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는 거대한 항구가 있는 아시아 무역항로의 종착지였으나 이 같은 번영도 서기 17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한순간에 무너져서 폐허로 변하였다.

 

 

 

니케의 여신상.        여신상 치마의 앞주름의 사용권을 나이키 회사에서 $50 에 사가더니 지금은 세계적인 회사가 되었다.

 

 

 

Gate of Hercules.       말이나 동물들은 이 문 안으로는 더 이상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Hadrianus 神殿.     서기138년에 지어진 하두리아누스 신전은 에페스 시민들에 의해 지어져 로마의 황제였던 하드리아누스에게 바쳐졌다.      신전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돌담 위에 신과 여신들의 조각이 가득하며, 4명의 로마황제의 像이 들어차있다.        들어가는 입구의 Arch 위에는 첫번째 문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여신 테티, 두번째 문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 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Celsus Library (셀수스 도서관) 은 에페소 유적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 중의 하나로 화려한 전면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 도서관은 서기 135년에 이곳의 통치자였던 Celsus Polemaeanus 를 기념하기 위하여 지어졌다.      이 도서관에는 3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의 상단은 지혜, 문명, 지식 을 상징하는 정결한 여성상들로 장식되어 있다.        셀수스의 무덤은 중앙 적소 아래의 지하에 있다.

 

 

 

 

 

 

 

오늘도 39도....   계속해서 그늘도 없는 곳을 설명을 들으며 쫓아다니는 것 상당히 힘들다.        이곳 도서관 기둥의 그늘에서 한숨을 돌리며 더운 옷을 벗어던진다.

 

 

 

 

 

 

 

에페소는 사도 바울이 서기 53년부터 이곳에서 2년간 전도활동을 하며 강론을 펼쳤다는 사실로도 유명하다.      사도 바울의 방문 이후 이곳에는 교회가 부흥하였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투옥되어서 에페소 교회에 보낸 편지들이 성경에 나오는 에베소書 이다.

 

 

 

이태리의 소나무처럼 여기의 소나무도 둥글게 자란다.

 

 

 

그늘을 찾아서 설명을 듣고 있는 여행객들.      평균기온보다 10~12 도나 높은 날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계속된다.

 

 

 

 

 

원형 대극장에서 바다쪽으로 대로가 뻗어있는 이 길은 고대의 에페소 항구까지 뻗어있는 아칸디우스 도로이다.       헬레니즘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이 길은 길이 530m, 폭이 11m 인데 이 길을 따라서 값비싼 물건을 파는 상점들과 화랑들이 위치해 있었다.      고대에 에페소는 원래가 항구도시였으나 현재는 바다와 상당히 떨어져있다.       오랜동안에 걸쳐서 쓸려내려온 토사로 인해 해안이 밀려났기 때문이다.

 

 

 

 

 

 

 

Church of Mary (성모 마리아 교회).       서기 431년에 세워진 교회로서 성모 마리아를 기념하는 첫번째 교회였다.     6세기에 Dome 형의 Chapel 이 추가되었다.       뒷쪽으로 길게 터를 잡고있는 이 교회는 남아있는 기둥이나 벽등의 흔적을 둘러보아도 당시에도 상당한 규모의 교회였던 것 같다.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성모 마리아의 교회를 다녀갔다.

 

 

 

