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ire 지역을 포함해서 남쪽으로 훨씬 넓은 지역을 모두 Champagne & Cognac Country 라고 부르는데 독특한 석회암 (Limestone) 토양 때문이다.        언덕진 땅을 파기도 아주 쉽고 파고나면 그대로 굳어지는 석회암 토양에다가 최적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어서 샴페인과 꼬냑을 생산하는 유일한 지역이다.

 

 

 

 

 

 

 

Champagne 이라는 이름은 이 지방 말고는 쓸 수 없는 이름이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것들은 Sparkling Wine 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몇년 전 WTO 가 프랑스의 손을 들어주어서 이제는 프랑스의 이 지방만이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쓸 수가 있다.      Champagne 과 마찬가지로 Cognac 도 이 지방만이 쓸 수 있는 이름이다.

 

 

 

 

 

 

 

그렇구나~    또 한잔 주욱~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샴페인은 건배하고 한모금하면 더 이상은 못한다.

 

 

 

어 ~~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큰 병의 샴페인을 몽땅 마셔버릴 작정이신가.... 

 

                   

 

Leonard de Vinci 가 마지막 3년간을 보냈다는 Amboise 에 왔다.

 

 

 

이곳에 있는 Royal 성을 관광하기 전에 점심을 하기로 되어있는데 도무지 여기가 불란서의 도시인가 싶다.

 

 

 

 

 

이곳이 이태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서 그런지 식당들의 메뉴가 피자, 스파게티, 라싸냐 등의 이태리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불란서 음식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결국 급히 들어간 곳에서 주문한 샌드위치.      햄을 넣고 피만도 넣고 했는데…     맛이 엉망이다.       세계3대 음식이 중국음식, 불란서음식, 터키음식인데, 불란서에 와서 맥도날드 다음으로 두번째로 실망한 점심이 되었다.  

 

 

 

 

 

15~16세기에 걸쳐서 건축된 Royal 성은 고딕 건축양식과 이태리식 르네샹스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설명이 끝나고 가이드 Simeon 군이 1시간 후에 다시 모인다고 하자 모두들 시계를 보고있다.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모두 15~16세기 당시의 가옥들. 

 

 

 

 

 

 

 

 

 

 

 

St. Hubert 예배당은 Loire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다.     Royal 성의 예배당에 묻히기를 원하던 레오나드 다빈치의 소원대로 1519년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이 예배당에 묻혔다.   

 

 

 

1452년 이탈리아의 북쪽의 Florence 근처 Vinci 마을에서 태어난 레오나드 다빈치는 61살 때에 정치적인 이유로 Italy 를 떠나서 France Amboise 에서 왕의 수석 화가, 건축가, 기술자로 지냈다.

 

 

 

 

 

 

 

 

 

Cupbearer's Room.

 

 

 

Henry 2세의 방.

 

 

 

웅장하고 멋있는 왕과 귀족들의 Castle 도 좋고 화려한 침실들도 좋지만...    구경하기도 보통 힘든 것이 아닌데 이거 무슨 횡재인가...     쉬어갈 수 있는 자리가 있다니.      호주에서 온 Liz Florida 어느 도시에서 온 Miriam 은 완전히 지친 표정이고, Miami 에서 온 Iris Zenia 는 자리를 차지한 것이 매우 즐거운가 보다.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Loire .

 

 

 

 

 

 

 

16세기 당시의 복장으로 정원을 거닐고 있는 왕족과 귀족들.

 

 

 

 

 

 

 

 

 

 

 

정원에 세워진 Leonard De Vinci 의 동상.      어릴 때부터 그림, 조각, 음악,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레오나드 다빈치는 그가 남긴 노트에 시계, 나침반, 습도계, 기압계의 설계도가 오늘날과 같은 원리로 그려져있었다.      그는 모나리자 최후의 을 그린 화가로 유명하지만 평생에 20여 점의 그림 밖에는 남기지 않았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늘을 날고 싶다는 소망을 버리지 못하고 비행기나 글라이더의 연구에도 몰두했던 다재다능하고 전무후무한 천재 중의 천재였다.

 

 

 

레오나드 다빈치와 똑같이 분장한 하얗고 긴 수염의 Leonard De Vinci 와 함께.

 

 

 

저녁 무렵의 Loire 강가의 배.

 

 

 

Amboise 시내는 옆에는 강이 흐르고 강뚝의 한쪽은 꽃들이 만발하여 나무와 꽃에 묻힌 도시처럼 예쁘다.

 

 

 

 

 

 

Chenonceau (Chateau de Chenonceau, 슈농쏘성) 에 왔다.

