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Chenonceau 성 (Chateau de Chenonceau, 슈농쏘 성). 프랑스 전역에는 중세때부터 각 영주들이 세웠던 각자의
약 5천 개의 크고 작은 성들이 있다. Lorie 지역에는 80개의 성이 몰려있어 Chateau Country (Castle Country) 라고도
불린다. 슈농쏘 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멋있게 정렬된 수목으로 입장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스페인과 멀지 않은 Loire 지역은 프랑스에서 가장 긴 Loire River 를 끼고 언덕과 아름다운 숲 그리고 크고 작은 성들이 많이
있다. 중세 시대부터 Loire 강을 중심으로 계곡 사이에 왕과 귀족들이 그들만의 성을 쌓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성들이 유별
나게 많다.
River Cher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성은 대대로 영주가 여자였던 것도 특이하다. 원래는 Henry 2세가 연인이었던 Diane de Poitiers 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그런데 Henry 2세가 죽고나자 왕비였던 Catherine de Medici 가 이 Castle 을 빼앗고 그녀를 작은 쇼몽 성으로 쫓아버렸다. 그 후로도 이 Castle 의 주인은 계속 여자들이 되었다.
Chenonceau 성은 강물 (River Cher) 위에 지어진 것이 특이하다.
루이 14세의 초상화 아래에서... 이 방은 Louis XIV's Drawing Room 이라고 불린다. 1650년 7월 14일 루이 14세의 방문기념으로 그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루이 15세, Spain 왕 필립 5세의 초상화도 걸려있다.
Henry 2세의 연인이었던 Diane 의 침실.
Henry 2세의 왕비였던 Catherine 의 침실. 새로운 주인이 들어올 때마다 다른 방을 자신의 침실로 새로 만들었다. 그래서 성에는 화려한 침실이 여러 개가 있다.
Louise of Lorraine 의 침실. 그녀의 남편 Henry 3세가 암살을 당한 후에는 우울증에 걸려서 침실을 어둡게 하고 이 방에서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어둠의 방이라고 불린다.
정원도 Henry 2세의 연인 Diane 이 만들어놓은 정원과 그 후에 왕비 Catherine 이 자기의 취향에 맞는 정원을 반대편에 하나를 더 만들어서 2개의 정원이 있다.
정원에서 농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 아래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한 무리의 관광객들.
(2) 앙제 Castle (Chateau d’Angers) Loire Valley 지역에 자리 잡은 Tours 로 가는 중간 도시인 Angers. 대학도시인 Angers 는 학생들이 많은 Town 이다.
Angers 성 (Charteau d'Angers) 은 본래는 로마시대에 적들로부터 침략을 막으려고 세웠던 요새였었는데, 그 후에 970년부터 70년에 걸쳐서 Castle 로 다시 건축되었다. 15세기에는 King Charles 12세가 수도였던 파리에서 Jeanne d'Arc 에 내쫒겨 도망을 와서 이곳에서 머물렀던 곳이다.
성 안에는 거대한 Tapestry 가 있다. Angers 는 식도락 (Gastronomy) 과 이곳의 독특한 Wine 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슈농쏘 성으로 가는 바쁜 일정으로 아쉽게도 외곽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곳.
(3) Royal Castle. Loire 지역을 포함해서 남쪽으로 훨씬 넓은 지역을 모두 Champagne & Cognac Country 라고 부르는데 독특한 석회암 (Limeston) 토양 때문이다. 언덕진 땅을 파기도 아주 쉽고, 파고 나면 그대로 굳어지는
석회암 토양에다가 최적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어서 샴페인과 코냑을 생산하는 유일한 지역이다. Champagne 이라는 이름은 이 지방 말고는 쓸 수 없는 이름이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것들은 Sparkling Wine 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몇 년 전 WTO 가 프랑스의 손을 들어주어서 이제는 프랑스의 이 지방만이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쓸 수가 있다. Champagne 과 마찬가지로 Cognac 도 이 지방만이 쓸 수 있는 이름이다. 로아얄 성 (Royal Castle) 도 Loire 지역의 Amboise 시내에 있다. 옆에는 강이 흐르고 강둑의 한쪽은 꽃들이 만발하여 나무와 꽃에 묻힌 예쁜 도시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레오나드 다빈치 (Leonard de Vinci) 가 생의 마지막 3년간을 보냈다는 Amboise 의 Royal Castle.
15~16세기에 걸쳐서 건축된 Royal 성은 고딕 건축양식과 이태리식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건물의 왼쪽과 오른쪽의 건축양식이 다르다.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15~16세기 당시의 400~500년 전 가옥들. 오랜 세월이 흘렸지만 지금까지도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는 옛 모습의 가옥들이 지금도 활기찬 Town 을 이루고 있다.
