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8일째 오후 관광이 시작된다.        먼저 Rice Terrace 에 들려서 점심도 하고 구경을 한다.          그리고 Bali 에서의 마지막 관광지가 되는, 사진에 보이는 Tanah Lot Temple 로 간다.

 

 

 

636 Hectare 의 넓은 지역에서 벼농사를 주로 하는 Jatiluwih 에 있는 Rice Terrace 에 왔다.

 

 

 

해발 700m 의 높은 지역이라서 남부의 지역들보다는 덜 더운 기온과 물 공급이 잘 이루어지는 곳이어서 벼농사에 적합한 지역이다.       Bali 의 벼농사는 당연히 3모작을 하는 줄 알았더니 2모작을 한단다.

 

  

 

이곳도 주차를 하느라고 애를 먹고, 관광객들이 와글와글 몰려서 시끌벅적하다. 

 

 

 

몇개 안되는 식당 중에서 주차장이 크고  제일 전망이 좋은 식당인데 엉터리 Buffet Lunch 를 차려놓고 10불씩이나 받는다.       관광지이기는 하지만 Bali 의 물가를 고려하면 폭리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하고 주위에 별로 경쟁이 없으니.....  

 

 

 

식사를 하고 나서 Zenia 는 그냥 자리에 앉아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날씨가 너무 덥지 않아 벼농사에 좋다는 이곳도 지금은 34~35도 정도로 느껴진다.     쨍쨍한  뙤약볕에 나가기만 하면 땀이 줄줄흐르니 경치 좋은 이곳에서 구경하겠단다.

 

 

Batukaru 산 기슭이라서 멀리 보이는 Batukara 산의 경치.

 

 

 

 

 

 

 

 

 

그래도 몇장의 사진을 만들어보려고 Rice Terrace 로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혼자서 내려왔다.       이곳은 넓기도 하지만 완만한 경사의 Terrace 라 며칠 전에 Ubud 에서 보았던 아기자기하고 그림 같은 Rice Terrace 가 아니고 시원하게 탁트인 Rice Field 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멀리 마을이 보이는데 벼농사를 하는 대지주의 집 같이 보이기도 하고.....

 

 

 

엄청 따갑고 뜨거운 열기를 느끼는데 그래도 역시 남부지방 보다는 습기가 덜 한 것 같다.

 

 

 

 

 

 

 

Jauwihtil Rice Terrace 의 마을을 떠나면서 보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휴일의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

 

 

 

벼농사를 하는 길 한쪽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젊은이들이 모여있고, 왼쪽에는 여자용 오토바이처럼 보이는 분홍색 오토바이도 세워져있다.        세계 곳곳의 어느 시골구석이라도 젊은이들의 청춘사업은 즐겁다. 

 

 

 

지나가는 이 마을에서도 마을의 Galungan 합동예식이 있었나 보다.

 

 

 

Galungan 휴일에......     더구나 오늘은 일요일 연휴라서 평시에는 한가해야 할 북쪽의 길들이 온통 대만원이다.

 

 

 

한참을 내려와서 Bali 섬의 서해안에 있는 Tanah Lot Temple 을 보러왔다.          공항이 있는 Kuta 에서 30Km 북쪽이고 Denpasar 에서는 서쪽으로 30Km 떨어져있다.    주차장에서 나오면 수많은 기념품상점과 길게 늘어져있는 가판대를 지나야만 사원으로 가는 해안길이 나타난다.

 

 

 

 

 

Tanah Lot 사원이 있는 반대편을 먼저 보려고 북쪽 해안길을 따라서 걷는다.    

  

 

 

 

 

바위 구멍 위에 세워진 조그마한 사원.

 

 

 

앞에 가서 보니 아주 조그만 사원인데 문은 잠겨있다.        Temple 이름은 Batu Balong.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인 늦은 오후의 석양이 멋있게 보이는 해안.

 

 

 

 

 

 

 

듣던대로 Bali 의 남쪽의 해안들은 흰 모래사장이고, 여기는 북쪽의 해안이라 모래가 검은색이고 절벽이 많다.

 

 

 

 

 

 

 

 

 

 

 

 

 

이제 발리에서의 마지막 관광이 거의 끝이나고 있다.           이제는 남쪽의 해안길을 따라서 Bali 섬에 있는 7개의 해안사원 (Sea Temple) 중의 하나인 Tanah Lot Temple 로 걸어간다.

 

 

 

 

 

저 멀리 Small Island in the Sea  라는 뜻의 Tanah Lot Temple 이 보인다.      16세기에 세워졌는데 Bali 의 해양신을 위해서 바위 위에 세워졌다.       지금 이 언덕에는 사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1시간 정도 더 있으면 시작되는 유명한 일몰 장면을 보려고 일찌감치 자리잡고 버티는 사람들로 대만원이다.    