 

 

 

Loire 지역은 프랑스에서 가장 긴 Loire River 를 끼고 언덕과 아름다운 숲 그리고 크고 작은 성들이 많이 있다.      중세시대부터 Loire 강을 중심으로 계곡 사이에 왕과 귀족들이 그들만의 성을 쌓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성들이 유별나게 많다.

 

 

 

프랑스 전역에 약 5천개의 성이 있는데 80개의 성이 이 지역에 몰려있어 Chateau Country (Castle Country) 라고도 불린다.

 

 

 

Chenonceau 성은 강물 (River Cher) 위에 지어진 것이 특이하다. 

 

 

 

 

 

River Cher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이 성은 대대로 영주가 여자였던 것도 특이하다.      원래는 Henry 2세가 그의 연인이었던 Diane de Poitiers 에게 선물한 것 이었는데 Henry 2세가 죽자 왕비였던 Catherine de Medici 가 이 Castle 을 빼앗고 그녀를 작은 쇼몽성으로 쫒아버렸다.    그후로도 이 Castle 의 주인은 계속 여자들이 되었다.

 

 

 

 

 

성 안에 있는 예배실.

 

 

 

Henry 2세의 연인이었던 Diane 의 침실.

 

 

 

 

 

 

 

루이14세의 초상화 아래서...    이 방은 Louis XIV's Drawing Room 이라고 불린다.      1650년 7월14일 루이14세의 방문기념으로 그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루이15세, Spain 왕 필립5세의 초상화도 걸려있다. 

 

 

 

Henry 2세의 왕비였던 Catherine 의 침실.

 

 

 

이 방은 또 누구의 침실이었는지 ?       새로운 주인이 들어올 때마다 다른 방을 자신의 침실로 새로 만들었다.    그래서 성에는 화려한 침실이 여러개가 있다.

 

 

 

 

 

 

 

층층이 오르내리며 구경하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중간에 베란다에 나와서 정원을 바라보며 한숨을 돌리고

 

 

 

 

 

 

 

벽에 걸린 Tapestry 의 주인공처럼.      나도 양팔을 번쩍 올리고

 

 

 

 

 

Gallery.     1576년에 Henry 2세의 왕비 Catherine 이 만들어놓은 그림전시실.

 

 

 

Louise of Lorraine 의 침실.       그녀의 남편 Henry 3세가 암살을 당한 후에는 우울증에 걸려서 침실을 어둡게하고 이 방에서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어둠의 방이라고 불린다.       무엇이라 불리든 누가 상관하랴....

 

 

 

 

 

 

 

 

 

 

 

부엌의 냄비와 모든 식기들이 번쩍번쩍 빛난다.      그 옛날에 부엌에서 일하던 하녀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러웠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정원도 Henry 2세의 연인 Diane 이 만들어놓은 정원과 그후에 왕비 Catherine 이 자기의 취향에 맞는 정원을 반대편에 하나를 더 만들어서 2개의 정원이 있다.

 

 

 

 

 

 

 

정원에서 농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 아래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한무리의 관광객들.

 

 

 

 

 

성에서 필요한 채소와 작물을 공급하던 16세기의 농장도 보존되어 있다.

 

 

 

 

 

 

 

농장이 왜 이렇게 화려한지.....    지금은 입장료를 받는 관광지라 더 예쁘게 꾸며놓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호주에서 온 동료여행객 Steve.       불란서여행이 끝나면 고향인 이태리에 들렸다가 호주로 돌아간다고 한다.      호주로 가서 살다가 정말로 오랫만에 이태리의 고향땅을 가는지 벌써부터 그날을 기다리는 것 같다.

 

 

 

농장에서 성 밖으로 나가는 길.

 

 

 

Amboise Royal 성으로 가기 전에 샴페인을 만드는 주조공장에 들려서 설명도 듣고 한잔 주~욱 들이키러 이동을 한다.

 

 

 

 

 

 

작은 도시에 들려서 간단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가이드가 오늘 저녁은 Tours 도착 후에 멋있는 식당에서 Big Dinner 가 기다리고 있으니 가벼운 점심을 권한다.      가이드가 추천한 곳 중의 하나인 이 집은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다 이유가 있다.     여행다닐 때에는 시간적으로 쫒기지만 않는다면 줄을 서서 기다려보는 것도 좋다.       긴 바케트 빵속에 Beef Cheese 를 넣어주는데 우리가 흔히 먹는 Hot Dog 2배 정도나 크다.      그리고 굽는 기계에 넣어서 전체를 뜨겁게 구워서 준다.       어른 손바닥보다도 더 크게 보이는 Cookie 도 Dessert 라며 함께 준다.        Drink 포함해서 두사람 분으로 9.4유로...     대만족이다.       어느 나라든지 역시 소도시의 물가는 좋다.

