이 좋지 않아 겨우 따라다니던 Zenia 는 이 시원하고 달콤한 쥬스 한잔에 원기를 많이 회복했다.

 

 

 

안탈랴에서 50km 떨어진 옛 그리스, 로마 시대의 도시 Aspendos 에는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이 있는데 1만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서기 170년, 그러니까 1,840년전에 건축되었는데 터키에서는 지금까지도 가장 잘 보존된 고대의 극장으로 지금도 여름에는 유명한  Opera 와 Ballet 공연을 하고있다.

 

 

 

따가운 햇빛을 피하여 그늘에서 설명을 듣고있는 관광 Group들.

 

 

 

이 Aspendos 원형극장은 최대한의 음향효과를 내기 위해서 석회암과 대리석, 붉은 사암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무대위에서 동전을 떨어뜨려도 그 음향이 객석에 골고루 확성될 수 있게 만들었다.

 

 

 

오늘이 6월14일이니 2일 전에 오페라 Aida 의 공연이 있었다.      이틀후인 16일에는 Ballet  공연이 있고, 19일에는 오페라 Carmen, 그리고 그후에 Tosca, 며칠 후에 Romeo & Juliette 가 공연된다.

 

 

 

 

 

 

 

Antalya 는 B.C 150년에 지상의 파라다이스를 원했던 Pergamum 의 왕 Attalos 2세가 신하들에게 지구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을 발견할 것을 명령하였다. 오랜기간에 걸쳐 여러곳을 찾아다닌 후에 그들은 여기가 천국임에 틀림없다고 보고를 했으며, Attalos 왕은 이곳을 Atlaleia 라 이름지었다.      그것이 지금 Antalya 이름의 유래이다.

 

 

 

오랜역사가 지나가면서 로마인들이 이곳을 지배하게 되고 13세기에 로마황제 Hadrian 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진 Arch 가 구 안탈야 시내에 남아있는 Hadrian‘s Gate 이다.

 

 

 

 

 

 

 

 

 

전통의상을 입고 긴 막대기처럼 생긴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담고 있다.

 

 

 

Hadrian’s Gate 에 가까이 있는 관광객들을 주로 겨냥한 큰 Food Court 는 마구 잡아당기는 호객행위 때문에 제대로 둘러보기도 힘들다.

 

 

 

 

 

고기를 써는 모양이 날렵하고 듬직하다.

 

 

 

우리가 자리잡은 이곳의 음식은 맛도 좋고 값도 적당하다.      내가 먹은 이것은 7리라.   $5.     큰 풋고추도 얹어주고.      모든 테이블에는 식초에 담긴 아주 작고 지독히 매운 폭탄고추 가 그득히  담겨있다.       내 접시에 있는 풋고추에 오늘 특별히 가지고 나온 튜브의 고추장 을 오랜만에 뿌려보았다.      음, 음. 

 

 

 

 

 

 

 

 

 

해안에 붙어있는 구 안탈랴 시내의 가옥들.

 

 

 

 

 

자,  이제는 호텔로 돌아가면 지중해의 물놀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호텔로 돌아가며 다시 Hadrian's Gate 를 본다.

 

 

 

 

 

이제는 절벽으로 내려가서 지중해의 물과 놀아야지.

 

 

 

 

 

 

 

 

 

어제는 조금은 한가했는데, 오늘은 주말이라서 더 붐비는지 자리를 겨우 잡았다.        절벽 위의 Pool 보다 아무래도 여기가 더 좋다.

 

 

 

다이빙대가 너무 높은지 어제도 오늘도 아무도 뛰어내리는 사람은 없고, 전망대로 이용하는 사람들만 보인다.      한컷을 찍으려고 벼르고있던 것 모두 허사가 됐다.

 

 

 

물 속에 있는 Kansas City 에서 온 Kathy 는 6일 후에 투어가 끝나면 다음날 토요일에는 미국에서 날아온 아들의 결혼식이 이스탄불에서 예정되어 있다.      터키가 사돈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언니 Carol 과 함께 터키여행을 왔다.

