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Chenonceau 성 (Chateau de Chenonceau, 슈농쏘 성).      프랑스 전역에는 중세때부터 각 영주들이 세웠던 각자의

약 5천 개의 크고 작은 성들이 있다.       Lorie 지역에는 80개의 성이 몰려있어 Chateau Country (Castle Country) 라고도

불린다.        슈농쏘 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멋있게 정렬된 수목으로 입장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스페인과 멀지 않은 Loire 지역은 프랑스에서 가장 긴 Loire River 를 끼고 언덕과 아름다운 숲 그리고 크고 작은 성들이 많이

있다.      중세 시대부터 Loire 강을 중심으로 계곡 사이에 왕과 귀족들이 그들만의 성을 쌓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성들이 유별

나게 많다.

 

 

River Cher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성은 대대로 영주가 여자였던 것도 특이하다.     원래는 Henry 2세가 연인이었던 Diane de Poitiers 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그런데 Henry 2세가 죽고나자 왕비였던 Catherine de Medici 가 이 Castle 을 빼앗고 그녀를 작은 쇼몽 성으로 쫓아버렸다.         그 후로도 이 Castle 의 주인은 계속 여자들이 되었다.

 

 

Chenonceau 성은 강물 (River Cher) 위에 지어진 것이 특이하다. 

 

 

 

루이 14세의 초상화 아래에서...    이 방은 Louis XIV's Drawing Room 이라고 불린다.       1650년 7월 14일 루이 14세의 방문기념으로 그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루이 15세, Spain 왕 필립 5세의 초상화도 걸려있다.

 

 

Henry 2세의 연인이었던 Diane 의 침실.

 

 

Henry 2세의 왕비였던 Catherine 의 침실.         새로운 주인이 들어올 때마다 다른 방을 자신의 침실로 새로 만들었다.  그래서 성에는 화려한 침실이 여러 개가 있다.

 

 

Louise of Lorraine 의 침실.          그녀의 남편 Henry 3세가 암살을 당한 후에는 우울증에 걸려서 침실을 어둡게 하고 이 방에서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어둠의 방이라고 불린다.

 

 

정원도 Henry 2세의 연인 Diane 이 만들어놓은 정원과 그 후에 왕비 Catherine 이 자기의 취향에 맞는 정원을 반대편에 하나를 더 만들어서 2개의 정원이 있다.

 

 

 

정원에서 농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 아래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한 무리의 관광객들.

 

 

(2)  앙제 Castle (Chateau d’Angers)       Loire Valley 지역에 자리 잡은 Tours 로 가는 중간 도시인 Angers.     대학도시인 Angers 는 학생들이 많은 Town 이다.

 

 

Angers 성 (Charteau d'Angers) 은 본래는 로마시대에 적들로부터 침략을 막으려고 세웠던 요새였었는데, 그 후에 970년부터 70년에  걸쳐서 Castle 로 다시 건축되었다.      15세기에는 King Charles 12세가 수도였던 파리에서 Jeanne d'Arc 에 내쫒겨 도망을 와서 이곳에서 머물렀던 곳이다.

 

 

성 안에는 거대한 Tapestry 가 있다.     Angers 는 식도락 (Gastronomy) 과 이곳의 독특한 Wine 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슈농쏘 성으로 가는 바쁜 일정으로 아쉽게도 외곽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곳.

 

 

(3)  Royal Castle.        Loire 지역을 포함해서 남쪽으로 훨씬 넓은 지역을 모두 Champagne & Cognac Country 라고 부르는데 독특한 석회암 (Limeston) 토양 때문이다.          언덕진 땅을 파기도 아주 쉽고, 파고 나면 그대로 굳어지는

석회암 토양에다가 최적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어서 샴페인과 코냑을 생산하는 유일한 지역이다.    Champagne 이라는 이름은 이 지방 말고는 쓸 수 없는 이름이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것들은 Sparkling Wine 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몇 년 전 WTO 가 프랑스의 손을 들어주어서 이제는 프랑스의 이 지방만이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쓸 수가 있다.      Champagne 과 마찬가지로 Cognac 도 이 지방만이 쓸 수 있는 이름이다.       로아얄 성 (Royal Castle) 도 Loire 지역의 Amboise 시내에 있다.     옆에는 강이 흐르고 강둑의 한쪽은 꽃들이 만발하여 나무와 꽃에 묻힌 예쁜 도시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레오나드 다빈치 (Leonard de Vinci) 가 생의 마지막 3년간을 보냈다는 Amboise 의 Royal Castle.

 

 

15~16세기에 걸쳐서 건축된 Royal 성은 고딕 건축양식과 이태리식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건물의 왼쪽과 오른쪽의 건축양식이 다르다.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15~16세기 당시의 400~500년 전 가옥들.       오랜 세월이 흘렸지만 지금까지도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는 옛 모습의 가옥들이 지금도 활기찬 Town 을 이루고 있다.

 

 

 

1452년 이탈리아의 북쪽의 Florence 근처 Vinci 마을에서 태어난 레오나드 다빈치는 61살 때에 정치적인 이유로 Italy 를 떠나서 France 의 Amboise 에서 왕의 수석 화가, 건축가, 기술자로 지냈다.         성안에 있는 이 St. Hubert 예배당은 Loire 지역에서는 처음 으로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다.     Royal Castle 의 예배당에 묻히기를 원하던 레오나드 다빈치의 소원대로 1519년 세상을 떠난 후에 그는 이 예배당에 묻혔다.    이탈리아에서 최고로 유명한 다빈치가 영면한 이곳에는 이탈리안 방문객이 많아서 주위에는 온통 이탈리안 식당들로 넘쳐난다.     그래서 이태리의 한 마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던 곳이다.

 

 

 

Henry 2세의 방.

 

 

16세기 복장으로 정원을 거닐고 있는 왕족과 귀족들의 모습.       당시를 그대로 재현하여 방문객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정원에 세워진 Leonard De Vinci 의 동상.    어릴 때부터 그림, 조각, 음악,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레오나드 다빈치는 그가 남긴 노트에 시계, 나침반, 습도계, 기압계의 설계도가 오늘날과 같은 원리로 그려져 있었다.     그는 모나리자

와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로 유명하지만 평생에 20여 점의 그림 밖에는 남기지 않았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늘을 날고 싶다는 소망을 버리지 못하고 비행기나 글라이더의 연구에도 몰두했다.     다재다능하고 전무후무한 천재 중의 천재였다.

 

 

(4)  Carcassonne Castle     남부에 위치한 Carcassonne.    12~13세기에 세워진 중세시대의 성과 성채도시인 Carcassonne 도 매년 5백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인기 있는 Castle 이다.

 

 

슬기로운 지혜로 적을 물리쳤다는 Carcas 왕비의 석상.     

 

 

성채 안에는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성 나제르 성당이 있는데 높게 세워진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다.    마침 러시아에서 왔다는 5인 중창단이 교회음악을 선사하고 있는데....   웅장하고 위엄 있는 성당에서 중후한 저음으로 부르는 노래가 방문객들을 매료시킨다.     여러 곡을 부르고 끝이 나니까 한쪽에서 그들의 CD를 팔고 있다.      감동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씩 집는다.      성당에 헌금도 하고 중창단에게도 도움을 주는 심정으로... 

 

 

Castle 은 고적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반대로 성 안으로 들어서면 관광객들이 와글와글하고, 예쁜 식당과 카페, 기념품

가게들이 가득하다.  과거에 이 지역에는 그들만의 언어와 문자가 있었는데 지금도 그 문자로 걸어놓은 가게의 광고판.

 

 

성의 내부는 아주 넓고 성곽은 2중으로 지어졌다.        성벽에는 모두 52개의 탑이 세워져 있다.      성벽과 성벽 사이를 계속 걸으면 성을 한 바퀴 돌게 된다.

 

 

요새는 원형의 2중 성벽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1,650m의 외곽의 원형 성벽 앞에는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연못처럼 만든 해자가 설치되어 있다.

 

 

Carcassonne 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Carcas’ 와 'Sonne' 이 결합된 것이다.       사라센의 왕 발락과 결혼한 Carcas 왕비가 살고 있던 성을 Charlemagne 황제가 몇 달간을 포위하면서 함락시키려고 했었다.      안에서는 식량이 다 떨어져서 돼지 한 마리와 약간의 밀만이 남게 되었다.    이때에 Carcas 왕비는 남은 식량을 먹는 대신 돼지에게 먹여서 살을 찌운 뒤에 살찐 돼지를 성 밖으로 던졌다.     던져져서 배가 터진 돼지에서는 엄청난 밀알이 쏟아졌다.    성을 포위하고 있던 적들은 돼지에게도 알곡을 먹인다면 성 안에는 아직도 상당한 양의 식량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철수를 하였다.    그래서 승리의 나팔을 울리게 (Sonne) 되었고 이것이 Carcassonne 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믿거나 말거나.

 

 

(5)  베르사유 궁전 (Chateau de Versailles)         베르사유 궁전은 파리의 교외에 위치하여 있다.      원래는 루이 13세의 별장이 있던 사냥터였는데,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호화로운 궁전을 지었다.    1682년부터 파리의 Louvre 궁전이 아닌 이곳이 공식적인 왕궁이 되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루이 16세가 파리로 다시 옮겨갈 때까지 107년간 왕실과 정부가 머물렀던 곳이다.