1452년 이탈리아의 북쪽의 Florence 근처 Vinci 마을에서 태어난 레오나드 다빈치는 61살 때에 정치적인 이유로 Italy 를 떠나서 France 의 Amboise 에서 왕의 수석 화가, 건축가, 기술자로 지냈다. 성안에 있는 이 St. Hubert 예배당은 Loire 지역에서는 처음 으로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다. Royal Castle 의 예배당에 묻히기를 원하던 레오나드 다빈치의 소원대로 1519년 세상을 떠난 후에 그는 이 예배당에 묻혔다. 이탈리아에서 최고로 유명한 다빈치가 영면한 이곳에는 이탈리안 방문객이 많아서 주위에는 온통 이탈리안 식당들로 넘쳐난다. 그래서 이태리의 한 마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던 곳이다.
Henry 2세의 방.
16세기 복장으로 정원을 거닐고 있는 왕족과 귀족들의 모습. 당시를 그대로 재현하여 방문객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정원에 세워진 Leonard De Vinci 의 동상. 어릴 때부터 그림, 조각, 음악,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레오나드 다빈치는 그가 남긴 노트에 시계, 나침반, 습도계, 기압계의 설계도가 오늘날과 같은 원리로 그려져 있었다. 그는 모나리자
와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로 유명하지만 평생에 20여 점의 그림 밖에는 남기지 않았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늘을 날고 싶다는 소망을 버리지 못하고 비행기나 글라이더의 연구에도 몰두했다. 다재다능하고 전무후무한 천재 중의 천재였다.
(4) Carcassonne Castle 남부에 위치한 Carcassonne. 12~13세기에 세워진 중세시대의 성과 성채도시인 Carcassonne 도 매년 5백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인기 있는 Castle 이다.
슬기로운 지혜로 적을 물리쳤다는 Carcas 왕비의 석상.
성채 안에는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성 나제르 성당이 있는데 높게 세워진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다. 마침 러시아에서 왔다는 5인 중창단이 교회음악을 선사하고 있는데.... 웅장하고 위엄 있는 성당에서 중후한 저음으로 부르는 노래가 방문객들을 매료시킨다. 여러 곡을 부르고 끝이 나니까 한쪽에서 그들의 CD를 팔고 있다. 감동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씩 집는다. 성당에 헌금도 하고 중창단에게도 도움을 주는 심정으로...
Castle 은 고적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반대로 성 안으로 들어서면 관광객들이 와글와글하고, 예쁜 식당과 카페, 기념품
가게들이 가득하다. 과거에 이 지역에는 그들만의 언어와 문자가 있었는데 지금도 그 문자로 걸어놓은 가게의 광고판.
성의 내부는 아주 넓고 성곽은 2중으로 지어졌다. 성벽에는 모두 52개의 탑이 세워져 있다. 성벽과 성벽 사이를 계속 걸으면 성을 한 바퀴 돌게 된다.
요새는 원형의 2중 성벽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1,650m의 외곽의 원형 성벽 앞에는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연못처럼 만든 해자가 설치되어 있다.
Carcassonne 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Carcas’ 와 'Sonne' 이 결합된 것이다. 사라센의 왕 발락과 결혼한 Carcas 왕비가 살고 있던 성을 Charlemagne 황제가 몇 달간을 포위하면서 함락시키려고 했었다. 안에서는 식량이 다 떨어져서 돼지 한 마리와 약간의 밀만이 남게 되었다. 이때에 Carcas 왕비는 남은 식량을 먹는 대신 돼지에게 먹여서 살을 찌운 뒤에 살찐 돼지를 성 밖으로 던졌다. 던져져서 배가 터진 돼지에서는 엄청난 밀알이 쏟아졌다. 성을 포위하고 있던 적들은 돼지에게도 알곡을 먹인다면 성 안에는 아직도 상당한 양의 식량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철수를 하였다. 그래서 승리의 나팔을 울리게 (Sonne) 되었고 이것이 Carcassonne 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믿거나 말거나.
(5) 베르사유 궁전 (Chateau de Versailles) 베르사유 궁전은 파리의 교외에 위치하여 있다. 원래는 루이 13세의 별장이 있던 사냥터였는데,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호화로운 궁전을 지었다. 1682년부터 파리의 Louvre 궁전이 아닌 이곳이 공식적인 왕궁이 되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루이 16세가 파리로 다시 옮겨갈 때까지 107년간 왕실과 정부가 머물렀던 곳이다.