 

 

 

 

 

 

 

 

 

 

 

 

 

여행 중에 한가하게 앉아서 쉴 수 있는 호사도 누려본다.

 

 

 

오늘 저녁에는 Pool 옆에서 어느 터키인 자녀의 성인식이 열린다고 준비가 한창이다.     성인식을 이렇게 거창하게 하다니…    10명씩 앉는 테이블이 30개이니 하객이 300명이고....      밴드와 함께 춤을 추는 파티는 밤 늦게까지 계속되고....     또 다른 한 면의 터키를 보게된다.

 

 

 

안탈랴의 Dedeman 호텔에 2일간 머무는 동안에 아침, 저녁 모두 테라스의 야외식당만 열려있다.       화창한 날씨에 좋은 경치에....

 

 

오늘 아침에는 고추를 튀겨놓은 음식도 있다.        터키 사람들 고추를 참 많이 먹는다.       아침은 이제껏 조금씩만 먹었는데 오늘은 드물게 한접시 더 먹는다.      튀긴고추도 더 먹고 풋고추도 가져다 먹어본다.

 

 

 

 

 

호텔 바로 건너편의 최신식 쇼핑몰이다.          어제 저녁 이곳에서 유난히 붐비는 가게에 들어가보니 아주 좋은 값에 터키 스타일의 여자 옷들을 팔고 있었다. 

 

 

 

터키의 미니버스.        돌무슈 라 부르는데 작은 도시에서는 노선이 정해진 것 없이 운행되므로 어디로 가는지 꼭 물어봐야 한다.     손님이 있으면 아무 곳에서나 승차, 하차 한다.

 

 

 

오늘은 Konya 에서 남서쪽으로 375km 떨어진 푸른 Mediterranean 海에 위치하고 있는 Antalya 로 이동한다.     가는 중간에 다른 관광일정도 없어서 여행중 가장 Easy 한 날이라고 가이드가 말한다.

 

 

 

 

 

 

 

우리가 지난 여러날 동안 지나온 터키의 서쪽과 중부지역 모두가 검은색의 옥토는 보기 힘들었고, 거의가 돌과 석회, 용회암들로 섞여진 토질이어서 그런지 자라는 나무들도 모두 키가 작은 것 뿐이었다.

 

 

 

Konya 에서 Antalya 로 가려면 Taurus 산맥 을 넘어가는데 계속해서 구불구불 돌고, 오르고 내리는 경치가 아주 좋다.

 

 

 

버섯에 치즈를 붙여서 고추와 함께 요리한 음식과 약간 짭잘하게 볶은 쌀밥으로 점심을 한다.

 

 

 

터키의 전형적인 농촌 풍경.

 

 

 

 

 

Taurus 산맥을 넘어 지중해로 접근하면서 큰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푸른 산림과, 과수원, 올리브 나무들이 나타난다.

 

 

 

도로변의 가게에서는 벌써 지중해의 냄새가 풍긴다.       바나나, 오렌지, 꿀종류, 말리지 않은 여러 종류의 허브, Nut 종류가 보인다.

 

 

 

 

 

 

 

 

 

터키를 계속 여행하면서 거주지역의 아파트들을 보면, 대개가 3~6층이고 높아야 7~8층 정도로 보기에 흉하지 않고 색갈도 대부분 예쁘게 조화를 시켜놓았다.        그런데 옥상을 보면 매우 어지럽다.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 태양열을 받아들이는 Solar System, 그것으로 데우는 물 탱크, 그리고 TV Cable 씨스템이 없어서인지 세워놓은 TV 위성접로 아파트 옥상은 대만원이다.        개인주택도 똑 같다.       이스탄불과 앙카라지역은 법이 다른지 TV 위성접시 외에는 물탱크와 Solar System 은 보이지 않는다.         햇볕이 나면 1~2시간이면 아파트 옥상에 설치해놓은 물탱크를 데운다고 한다.        열 효율은 상당히 좋은 것 같은데 보기에 너무나 어지럽다.