 

 

웅장하고 화려하기만 한 궁전.

 

 

궁전은 파리의 남서쪽 22Km 에 위치하며 17세기 말에 루이 14세에 의하여 지어진 궁전으로 넓고 호화로운 정원도 유명하다.     

처음 궁전에 들어오면 어마어마한 규모와 호화로움에 압도되어 뭐가 뭔지도 모르고 돌아다니게 된다.

 

 

많은 방들은 호화로운 장식뿐만이 아니라 유명한 미술품들로 가득하다.

 

 

거의 격일마다 무도회가 열렸다는 거울의 방.        1783년 미국 독립전쟁 후의 조약 그리고 1919년 1차 세계대전 후의 베르사유 평화조약이 이 거울의 방에서 이루어졌다.         궁전에는 창문이 2,000개, 벽난로 (Fire Place) 가 1,200개, 계단이 67군데에 있다.

 

 

루브르 궁전을 버리고 베르사유 궁전으로 이사를 온 루이 14세는 거의 격일로 연회와 무도회를 열었는데, 이를 위해서 각 지방의 영주들을 불러들여 약 5천 명이 함께 살았다.       재미있는 것은 루이 14세는 냄새가 난다고 본인의 것 외에는 궁전에 화장실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용변을 해결해야 할 때에는 모두들 급히 먼 숲으로 뛰어야만 했다.

 

 

루이 14세의 방.      " 짐은 곧 국가다 "

 

 

나폴레옹의 대관식 그림.    이것은 복사본이고 진품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왼쪽 앞줄의 네 명의 여자들 중에서 분홍색 드레스의 2번째 여자가 나폴레옹의 동생이다.      권력에 아부하느라고 나폴레옹의 여동생만 분홍색으로 그려놓았다.     어마어마하게 크게 그려져 있는 나폴레옹의 대관식 그림.       미술작품이 엄청 많아서 미술관에 온 듯한 기분도 들고.....

 

 

넓고 호화로운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은 정말로 어마어마하다.    본래는 2,420만 평이었지만 지금은 246만 평의 숲과 정원이 남아있다.       정원에는 260개의 조각상과 1,400개의 분수가 있고 1.6Km 나 되는 운하도 있다.

 

 

 

(6)  Fontainebleau (퐁탠블로).         밀레가 그림을 그리고 살았던 Barbizon 에서 멀지 않은 이곳에 나폴레옹이 머물렀던 퐁탠블로 궁전이 있다.       자연과 전원생활을 사랑했던 자연주의파 화가들이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에 모여서 살며 전원의 풍경을 주로 그렸던 Barbizon 에서 Fontainebleau (퐁탠블로) 로 가는 길은 주위의 경치가 매우 좋다.    밀레의 집이 있는 Barbizon 에서는 10Km 정도 되는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파리에서부터는 남동쪽으로 약 60Km 정도 거리가 된다.       베르사유 궁전보다는 작지만 나폴레옹이 가장 좋아했다는 퐁탠블로 궁전.

 

 

France 르네상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수아 1세가 1528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루이 16세에 이르기까지 7명의 왕들이 궁전 건축을 계속하여 완성시켰다.       그 후 나폴레옹이 궁전을 보수하였고 그는 1814년 이곳에서 그만 폐위를 당했다.      궁전에서 앞 광장으로 내려오는 계단은 아주 특이한 모양이다.       페리 슈발이라 불리는 계단인데 말발굽 모양이다.       나폴레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려고 계단을 내려와 근위병들에게 고별사를 하고는 Elba 섬으로 유배되었다.        그래서 계단 앞 광장의 이름이 백마 광장이었으나 그 후로 이별의 광장이라고도 불린다.    계단 우측에는 나폴레옹 박물관이 있다.   나폴레옹은 이 궁전을 좋아해서 베르사유나 다른 궁전들을 마다 하고 이곳 퐁탠블로 궁전에서 주로 집무를 하였다.

 

 

12세기부터 퐁탠블로의 광대한 숲은 원래는 왕가의 사냥터였었다.    숲 가운데에는 휴식을 위한 저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자리에 궁전과  정원이 세워지게 된다.   마차를 타고 몇백 년 전의 퐁탠블로 숲을 상상해보면서 즐거워하는 관광객들.    퐁탠블로 궁전의 정원은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만큼 넓지는 않지만 매우 아름답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설계했던 르노트르가 이곳의 정원을 조성했고 슈농쏘 Castle 의 주인 메디시스가 만든 다이애나 정원, 영국 정원, 연못 등이 있다.

 

 

퐁탠블로 궁전에서는 프랑수아 1세의 화랑, 앙리 2세가 만든 무도회실 등이 유명하다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 되어 쫓기듯이 금방 나와야 하니 궁전 안에 들어가는 것을 그만두어야 했던 곳.     

 

 

(7)  Chateau d'Malmaison (말메종 Castle)      말메종 Castle 은 파리에서 서쪽으로 17Km 떨어져 있는 Malmaison 에 있다.

나폴레옹의 부인이었던 조세핀이 살던 집이다.       1796년 2남매를 둔 33세의 젊은 미망인이었고 사교계에 널리 알려졌던 조세핀은 6년 연하인 나폴레옹과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하였다.    결혼한 3년 후인 1799년에는 1622년에 건축된 말메종 Castle 과 주위의 대지 260 헥타르를 구입하게 된다.    아름다운 정원과 화려하지 않은 저택이 있는 말메종을 사랑한 나폴레옹과 조세핀은 이곳에 머물며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한 후에는 주로 퐁탠블로의 궁전에 거주해야 했는데 조세핀은 말메종을 그리워했다.    조세핀은 넓은 공간의 정원을 좋아해서 약 200종류의 희귀한 꽃들을 심었다.       그녀는 특히 장미를 좋아해서 250종류의 장미 정원을 만들었다.

 

 

Josephine 의 초상화.      나폴레옹의 아이를 낳지 못한 조세핀은 1809년 나폴레옹과 이혼을 하게 되었으나 조세핀을 사랑한 나폴레옹은 그녀를 말메종으로 보내서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게 배려하였다.           나폴레옹은 1810년 Austria 공주 Marie Louise 와 결혼하여 아들 프랑스와를 얻게 된다.

 

 

평생 그녀를 잊지 못했던 나폴레옹은 유배를 떠나기 전에도 말메종을 찾아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나폴레옹이 죽을 때까지 사랑했던 조세핀.      그녀는 사치가 대단하여서 엄청난 빚을 끌어다 쓰면서도 옷과 장신구, 비싼 접시들을 끊임없이 사들였다.      오죽하면 이탈리아 전쟁터에 나가있던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보낸 편지에서 '돈 좀 그만 펑펑 쓰시오'라고 했겠는가.

 

 

붉은 천과 금실로 화려하게 장식된 조세핀의 침실.       그녀는 이곳에서 1814년 5월에 생을 마감했다.

 

 

진열된 유품 중에는 가운데에는 나폴레옹이 있고 주위에는 충성을 다한 그의 13명의 장군들이 있는 커다란 장식품..

 

 

접시들은 중앙에는 풍경화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고 접시 가장자리에는 3cm 정도로 둘러 가며 금색으로 화려하게 칠해져 있다.

접시 하나의 값이 무려 4만 유로가 넘는다.    부르는 게 값이니까!!     조세핀이 최고가의 물건들을 마구 사들이며 발행했던 차용증서들도 전시되어 있다는데...       어디에 있는지 돌아다니며 찾아보았지만, 이 넓은 전시실의 어디에 있는지 결국은 보지 못하고 말았다.

 

 

(8)  Chateau d'Chantilly (샹티이 Castle)       파리 북쪽으로 41Km 떨어진 노네트강 연안에 있는 샹티이 숲속에 있는 성이다.

샹티이 Castle 로 가는 길은 유명한 생크림 Cream de Chantilly 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그길로 계속 가면 벨기에 국경이 나온다. 

 

 

성의 주인이었던 Conde 공의 이름을 따서 Conde 박물관과 도서관이 있다.         그림 1천 점, 스케치 2천 5백 점, 고서 3만 권 등 희귀한 필사본과 고서들이 소장되어 있는 박물관이다. 

 

 

르네상스 양식의 샹티이 성은 마치 수면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 대혁명 때에 파손된 것을 19세기에 복원한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때에는 프랑스군의 총사령부로 쓰이기도 했다.       샹티이 성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1671년 루이 14세가 이곳에 초대된 날, 당시에 유명했던 요리사 Vatel 은 요리 재료의 배달 지연으로 왕의 식사를 준비 못하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신선한 생선을 내놓으려고 날짜에 맞추어 배달을 원했으나....    중국의 진시황 때에는 식사 때마다 매번 새로운 요리를 내놓지 못하면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 몰랐다고 하는데....   동양이나 서양이나 크게 다르지 않구나.

