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2일~14일.          베트남에서 여행을 끝내고 Toronto 로 돌아가면서 서울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오늘이 10월4일이니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       10월2일 밤늦게 인천공항에 도착하고는 곧장 가까운 영종도의 호텔에서 기절하듯이 꿀잠을 자고 개천절인 3일 낮에 서울로 들어왔다.           광화문에 약속이 있어서 일찍이 나오면서 작정을 하고 오늘은 경희궁을 돌아본다.        광화문에서 몇 블렄 떨어진 곳에 있는 옛 서울고등학교의 자리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 뒷편에 있다.           흥화문 (興化門).      경희궁으로 들어가는 정문이다.        원래는 현재의 구세군회관 자리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경희궁 복원 사업을 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서울에 오래 살았으면서도 경복궁은 여러번 가보았지만 이곳의 경희궁은 한번도 와 본적이 없다.        아무곳도 다니지 아니하고 꼼짝않던 이번 한국방문에서 유일하게 찾아본 곳이다.        경희궁은 일제강점기에 경성중학교 (서울고등학교) 가 들어서면서 건물 대부분이 헐렸고, 면적도 절반 정도로 줄어들어 궁궐의 모습과 위상을 잃었었다.        현재의 복원된 경희궁은 숭정전, 자정전, 태령전, 등 세 전각이 복원되어 있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는 특별히 구경한 곳이 없고 유일하게 찾아본 곳이 경희궁이다.

         



입구인 흥화문을 지나서 얼마를 더 들어가면 숭정전 (崇政殿) 으로 들어가는 숭정문 (崇政門)이 나온다.   


     




그리고 나타나는 숭정전 (崇政殿).            정면에 보이는 숭정전은 경희궁의 정전 (正殿) 이다.          국왕이 신하들과 조회 (朝會) 하거나 궁중 연회 등의 공식 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특히 경종, 정조, 현종, 세 임금의 즉위식이 이곳 숭정전에서 거행되었다.



 

'기쁨이 넘치고 빛나는 궁' 이라는 뜻의 경희궁 (慶熙宮) 은 광해군 때인 1617년에 짓기 시작하여 1620년에 완성하였다.                 경희궁에서 살았던 왕은 인조에서 철종까지 10 명에 이른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 머물렀던 왕은 영조이다.         또한 13년간 머물렀던 숙종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숙종부터 정조 즉위까지 경희궁은 최전성기였으며, 왕을 비롯해 왕비와 후궁들이 생활한 일상공간이었다.  




뒷편으로는 국왕이 신하들과 회의하거나 경연을 여는 등 공무를 수행하였던 자정전 (資政殿) 이 있다.          뒷편 왼쪽으로는 특별한 용도가 정해져 있지는 않았던 태령전 (泰零殿) 도 있다.         경희궁은 처음에는 경덕궁 (慶德宮 ) 이라 불렸지만 그 후에 이름이 경희궁 (慶熙宮) 으로 바뀌었다.




60, 70 년대에는 목재소, 목공소 밀집지역이었던 종로2가 옆의 관철동.       지금은 '젊은이의 거리' 라고 이름이 붙여져 있고 불야성을 이루는 먹자판 골목이 되어있다.         

 

           




(빌려온 사진)      광화문에서 시청으로.... 그리고 넘치는 인파는 다시 남대문에서 서울역까지 엄청나게 많은 시민들이 나와 있다.          바로 어제 10월3일 개천절의 광화문집회 모습이다.        부적절하고 뻔뻔한 언행과 거짓으로 가득찬 일가족의 사기행각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장관 임명에 대한 항의집회이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선 인파에 시민들 조차도 놀란다.         지식층을 포함해서 놀랍게도 평생에 한번도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뉴스이다.         다른 곳에서는 임명을 결사 수호한다는 집회도 열리고.....      아~ 어지러운 정치로 인해서 사회가 온통 뒤숭숭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양쪽 모두 목청이 터져라 외쳐대는 구호는 험악한데 다행스러운 것은 그래도 반대집회, 수호집회 모두 난무하는 폭력이 없이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빌려온 사진)      14일 우리가 서울을 떠나는 날까지도 매일 대규모 집회가 서로를 힐난하며 광화문, 서초동, 여의도광장에서 법석이더니....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방금 사퇴의 소식이 전해진다.         어서 빨리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신도림역의 Sheraton 호텔 옥상에서 내려다 본 옛 영등포의 지역의 산업 공장지대.






예쁜 꽃들로 둘러싸인 판교의 산들래 식당.




정신없이 어지러운 청계천의 평화시장, 방산시장 일대.




지글지글 빈대떡으로 이름난 동대문 광장시장의 먹자골목.        낮이나 밤이나 언제나 초만원이다.




오랫만에 만나는 조카들.


 


이거 그냥 홀짝 마시기에는 좀 부담스럽도록 멋진 예술품 같다...


 




새로이 개축되어서 매우 세련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강남의 고속버스 터미날 호남선 매표소 앞.