성모 마리아의 교회에 일부 남아있는 돌벽 사이로 보라색의 예쁜 꽃이 만발해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         에페스에서 1.2Km 떨어진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세계7대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이 신전은 BC 6세기 중엽에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 때에 지어지기 시작해서 120년만에 완성되었다.          에페소의 풍부한 재정능력에 의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 이상의 규모로 장대하고 화려하게 이오니아식으로 건축되었는데 BC 356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신전은 바로 재건에 들어갔고 에페소인들은 복구에 최선을 다해 기둥이 10m 인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8m 나 더높은 18m 의 초고급 대리석을 사용한 기둥을 127개나 세웠다.        바닥면의 넓이는 가로 130m, 세로 70m 였다.       또한 사방으로 계단도 만들었다.           이러한 아르테미스의 신전의 영화도 서기 3세기경 東 고트인들의 침입으로 신전은 모두 불태워지고 파괴되었다.      파괴된 신전에서 대리석을 옮겨다 에페스에 사도요한의 교회를 짓고, 이스탄불에는 소피아 성당을 짓느라 대리석을 가져다 썼다.        그리고 대리석을 가져가기 위해서 몰려든 사람들에 의해 신전은 완전히 폐허로 변하였다.         이렇게 1,600년간 폐허로 남아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은 1863년 영국의 고고학자 J.T. 와트에 의해서 발굴되고 철저한 고증에 의해서 복원해 나갔으나 현재는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지에는 외로운 기둥 하나만이 서있을 뿐이다.

 

 

 

 


망원렌즈로 잡힌 사진에는 (2009.06.17) 에는 기둥 위에 2마리의 새가 둥지를 틀고있다.      성경의 사도행전 19장 에도 아르테미스 신전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도요한의 교회.        서기 37년에서 42년까지 박해를 피하여 예루살렘에서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온 사도요한이 살았던 곳이자, 사도요한이 복음서를 기술하고 생을 마감한 무덤이 있는 곳이다.         그 무덤 위에 4세기경 처음으로 나무로 된 교회가 지어졌으나 비잔틴제국의 유스티아누스 황제시대에 (565~577년) 재건되어 오늘날의 형태로 남겨지게 되었다.        그후 에페소가 아랍인들의 지배하에 있었던 7~8세기에 교회는 20개의 타워와 3개의 문으로 이루어진 성벽으로 둘러싸이게 된다.       현재 여행객들이 출입하는 이 문이 주 성문인데 나머지 2개의 문은 동쪽과 서쪽에 있다.       사도요한의 무덤은 중앙 돔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지금도 발굴과 복원이 계속되고 있다.

  

 

 

 

 

 

 

 

  

사도요한의 교회는 약간 언덕진 곳에 있는데 그 언덕의 바로 아래는 이와같이 근대식 도로와 상가를 이루고있다.

  

 


이제는 Izmir 로 가서 온전히 광관으로 지친 긴 하루를 마무리 한다.

 

 


에페소의 관광을 끝내고 터키의 3번째 대도시이며 2번째 항구도시인 Izmir 에서 묵고 간다.      Izmir 는 에게해의 진주, 아시아의 사랑, 아시아의 꽃, 아시아의 면류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이다.          과거에는 로마황제를 찬양하기 위해 최초로 황제신전을 세우기도 했던 로마에 대한 충성심이 높았던 도시였다.

  

 


Izmir 는 터키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로서 여자들이 스카프르르 두른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해변을 따라서 잘 정돈된 도로와 고원들이 늘어서있어 완전히 유럽의 한 항구도시를 보는 듯하다.

  

 

 

 


저녁을 마치고 해변을 산책중에 함께 여행하고 있는 Florida 에서 온 Joseph 과 Ligia 를 만났다.       카메라를 지참하지 않은 Joseph 가 석양의 해변을 배경으로 나에게 사진을 부탁한다.          그리고 취하는 포즈가....     아 ~   얼마나 멋있고 Romantic 한 광경인가.       밀레의 그림 만종이 생각난다.

 

 

 

 


해변가에 끝없이 늘어선 정취있는 레스토랑에 데이트 나온 젊은이들, 가족들로 만원이다.       정말로 터키의 다른 도시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선거때 투표를 하면 이곳에서는 회교주의를 강력하게 내세우는 정당은 1%의 지지밖에는 얻지못한다.      이 레스토랑에서 칼라마리 (오징어튀김) 를 주문하니까 색다른 터키식의 튀김을 내어왔다.        가지를 얇게 썰어서 꼬챙이에 꽂아서 타워처럼 멋있는 장식도 곁들였는데 맛도 일품이다.

 

 

 

내일 13일째의 관광은 Pergamum 과 T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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