 

 

샹티이 성은 2005년 2월 Valentine Day 에 유명한 축구선수 호나우두가 비행기를 전세 내고 무려 70억 원을 들여서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성에서 바로 보이는 몇백 m 위쪽에는 18세기의 거창한 건물인 큰 마구간 (Stable) 과 말 박물관이 있다.

 

 

 

마음따라 길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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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rete 섬   (몇 해 전 들렸던 Greece 의 여행 중에서 4개의 섬들 사진 몇 장씩만을 골라서 다시 올려본다)

 

비행기가 Greece 여행의 첫 번째 방문지인 Crete 에 착륙을 준비 중이다.       Crete 는 유럽 남동부 발칸반도 최남단의 Greece 에서도 제일 남쪽의 섬으로 그리스에서는 가장 큰 섬이다.      인구는 60만 명이고 면적은 8,247Km2 으로 제주도의 4.5배 정도의 면적이 되는 큰 섬이다.     동서로 길이가 254Km, 너비가 남북으로 10~56Km 정도이다.    아테네에서 남쪽 바다로 393Km 멀리 떨어져 있다.    Greece 에는 모두 6,000 여개의 많은 섬이 있지만 100명 이상의 거주인구가 있는 섬은 70 개 정도에 불과하다.

 

 

Crete 는 북유럽, 특히 기후가 항상 좋지 않은 독일과 영국에서 온 휴양객들로 가득하다.      Santorini, Mykonos 등의 이름난 섬들을 구경하고 다니는 관광객들이 아니라, 따뜻하고 좋은 기후를 찾아서 가까운 그리스의 섬들 중에서도 물가가 싸고 인심 좋은 이곳으로 몰려온 휴양객들이다.      Crete 섬에서 제일 큰 도시이며 섬의 동서에서 중간 정도에 위치한 Heraklion 이 수도이다. 동쪽으로 20분 정도 떨어진 Hersonissou 의 해변가에서 16일간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이곳은 북미에서 겨울에 흔히 휴가를 가는 Caribbean 섬들의 휴양지와 아주 흡사하다.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포함된 All Inclusive 의 Service 로 되어있다.

 

 

 

Palace of Knossos.    Oldest City Europe.   Crete 에서도 BC 2600년경 (약 4,600년 전) 부터 청동기시대가 있었고, 지금부터 4,000년 전에는 Knossos 에 Minoan 궁전이 건립이 시작되는 등 화려한 이곳의 미노아 문화가 시작되었다.     

Knossos 궁전은 Crete 섬의 Knossos 에 있던 고대왕국의 궁전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에 세워졌다.     사방으로 17개의 부지에 60mx29m 정도의 직사각형 중앙광장을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왕과 가족들을 위한 거주시설과, 서쪽으로 제례와 통치를 위한 업무용 방들과 창고 등으로 수백 개의 작은방들이 있었다.

 

 

Throne Room.    규모가 아주 작고 대단히 검소하게 꾸며진 정치적인 의식이 거행되었던 방.   그때에 쓰였던 의자도 있다.  대부분은 돌로 만들어놓은 긴 벤치형의 돌 의자이다.     우측에는 왕이 앉았던 돌로 된 의자가 보인다.    내부의 구조는 놀랄 정도로 검소하다.

 

 

왕궁이었던 이곳에 웅장하고 견고한 성문이나 성벽이 없으며, 지배자의 권위를 과시하는 거대한 시설도 없는 것이 매우 특이하다. 3,700년 전에는 Knossos 왕권 밑에 Crete 전역이 통일되었으나, BC 15세기 (3,500년 전) 그리고 BC 14세기에 재차 침입해온 Greece 에 의해서 Knossos 궁전은 파괴되었다.        그래서 지중해 동부와 남부인 에게海 (Aegean Sea) 주변지역에서 번영한 미노아 문화 등의 Aegean 문명은 Greece 본토의 미케네 문명으로 흡수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바울 (Paul) 이 2차, 3차 전도여행 때에 들렸다는 디도스 (Titus) 교회.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몇 번을 물어본 후에 골목골목을 돌고 돌아서 힘들게 찾아왔다.       바울 (Paul) 의 믿음의 아들이며 동역자였던 디도스 (Titus) 가 설립하고 사역했던 교회이다.

바울은 제2차, 3차 전도여행 때에 Crete 를 들려갔는데 도덕적으로 몹시 타락하고 신앙적으로 완전히 부서져버린 Crete 를 보았다.     그는 2차 전도여행 때에 함께 전도여행하던 Titus 를 이곳의 목회자 겸 교회의 조직자로 그를 남겨두고 간다.      짧은 전도여행 기간에 Crete 교회를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바로 세울 수 없었던 바울은 Titus 에게 혼란에 빠진 Crete 교회를 바로잡고 신앙적 질서를 수립할 것을 부탁하였다.    그때가 서기 62~63년이다.   1,950년 전이다. 교회의 건물은 언제 복원이 되었는지 지금도 아주 훌륭하게 보존되고 있다.

 

 

항구를 찾아 나오니 멋있는 경치가 펼쳐진다.      한때 이곳을 지배했던 Venetian 들이 만들어놓은 항구 요새 도 보이고.....

 

 

Crete 섬의 수도인 Heraklion 시내 항구에서의 점심.    나는 문어 (Octopus) 를 Zenia는 대구 (Cod) 를 주문했다.    맛있게 구워서 나온 큰 문어다리도 좋았고, 튀겨 나온 대구와 특별한 소스도 좋았지만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Service 로 내어놓은 Dessert 였다.      두 사람이 먹기에도 많을듯한 수박과 그리고 방금 튀겨서 나온 작은 도넡처럼 생긴 것에 Syrup 이 뿌려져있다.    Ice  Cream 까지 얹어서 나온 접시에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성에까지 끼도록 차갑게 만든 Greppa 까지 1병을 주고 간다.     포도껍질로 만든 술인 Greppa 는 토론토에서도 Italian 들이 즐겨먹는 독한 술로 알고 있다.       Crete 에서는 Dessert Wine 을 마시듯이 식후에 이런 독주를 마시는가 보다.    작은 병이지만 두 사람이 나누어 마셔도 두 잔씩은 족히 마셔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리스에서의 첫 식당이 이렇게 인심이 좋을 줄이야.         본토로 부터 멀리 떨어진 제일 남쪽의 큰 섬인 Crete 는 물가가 매우 저렴해서 북유럽의 노년들에게 관광지가 아니라 휴양지로서 인기있는 곳이다.   호박밥, 가지밥, 염소치즈등, 채소를 사랑하는 순박한 섬으로 100세 이상의 노령인구가 많은 섬이다.      동서로 길게 뻗쳐있는 산악지대로 이루어진 섬을 제대로 여행하려면 적어도 1주일에서 10일은 필요한 곳이다.

 

2. Santorini 섬

 

Santorini 라고 불리는 섬은 행정구역으로는 5개의 섬을 함께 Santorini 섬이라 부른다.     시청이 소재하는 Fira 에 약 12,500명의 인구가 있고, Oia 마을 (이아 마을) 에 약 900명, 그리고 건너편의 Thirasia 섬에 약 250명, 화산섬이 Nea Kameni에 1명, 그리고 나머지 2개의 섬은 무인도이다.      Santorini 는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에서 230Km 떨어진 섬이다.산토리니 섬에서 제일 큰 마을인 Fira 마을 남쪽 지역의 일몰 직전의 사진이다.

 

 

Santo Winery.     작년의 France 여행, 2010년의 남유럽 여행 때에도 Portugal 에서 유명한 Winery 에 갔었지만 그때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는 그저 어쩔 수 없이 따라다녔을 뿐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Day Trip 에도 아까운 시간에 또 Winery 가 Tour Course 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보이는 경치가 정말로 이렇게 좋은 줄은 몰랐다.

 

 

Santo Winery 는 섬 남쪽의 약간 높은 지역에 있는데 반달 모양의 Santorini 섬의 서쪽이 모두 선명하게 보이고, 북쪽 끝의 Oia 마을까지 멋있는 경치를 보여준다.      1707년 화산 폭발로 생긴 화산섬 Nea Kameni 도 보인다.

 

 

화산섬 Nea Kameni.   길지 않은 시간인 약 10~15분 정도를 목선을 타고 가면 화산섬에 오르게 된다.      1707년, 그러니까 약 305년 전에 화산 폭발로 생겨난 화산 섬이다.   화산섬에는 크고 작은 분화구가 몇 개 있다.     배에서 내려서 낮은 산을 등산하는 수준의 Hiking 을 하게 된다.     올라가는데 약 40분, 다시 배로 돌아오는 데까지는 30분.    Santorini 지역에는 BC 1500년경에 (3천5백 년 전) 큰 화산 폭발이 있었고 이것은 지구의 1만 년 역사상 2번째로 큰 화산 폭발이었다.   거대한 폭발로 Greece 일대는 몇 년 동안이나 하늘이 화산재로 가려져 있었고 기후의 변화도 매우 심했다.    그때에 엄청난 쓰나미가 발생했는데 산토리니에서는 높이가 250m 였다고 추정한다.     근대인 2002년에 있었던 인도네시아의 쓰나미 높이의 20배 정도가 된다.    그리고 쓰나미는 20분 만에 미노아 문명을 꽃피웠던 Crete 에 도착했는데 도착 당시의 쓰나미 높이를 70m 로 추정한다.      그 후 오랜 지각변동을 통해서 당시의 화산의 꼭대기 부분만 남긴 채 화산의 중간지역이 가라앉게 되고 그 꼭대기 부분이 오늘날의 산토리니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타는듯한 검은 모래사장과 검은 절벽, 그리고 곳곳에 붉은 절벽과 붉은 모래사장도 만들어졌다.      2천2백 년 전에도 대규모의 폭발이 있었고, 그 이후로도 8번의 크고 작은 폭발들이 있었는데 62년 전인 1950년이 마지막 폭발이었다.