Bento 도 예전의 고전적인 모양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일행 네사람을 환영하는 과분한 장미꽃 100송이 바구니.       환대에 감사해서 한동안 몸둘바를....     감사합니다.


       




멀리 강화도를 건너고 또다른 섬인 석모도까지 와서 '뜰 안의 정원' 에서....

        

 






이제까지 먹어본 중에서 최고로 신선하고 맛있는 간장게장.


 








수십년간 함께 카나다에서 교회생활을 하셨던 장로님 내외분.         수년전 한국으로 오셔서 가족분들과 재미있고 건강하게 계시니 매우 반갑습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만수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한국에 오면 제일 좋은 산들해 식당의 밥상.          깨끗한 분위기에 맛도 좋고 가성비도 매우 좋다.         1 인당 1만6천원.       음식이 가득찬 준비된 상을 가져와서 식탁위에 통채로 밀어넣는다.        또 올때마다 꼭 한번은 찾아가는 곳이 고속버스 터미널의 굴국밥집, 그리고 장수면옥, 우래옥, 평양면옥 등의 냉면집.






강북의 관광객들이 가득한 인사동, 동대문역사공원 등의 주위 골목 풍경은 어지러울 정도로 요란스럽다.






드디어 21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Canada 로 돌아가는 인천공황에 또다시 나타난 임금님 행차.        조선시대의 임금님들은 외유를 좋아하였나 보다.       Canada 로 함께 가시면 어떨른지.

 


10월1일 (화).       여행 8일째.       오늘의 일정은 아주 간단하다.           호텔의 수영장에서 하루종일 게으름을 피우고 잠시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동안 여기저기 관광을 다니느라 이렇게 아늑한 수영장을 매일 지나치기만 했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자리를 잡았다.






식사 때마다 마시는 베트남의 Coffee 는 특별나다.          진하고 향이 약간은 강한 것 같은데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맛이다.            특히 호텔방에 매일 비치해주는 Mix Coffee 의 맛이 아주 좋다.          Canada 의 중국식품점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이토록 맛이 좋으니 Canada 까지 진출을 하였나 보다.         이번 여행에서 베트남의 Coffee 에 맛을 들였다.          베트남은 브라질에 이어 세계 2위의 Coffee 수출국이다.         3위인 Columbia 의 거의 2배에 이르는 수출국이다.          그리고 쌀, 후추도 세계의 3대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1857년 프랑스에 의해서 베트남에 Coffee 가 소개된 이후에 정부 주도로 Coffee 재배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고 향이 강한 Robusta Coffee 종이 집중적으로 재배되었다.        베트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나에게는 독특한 Coffee 맛이다.




우리가 머무르는 이 호텔은 구시가지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데 Guest Room 이 오직 21개 뿐인 아담하고 예쁜 호텔이다.        빼어나게 잘 정돈된 정원과 수영장이 아주 아늑하다.         거의 모든 방들은 수영장이 내려다 보이게 되어있다.        아주 넓은 방에 모든 시설이 마음에 쏙 드는 곳이다.          대도시 다낭과는 아주 다른 옛 고도 (古都) 에 어울리는 환경이다. 










이토록 평화롭고 조용한 베트남도 40년전에는 전쟁의 악몽에 있었다.       그리고 어느나라 보다도 험난하고 기구한 역사를 가진 베트남.....     중국의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France 의 베트남 식민지배가 1882년부터 시작되자 독립운동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945년 2차세계대전이 끝난후에도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France 와 전쟁을 벌려서 1954년 3월에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독립을 맞이 하였다.         그러나 서구 열강의 제네바협정에 의해서 베트남은 다시 북위 17도 기준으로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북쪽의 공산정권 월맹과 남쪽의 월남정부로 나누어져 남북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 도미노 이론을 내세운 미국의 개입으로 1964년부터 베트남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1975년 월맹군에 의해서 남쪽정부 월남의 수도 Saigon 을 점령하여  월맹의 승리로 전쟁은 막을 내리고 1976년 2월에 지금의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베트남의 면적은 남북한 한반도의 1.5 배에 가까운 33만 Km2 이다.        인구는 거의 1억에 가까운데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지구상에서 13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2018년의 1인당 GNP 는 2,600 불.         싼 임금의 중국 독주시대가 무너지면서 교육열이 대단하고 근면하고 양순한 베트남이 지구상에서 현재는 제일 빠르게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나라중의 하나이다.






내려쪼이는 태양열에 수영장은 벌써 여러 투숙객들이 아침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자리를 잡고 있다.           여행을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가 시작하는 시점에 하고 있어서 매일같이 일기예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녔는데 이렇게 날씨가 좋으니 기분이 매우 좋다.          이제까지 한번도 비를 만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여행중에 비를 만나면 모든 일정이 엉망이 되고, 비를 피하느라 고생은 고생대로....      내일은 베트남을 떠나서 서울로 가게 되는데 화창한 날씨라고 예고되어 있다.     걱정을 하였던 우기의 베트남에서 8일간 비를 한번도 만나지 않는 행운을 맛보고 가게 된다.