 

 

 

 

 

점심도 하고 휴식을 위해서 잠시 멈춘 이곳이 Laval 이다.        아하~  불어를 사용하는 Canada 의 퀘벡주에 있는 Montreal 과 붙어있는 도시 Laval 의 지명을 이곳에서 따온 것이 틀림없구나.

 

 

 

 

 

Laval 도  도시 중간에 강이 흐르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이다.       프랑스의 도시들은 규모에 상관없이 모두 예쁘다.      멀리 있는 큰 Bridge 처럼 보이는 로마시대의 물 수송수단 이었던 Roman Aqueduct 도 보인다.       그러니까 이 도시도 2천년이 넘은 도시이다.

 

 

 

Tours 로 가는 중간 도시인 Angers (앙제) 에 왔다.       Loire Valley 지역에 자리잡은 앙제는 대학도시로 학생들이 많다.  

 

 

 

 

 

식도락 (Gastronomy) 과 이곳의 독특한 Wine 으로 유명하고, 13세기에 건설된 앙제 Castle (Chateau d’Angers) 이 있다.

 

 

 

 

 

 

 

이름난 건축물로 아담의 집 (Maison d’Adam) 이다.     15세기에 지어졌는데 현재는 전통공예점과 기념품점이다.     르네쌍스양식을 따른 북쪽 지방의 전통 건축양식이라고 하는데 건물 전체에 정교한 조각들이 하나하나 새겨져있다.

 

 

 

 

 

 

 

Tours.      여기서 이틀을 보내며 이곳 Loire 지역을 관광한다  

 

 

 

그런데 이 주위의 가로등들이 아주 이상하고 멋없게 생겼다.        예술의 나라에서 아주 흉칙한 가로등을 보고 간다.     아래 사진도 도무지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는 철물조형물이다.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인데....      이곳 환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오늘 저녁식사는 Tours 의 구 시가지의 중심이며 카페와 상점, 화랑들이 줄지어있는 플뤼므로 광장의 옆에 있는 먹자골먹이다.        레오나드 다빈치란 이름의 식당으로 간다.

 

 

 

 

 

 

 

 

 

 

 

식당의 벽에는 팔을 벌리고 서있는 모양의 다빈치도 만들어 걸어놓았고, 분위기가 아주 좋다.

 

 

 

맛있는 Salad 까지는 사진으로 기억하겠는데 Main Dish 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도 없고 사진도 없다.      오랫만에 모두들 떠들고...     잔을 부딪치고 하느라고...

 

 

 

우리 일행들이 차지한 2층 창 밖으로는 금요일 저녁의 떠들석한 Tours 市의 먹자골목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기타연주와 노래에 모두들 흥이 오르고....     Wine 은 무한정 Serve 되고 있으니 모두들 기분이 좋은가 보다.      왁자지껄....    여행을 시작하고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하는데 좋은 음악과 와인까지 곁들이니.... 

 

 

 

 

 

 

 

 

 

 

 

 

 

내일은 여기서 2군데의 관광이 예정되어 있다.      Henry 2세의 연인이 살던 Chenonceau Castle 과 레오나드 다빈치가 묻혀있는 Royal Castle 이다. 

 

 

 

 

 

 

Mont St. Michel.        원래는 숲으로 둘러싸인 섬이었지만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해일로 숲은 사라지고 해발 150m 위에 화강암의 바위만 남은 곳이다.

 

 

 

입구에는 대포도 전시되어 있어 과거에는 군사요새로 쓰여졌던 곳이었던 것을 암시한다.

 

 

 

섬으로 들어와서 수도원으로 가려면 가게들과 집들이 있는 조그만 동네를 지나서 더 올라가야한다.

 

 

 

 

 

 

 

'바위 위에 수도원을 세워라' 라는 St. Michel (대천사장 Michael) 의 반복되는 계시를 들은 토베르 주교가 708년 수도원의 건설을 시작해서 무려 800년 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던 수도원.

 

 

 

 

 

처음에 이곳은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시작했지만 천혜의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종교적인 목적과는 달리 여러번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      14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100년 전쟁 중에는 방어용 벽과 탑을 쌓아 전략기지로 요새화 되었고, 나폴레옹시대에는 정치범을 수감하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방어용으로 개조해놓은 곳을 많이 볼 수 있다. 