 

 

등산 중간중간에 형성되어 있는 언덕에 올라서서 보는 주위의 Santorini 섬들의 풍경은 위대한 자연, 바로 그 자체이다.

Fira 마을도 보이고, Fira 마을과 Oia 마을의 중간에 위치한 Imerovigli 마을도 절벽 위에 눈이 덮여있는 것처럼 예쁘게 보인다.

 

 

Palea Kameni Island (Hot Spring, 유황온천).  화산섬을 떠나서 5분 정도를 가면 바로 옆에 있는 Palea Kameni 섬 해안가에 물 밑에서 그대로 뿜어 오르는 Hot Spring 이 있다.   배가 지금 해안가에 있는 Hot Spring 으로 접근 중인데 이곳의 바닷물 색깔은 초록색이다.    유황온천의 물이 섞여서 거의 초록색이 되어있다.       약 2천2백 년 전에 화산의 폭발로 생겨난 이 온천은 항상 사람의 체온 정도인 섭씨 약 35도의 온도를 유지한다.     목선이 약 50m 앞에까지 접근해서 정박한다.     배에 타고 있던 일행 중에 수영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 뛰어든다.      50m 정도의 가까운 거리이지만 수영에 능숙한 사람들만 나서도록 단단히 주의를 준다.

 

 

Oia 마을을 향해서 배가 접근하고 있다.       언덕 위에는 하얀 이아 마을이 보이고, 검고 붉은 절벽 아래에는 Ammoudhi (아모우디) 항구가 보인다.

 

 

 

 

이토록 예쁜 마을이 오래전부터 그대로 유지되어 왔던 것은 아니다.      1956년에 강도 7.8의 지진이 섬을 강타하여 Fira 마을과 Oia 마을의 건물들이 많이 파괴되었는데 특히 Oia 마을은 80% 가 파괴될 정도로 피해가 막대하였다.    지금의 건물들은 대부분 지난 50년간에 새로이 건축된 건물들이다.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Oia 마을은 어느 곳으로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어도 멋있는 풍경이 잡힌다.   그래서 세계각지의 사진애호가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늦은 오후에 건물의 곳곳에 모여서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들.

 

 

지구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 중의 하나라는 Oia 마을의 굴라스 성채에는 모여드는 관광객들, 아마추어 사진사들로 북적댄다.     Santorini 는 면적이 76Km2 로 제주도의 1/25 정도이다.    지형에 따른 절벽건물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숙박시설도 비싸지만 일반적으로 물가가 매우 높은 섬이다.       절벽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섬으로 신혼여행객들과 사진사들의 동경의 대상인 섬이다.

 

3. Paros 섬

 

Santorini 섬의 북쪽에 위치한 Paros 섬은 제주도의 1/9 면적 정도이고 인구는 1만4천.     면적은 196 Km2 로 그리 크지 않지만 220개의 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Cyclades 제도 (諸島) 에서는 그래도 몇 개의 큰 섬 중의 하나로 꼽힌다.     호텔의 방들은 전형적인 그리스의 하얀 집으로 60여 개의 방들은 하나하나가 독채로 만들어져서 여러 가지 색깔의 분꽃 덩굴 (Bougainvillea) 로 조화를 이루어놓아 보기에 매우 아름답다.

 

 

숙소의 바로 앞에 위치한 해변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조그마한 농가는 완전히 제주도와 똑같이 돌을 쌓아올려 돌담이 만들어져있다.     돌이 많고 바람이 많은 섬은 다 같은가 보다.    Greece 의 큰 재정위기 여파로 타격을 받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에 안타깝고 한가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시외버스를 타고 길을 돌고 돌아서 섬의 반대편 Lefkes 마을에 왔다.      Paros 섬의 중앙에 있는 큰 山이 해발 724m 이다.

그곳의 해발 300m 정도되는 산악지대에 Lefkes 마을이 있다.   이곳은 기후가 섬의 다른 지역과는 완전히 달라서 소나무도 자라고 여러 종류의 큰 나무들이 자란다.

 

 

중세시대전부터 이루어진 마을은 지금도 주민들만이 살고 있는 주거지역이다.      Paros 섬의 수도인 Parikia 에서 남동쪽의 산악지대로 10Km 정도 떨어진 이곳 Lefkes 마을에는 52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마을에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기념품 가게는 오직 2개가 있을 정도로 아주 조용한 곳이다.      외지의 관광객들보다 Greece 내국인들이 더 많이 방문하는 섬이니 내국인들에게는 특별한 곳이 아닐 수도 있다.     중세 시대에는 Paros 의 옛 이름인 Yria 의 수도였다.     그림 같은 아름다운 마을에 하얀색의 아기자기한 집들이 가득한 좁은 골목길이 이어진다.

 

 

무슨 일인지 문이 굳건히 잠겨있어서 교회의 내부는 구경할 수 없었던 Agia Triada (Holy Trinity).       마을의 중간지역에 자리 잡고, 멀리 바다가 보이는 높은 지역에 서있다.     전체가 흰 대리석으로 지어진 Byzantine 시대의 교회.

 

 

저 멀리 바다에서 6Km 떨어진 Naxos 섬.

 

 

Parikia 시내의 Ekatontapiliani 교회.      Paros 섬을 이루는 암석은 주로 대리석이다.       바로 옆에 있는 Naxos 섬도 대리석이 주요 암반이다.      그래서 이곳의 백색 대리석은 6세기 이후부터 고대 Paros 의 부 (富)의 원천이었다.        솔로몬 왕이 궁전을 건설하는 데에도 이 섬에서 가져온 대리석으로 건축을 하였다.      이 교회는 로마 황제였던 Constantine the Great 의 어머니 Saint Helen 에 의하여 건설이 시작되어서 AD 326년에 세워졌다.

 

 

 

교회에는 수도사들이 지내던 건물이 양옆으로 지어져있는데 방들이 수없이 많이 있어서 < Church of Doors > 라고도 불린다.

 

 

바로 옆벽으로 교회의 본당 붙여서 지어져있는 수도사들이 고난을 이겨내는 토굴방.     고난을 이겨내는 작은 토굴방에 있는 돌로 된 침대.

 

 

바닷가에 올려지은 St. Constantine 교회가 있는데 문이 굳게 잠겨있다.    아니 왜 교회마다 문이 잠겨있는가 !

 

 

교회 바로 뒤로는 좁은 골목길의 하얀 집들이 늘어서 있고 앞으로는 해변길 건너에 보이는 한없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Paros 의 해안이다.

 

 

아무리 찍고 찍어도 사진만으로 담아낼 수 없는 광경들이 펼쳐져 있는 Paros 섬의 해안가.   해변에서 올려다보이는 Constantine 교회.    Paros 는 제주도의 1/9 면적이다.   이곳도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이태리의 Venetian 들과 그후로는 터키의 Ottoman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곳이다.        Paros 는 외국인 관광객은 일부이고, 조용하고 물가가 높지 않아서 Greece 본토의 내국인이 주로 찾는 곳이다.

 

4. Mykonos 섬

 

Paros 를 떠나서 Speed Ferry 로 북쪽으로 달려온 Mykonos 섬.   지금 이곳 미코노스의 항구는 몹시도 북적거린다.    Ferry 시간에 맞추어서 예약 손님을 Pick-up 나온 Hotel 사람들과 Travel Agent 들, 예약 없이 온 승객들을 자기네 숙소로 한 손님이라도 더 데려가려는 호객꾼들이 뒤섞여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배를 타고 떠나는 승객들까지 뒤엉켜서 시끌벅적한 장터가 되어있다.     Mykonos 의 항구는 언제나 이렇게 뒤죽박죽 북적이는 바쁜 항구이다.

 

 

지금 항구는 뒤죽박죽 와글와글인데.... 항구 바로 가까운 이쪽의 Town의 중심지역은 한가하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미코노스 섬에서 제일 긴 Platis Gialos 해변.    Platis Gialos 해변은 Mykonos 타운에서 4Km 떨어져 있다.     Family 들이 즐기기 좋은 해변으로서 제일 인기 있는 해변이다.

 

 

해변에서 Paranga Beach, Paradise Beach, 그리고 Super Paradise Beach 등 남서쪽으로 가는 Water Taxi Water Taxi 를

기다리며.... 여유로운 모습들.

 

 

맑고 투명하고 짓푸른 바닷물.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멋있는 경치와 해변.       Santorini 는 절벽 위에 마을들이 있었는데 Mykonos 섬에는 절벽 같은 것은 없고 해안가부터 마을이 펼쳐 보인다.      화려하면서 웅장하던 Santorini 와 다르게 여기는 마냥 편안하고 조용한 분위기이다.