어 ~  이게 웬일인가.          호텔의 수영장에서 맥주 3병에 French Fries 한 접시를 더해서 99,000 동.       4불 20전.         특별 서비스이기는 하지만 저렴한 베트남의 물가를 실감하게 된다.


 




호텔이 강가에 있어서 바로 길을 거너면 이렇게 강변을 따라서 펼쳐지는 한가로운 산책길.


 




사방에 왠 사당이 이렇게도 많은지 주택가 가운데에 갑자기 나타나는 거창한 입구를 가진 사당이다.          불교사원인지 유교의 사당인지 구분도 할 수 없이 호이안에는 이런 사당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강변에 세워져있는 자전거.       여러 종류의 화초로 장식되어 있는 용도폐기된 자전거들.....




강변을 따라서 무료하게 세워져있는 생업을 위한 고깃배들....    힘들고 고된 작업을 끝나고 배들도 쉬는 시간이다.




강변의 산책길을 거의 점령하면서 따가운 태양을 받으며 말려지고 있는 잔새우들.         특이한 것은 베트남에서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개를 본 적이 없다.         개들은 없다지만 파리들은 어찌되는 것인지....




호이안의 상위 중산층이 거주하는 동네의 풍경.         규모는 작지만 예쁘게 꾸며진 집들이 보인다.




무슨 열매인지를 알 수가 없는 여러 종류의 과일나무들이 동네집 뜰 안 여기저기에 자라고 있다.


 




어디에 쓰였던 것인지...    가늠하기 힘든 옛날에 한국에서도 사용하였던 맷돌의 바닥같이 생긴 것들이 거리에 쌓여져있다.




강변에서 다시 큰 길을 하나 건너자 강이라고 하기에는 좀 작고 개천이기에는 너무 큰 하천이 나온다.         날씨는 좋고 어디에나 물이 풍부하니 농사짓고 살기에 크게 어려움이 없는 비옥한 땅을 가진 나라이다.


 


얇고 흰 창호지 같은 것을 엮여진 대나무 판대에 펼쳐놓고 대로변 다리 옆에서 말리고 있다.         무엇인가 자세히 살펴보니 스프링롤에 쓰이는 쌀껍질을 말리고 있다.      한국의 70년대에 농촌의 모습이다.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또 호텔 근처의 한국식당으로 왔다.         주인 아저씨가 후하기도 하고 음식도 입맛에 맞았던 곳이다.          오늘 저녁에는 고기도 굽고 왕창 많이 먹었는데 얼마나 마구 해치웠는지 꼭 폭탄을 뒤집어쓴 엉망진창 식탁만이 사진에 남았다.         예쁘고 맛있는 월남의 전통음식을 마음껏 즐기고 오겠다고 마음을 먹고 왔었는데 어찌하다가 매일 한식타령으로 베트남의 여행을 마치게 되었는지....




오늘도 저녁을 마치고는 다시 구시가지로 또 마실을 나왔다.          마지막 밤을 호이안의 휘황찬란한 거리를 헤집고 다니려고....      








무슨 사당들이 이다지도 많은지....




베트남은 예전부터 유교와 중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북부와, 킨 족과 말레이계에 속하는 참파족이 있었던 중부지방, 그리고 크메르 제국에 속했던 남부등으로 나누어져 있으면서 언어, 풍습, 문화, 등에 차이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지역이 대체로 중국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호이안은 중국무역상들이 모여서 그들의 Town 을 만든 곳이라 중국의 문화가 곳곳에 박혀 있는 곳이다.


 


Hoi An 에는 중국의 무역상들이 지어놓은 여러개의 사당 (祠堂) 이 있는데 진씨 시조 사당이라는 곳도 있고, 관우장군을 모시는 사당도 있다.












이제 마지막 밤을 보내고 내일 아침에는 베트남을 떠나 서울로 가게 된다.        오래도록 지속된 전쟁의 상처로 거칠지나 않을까하는 염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고, 대체로 베트남의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다.          이곳도 태국사람들처럼 조용 조용히 이야기하고, 매우 부지런하고, 양순하고,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여행 7일째이다.           오늘은 Cam Thanh Village 로 가서 Coconut Island Basket Boat (소쿠리 배) 를 타러 간다.          베트남에 머무는 동안 비를 만나지 않아서 대단히 다행스럽다.          넉달간의 우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라서 날씨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늘도 아주 맑은 날이다.




호텔에서 가까운 한국식당 'Chao Hoi An' 에서 주인장 아저씨의 후의로 거대하게 차려진 점심상을 무엇을 시켜서 먹었는지도 모르게 싹 쓸어서 먹어버렸다.        베트남에 왔으면 베트남의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하는데....      맛집도 몇군데 List 에 올려놓고 왔는데....    가까운 곳에 한국식당이 있으니 그만 외국에 관광을 와서는 평소 집에서 보다도 더 한식을 먹고 있다.