 

 

 

여기가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내가 오늘의 첫번째 방문자인가 ?

 

 

 

우리 Group 은 개장시간인 9시보다 훨씬 전에 도착해서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더 둘러본다.

 

 

 

이 집은 틀림없이 누구인가 사는 집 같은데 문이 굳게 닫혀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것이 망원렌즈에 잡힌다.

 

 

 

 

 

 

 

개장시간이 되자마자 밀려든 인파로 와글와글...    갑자기 대만원 상태가 되었다.     어디서 갑자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는지...    계단 밑으로도 사람들의 홍수를 이루고 있다.

 

 

 

 

 

 

 

 

 

수도원 탑의 맨 위에는 대천사장 St. Michel 의 금색 형상이 올려져 있다.

 

 

 

 

 

수도원 내부의 지도를 보며 열심히 가이드 Simeon 군의 설명을 듣고 있는 우리 Group 여행객들.       이제부터는 자유시간이다.      각자 흥미롭고 보고 싶은 곳을 돌아다니는 묘미가 대단하다.

 

 

 

예전에는 조수간만의 차이로 바닷물이 들어차면 고립되어서 물이 빠질 때까지는 꼼짝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1.6Km 의 제방길을 쌓아올려서 간만의 차이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쉽게 항시 섬으로 갈 수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30분 전에 우리가 도착할 때에 세워놓은 버스는 다른 곳으로 옮겨져있고 그 자리는 지금 바다물로 거의 채워져있다.

 

 

 

St. Michel 을 모신 수도원은 10세기 말에 지어졌고 고딕양식의 La Meveille 13세기가 되어서야 완성되었다.

 

 

 

본당은 나무 패널로 된 둥근아치형 천장 (Wood-panelled barrel vault) 인데 이슬람식의 건축양식과 흡사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까 Spain 남쪽 안타루치아 지방의 Granada 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과도 닮은듯 하다.

 

 

 

 

 

 

 

 

 

 

 

 

 

불란서에는 2군데의 Black 마리아 (Madona) 상이 있는데, 여기 Mont St. Michel 과 또 하나는 Rocamadour 市에 있는 역시 낭떠러지 암벽 위에 있는 Miraculous 성당이다.

 

 

 

기도를 하던 곳이었던가 ?

 

 

 

 

 

 

 

 

 

 

 

내부는 큰 성당들과는 달리 호화로운 장식은 전혀없다.       웅장하면서도 검소하고 청빈함이 느껴지는 수도원의 내부.

 

 

 

 

 

 

 

 

 

 

 

 

 

섬 안에는 주민이 약 100 명 거주한다고 한다.       섬 안에는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가게들과 골동품가게들이 즐비하고 매우 작은 규모의 호텔들로 북적거린다.

 

 

 

 

 

 

 

 

 

중세시대 문맹율이 70%를 넘던 시절의 상점의 간판들.       주로 철물로 물건모양을 만들어 걸어놓았다.       식당은 냄비나 후라이팬을 걸어놓고    술집은 솔잎을 걸어놓고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간 곳의 모래를 씻어내고 있는 물차.

 

 

 

밖에서 가까이 보면 아주 평범해 보이는 수도원.  

  

 

Bayeux (바이유)      1944년 연합군의 상륙작전으로 첫번째로 독일군에서 해방된 도시이지만 놀랍게도 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도시이다.      바이유가 탈환되자 곧바로 France 의 수도로 공표되었고 Paris 에서 독일군을 몰아낼 때까지 1944년 6월7일부터 8월25일까지 80일간 France 의 Capital City 였다.

 

 

 

 

 

 

 

바이유에 있는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Tapestry 에 왔다

 

 

 

 

 

 

 

결혼식을 끝내고 이곳에서 사진을 촬영을 하는 신혼커플.

 

 

 

 

 

Tapestry.       길이가 무려 70m 높이가 50Cm 이다.      천 위에 물감들인 양털실로 그림을 그리듯이 일일이 수를 놓은 (Roll of Linnen Canvas) 역사의 이야기이다.

 

 

 

1066년에 William 왕이 어떻게 Dramatic 하게 영국을 정복하였는지를 58개의 Panel 로 나뉘어서 묘사하고 있다.        Handset 을 귀에 대고 다니면 각 Panel 을 지날 때마다 자세하고 흥미로운 설명이 나온다.       William 왕 자신이 쓴 이야기이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지만 객관성이 조금은 결여되었다는 설명을 우리 가이드가 덧붙인다.