 

 

 

 

한때는 모두 16개의 Windmill 이 여기저기 있었던 곳.       바닷가 약간 높은 언덕에 파란 바다와 하늘 사이에 서있는 하얀 풍차 (Windmill) 는 어쩐지 그리스의 神들이 재미 삼아 만들어놓은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바람이 많은 이곳의 섬들은 풍차를 돌려서 육지에서 가져온 곡식들을 빻는 방앗간 역할을 하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관상용 풍차가 되었다.    풍차 중의 하나는 농업박물관이 되어있다.

 

 

풍차와 더불어 미코노스를 대표하는 상징물 Panagia Paraportiani ( 파라 포티아니) 교회.     

낮은 언덕에 세워진 교회는 Mykonos 섬에서는 가장 오래된 교회이며 그리스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15세기에 세워진 중세 시대의 성 (Castle) 의 입구에 세워졌기 때문에 門이라는 뜻인 Porta에서 기원하여 Paraportiani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5개의 교회가 모여서 이루어진 독특한 건축물이다.       16 ~17세기에 걸쳐서 세워진 이 교회들은 4개의 교회는 지상에, 그리고 하나는 지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섬들을 여행하면서 보는 그리스정교의 교회 지붕 위 Dome 들이 대부분 파란색인 것은 하늘과 바다를 상징하는 것으로 어부들의 교회를 나타내는 것이다.   주로 섬에서 내륙으로 들어가면서 볼 수 있는 Dome 을 붉은 색깔로 칠을 한 교회는 농부들의 교회뜻하는 것이다.  가끔은 Dome 을 2개를 만들어놓고 파란색과 붉은색을 각각 만들어놓은 교회도 있다.    Dome 이 없이 그냥 십자가만 있는 하얀 지붕의 교회들은 이방인 (Foreigner) 을 위한 교회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Mykonos 밖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이방인들이라 부른다.

 

 

Babulas Tavern 이라는 식당에서 배 위에 걸어서 말리고 있는 Octopus.    식당의 선전에는 최고의 좋은 아이디어 같이 보인다.

 

 

저녁 무렵이 다 되어 도착한 동쪽 해안가의 Kalafatis Beach.    완전히 비어있는 해변이 매우 적막한 평화를 보여주는 풍경이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하얀 집과 파란 대문, 파란 창문들.... 이 모든 것들이 이 섬... 저 섬... 을 돌아다니며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것 같다.

 

 

하얀 집들이 몰려있는 호라 (Chora) 마을은 완전히 상업적인 거리로 상점들과 카페, 레스토랑들이 가득 들어선 골목길이다.

 

 

 

붉은 Dome의 교회 옆으로 있는 Hora 골목길의 레스토랑들은 지금 완전히 이태리안 관광객들로 대만원이다.      Italian Cruise Ship 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2천여 명의 관광객이 몰리면서 아수라장 장터처럼 되어있다.   낮에 Pelican 을 보았을 때는 조용하기만 했던 이곳이 지금은 완전히 이태리어로 왁자지껄 떠들썩한 Italian Town 이 되어있다.

 

 

Mykonos 섬에서 가장 작은 해변 중의 하나인 Paranga Beach.     우리가 머무는 Platis Gialos 해변에서 걸어서 15~20분 정도 걸린다.     정작 누드 비치라고 알려진 Paradise Beach 에서는 겨우 몇 명의 누드족만 있었고, 이 조그마한 Paranga 해변에 나체족들이 많았다.     나체족들은 주로 노년층이 많고, 이들은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니 이곳으로 몰렸나 보다.     누드 Beach 라 하여도 꼭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불문율처럼 해변의 오른쪽은 누드, 왼쪽은 수영복 차림이라는 설명을 들었는데 정말로 그대로이다. 대체로 이렇게 훌러덩 벗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년들이다.      몽땅 벗으면 뭐 편하기는 하겠지만...    다 늙어서 몸매가 어떻든... < Who Cares !! > 라고 생각하는지...     늙은이들은 일찍 해변에 나와서 모조리 벗어던지고 일광욕하고, 젊은이들은 늦게 일어나서 늦은 오후에 나와서 왕왕 울리는 음악에 춤추고 논다.          젊은이들은 몸매 따지고, 뭐 따지고, 그러느라 함부로 벗지 않는다.      지금 시간이 오후 1시 정도이니 젊은이들이 해변에 나오려면 아직도 너무 이른 시간인가 보다.

 

 

Paranga Beach 가 누드비치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데 나체족들이 상당히 많다.       옷을 완전히 벗고 있는 젊은이들은 얼마 되지 않고 나체는 대부분은 배불뚝이 50~60대들이다.

 

 

나체해변으로 이름난 막상 이곳 Paradise Beach 에 도착하니 조용하기 그지없다.    젊은이들이 늦잠을 자고 나타나는 늦은 오후 3~4시가 되어야 북적거리는 시간인가 보다.    소문과는 달리 나체족도 거의 없다.       누드비치라는 이곳에서 한 사람의 누드도 보지 못했는데 바로 우리가 점심을 하고 있는 식당 앞에 한 중년 여인이 나체로 누워있다.    옆에는 이 더운 날씨에도 옷을 꽁꽁 입고 누워있는 철면피 뚱보도 있다.     남편인가....

 

 

Mykonos 의 상징인 풍차와 이웃하고 있는 Little Venice.      Little Venice 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무리이지만, Venetian 의 지배를 받을 당시에 만들어진 건물들로써 창문이 바다를 향하고, 조그마한 계단과 발코니 등이 Venetian 스타일로 건설되었다.   여기가 Little Venice 라고 불리는 곳이라고 설명을 하면 Italian Group 의 관광객들은 언제나 폭소를 터트리는 곳이란다.      별로 Venice 같은 느낌이 들지도 않고, 비슷하지도 않은 Little Venice.    그래도 해 질 무렵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과 함께 멋있는 광경이 펼쳐지는 곳이라 많은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네들이 살고 있는 지구의 곳곳에서도 매일같이 해는 저무는데.... 여행을 나오면 마음이 편해져서 일몰까지도 이렇게 멋있게 보이는가 싶다.  멋있게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추억에 남을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여행객들.   Mykonos 는 밤 문화와 먹고 마시고 떠들썩한 파티를 즐기는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섬이다.    Mykonos 는 Santorini 섬과 면적이 거의 같지만 약간 큰 85Km2 이다.      상주인구는 오직 1만명.      Santorini 섬과 더불어 Mykonos 섬은 상대적으로 다른 Greece 섬들보다 외국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일반적으로 물가가 매우 높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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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섬이라 일컬어지는 발리섬에는 4백만의 사람이 살고 있다.    발리섬은 자바 섬의 동쪽에 있는데 길이는 153 Km, 폭 112 Km 으로 제주도의 3배쯤 되는 섬이다.    Bali 에 항공편으로 도착하는 도시가 Denpasar 이고 바로 붙어있는 해변이 Kuta 이다.        그래서 매우 북적거리고 시끌벅적한 Kuta 는 공항에 도착해서 잠시 짧은 일정을 보내는 곳으로, 발리의 관문 역할을 한다.      잠시 들러 다른 지역으로 가는 길목의 역할로 변하고 있다.

해변은 아직도 맑고 모래사장도 나쁜 상태는 아니지만 매우 복잡한 도로변과 인접해 있다.      수많은 장사꾼들과 여기저기 마구 펼쳐놓은 노점상들로 가족들이 함께 온다든지 혹은 조용히 쉴 수 있는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한 곳이 아니다.     더구나 2002년 10월 12일 202명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209명이나 부상을 입혔던 나이트클럽의 폭탄 테러가 Kuta 의 한복판에서 있었다.    그리고 3년 후인 2005년에 다시 Kuta 에서 26명이 죽고 127명이 부상당하는 폭탄 테러가 다시 발생해서 Bali 로 들어오는 관광객이 수년간 크게 감소했다. 특히 Kuta 는 치명적이었다.    두 번의 폭탄 테러, 2009년 9월의 규모 6.4도의 강력한 지진.... 조용하지 않은.... 그래도 조용한 Bali 섬이다.        폭탄 테러도 있었고, 북적거리는 Kuta 이지만 Bali 의 다른 지역은 물론이고 Kuta 의 치안은 그래도 매우 양호하다.

 

 

Bali 섬의 수도 Denpasar 에서 가까운 남쪽에 초현대적으로 설계되어 시원하고 멋있는 Nusa Dua 지역.

Nusa Dua 해변.      Bali 의 기후는 북서풍이 부는 우기 (10월~3월) 와 남동풍이 부는 건기 (4월~9월)로 나뉜다.

Bali 는 남쪽에 있는 해변들은 흰색의 모래사장이고 북쪽이나 서쪽의 해변들은 대체로 검은 모래사장이다.   그리고 남쪽에 있는 해안들이 Surfing 의 메카이다.