 


Hoi An 구시가지에서 택시로 5불 정도가 나오는 거리에 있는 Cam Thanh 마을에 도착했다.       15분 정도가 걸렸나....      야자수가 둘러서 있고 작은 어촌의 풍경이 펼쳐진 아름다운 곳이다.


         






거나하게 점심을 마치고 달려온 Cam Thanh 마을에서 Coconut Boat 를 탄다.         한국어로는 소쿠리 혹은 광주리 배라고 부른다.


  


코코넛 나무로 만든 베트남의 전통배이다.             원형의 둥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데, 앞뒤로 뾰족하지가 않아서 속도감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 대신에 쉽게 전복되기 어려운 안정감이 있는 배이다.           그래서 그런지 베트남 사람들이 낚시를 할때에 주로 쓰이는 배라고 한다.


 




내려쪼이는 햇볕을 피하느라 모두들 커다란 양산을 펼쳐들고.....






매연을 내뿜고 소음을 내는 모터보트보다 소박하고 친환경적이기는 한데 지독히도 힘들여 노를 저어도 나가는 속도가 느리기만 하다.




코코넛 나무들이 무성한 작은 섬들을 헤집고 이동을 하는데....     어찌나 많은 배들이 움직이는지 물 반, 배 반이라고 할 지경이다.












좀 넓은 중앙의 물가로 나오면 광주리 배들이 모여있고 왕왕 울리는 한국의 가요가 귀청을 때린다.         한국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니 한국의 신나는 가요가 끝없이 계속된다.           신나게 나오는 음악에 맞추어서 위태위태하게 배를 뒤집어놓듯이 위 아래로 마구 돌리며 춤을 추는 사공아저씨들이 있다.         쇼가 끝이 나면 팁을 받아 챙기기에 바쁘다.         옆에서는 또다른 쑈가 벌어지고....     찌렁찌렁 울려대는 음악소리는 귀청을 때린다.        오빠는 가~앙~남 스타일 !!!!    으쌰으쌰....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어 !!!!          한국의 노래방인가....    사공들의 장기대회장인가....     난리법석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는 있는데.....    펼쳐지는 자연의 풍경에 조용히 심취하기를 원하는 서양에서는 상상도 하지도 못할 정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온 사방에서 들려오던 신나는 한국가요들이 멀어지면서 Coconut Boat Tour 도 이동 거리가 길지 않아서 곧 끝이 난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이 끝나고 돌아와서 시원한 음료를 한 잔씩 마시고 Taxi 를 잡으려니 우리를 태우고 왔던 운전기사가 놀랍게도 다시 나타난다.         우리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호이안은 작은 고대 도시라서 어디를 가든 택시값이 2, 3불 정도이다.         먼 곳인 여기도 5불 정도이다.        듣던대로 다낭의 택시들과는 다르게 이곳의 기사 아저씨들은 모두가 다 매우 친절하고 정직했다.


 

 



오늘도 저녁을 마치고 호이안의 구도시로 다시 나왔다. 


 






호이안은 처음에는 일본인들이 역상을 차리고 거주한 일본 거리였다.      그러다가 곧 중국 무역상들이 대거 들어와서 모든 건물이 중국의 광동성식으로 지어져서 거의가 황금색을 나타내는 노란색으로 뒤덮고 있다.


 




멋있게 지어놓은 복건회관.










오늘은 Cyclo 를 타본다.        베트남의 거리를 메우고 있는 오토바이가 베트남의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이지만 씨클로 (cyclo) 는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체험이다.          같은 거리를 지나지만 Cyclo 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또다른 정취를 보여준다.






9년전 베트남의 수도인 Hanoi 의 복잡한 시내에서 Cyclo 를 탔을때에는 마구 달리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들 사이에서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겁을 집어먹고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으려고 마음 먹었던 Cyclo 이다.          그런데 이곳은 차량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니 여유있고 차분한 마음으로 지나치는 거리와 상점들을 즐기기에 아주 좋다.  


      




호이안의 구시가를 20 ~ 30분간 한바퀴를 돌고 끝나는 길지 않은 Tour 이다.       복잡한 거리에서 Cyclo 가 길을 만드는 방법은 경적 대신에 기사 아저씨가 "훠이, 훠이" 하며 외치는 소리뿐이다.  


   




거리의 양쪽으로 대부분이 관광객을 상대로 한 상점들이 줄지어 있지만 이곳 뿐아니라 베트남에서는 호객행위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매우 좋다.


 












광조회관 앞길.        안호이 섬으로 넘어가는 다리의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서 언제나 제일 복잡한 곳이다.




호이안 구시가 거리를 다니면 여러개의 화려한 중국식 유교사당을 여기저기 많이 만나게 된다.            대부분은 광동성 지역의 무역상들이 지은 건물이다.          지금 이 건물은 광조회관.         얼마나 북적이고 사람들이 많았는지 사람들에 섞여서 밀려들어 갔는데 나올때 보니까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마당의 중앙에는 거대한 용이 자리잡고 있고, 입구의 양쪽 끝에는 삼국지의 인물들이 지키고 서있다.