 

 

 

 

 

 

 

 

 

Bayeux 성당.      11세기에 시작해서 15세기에 완공된 Norman Gothic 건축양식이다.

 

 

 

 

 

 

 


 

 


 15~18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가옥들이 성당과 Main Street 주변에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        그러니까 600년에서 300년 전 옛 골목의 가옥들이다.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동차 동호인들의 Parade 이다.       똑같은 멋진 스포츠카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한껏 받으며 성당길로 들어오고 있다.       파리에서는 일요일 아침에 개선문 앞 상제리에의 대로를 달리는 약 40대의 Ferrari 행렬을 보았다.

 

 

 

 

 

 

Mont St. Michel (몽생미셀) 에 왔다.       오늘은 여기서 숙박을 하고 내일 오전에 Tour 가 예정되어 있다.        大천사 마이클 (Michael) 의 山 이라는 뜻인데 Michael 을 불어로 부르면서 미셀이 되어 Mont St. Michel 이 되었다.         타운의 호텔로 버스가 들어가기 전에 골목길로 들어가 이곳에서 사진을 찍도록 배려를 한다.        해질 무렵의 역광으로 모두들 매우 힘들게 한장씩 누르고 간다.

 

 

 

 

 

 

 

 

 

 

 

내일 아침에 관광이 예정되어 있지만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저녁을 하기 전에 제방길을 따라서 사진을 찍기 좋은 곳까지 산보를 왔다.       내일은 버스로 이동을 하여서 이곳에 오면 멀리서 좋은 사진을 찍을 기회가 없을 것이다.        우리뿐 아니라 같이 여행하는 동료여행객들도 많이 나왔는데 모두들 모기떼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아우성들이다.

 

 

 

이곳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첫 발을 내밀자마자 곧바로 달려드는 모기떼들은 호텔 로비에도, 길에도, 저녁을 하러 들어간 식당에서도 어김없이 달려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물리면 마구 가렵고 퉁퉁 부어올라서 오랫동안 고생을 시키는 독종이 아닌 것 같다.        몇 번 가렵다가는 곧 잊어버려도 되는 아주 점잖고 Gentle 한 모기들이다.        그래도 얼마나 모기들이 많은지 정신 차리기가 힘들다....

 

 

 

 

 

 

 

 

 

어제는 유일하게 주어진 점심 자유식사 시간에 그만 촉박한 시간에 쫒겨 McDonald 로 뛰어들어가는 황당한 일을 벌리고 말았으나 오늘 저녁은 자유식사 시간이라 마음이 모두들 느긋하다.        가이드가 추천한 식당 중에서 바로 호텔 앞의 식당에 들어왔는데 관광지이지만 음식도 맛있고 가격도 적당하다.        음...  다양한 불란서의 Seafood 요리 중에서 고른 우리 두사람의 요리가 매우 만족스럽다.

 

 

 

 

 

 

 

내일 오전에 돌아볼 Mont St. Michel 관광에 대한 기대가 크다.       방 안에서 돌아다니는 모기를 4마리나 찾아냈으니 이제는 모기 걱정없이 잠자리에 든다.

 

 

 

 

 

방에서 창 밖으로 보이는 분수대가 파랑, 노랑, 빨간색으로 바뀌고 있다.       모기떼들만 아니면 좀 더 밖에서 시간을 보내도 되는 날인데……

 

 

오늘 아침에 노르망디 상륙작전 해변으로 가기 전에 어제밤에 우리가 묵었던 Caen 의 시내를 돌아보고 떠난다.      Caen 의 시청건물인데 고딕양식의 옛 건물이 보기에 좋다.      시내의 중심지에 있는 건물의 주위도 역시 아주 오래된 건물들이 몇개 보이지만, Caen 은 노르망디 상륙잔전 때에 치열한 전투를 벌렸던 곳이었다.     그래서 많은 건물들이 폭격을 받아서 옛 건물이 남아있는 것은 별로 없다.       불란서에서는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도시중의 하나로 꼽힌다.    도시의 70%가 전쟁의 잿더미로 변하였던 곳이었다.  

 

 

 

Caen 1944 66일 새벽 6시 상륙작전 후 영국군이 아침 9시까지 탈환하기로 예정된 곳이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조심스럽게 진군하던 영국군은 곧바로 진군할 수 있었던 좋은 타이밍을 놓치고 독일군과 밀고당기는 전투를 하게되면서 거의 한달이 지난 79일에야 Caen 에서 독일군을 완전히 몰아내었다.

 

 

 

 

 

 

 

 

 

Omaha 해변에 조성된 American Cemetery 172 에이커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이다.     전투가 벌어졌던 그곳에 아름답고 경건하게 Cemetery 가 조성되어 있다.