웅장하고 화려하기만 한 궁전.
궁전은 파리의 남서쪽 22Km 에 위치하며 17세기 말에 루이 14세에 의하여 지어진 궁전으로 넓고 호화로운 정원도 유명하다.
처음 궁전에 들어오면 어마어마한 규모와 호화로움에 압도되어 뭐가 뭔지도 모르고 돌아다니게 된다.
많은 방들은 호화로운 장식뿐만이 아니라 유명한 미술품들로 가득하다.
거의 격일마다 무도회가 열렸다는 거울의 방. 1783년 미국 독립전쟁 후의 조약 그리고 1919년 1차 세계대전 후의 베르사유 평화조약이 이 거울의 방에서 이루어졌다. 궁전에는 창문이 2,000개, 벽난로 (Fire Place) 가 1,200개, 계단이 67군데에 있다.
루브르 궁전을 버리고 베르사유 궁전으로 이사를 온 루이 14세는 거의 격일로 연회와 무도회를 열었는데, 이를 위해서 각 지방의 영주들을 불러들여 약 5천 명이 함께 살았다. 재미있는 것은 루이 14세는 냄새가 난다고 본인의 것 외에는 궁전에 화장실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용변을 해결해야 할 때에는 모두들 급히 먼 숲으로 뛰어야만 했다.
루이 14세의 방. " 짐은 곧 국가다 "
나폴레옹의 대관식 그림. 이것은 복사본이고 진품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왼쪽 앞줄의 네 명의 여자들 중에서 분홍색 드레스의 2번째 여자가 나폴레옹의 동생이다. 권력에 아부하느라고 나폴레옹의 여동생만 분홍색으로 그려놓았다. 어마어마하게 크게 그려져 있는 나폴레옹의 대관식 그림. 미술작품이 엄청 많아서 미술관에 온 듯한 기분도 들고.....
넓고 호화로운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은 정말로 어마어마하다. 본래는 2,420만 평이었지만 지금은 246만 평의 숲과 정원이 남아있다. 정원에는 260개의 조각상과 1,400개의 분수가 있고 1.6Km 나 되는 운하도 있다.
(6) Fontainebleau (퐁탠블로). 밀레가 그림을 그리고 살았던 Barbizon 에서 멀지 않은 이곳에 나폴레옹이 머물렀던 퐁탠블로 궁전이 있다. 자연과 전원생활을 사랑했던 자연주의파 화가들이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에 모여서 살며 전원의 풍경을 주로 그렸던 Barbizon 에서 Fontainebleau (퐁탠블로) 로 가는 길은 주위의 경치가 매우 좋다. 밀레의 집이 있는 Barbizon 에서는 10Km 정도 되는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파리에서부터는 남동쪽으로 약 60Km 정도 거리가 된다. 베르사유 궁전보다는 작지만 나폴레옹이 가장 좋아했다는 퐁탠블로 궁전.
France 르네상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수아 1세가 1528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루이 16세에 이르기까지 7명의 왕들이 궁전 건축을 계속하여 완성시켰다. 그 후 나폴레옹이 궁전을 보수하였고 그는 1814년 이곳에서 그만 폐위를 당했다. 궁전에서 앞 광장으로 내려오는 계단은 아주 특이한 모양이다. 페리 슈발이라 불리는 계단인데 말발굽 모양이다. 나폴레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려고 계단을 내려와 근위병들에게 고별사를 하고는 Elba 섬으로 유배되었다. 그래서 계단 앞 광장의 이름이 백마 광장이었으나 그 후로 이별의 광장이라고도 불린다. 계단 우측에는 나폴레옹 박물관이 있다. 나폴레옹은 이 궁전을 좋아해서 베르사유나 다른 궁전들을 마다 하고 이곳 퐁탠블로 궁전에서 주로 집무를 하였다.
12세기부터 퐁탠블로의 광대한 숲은 원래는 왕가의 사냥터였었다. 숲 가운데에는 휴식을 위한 저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자리에 궁전과 정원이 세워지게 된다. 마차를 타고 몇백 년 전의 퐁탠블로 숲을 상상해보면서 즐거워하는 관광객들. 퐁탠블로 궁전의 정원은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만큼 넓지는 않지만 매우 아름답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설계했던 르노트르가 이곳의 정원을 조성했고 슈농쏘 Castle 의 주인 메디시스가 만든 다이애나 정원, 영국 정원, 연못 등이 있다.