사진에 보이는 붉은색의 둥글둥글하게 감겨진 나선형 모양의 천장에 매달린 것은 복을 기원하는 향이다.        저토록 거대한 향에 사연을 적어서 매달아 놓고 오래도록 향이 타는 동안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대길 (大吉) 을 원하는 가장 원초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저 거대한 향은 아주 천천히 타들어간다고 하는데 타는 기간이 약 1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어깨지게를 맨 행상.      대부분 과일을 판다.      여인들이 매는 어깨지게를 돈가잉 (Don Ganh) 이라 하는데 '멍에' 라는 의미이다.       매우 안스럽게 보이는 모습이다.






이번 베트남 여행중 처음이자 마지막 단체사진.






호이안과 안호이 섬을 가로 지르는 투런강.


 




이제 곧 해가 저물고 어두어지면 이곳은 휘황찬란한 별천지로 바뀌어지고 호이안에 머무르는 관광객들이 모두 쏟아져 나와서 서울 명동의 밤거리 인파를 넘어서는 곳이다.










여행중에 또 여행자를 만나서 고향의 친구처럼....         미국의 Maryland 에서 여행을 온 은퇴한 한인 의사분과 무슨 사연이 이렇게 많은지.....    천년의 친구를 만난듯이 주고 받고 이야기꽃에 여념이 없다.






안호이 섬에서 어둠이 깃들기 직전의 호이안 구시가를 향해서 카메라를 당겨본다.           곧 등불과 조명으로 완전히 현란한 불빛의 마을로 바뀌기기 직전의 모습이다.










화려한 등불과 아오자이 여인들이 조화를 잘 이루는 베트남 Hoi An 의 대표적인 밤풍경.

  







밤거리의 가게들은 기웃거리는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제일 많이 보이는 것은 기념품이고 다음으로는 월남식 바지, 셔츠 등으로 헐값에 마구 내놓은 옷가지들이다.         현란한 불빛 아래에 귀엽고 예쁜 물건들도 보인다.          보기에는 좋지만 대부분 구경이나 하고 지나친다.      










Hoi An 에서 그동안 마구 돌아다니며 무리했던 발바닥에 원기를 공급한다.         발안마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면 모두들 쿨쿨쿨.         주위의 모든 분들이 꿀잠의 세계에 푹빠져 있다.           내일의 일정은 아주 간단하다.           호텔의 수영장에서 하루종일 게으름을 피우고 잠시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 전부이다.


 


여행 6일째 아침이다.          Da Nang 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고대의 무역도시 Hoi An 으로 간다.          우리가 나흘을 보낸 Da Nang 에서 이제는 북쪽으로 30 ~ 40분의 거리에 있는 Hoi An 으로 이동을 해서 그 곳에서 다시 3박을 한다.         지금 우리가 떠나고 있는 Da Nang 은 북쪽에 있는 베트남의 수도 Hanoi 와는 540 Km 떨어져 있고, 남쪽에 위치한 베트남의 최대도시인 Ho Chi Min (Saigon) 과는 640 Km 의 거리에 있다.         16세기 이후 '바다의 Silk Road' 라고 불릴정도로 번성했던 국제 무역항이었던 Hoi An 으로 간다. 




Da Nang 에서 북쪽으로 이동을 하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Marble Mountain 근처에 석상을 파는 가게들을 많이 지나게 된다.       성모마리아상, 불상, 어린천사들, 사자, 등등 모든 종류의 석상들이 즐비하다.         진짜 대리석으로 만든 석상도 있는지 ?      산 전체가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고 하여 Marble Mountain 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인데 동굴 속에 대리석을 깍아서 만든 불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원숭이들이 뛰어노는 곳으로 알려진 곳인데, 우리는 별 흥미가 없어서 그냥 지나친다.        




Da Nang 에서 한 곳을 더 그냥 지나친 곳이 있다.          Ba Na Hill 이다.          식민시대에 불란서인들이 이곳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Da Nang 에서 좀 떨어진 Ba Na Hill (1,487m) 의 시원한 산 꼭대기에 지어놓았던 불란서 건축양식의 Town 이다.          5.8 Km 의 긴 거리를 Cable Car 를 2번이나 갈아타면서 올라야 하는 높은 곳에 있다.         안개가 자주 끼는 지역이라 날씨를 잘 선택해야만 한다.         어린이 유원지도 있고 이색적인 서양의 건축물들이 들어선 Town 이 있어서 동양에서 온 많은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는 곳이다.  




호이안이 가까와 지면서 나타나는 알록달록하게 치장한 거리들. 


 




호이안의 구도시에 도착을 했다.         호이안은 구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투런강 (江) 을 끼고 있는 옛날 도시이다.