 

 

 

 

 

2차세계대전때의 Normandy 상륙작전 (Invasion of Normandy) 은 미국과 영국군이 주축이 되고 카나다군도 합세한 연합군이 1944 66일 노르망디 반도에 상륙한 지상 최대의 작전이었다.

 

 

 

 

 

기념비 벽에는 상륙작전이 어떻게 수행되었는지 도표로 설명이 잘 되어있다.

 

 

 

 

 

 

 

작전에 동원된 장비및 군인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함선 1,200, 항공기 10,000, 상륙함정 4,126, 수송선 804, 수백대의 수륙양용 장갑차가 동원되었다.      155천 명의 연합군 병력 (미군 73, 영국.카나다 합동군 82) 상륙작전에 참가했는데 1325백 명은 배로 도버해협을 건너서 상륙했고 235백 명은 항공기로 공수되어 노르망디 해안에 투하되었다.       해변으로 내려가는 조그마한 길이 멀리 보인다.

 

 

 

 

 

작전명은 대군주 (Operation Overlord).

 

 

 

1944 65일로 결정된 작전은 그 전날 갑작스럽게 도버해협에 태풍이 몰아치면서 상황이 매우 심각해졌다.      그러나 65일 총사령관 아이젠하워의 결정으로 상륙작전이 강행되었고, 마침내 연합군은 66일 새벽에 먼저 공수부대가 노르만디 일대에 뛰어내려 주요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으로 Operation Overlord 를 개시했다.

 

 

 

셀부르항에서 가장 가까운 서쪽으로부터 Utah Beach (미국), Omaha Beach (미국), Gold Beach (영국), Juno Beach (카나다), Sword Beach (영국) 이라 암호명을 붙여졌다.     그때의 군사작전 암호명이 그대로 지금의 지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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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하 해변 미국 보병 1 & 29 사단, 2 Ranger 예하 8개 중대

골드 해변 영국 보병 50사단, 8 기갑여단

주노 해변 카나다 3 보병사단, 2 기갑여단, 48 코만도 대대

소드 해변 영국 3 보병사단, 27 기갑여단

 

 

 

 

 

공군과 해군의 강력한 엄호아래 Omaha 해변을 제외한 모든 상륙지점의 상륙부대는 순조롭게 상륙에 성공하였다.     Omaha 해변의 상륙부대도 독일군의 거센 저항을 물리치고 상륙에 성공하지만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치열한 전투였다.

 

 

 

독일군의 예상과는 달리 연합군은 해협의 폭이 가장 넓은 노르망디에 상륙하기로 결정한다.      예상을 뒤엎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대항하는 독일군의 주력 최강 기갑부대는 거의 하루가 지나서야 노르망디에 출동할 수 있었다.

 

 

 

 

 

미군은 상륙작전에서 9,387 명이 전사했고 여기 이곳에는 1,557 명의 전몰장병의 무덤이 있다.      나머지 군인들은 가족들의 희망에 따라 미국본토에 묻혀있다.

 

 

 

 

 

망원렌즈에 잡힌 저 멀리 보이는 방문객들은 그들의 친지들이 이곳에 상륙하였던 그때를 회상하며 해안의 끝까지 내려가있으리라 믿어진다.

 

 

 

 

 

지하에는 기념관이 있어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극장과 넓은 전시관이 있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평화는 절대로 구호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준다.

 

 

 

 

 

 

 

영국군이 상륙한 Sword 해변에 왔다.      Cemetery 는 없고 D-Day 박물관이 보인다.

 

 

 

이곳은 기념품가게들로 꽉 차있고, Seafood 를 주 Menu 로 하는 식당들이 줄줄이 늘어서있는데 아주 예쁘게 정돈되어 있다.

 

 

 

버스로 이곳으로 오면서 보니까 카나다군이 상륙한 Juno 해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Canada 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는데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에 모든 곳을 다 들릴 수는 없으니까.....

 

 

 

 

 

 

 

이곳의 모든 식당들이 밖에 걸어놓은 메뉴판을 보니 가이드가 말한대로 온통 Seafood 요리로 가득하다.       아주 맛있게 음식을 할 것 같은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너무나 많은 손님들로 우리 차례가 오려면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시간에 쫒기기 전에 다른 식당으로 와서 이 지방의 전통음식인 홍합으로 점심을 주문했다.      가이드가 추천한 홍합 요리 중에서 백도포주와 크림소스에 Onion을 넣어서 요리한 홍합점심이다.      무지막지하게 엄청 큰 그릇에 가득 넣어서 나온 크림소스의 홍합을 까먹는 맛이 아주 좋다.