 

 

건기, 우기를 불문하고 최상의 파도를 가지고 있는 이곳의 해변은 세계 각국의 Surfer 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이곳 Nusa Dua 는 80년대부터 근대적인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진 지역이다.       옛 모습의 Kuta 와는 완전히 다르다.

초현대적인 도시계획에 의해서 넓직넓직한 고급 리조트들이 들어서 있다.      개인적이고 조용한 휴양지를 찾는 사람들이나 Honey Moon 여행을 하는 신혼부부들에게 적합한 지역이다.

 

 

Bali 섬에서는 제일 남쪽에 위치해 있는 석회석 (Limestone) 암벽이 둘러져 있는 Pandawa 해변.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Uluwatu 사원.

Uluwatu Temple, 일명 절벽의 사원. Bali의 남쪽으로 뻗어 나온 반도의 동쪽에 Nusa Dua 가 있고 서쪽에 절벽사원이 있다.     이곳에 있는 원숭이들이 고약하다고 알려져 있다.     관광객의 모자를 채어가고, 안경을 벗겨서 도망가고, 핸드백도 탈취해서 내빼고.....   우리를 태우고 다니는 운전사 Raka 가 모자를 벗어놓고 가라고 일러준다.      그래서 이 엄청난 뙤약볕에 모자도 없이 헉.헉.....        다 ~ 고약한 원숭이 때문이다.       이렇게 가까운 남쪽의 관광지는 2, 3일이면 돌아다니며 볼 수 있지만, Bali 힌두문화의 본산은 커다란 Bali 섬의 한 가운데 깊은 산골에 위치하고 있는 Ubud 이다.    

Denpasar 와 Kuta 의 번잡하고 시끌벅적한 환경을 벗어나서 발리 힌두문화의 요람인 Ubud 로 이동을 한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내륙 깊숙이 들어간다.

 

 

Bali 섬은 어디를 가든지 도시, 시골마을, 해변의 주변에도 Bali 식 힌두사원들이 보이고, 일반인의 집 대문과 벽도 꼭

사원처럼 치장해놓은 곳이 많다.     발리인에게 종교는 없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것이다. Bali 의 어원은 바친다 (Wali) 라고 하는 의미에서 유래한다.        발리 주민의 종교는 아카마 힌두 다르마 라고 불리는 Bali 특유의 힌두교이다.

모든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Bali 의 힌두교는 인도의 시바파 힌두교에 불교, 동물숭배, 조상숭배가 혼합된 것이다.

이동을 하는 중에 무언지는 모르겠는데 장식품 같은 것을 나르는 차량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며칠 있으면 다가오는 중요한 발리 힌두 종교 축제인 Galungan Day 에 장식할 준비물을 나르는 차량들이다.

 

 

Bali 섬의 남쪽에 위치한 여러 개의 해변을 둘러보았으니 우리의 여행 목적지 Bali 의 내륙 지방 Ubud 의 밀림지대로 들어가면서 몇 군데를 들려서 간다.    Bali 는 섬의 내륙 지방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힌두문화가 꽃을 피웠다.     지금 도착한 Batuan Temple 은 Denpasar 에서 25분 걸리고 Ubud 까지는 아직도 30분 정도 더 걸리는 북동쪽에 위치한 Batuan 이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3개의 사원 중의 하나이다.          마을 사원인데도 작은 지역에 이렇게 큰 사원이 3개씩이나 있다니 놀랍다.       이곳 마을 사람들이 힌두인에게 종교의식을 하던 곳이라는데 이렇게 규모가 크다니....   발리식 건축양식으로 멋있게 지어진 사원은 입구 Gate 부터 화려하다.

 

 

종교 축제를 준비하느라 벌써부터 노란 천으로 석탑의 신들을 치장하기 시작했다.

 

 

Bali 에서 인기 있는 관광 가운데 하나가 Rice Field 혹은 Rice Terrace 를 구경하는 것이다.      거의 평평한 평지에 있는 Rice Field 보다는 경사진 언덕을 계단식으로 만들어 쌀농사를 짓는 Rice Terrace 의 경치가 훨씬 더 멋있다.   

Rice Terrace 경치가 제일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 Bali 섬의 중앙에 위치한 Tegallalang Village.

 

 

길 아래 밑으로 깊은 계곡 건너에 경사진 언덕을 계단식으로 만들어놓은 논이 보인다.        평화로운 가옥들의 밑으로는 계곡이 흐르고, 매우 경사진 언덕에는 계단식 논으로 쌀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 경이롭기도 하지만 경치가 그야말로 일품이다.

 

 

Bali 의 쌀농사는 약 2,000년 전부터 시작되었는데 대부분이 경사진 언덕을 계단식으로 만들어놓은 Rice Terrace 이다. Rice Field 라 불리는 곳도 경사가 좀 덜한 비교적 완만한 계단식이다.        발리의 지형상 완전한 평원의 논바닥은 가끔 큰 길 주위에 보이기도 하지만 매우 드물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거운 삼발이까지 동원해서 사진에 열중하고.....   무지하게 덥고 매우 따가운 뙤약볕에도 아랑곳없이 논바닥에 주저앉아 Date 를 즐기는 커플도 있다.

 

 

우리가 여러날 머무르는 곳은 Ubud Town 에서도 20분 더 들어가야하는 깊은 산골 속이다. 호텔의 아침식당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경치는 정말 아주 시원하다.      카메라의 Zoom 을 마구 잡아당기면 깊은 Ayun 강의 계곡이 보인다.

 

 

호텔의 정원을 20분 정도 걸어서 내려가면 내리막길 계곡의 숲속에 고무보트들이 보이는데, Agung River Water Rafting 을 시작하는 곳이다.       아 ~ 밀림의 깊고 깊은 계곡 속에 숨어있는 이곳이 14Km의 긴 여정인 Ayung River Water Rafting 의 출발지이구나.      사람들은 계속해서 계단을 내려오고, 보트는 계속해서 출발한다.       반대편 숲속 아래에 강가에 와있는 우리에게 어떻게 이 밀림을 뚫고 내려왔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보이고.      발리식 인사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쓸라 맛 팔기! (Good Morning).

 

 

문화의 중심인 Ubud Town 으로 나오면 작은 도시이지만 조용하면서도 독특한 발리식 흰두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Ubud 는 작은 농장들과 벼농사를 하는 작은 논들, 그리고 빽빽한 산림으로 둘러싸여져 있는 인구 3만의 작은 도시이다.          울창한 나무들로 가려져있지만 곳곳에 깊고 급한 계곡이 많이 있는 도시이다.    왕궁이 있는 네거리에서 꺾어서 15분쯤 걸으면 Sacred Monkey Forest 가 나타난다.

 

 

Monkey Forest 는 3개의 Temple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전에는 사원 지역이었다.         이곳에는 약 700마리의 원숭이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원숭이들이 모두 순한 것은 아닌가 보다.         음식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거나 하면 관광객들의 음식을 빼앗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무리를 지어 공격하여서 가방을 채어가기도 한다.    가끔은 물어뜯으며 공격하는 일도 벌어진다고 한다.     비교적 조용한 Cremation Temple 근처에서 저희들끼리 다투고 있던 원숭이들 중의 한 놈이 갑자기 Zenia 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공격할 태세를 취한다.      Zenia 는 비명을 지르고..... 멀리 있던 공원관리인이 비명소리에 쫓아올라 오고.....        바로 주위에 관광객 서너 명이 같이 있어서 큰일이야 벌어지지 않았겠지만 순식간에 영문도 모르고 당할뻔했다.        으르렁대며 달려들려던 새파랗게 어린 악독한 원숭이도 있었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서 말할 수 없이 멋진 경치를 보여주는 Monkey Forest 를 빠져나가는 길.

 

 

왕궁에 들어서니 안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임시로 붙여놓은 관광객 출입 금지 팻말이 있고...   아마도 이틀 뒤의 Galungan 축제 준비 때문에 온 사방이 장식물의 마지막 준비로 매우 바쁘다.

 

 

왕궁의 한쪽 구석에서는 Galungan 기간에 문밖에 걸어놓을 거대한 대나무 장식품 Penjor 를 준비중이다.

 

 

Bali 여행 7일째.       드디어 오늘이 < Galungan > 축제날이다.        축제날을 맞이한 발리인들 만큼 우리도 특이한 문화를 접하는 날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나선다.      Ubud Town 으로 가려고 호텔을 나서면서 첫 번째 보이는 개인 집부터 모든 집들이 Penjor 장식과 Canang Sari (신에게 바치는 제물) 을 쌓아놓은 것이 보인다.

 

 

Galungan Day 는 Bali 인들에게는 서양의 Christmas Day 처럼 큰 축제날이다.     골목길에서 마주친 아이들의 축제 행렬인데, 용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니다.      실존하지는 않지만 신비하고 영감적인 동물이라고 불리는 Barong 이다.      Bali 의 신화에는 Barong 은 영적인 사자 (Lion), 영적인 왕, 그리고 최고의 정신적인 지주로 여긴다.

 

 

시골 마을일수록 집집마다 더욱 화려한 장식들.

 

 

Ubud Town 에 도착해서 왕궁으로 가기 전에 이틀 전에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잠시 들렸던 장소에 다시 왔다.   