대도시였던 Da Nang 에서 지내다가 조그만 옛 도시로 들어오니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          고층의 건물도 없고 교통량도 적고 모든 것이 차분하고 조용하다.         호텔도 그렇고 물가도 다낭에 비하면 아주 좋다.          조용하고 아늑한 이곳에서 여러날을 휴식을 하면서 보내기에 딱 좋은 도시인 것 같다.        


 




첫날 저녁에는 구시가지의 야시장도 구경하고 투런강에서 밤 배도 타보고.....     호텔 근처의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거나하게 하고 산보를 겸해서 가까운 거리의 구시가지를 돌아다닌다.


  


여기저기 먹고 마시는 옥외식당이 길거리를 메우고 있다.        빼곡하게 놓여진 꼬마 테이블에 꼬마 의자들.        마치 옛날에 한국의 대중목욕탕에 있던 조그마한 목욕의자들과 흡사하다.         베트남의 어느 도시를 가든지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밤거리에 나와서 첫번째 한 일이 우선 소원배를 탔다.         배를 타고는 촛불을 강물에 띄우며 소원을 기원한다고 한다.       호이안 구도시와 강 건너의 안호이 섬 가운데를 흐르는 투런강에서 2사람씩 타는 배에 잠시 올랐다.         위 아래로 잠시 왔다 갔다 하다가는 싱겁게 끝난다.         그저 양쪽의 휘황찬란한 불빛을 구경하며 잠시 황홀한 시간을 보내면 곧 떠났던 지점으로 돌아와서 내리게 된다.   


     






호이안에서 안호이 섬으로 연결 시켜주는 다리.         이 다리를 건너서 안호이 섬으로 들어가서 그곳의 야시장 인파에 우리도 섞여본다.         서울의 명동인파를 넘어서는 대단히 북적이는 곳이다. 


 




온갖 Camera 들의 집중적인 Focus 를 받고 있는 화려한 등불가게들.










음... 음.... 먹음직스러운 문어, 대형 새우.




아이스크림을 몹시 낮은 온도의 철판에 펼쳐서 다시 둘둘 접어올린다.        맛은 똑같을 것이지만 둘둘 접어진 아이스크림은 더 멋있고 맛있어 보인다.




저녁을 두둑히 하고 왔지만 보이는 것들이 어쩌면 이렇게 모두 맛있어 보이는지.....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뿐 아니라 베트남 여러지역에서 온듯한 내국인 관광객들도 즐겁기는 매 한가지이다.          왁자지껄... 킬킬킬...






기타치고, 박수치고, 함께 노래 부르며....    모금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    고대도시 Hoi An 의 밤은 휘황찬란한 불빛에 여기저기 활기차고 열기가 가득한 곳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다.




일본교.       호이안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지나다니다가 만나게 되는 일본교.         일본인 마을과 중국인 마을을 이어주는 작은 다리인데 지붕이 씌워져 있고 다리 안에 조그만 사당이 마련된 독특한 목조 다리이다.        호이안은 처음에는 일본인들이 거주하며 무역을 하였던 곳인데 그후로 중국인 무역상들이 들어와서 중국식의 건축물들과 문화가 호이안을 뒤덮었던 곳이다.  






일본교의 내부.          다리 지붕 천정의 한쪽에 내원교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내일은 Coconut Island Basket Boat (소쿠리 배) 를 타러 Cam Thanh 마을을 다녀 온다.

     


여행 5일째.          어제 먼 길을 따라서 Hue 를 다녀오느라 힘이 좀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점심때가 되어서야  Ny Khe 해변을 천천히 둘러보려고 나선다.         여기서는 거리에 나서기만 하면 뒤엉켜서 내달리는 오토바이들과 자동차들만 쳐다보아도 주눅이 들고 겁이 난다.          여러해전에 보았던 북쪽의 대도시 Hanoi 에 비하면 아주 적은 양호한 편인데도....   그리고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적응이 어렵다.




우리의 목적지는 용다리를 동쪽으로 건너서 얼마 지나지 않으면 곧 나타나는 Ny Khe 해변이다.          해변으로 가기전에 여행을 떠나고 처음으로 먼저 한국식당을 찾아 가기로 한다.          며칠만에 근사하고 맛있는 한국음식을 점심으로 맛있게 먹고 해변으로 가려고 식당을 찾아나섰다.        이렇게 기분좋게 택시를 잡아타고 나섰는데....     인터넷에서 식당의 주소, 위치를 다 알아보고 왔는데 운전기사 아저씨가 얄팍한 수작을 부린다.       다리를 건너고 나면 좌측으로 돌아야 하는데 반대 방향인 오른쪽으로 돌아서 마구 달린다.        아구구구....