 

 

 

 

 

 

 

해안에 전시된 무기들.      그런데 USA 마크가 선명하다.      영국군이 상륙한 해변에 미국 수륙양용 장갑차가 전시되어 있다니 무엇인가 이상하기도 하다.

 

 

 

햇볕은 환하게 나고있지만 약간은 쌀쌀한 기후인데 유일하게 이 노부부만이 물에서 나오고 있다.      아마도 상륙작전에 참가하였던 영국군이었던 노부부가 아닌가 싶다.

 

 

 

 

 

 

 

영국군이 상륙작전에 이용하였던 바다에 보이는 씨멘트 부조물. 

 

 

 

 


이제는 Bayeux 로 이동을 한다.

 

토론토에서 늦은 밤에 떠난  비행기가  다음날 아침에 Paris 착륙을 준비중이다.     우리는 파리에 두번 왔던적이 있기는 하지만, 두번 다 영국의 London에서 해저로 다니는 Eurostar 열차로 파리에 왔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바다밑 땅속을 지나오는 것은 정말로 지하철 속에서 2시간을 꼼짝없이 갇혀있는 것과 똑같으니 여행의 기분이 전혀 나지않는 것이다.       비행기로 입국을 하게되니 정말로 불란서 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는 912일부터 101일까지 20일간 France 를 돌아다니게 된다.        여행일정중 처음 14일간은 파리를 바로 떠나서 France 북서쪽으로,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가고 다시 북쪽으로 올라와서 파리에서 끝이나는 Group Tour 를 마친다.         그리고 파리에서 6일간을 더 지내는 여행의 일정이다.

 

 

 

첫날 파리에서 북서쪽 도시 Caen 으로 떠나는 이른 아침에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호텔에서 나가는 길을 어느 승용차가 옆으로 비스듬이 주차하여서  덩치가 큰 버스가  조그마한 차를 피하여서 나가느라고 앞뒤로 왔다갔다를 반복하면서 10여분을 소비하고 20m를 가니 이번에는 도로에 미니밴이 불법주차 되어있다.      조그만 승용차들만이 겨우 피하여서 나갈 수 있는 공간만을 남겨놓고 어느 집에서인가 곤히 주무시는가 보다.        결국은 예정시간 보다 1시간이 지나서야 출발하게되는 일이 벌어졌다.

 

 

 

Rouen.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1시간30.          로마시대부터 있던 도시였으니 적어도 2천 년은 더 된 아름다운 도시이지만 Jeanne d'Arc 에 관한 역사가 있는 도시이다.

 

 

 

루앙 대성당.       전형적인 고딕양식이다.       1063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몇세기를 거쳐서 완공되었다.

 

 

 

 

 

 

 

가장 높은 첨탑의 높이가 151m 로 프랑스의 성당 중에서는 제일 높다.

 

 

 

대시계.      14세기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시계바늘이 하나인 것이 특징이다.      많은 목조가옥들과 상점들이 들어서있는 번화가이다.

 

 

 

1338년부터 100년간 이어졌던 피비린내 나는 불란서와 영국의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굳어가고 있었고 노르만디가 있는 북 France는 초토화 되었다.      그리고 곧 France 대부분이 영국에 점령당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위급한 상황에서 홀연히 나타나 불란서를 구한 영웅이 바로 1412년생 17세의 소녀 Jeanne d'Arc    절망적인 상황에서 잔다크의 활약으로 프랑스가 승리를 목전에 두게되자 이제는 프랑스의 왕과 귀족들은 거의 신적인 존재로 존경받고 추앙받는 그녀가 큰 부담이 되어서 제거작업에 나서게 되었다.        그래서 은밀하게 영국에게 그녀를 넘겨주게 된다.         오랜 전쟁에서의 패배의 원인을 누구에게든지 뒤집어씌워야하는 영국에서는 “악마의 도움을 받은 마녀 때문에 전쟁에 졌다”  는 종교재판을 거쳐서 19세의 그녀를 Rouen 의 이곳에서 1431 530일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에 처했다.       결국 그녀는 거의 500년이 지난 1920년에 성인 (聖人) 에 오르게 되었다.       화형을 당한 그 자리에는 배모양을 본떠서 만든 기념성당이 세워져있다.

 

 

 

Jeanne d'Arc 1431 530일 이곳에서 화형을 당했다는 푯말이 있을뿐 그녀의 동상은 없다.     금빛 찬란한 그녀의 동상은 여행의 막바지에 파리의 루불박물관에서 가까운 곳에 세워져있는 것을 보았다.