알고 보니 이곳이 왕궁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져 있지만 왕궁의 일부라고 한다.       정식 이름은 Taman Kemuda Saraswati 사원이다.

 

 

연못 건너의 정면 건물 뒤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자 Main Temple Area 가 나타난다.       뒤로 이렇게 아름다운 사원이 숨겨져있는 줄이야......    사원의 이름에 나오는 Saraswati 는 지식과 배움 그리고 예술의 힌두교 여성 神이다.

이 사원은 Ubud 왕에게는 Mother Temple 이었다.

 

 

Galungan Day 축제로 치장을 하고, 제물 Canang 도 차려져있다.

 

 

Ubud Town 으로 들어오니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복장들이다.      여자들은 모두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고 다닌다.      명절이나 축제 기간에만 입는특별한 복장이다.

 

 

엄청 화려하고 예쁜 현지인 남녀노소들의 복장.

 

 

대체로 남자들은 흰색, 여자들은 강렬한 원색이다.

 

 

왕궁의 정문 앞에 걸려있는 큼지막한 Penjor.      Galungan Day 는 210일마다 온다.    힌두 달력으로는 210일이 6개월, 420일이 1년이다.        오늘이 5월 21일이니까 12월 17일에 다시 찾아오고 내년 2015년에는 7월 15일 한번뿐이다.

Bali 힌두교의 Galungan 은 모든 힌두인들과 죽은 조상들과 친지들의 영혼이 자신들의 옛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라 믿고 기도를 하고 제물을 준비하면서 이들을 맞이하는 행사이다.

 

 

Galungan Day 가 다가오면 3일 전에는 바나나를 요리해서 제물 준비를 하고, 2일 전에는 쌀로 빚은 떡을 준비하고, 1일 전에는 돼지와 거북이를 잡아서 축제를 준비한다.

 

 

Galungan Day 에는 사원에서 제물을 바치고 기도드린다.    제물을 머리 위에 이고서 왕궁 안의 사원으로 들어가는 매우 화려하고 멋진 의상의 아낙네들.

 

 

 

왕궁의 사원 문밖으로 나와서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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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의 사원 안에서 가족들이 몰려나오고 있다.      예식이 끝난 모양인데 어떤 사람들이 이 궁전을 사용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Galungan Day 1일 에는 가족들을 서로 방문하는 날이다.        그리고 Galungan Day 못지않게 다음으로 중요한 날이 10일 에 찾아오는 Kuningan Day 이다.       이 날은 모든 신들과 조상의 영혼들이 다시 돌아가는 날이다.

기도와 예식으로 엄숙한 날을 보낸다.

 

 

Galungan Day 에 쓰이는 제물 Canang 을 파는 가게인데 평소에 쓰는 작은 Canang 이 아니고 보기에도 화려하게 밑에는 과일로, 위에는 꽃으로 장식한 큰 제물들이 준비되어 있다.

 

 

쿵 쿵 쿵. 음악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옆 골목에서 어린이 축제 행렬이 또 지나간다.          이거 또 Barong 아닌가.

 

 

 

오늘 Galungan Day 에는 Ubud 에서 돌아다니는 모든 자동차들도 자그마한 Penjor 를 달고 다닌다.    내일은 매우 바쁜 날이다.       3군데의 유명한 Temple 과 큰 규모의 Rice Terrace 를 방문한다.

 

 

오늘이 Bali 여행 8일째 날이다.     오늘은 여러 군데의 방문이 잡혀있는데 오늘도 덥기는 하지만 북쪽으로 올라가니 좀 덜 더울 것이다.       첫 번째로 찾아갈 곳이 Taman Ayun Royal Temple. Taman Ayun 사원을 찾아가는 길에 집집마다 멋있게 세워놓은 Penjor.

 

 

멋있게 만들어진 Penjor 들 중에서도 조금 크고 공을 많이 들여서 장식이 많은 것들은 보통 $50 정도가 들어간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높은 월급이 $200~$300 이라니 상당한 돈을 들이는 것이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아름다운 Penjor 들과 노란 천으로 둘러싸인 제단 위에는 Canang (제물) 들이 보인다.

Galungan Day 의 특별한 Canang 이다.     Bali 사람들에게는 높게 세워놓은 Penjor 는 산 (Mountain) 을 가리키고, 산은 우주를 가리킨다고 믿는다.     Penjor 를 집 앞에 세우는 것은 山의 神 (God of Mountain) 처럼 최상의 헌신을 보이려는 것이다.       마시는 물도 산이 있어야 얻을 수 있듯이 산은 신성하고 많은 은총을 가져다주는 것이라 믿는다.

 

 

Taman Ayun 사원에 도착했는데 이곳의 주차장은 오토바이들로 꽉 차있다.      달리 말하면 이 사원에는 현지인 방문객도 엄청 많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특히 어제가 Galungan 인 데다 오늘이 일요일이어서 더욱 방문객이 많다.

 

 

물 위에 떠있는 정원사원 (Garden Temple in Water) 이라는 뜻의 Pura Taman Ayun 사원.     쌀 (Rice) 의 여신 Dewi Sri 에게 봉헌된 것이라는 11층짜리 탑.

 

 

다시 달려서 Bali 섬의 거의 중간에 있는 Denpasar 市에서도 50Km 나 북쪽으로 올라오는 Ulun Danu Beratan 사원에 왔다.      일명 호수 사원 (Lake Temple) 이라고도 불린다.        호수는 해발 1,239m 의 높은 지역에 있다.       동쪽으로는 Beratan 산, 서쪽으로는 Tapak 산, 남쪽으로는 Terate Bang 산, 북쪽으로는 Pucak Sangkur 산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이곳도 덥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지역에 비해서 약간은 기온이 떨어지는 차거운 열대기후이다.

오후에는 Jatiluwhi Rice Terrace 와 Tanah Lot 사원을 방문한다.

 

 

아 ~  이 사원의 작은 별채 사원으로 보이는 곳에서 지금 이 가족들의 예식이 있으려나 보다.

 

 

Galungan 예식을 하고 있다.       어느 집안의 예식 같은데 여자들은 준비하느라 바쁘고, 남자들은 맨 앞의 검은색 상의를 입은 나이가 가장 들어보이는 어른 뒤에 모여앉아서 예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찍는 것도 괜찮고 예식을 지켜보아도 된다고 허락까지 해준다.     나이 든 여자, 젊은 여자....    오직 여자들만 대단히 바쁘게 움직인다.

 

 

 

이제는 준비가 다 되었나 보다.     여자들도 하나 둘 자리에 끼어앉는다.    그리고 집안의 제일 어른이 그릇에 담긴 것을 붓 같은 것에 적셔서 뿌리면서 예식이 시작되었다.

 

 

예쁘게 바쳐진 제물 Canang.

 

 

호숫가에서 조금 안으로 있는 이 사원 지역에는 출입 금지 팻말이 붙어있는데 지금 막 예식이 시작되고 있다.    

세련된 복장에 매끈한 차림새로 보아서 이렇게 유명한 사원에서 예식을 드리는 이들은 이곳의 유지이거나 상류층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평민들은 그들대로...   지나가는 이 마을에서도 마을의 Galungan 합동 예식이 있었나 보다.

 

 

발리 8일째 오후 관광이 시작된다.     먼저 Rice Terrace 에 들려서 점심도 하고 구경을 한다. 그리고 Bali 에서의 마지막 관광지가 되는, 사진에 보이는 Tanah Lot Temple 로 간다.         저 멀리 Small Island in the Sea 라는 뜻의 Tanah Lot Temple 이 보인다.      16세기에 세워졌는데 Bali 의 해양 신을 위해서 바위 위에 세워졌다.     지금 이 언덕에는 사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1시간 정도 더 있으면 시작되는 유명한 일몰 장면을 보려고 일찌감치 자리 잡고 버티는 사람들로 대만원이다.     Tanah Lot 사원은 바닷물이 빠졌을 때에는 걸어서 갈 수 있지만 Bali 사람들만이 사원 안으로 들어가도록 허용된다.      이 조그마한 바위섬은 1980년에 금이 가는 등 붕괴의 조짐이 있어서 바위섬에 인공의 바위도 채워 넣고 여러 가지 현대적인 공법이 동원된 덕분에 안정된 모습이다.      그래서 바위섬은 1/3 이 인공 돌로 채워졌다. 바위섬에는 까맣고 흰색의 바다 독사 뱀이 악마와 침략자들로부터 사원을 보호하고 있다고 전해져온다.     현지인들이 말하기를 이곳에는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 상대자와는 이곳에 함께 오면 안 된다고 한다.        결혼후에는 이 사원처럼 떨어져서 결혼에 파탄이 난다고 믿고 있다.

 

 

바위 구멍 위에 세워진 조그마한 사원.       앞에 가서 보니 아주 조그만 사원인데 문은 잠겨있다. Temple 이름은 Batu Balong.

 

 

여기에서도 Galungan 예식을 하러 가는 가족들을 만난다.    재력있고 권세있는 사람들은 유명 사원에서 Galungan 축제를....