퐁탠블로 궁전에서는 프랑수아 1세의 화랑, 앙리 2세가 만든 무도회실 등이 유명하다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 되어 쫓기듯이 금방 나와야 하니 궁전 안에 들어가는 것을 그만두어야 했던 곳.
(7) Chateau d'Malmaison (말메종 Castle) 말메종 Castle 은 파리에서 서쪽으로 17Km 떨어져 있는 Malmaison 에 있다.
나폴레옹의 부인이었던 조세핀이 살던 집이다. 1796년 2남매를 둔 33세의 젊은 미망인이었고 사교계에 널리 알려졌던 조세핀은 6년 연하인 나폴레옹과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하였다. 결혼한 3년 후인 1799년에는 1622년에 건축된 말메종 Castle 과 주위의 대지 260 헥타르를 구입하게 된다. 아름다운 정원과 화려하지 않은 저택이 있는 말메종을 사랑한 나폴레옹과 조세핀은 이곳에 머물며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한 후에는 주로 퐁탠블로의 궁전에 거주해야 했는데 조세핀은 말메종을 그리워했다. 조세핀은 넓은 공간의 정원을 좋아해서 약 200종류의 희귀한 꽃들을 심었다. 그녀는 특히 장미를 좋아해서 250종류의 장미 정원을 만들었다.
Josephine 의 초상화. 나폴레옹의 아이를 낳지 못한 조세핀은 1809년 나폴레옹과 이혼을 하게 되었으나 조세핀을 사랑한 나폴레옹은 그녀를 말메종으로 보내서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게 배려하였다. 나폴레옹은 1810년 Austria 공주 Marie Louise 와 결혼하여 아들 프랑스와를 얻게 된다.
평생 그녀를 잊지 못했던 나폴레옹은 유배를 떠나기 전에도 말메종을 찾아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나폴레옹이 죽을 때까지 사랑했던 조세핀. 그녀는 사치가 대단하여서 엄청난 빚을 끌어다 쓰면서도 옷과 장신구, 비싼 접시들을 끊임없이 사들였다. 오죽하면 이탈리아 전쟁터에 나가있던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보낸 편지에서 '돈 좀 그만 펑펑 쓰시오'라고 했겠는가.
붉은 천과 금실로 화려하게 장식된 조세핀의 침실. 그녀는 이곳에서 1814년 5월에 생을 마감했다.
진열된 유품 중에는 가운데에는 나폴레옹이 있고 주위에는 충성을 다한 그의 13명의 장군들이 있는 커다란 장식품..
접시들은 중앙에는 풍경화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고 접시 가장자리에는 3cm 정도로 둘러 가며 금색으로 화려하게 칠해져 있다.
접시 하나의 값이 무려 4만 유로가 넘는다. 부르는 게 값이니까!! 조세핀이 최고가의 물건들을 마구 사들이며 발행했던 차용증서들도 전시되어 있다는데... 어디에 있는지 돌아다니며 찾아보았지만, 이 넓은 전시실의 어디에 있는지 결국은 보지 못하고 말았다.
(8) Chateau d'Chantilly (샹티이 Castle) 파리 북쪽으로 41Km 떨어진 노네트강 연안에 있는 샹티이 숲속에 있는 성이다.
샹티이 Castle 로 가는 길은 유명한 생크림 Cream de Chantilly 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그길로 계속 가면 벨기에 국경이 나온다.
성의 주인이었던 Conde 공의 이름을 따서 Conde 박물관과 도서관이 있다. 그림 1천 점, 스케치 2천 5백 점, 고서 3만 권 등 희귀한 필사본과 고서들이 소장되어 있는 박물관이다.
르네상스 양식의 샹티이 성은 마치 수면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 대혁명 때에 파손된 것을 19세기에 복원한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때에는 프랑스군의 총사령부로 쓰이기도 했다. 샹티이 성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1671년 루이 14세가 이곳에 초대된 날, 당시에 유명했던 요리사 Vatel 은 요리 재료의 배달 지연으로 왕의 식사를 준비 못하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신선한 생선을 내놓으려고 날짜에 맞추어 배달을 원했으나.... 중국의 진시황 때에는 식사 때마다 매번 새로운 요리를 내놓지 못하면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 몰랐다고 하는데.... 동양이나 서양이나 크게 다르지 않구나.
샹티이 성은 2005년 2월 Valentine Day 에 유명한 축구선수 호나우두가 비행기를 전세 내고 무려 70억 원을 들여서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성에서 바로 보이는 몇백 m 위쪽에는 18세기의 거창한 건물인 큰 마구간 (Stable) 과 말 박물관이 있다.
마음따라 길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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