 

 

 

 

 

 

 

 

 

 

 

드디어 안탈랴 에 들어왔다.       안탈랴는 터키에서도 경치 좋기로 유명한 곳으로 고고학적이고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바다, 태양, 역사, 자연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있어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해안을 볼 수 있다.

 

 

 

 

 

 

 

기후가 좋으니까 아파트 1층에 심은 덩굴장미가 4층까지 뻗어올라가 예쁘게 자라고있다.

 

 

 

 

 

Antalya 는 열대지중해 기후로 여름에는 고온건조하며 겨울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

 

 

 

오후 2시반쯤 호텔에 도착해서 저녁식사 시간인 8시30분까지는 지중해의 바다를 즐기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터키도 남쪽으로 오면서 더운 지방 특유의 늘어지는 습성으로 저녘시간이 1시간 늦어진다.         내일도 아침에 Aspendos 와 안탈랴의 구 시가 관광이 끝나면 오후에는 역시 지중해의 바다를 즐기며 호텔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긴 여행 중간에 이런 휴식을 할 수 있으니 좋다.

 

 

 

 

 

수영장 아래는 절벽 (Cliff) 으로 바로 지중해의 푸른 바다이다.

 

 

 

 

 

 

 

아 ~   지중해의 바다로구나.

 

 

 

 

 

호주에서 온 Colin 은 벌써 지중해로 뛰어드는 다이빙대에 서있다.       경치에 넋을 잃었는지.....     다이빙은 아니하고 .....

 

 

 

그의 Wife Nancy 는 벌써 바다에 띄어놓은 인공섬으로 수영을 해서 올라가 한가하게 썬탠을 즐기고....   젊은이들보다 더 생기가 넘친다.

 

 

 

 

 

 

 

절벽 사이에 피어있는 꽃들과 엄청 크게 자란 선인장들.        어른 키만큼 크게 자라있다.

 

 

 

투어와 저녁이 끝나고 젊은이들은 완전히 파티 분위기에 휩쓸려있다.         음악과 춤이라면 빠지지않는 Puerto Rico 의 대가족과 그리고 일단의 젊은이들, 아직도 생기가 넘치는 노년들 일부도 클럽으로 함께 몰려가 새벽 3시반까지 춤추고.....     우리는 휴식을 해야지.      아직도 컨디션이 완전히 정상이 아닌데.....      내일도 오전의 Aspendos 관광과 시내관광만 끝나면 다시 지중해의 물 속으로....

 

 

 

10일째 아침이다.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내려오니 말굽형으르 굽어져있는 Antalya 의 반대편 해안이 멀리 보인다.         아 ~  멋있는 Antalya 의 풍경이다.

 

 

 

 

 

Aspendos 로 가는 중간에 3,000년 전의 유적지 Perge 에 먼저 들린다.         여기의 이 거창한 Gate 는 당시의  Rome City 의 Gate.

 

 

 

큰 쎅션의 스탠드가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Stadium.          BC 2세기에 만들었던 것이니 2,200년 전에 만들었던 경기장이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유적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돌에 조각을 정교하게 한 것만이 아니고 조그만 조각 깊숙히 입체적으로 조각을 하였다.   작은 조각 구멍으로 잘 구부러지는 가느다란 것을 넣어보면 다른 구멍으로 나온다.    구멍속을 입체적으로 조각한 것이다.      2,200년 전에 지금과 같은 첨단 기계도 없이 오직 손으로 이렇게 정교한 입체조각을 하다니… 

 

 

 

 

 

관광객이 모이는 곳이면 나타나는 좌판대.        우리 그룹이 첫번째 입장객이라 지금 급히 좌판을 깔고있다. 

 

 

 

오늘은 더 따가운 것 같다.      39도 라나....    열심히 설명하는 가이드, Oktay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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