 

 

 

 

 

Tanah Lot 사원은 바다물이 빠졌을 때에는 걸어서 갈 수 있지만 Bali 사람들만이 사원 안으로 들어가도록 허용된다.         이 조그마한 바위섬은 1980년에 금이 가는 등 붕괴의 조짐이 있어서 바위섬에 인공의 바위도 채워넣고 여러가지 현대적인 공법이 동원된 덕분에 안정된 모습이다.        그래서 바위섬은 1/3 이 인공돌로 채워졌다.          바위섬에는 까많고 흰색의 바다 독사뱀이 악마와 침략자들로부터 사원을 보호하고 있다고 전해져온다.

 

 

 

 

 

 

 

현지인들이 말하기를 이곳에는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 상대자와는 이곳에 함께 오면 안된다고 한다.       결혼 후에는 이 사원처럼 떨어져서 결혼에 파탄이 난다고 믿고 있다.

 

 

 

 

 

여기에서도 Galungan 예식을 하러가는 가족들을 만난다.

 

 

 

16세기에 Java 동쪽에 있던 마자파힛 왕국이 이슬람 세력의 침입으로 망하면서 신하들, 승려들, 공예사들이 Bali 섬으로 피난을 오게되었다.      그리하여 힌두 고전문학, 그림자극, 음악, 조각 등 힌두 Java 의 영향으로 Bali 의 힌두문화가 꽃 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Java 에서 건너온 힌두교의 승려 나르타가 이곳의 Tanah Lot Temple 과 남쪽의 해안가 절벽사원 Uluwatu Temple 을 건립하던 시기가 종교적으로 번성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드디어 마지막 관광을 마쳤다.       오늘밤 자정이 지나고 한밤중인 오전 1시30분에 떠나는 비행기를 타려고 다시 Kuta 시내로 들어오니 조용하였던 발리의 풍경은 사라지고 큰 대도시의 북적거리고 바쁜 모습 그대로이다.        Bali 는 19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네델란드의 식민지배를 받게 된다.        Bali 의 여러지역을 각각 통치하던 난립되어 있던 여러 왕가를 무력으로 정복하였고 1908년에는 마지막 남은 클룰쿵 왕국을 멸망시키면서 Bali 전체를 식민지화 하였다.        이때에 Bali 의 왕족과 귀족들이 보여주었던 무저항 대량 자결 로 국제적으로 크게 비난을 받게되었던 네델란드 정부는 현지의 전통 Bali 문화를 적극 보전하는 정책을 내놓게 된다.        이와 같은 문화보호정책으로 1930년부터 Bali 문화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오랫동안 증축을 하고 새롭게 단장을 하여 금년초에 새 모습으로 나타난 Denpasar 공항.

 

 

 

우리를 태우고 며칠간 Bali 의 여러곳을 안내한 Raka.         50대의 점잖은 Bali 인이다.        Kuta 에서는 벌써 Bali 언어보다는 인도네시아 언어가 주로 쓰이는 언어가 되어가고, Bali 언어는 Kuta, Denpasar 처럼 큰 도시에서는 제2의 언어가 되어가고 있다고 우려한다.        자본과 언어 모두 타지의 영향력이 몰려든다고 한다.        Bali 는 Bali 언어와 인도네시아어를 모두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Raka 는 영어도 잘하고, 매우 지적이고, 무슨 질문을 하든지 성실하게 답변을 한다.        약간은 험상궂게 보이지만 매우 예의 바르고 대단히 친절하다.         Raka 와 더불어 매우 만족한 Bali 여행을 마치게 되었다.

 

 

 

 

 

Denpasar 공항에 우리를 내려놓고 Raka 는 갔다.        실제로 공항의 이름은 응우라 라이 (Ugurah Rai) 공항이다.        2차대전 후에 일본이 항복하고 나서 네델란드군이 빠르게 Bali 로 돌아와서 다시 식민시대를 열려고 하였다.        이때 게릴라군을 이끌고 완강히 항전하던 응우라 라이 (Ugurah Rai) 중령이 부대원 95명 전원과 함께 1946년 11월에 통렬히 전사하였다.       그의 이름이 오늘날 Bali 의 관문인 Denpasar 공항의 이름으로 남게되었다.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아래층을 내려다보니 자정이 거의 다 된 시간인데도 호텔과 여행사에서 마중나온 안내인들이 모두들 이름 팻말을 들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물질문명과 현대문명의 굴레에 지친 사람들이 장기체류를 하면서 Bali 의 문화와 자연의 경관에 심취하기 좋은 곳이다.        그리고 매우 친절하고 순수하고 예의 바른 Bali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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