 

 

 

잠시 몇군데 구경을 하고 돌아다니다보니 점심을 하고 다시 모이는 곳으로 가야하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급히 들어간 곳이 McDdonald.....     앗~  불란서에서 첫 점심식사가 McDonald 가 되어버리다니....    놀랍게도 젊은이들로 와글와글 대만원이다.

 

 

 

어촌마을 Honfleur 에 왔다.      세느강의 하구에 위치하고 Paris 와 가까운 곳이라 인상파 화가 (Impressionist Painters) 들이 자주 찾았다는 조그마한 항구 마을이다.

 

 

 

 

 

19세기에는 예술활동의 중심지의 하나로 이름을 떨치던 곳이었으며, 바다풍경을 주로 그림의 소재로 삼았던 외젠 부댕이 이곳 출신이다.      르노와르, 세잔 등의 인상파 화가들이 Honfleur 의 부두가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던 주변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항구의 Dock 를 둘러싸고 병풍처럼 늘어선 예쁜 색깔들의 건물들과 정박된 배들이 잘 어울려서 매우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Honfleur 에는 아주 독특한 2개의 성당이 있다.        모든 것이 나무로만 세워진 성당이다.     프랑스에서만 찾기 힘든 것이 아니고 목조로만 세워진 성당은 지구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호화로운 대리석과 고급자재, 현란한 조각들과 대단한 그림들로 치장한 웅장하고 매우 위압적인 성당들과 달리 소박한 친밀감이 느껴진다.

 

 

 

  

 

 

 

 

 

 

 

이곳 Honfleur 출신인 프랑스의 유명한 항해가 (Sailer) Jacques Cartier 가 처음으로 Canada 로 항해하면서 그후에 많은 프랑스인들이 Canada 로 이주하게 되었다.       지금 Canadad 의 Quebec 州를 이루고 사는 French Canadian 들의 선구자였다.

 

 

 

프랑스에서는 가게 앞에 예술품, 조각품들을 진열하여 놓은 곳이 자주 보인다.      몸의 중심부분은 없고 가방을 든 손으로 상체와 연결되어 서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조각가 부루노 카탈로가 만든 동상이다.

 

 

 

 

 

 

 

 

 

이제는 Honfleur 를 떠나서 오늘의 숙박지 Caen 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고급 휴양지 Deauville 로 간다.

 

 

 

Deauville 은 오래 전부터 유럽의 최고 상류층들의 휴양지로 세워졌다      1861년 해안지대의 허허벌판에 거대한 땅을 매입하고 Deauville 市를 세운 Morny (나폴레옹3세의 이복동생) 는 최고상류층을 위한 최고의 휴양지를 세운다는 계획아래 엄격한 규제를 내세워서 최상의 디자인으로 최고의 건축물들만을 짓도록 하였다.

 

 

 

 

 

007 영화  ‘007 Casino Royal’ 의 무대가 되었던 Le Casino de Deauville.

 

 

 

 

 

1860년대부터 유럽의 귀족들이 이 작은 해안에 모여서 클리켓을 즐기고 경마와 승마를 하며 즐기던 곳이다.     Deauville 에서 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있는 토우빌은 좀 더 대중적인 휴양해변이고 도빌은 최고 명품 도시이자 상류층의 거대한 최고급 Resort 단지이다.

 

 

 

 

 

 

 

바쁜 여행도 좋지만 물도 마시고 기운을 먼저 차려야지… 

 

 

 

 

 

 

 

 

 

 

 

이제 기운을 차리셨구나

 

 

 

 

 

도빌은 1966년 를로슈 감독의 영화 남 과 여의 무대가 된 곳이고 이 영화는 1966 Cannes 영화제 대상, 그리고 1967년에는 아카데미 최우수상을 받았다.           ‘007 Casino Royal’  2009년 개봉작 코코샤넬등 많은 영화의 무대가 된 곳이다.

 

 

 

 

 

 

 

 

 

Deauville 은 명품 Shop 들이 즐비하며 최고가의 물건들만이 보인다.      사진에서 보이는 구두는 한켤레에 620유로 ($870) 이다.     1,000유로가 ($1,400) 넘는 구두도 보인다.       제일 싼 구두가 250유로 ($350).

 

 

 

도빌을 떠나서 Caen 으로 가는 길에 나타나는 2차세계대전의 흔적인 벙커.

 

 

 

첫번째 날은 이렇게 바쁘게 지나갔고 내일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D-Day Landing 해안가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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