어찌하나 두고 보니 마냥 달린다.        그리고는 이제는 주소를 찾는다고 이리저리 헤매이는 척하며 동네를 휘젓고 다닌다.           덕분에 느닷없이 Da Nang 의 중산층 동네 구경을 한참을 하게 되었다.         '방향이 틀렸다, 길 이름이 틀리다, 식당에 전화를 하자' 심기가 편치않은 불만이 터져나오자 그제야 제대로 방향을 잡고 다시 달린다.          워낙이 저렴한 택시비여서 3불이면 되었을 것을 6불이 나온다.          공연히 시간도 잡아먹고 기분은 잡쳤지만 그러려니 한다.         미안한 척하면서 50 Cents 를 덜 받겠다고 한다.        선진국 유럽이나 어디나 택시기사들은 별반 큰 차이가 없는가 보다.


  






점심을 마치고 Ny Khe Beach 로 접근을 하니 해변을 따라서 잘 닦여진 넓은 대로가 나온다.           아름답고 시원스럽게 뻥뚫린 대로이다.           무엇보다 시끄럽고 요란스럽게 내달리는 오토바이가 덜 보여서 여유로운 풍경이다.










20 Km 정도의 길이로 북쪽의 Hoi An 까지 길게 뻗어있는 Ny Khe Beach.         다낭 시내에서 5 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베트남에서 유명한 해변중의 하나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베트남전쟁 당시에 미군의 휴양지로 유명하던 해변이었다.         그리고 다낭은 1963년 베트남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과 베트남군의 중요한 공군기지가 있던 곳이다.
















해변의 북쪽으로 Da Nang 시내와 Hoi An 사이에 높지 않은 5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오행산이 있다.          오행산의 아래 부분에는 불교사원 영응사의 새하얀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는  65m 의 높은 관음보살상이 멀리 보인다.


  


이름이 꽤나 알려진 해변이지만 새파란 바닷물이 출렁거려야 뛰어들고 싶은데....     모래사장은 좋은데 바닷물이나 주변의 풍경이 그다지 매혹적이지 못하다.          카리비안 해변, Portugal 남부, Greece 의 섬들처럼 신비롭고 매혹적이어서 금방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해변은 아니다.        뿌연 매연은 일상적인 것인지....     




다낭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엄청 많다.           아마도 전체 관광객의 반 정도는 한국에서 온 분들인 것 같다.           자연히 한국관광객들을 위한 쇼핑센터도 여기저기 있다.         Lotte Mart 쇼핑센터에서 월남의 여자용 삿갓인 논라도 써보고....      여자 모자는 윗부분이 뾰죽하고 남자의 모자는 윗부분이 둥글다.         다낭은 베트남 중부의 교통의 중심지로써 옛 고도 (古都) 인 Hue, 고대도시 Hoi An 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유적지등이 가까이 있어서 관광산업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곳이다.        매주마다 한국의 여러 공항으로부터 무려150편 정도의 여객기가 다낭으로 취항하고 있다.            한국인 여행객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여기도 관광객을 위해서 새로 지어진 Asian Gardens.


 










토요일 밤의 거리는 마구 쏟아져 나온 젊은이들로 완전히 가득하다.        인도는 타고 온 오토바이들로 가득 주차되어 있고 각 식당마다 오토바이 주차요원들이 손님들의 오토바이에 주차확인 번호표도 끊어준다.          그리고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일렬로 보기 좋게 주차를 시킨다.          한쪽 인도에는 옥외식당이 차려지고  꼬마 테이블, 꼬마 의자들, 젊은이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호텔의 옥상에서 내려다 본 용다리와 주위의 건물들.         내일은 다낭을 떠나서 호이안으로 간다.




응우엔 왕조의 12대 왕이었던 (1916 ~ 1925) 카이딘 왕릉 (Khai Din Tomb) 에 도착했다.         Hue 시내에서 약 10 Km 떨어진 구릉지역에 있는 카이딘 왕릉은 다른 왕들의 능과는 입구부터 확연히 구별이 된다.             높은 언덕을 이용한 지형도 다르고 건축양식도 다르다.

 



입구에서 36계단을 올라서 중앙에 이르면 공덕비와 무덤을 지키는 문무관, 그리고 말, 코끼리상을 볼 수 있다.




 






1920년부터 10년간에 걸쳐서 완공된 왕릉으로 20세기초 베트남의 건축예술을 대표하는 곳이다.          베트남 건축과 유럽의 고딕양식이 혼합된 특이한 왕릉이다.














카이딘 왕을 모신 곳은 제일 높은 곳에 지어져 있다.         건물 내부는 벽과 제단이 도자기와 유리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내부의 옥좌에는 청동에 금박을 입힌 카이딘 왕의 실물 크기의 동상이 있고, 그 아래에 왕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그리고 천장에는 화려한 용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휘황찬란한 곳이다.














돌이 아니고 시멘트로 만들어진 석상의 신하들, 말, 코끼리가 줄지어 서있다.






이제는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인 민망 왕릉 (Minh Mang Tomb) 으로 향한다.           민망 왕릉 근처에는 다른 왕들의 능도 여러개 있었으나 거의 훼손이 되었고 이 민망 왕릉만이 제대로 보존되고 있다.