 

 

16세기에 Java 동쪽에 있던 마자파힛 왕국이 이슬람 세력의 침입으로 망하면서 신하들, 승려들, 공예사들이 Bali 섬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힌두 고전문학, 그림자극, 음악, 조각 등 힌두 Java 의 영향으로 Bali의 힌두문화가 꽃 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Java 에서 건너온 힌두교의 승려 나르타가 이곳의 Tanah Lot Temple 과 남쪽의 해안가 절벽사원 Uluwatu Temple 을 건립하던 시기가 종교적으로 번성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자동차가 필요한 며칠간 운전하며 Bali의 여러 곳을 안내한 사람은 50대의 점잖은 Bali 인 Raka 이다.         Kuta 에서는 벌써 Bali 언어보다는 인도네시아 언어가 주로 쓰이는 언어가 되어가고, Bali 언어는 Kuta, Denpasar 처럼 큰 도시에서는 제2의 언어가 되어가고 있다고 우려한다.       늦은 밤에 우리를 Denpasar 공항에 내려놓고 Raka 는 갔다.      실제로 Denpasar 공항의 이름은 을 우라 라이 (Ugurah Rai) 공항이다.      2차대전 후에 일본이 항복하고 나서 네덜란드군이 빠르게 Bali 로 돌아와서 다시 식민시대를 열려고 하였다.     이때에 게릴라 부대를 이끌고 완강히 항전하던 을 우라 라이 (Ugurah Rai) 중령이 부대원 95명 전원과 함께 1946년 11월에 통렬히 전사하였다.      그의 이름이 오늘날 Bali 의 관문인 Denpasar 공항의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물질문명과 현대 문명의 굴레에 지친 사람들이 장기 체류를 하면서 Bali 의 문화와 자연의 경관에 심취하기 좋은 곳이다.        그리고 매우 친절하고 순수하고 예의 바른 Bali 사람들.... Bali 여행을 준비하고 계신분들이 있으시다면 Galungan 축제에 맞추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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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E Air Show - 2014.09.02

 

 

 

 

 

 

 

 

 

 

 

 

 

 

 

 

 

 

 

 

 

 

 

 

 

 

 

 

 

 

 

 

 

 

 

 

 

 

 

 

 

St. Jacobs & Elora - 2014.07.10

 

 

 

 

 

 

 

 

 

 

 

 

 

 

 

 

 

 

 

Menonites.

 

 

 

 

 

 

 

 

 

 

 

 

 

 

 

 

 

 

 

 

 

 

 

 

 

 

 

 

 

 

 

 

 

 

 

 

 

남산 (60회 삼구회 등산) - 2014.06.15

 

 

 

 

 

 

 

 

 

 

 

 

 

 

 

 

 

 

 

 

 

 

 

 

 

 

 

 

 

 

 

시내에서는 화창한 날씨였는데.....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시내에는 많은 Smog 로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는다.      서울의 공기는 주위의 다른나라들 대도시에 비해서 대단히 좋다.      불과 20년 전보다도 엄청 좋아졌지만 아직도 더 개선할 여지가 많은 것 같다.

 

 

 

 

 

 

 

 

 

 

 

 

 

 

 

 

 

 

 

 

 

 

 

 

 

 

 

 

 

 

 

 

 

홍인지문 (동대문),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 2014,06.14

 

 

동대문은 디자인, 생산, 판매까지 새로운 옷이 3일이면 나타나는 3일의 기적 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주변에는 약 3만 5천개의 상점과 약 15만명의 시장사람들이 있다.

동대문은 24시간 잠에 들지 않는다.

 

 

동대문 일대에 형성된 패션타운.     누가 고르고 누가 입느냐에 따라 동대문 패션은 뉴욕 패션도 되고 파리 패션도 된다고 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밤 11시에 먹는 밥이 아침, 새벽에 먹는 밥이 점심, 해 뜨고 아침에 먹는 밥이 저녁이다.    동대문 패션타운 시계는 다르게 간다.     낮이 밤이고 밤이 낮이다.

 

 

 

 

간수문.     남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을 성곽 바깥쪽 청계천으로 내보내는 수문이었다.      그리고 시체는 성문을 통하지 못하고 이곳을 통해서 성곽 밖으로 보내졌다.      부여는 1,800년, 경주 1,500년, 서울은 600년된 도시이다.     조선시대 서울은 약 18Km 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성곽 도시였다.      홍인지문 (동대문) 은 서울도심에 남은 마지막 4대문이다.     1925년 이곳에 동대문운동장을 지으면서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한양도성 2구간의 일부 성곽 (265m) 과 두 칸짜리 이간수문이 2008년 이곳에 옛 운동장을 허물고 디자인플라자를 건축할 때에 발견되었다.

  

 

 

 

 

 

누군가는 언덕 같다.    누군가는 파도 같다고 얘기하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2008년에 시작해서 6년 만인 2014년 3월에 완성되었다.    Iraq 태생의 영국인으로 세계적인 유명한 여성건축가 Zaha Hadid 의 건축작품이다.      반짝거리는 건물의 외부는 4만 5,133장의 알루미늄 패널로 덮였다.     단 한 장도 똑같지 않고 모두가 하나 하나 다른 형태이다.      건물들의 유선형 곡선은 자연의 흐름과 닮았다 한다.     건물의 꼭대기에도 공원이 있다.     조선 성곽 바로 옆에 자리한 DDP 는 동대문의 과거, 현대, 문화와 역사를 한 자리에 모았다.      DDP 는 초고층의 현대시대에 층수가 아닌 디자인으로 서울의 또 하나의 Landmark 가 되었다.

 

 

 

 

 

 

 

 

 

 

 

 

 

 

 

 

 

 

 

 

 

 

 

 

 

 

 

 

 

 

 

 

 

 

 

 

 

 

 

 

 

명동 - 2014.05.28

 

 

 

 

 

 

 

 

 

 

 

 

 

 

 

 

 

 

 

 

 

 

 

 

 

 

 

 

 

 

 

 

 

 

 

 

 

 

 

 

 

 

 

 

 

 

 

 

 

숭례문 (남대문) - 2014.05.30

 

 

 

 

 

남대문시장의 호떡집.....     인도에 길게 늘어선 줄이 보행자들이 지나다니도록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고.....   30명쯤은 줄에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맛이 있길래 이 푹푹찌는 더위에....     장사는 이렇게 해야 하는가보다.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 - 2014.05.28

 

 

 

 

 

 

 

 

 

 

 

 

 

 

 

거의 모든 시민들이 그냥 지나치고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지만. 광화문의 요소 요소는 하루도 빠짐없이 시위대가 점령하고 있다.     세월호, 보도개입, 동성애 등등.....

 

 

 

 

 

 

 

 

 

 

 

 

 

 

 

 

 

 

 

신문로의 옛 서울고등학교 자리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      

 

 

 

 

 

 

 

을지로, 종로, 노량진 등으로 다니던 옛 모습의 전차도 전시되어 있다.       1899년 5월 17일 개통된 서울의 전차는 일본의 교토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두번째로 개통되었다.      동대문에 전차들의 차고가 있었다.       1899년 동대문에서 운행을 시작한 전차는 당시에는 새로운 문물의 상징이었다.

 

 

 

 

 

 

 

 

 

 

 

 

평화시장 - 2014.05.10

 

 

 

전쟁의 피란민들은 재봉틀 한대를 구해서 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군복을 염색해서 팔았던 게 평화시장의 시작이다.     평화통일을 바라는 실향민들의 마음이 평화시장이란 이름에 배어있다.     1959년 큰불로 청계천 판자촌은 사라지고 길이만 600m 가 넘는 긴 건물이 들어섰다.     판잣집에서 재봉틀 하나로 시작된 평화시장이 점점 번성해 가자 주변에 신평화시장, 동평화시장, 남평화시장, 청평화시장이 연이어 생겨났다.

 

 

 

 

 

 

 

 

 

전태일 다리.....     분신자살로 추악한 세상에 분노를 표출했던 전태일.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전태일은 허기진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버스비가 없어서 쌍문동 집까지 걸어서 갔다.     스물두 살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함께 일하던 어린 여공들을 내 마음의 고향 이라고 표현했다.

  

 

 

 

 

바로 몇 m 아래는 시끌벅적한 지상의 시장바닥과는 완전히 다른 별천지처럼 보이는 청계천이 내려다 보인다.

 

 

 

광장시장 - 2014.05.23

 

 

 

 

 

 

 

 

 

우리나라 사람들과 자본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광장시장은 동대문시장의 출발점이다.    조선의 상권을 장악하려는 일본에 저항하여 대원군의 명에 의해서 110년전에 세워진 광장시장.      수십 년째 한자리를 지켜온 상인들의 자존심에는 광장시장은 민족시장 이라는 역사의식이 서려있다고 한다.

 

 

 

 

 

광장시장 먹자골목....     누군가는 수십 년째 음식을 팔고 누군가는 수십 년째 음식을 먹으러 온다.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그리움과 정을 찾아 광장시장에 온다.    수십 년이 흘러 엄마는 할머니가 되고, 엄마가 하던 가게는 딸이 이어받는다.     널리 모아 간직한다는 광장 이라는 이름처럼 광장시장 상인들은 그저 음식을 파는게 아니라 삶 자체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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