 




입구로 향하는 길목부터 탁트인 넓은 지역에 수림이 울창하고 경치가 매우 좋은 것이 거대한 왕릉이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 같다.    








왕릉의 조감도.       베트남에서 현존하는 왕릉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민망 왕릉은 응우엔 왕조의 2번째 통치자인 민망 왕의 재임시에 설계되었고 왕의 사후에 공사를 시작하였다.         1841년에 착공하여 3년동안에 1 만명의 병사와 노동자가 동원된 대공사였다.


 


민망 왕은 응우엔 왕조의 2대 왕으로 (1820 ~ 1841) 초대 왕이었던 가륭제의 4째 아들이다.       그의 재임시에 캄보디아 등의 인접국에 군사원정등으로 주변의 모든 세력에게 위협을 주었다.         또 국내적으로는 산악지대의 소수민족에게 통제를 강화하고 중국식 중앙집권화를 도입해서 성 (省) 과 현 (縣) 을 설치하였다.        

 

 








왕릉의 위치는 풍수지리학자들의 조언에 따라서 좌우에 2 줄기의 강이 향강과 만나는 곳으로 잡았다.     장대하고 근엄한 느낌의 왕릉은 자연경관과 조각들이 어우러져 그림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민망 왕의 송덕비를 품고 있는 비각 (碑閣) 으로 비딘이라고 불린다.




민망 왕의 송덕비.




하나의 건물을 지나면 문이 다시 나타나고 또다시 건물로 이어지는 구조이다.


 


민망 왕릉에는 크고 작은 전각들이 많이 있다.        이곳은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능의 전면에는 반달 모양의 연못을 만들었고 왕릉 입구에 서있는 커다란 문에는 정대광명 (明光大正) 이라고 쓰여져 있다.      - 정직하고 분명함을 밝히다 -  라는 뜻으로 응우엔 왕들의 처세와 통치의 덕목이었다.






무려 1.7 Km 에 달하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묘지로 들어가는 문이다.         여기까지가 일반에 공개된 마지막 부분이다.           거대한 왕릉에 고이 잠든 민망왕....      그런데 그는 무려 253명의 부인을 두었고 자식은 65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        민망 왕...   정말로 매우 민망스러운 행태를 보였던 왕이었다.


 


왕릉을 나오며 다시 마주하는 석상들....


 








신비로운 고도인 Hue 에서 다시 돌아온 혼잡한 항구도시 Da Nang 의 거리.          쏟아져 나온 인파와 오토바이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 금요일 저녁의 풍경이다.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뒤엉켜서 곡예를 연출하듯 빠져나가는 네거리를 내려다보는 것은 언제나 신비롭기만 하다.

 



카메라의 Zoom 을 마구 당겨서 잡아본 Han River 의 유람선.           내일은 바로 저 강을 건너서 동쪽 해안에 곧 나타나는  Ny Khe 해변을 찾아가 본다.


 


샛빨간 아오자이에 샛빨간 쇼핑백, 샛빨간 꽃들....     그리고 뜨겁게 쏟아지는 더위와 열기....     



 

베트남의 민족 의상으로 알려진 아오자이와 베트남 삿갓인 논라는 Hue 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 전역의 옷을 통일하기 위해 1828년에 아오자이가 표준 옷으로 지정되었다.


  














왕궁은 매우 넓다.         더위와 싸우면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다니는데 끝도 없이 계속적 나타나는 매혹적인 건축물들.












이제는 왕궁을 벗어나는 먼 길을 따라서 출구로 향한다.         왜 이리도 넓게 만들어 놓았는지...      피땀흘린 국민들의 원성이 들리는듯 하다.




유명한 식당의 손님을 모시는 아가씨들인줄 알았더니 왕궁 옆에 무슨 공장에서 대대적인 행사가 있는가 싶다.




왕궁의 바로 옆에는 전쟁에서 사용되었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Hue 는 베트남 전쟁의 치열한 전투지였었지만....     하필 바로 왕궁 옆에.....   탱크, 장갑차, 헬리콥터 등이 보인다.        공산정권의 승전 전시물인가 하는 의아한 생각도 나게 한다.         베트남은 아직도 거주이전이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일부 제한된 사회이다.




왕궁을 나와서 이제는 뜨득 왕릉  (Tu Duc Tomb) 으로 가기전에 점심을 한다.






운전기사 Mr. Minh 이 우리를 안내한 식당이다.           우아한 건물이 돋보이고 정원이 대단히 아름다운 곳인데, 수목으로 가득찬 정원에 모기떼가 얼마나 극성인지 우리는 점심을 먹고 모기떼는 우리를 마구 물어뜯고....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옛 수도이었던 Hue 의 음식은 지방의 다른 곳 음식과는 다르다고 한다.        Hue 의 요리는 고추를 사용한 매운 맛을 지닌 음식이란다.      일본에서는 교토의 경 (京) 요리가 유명하듯이 일국의 수도였던 곳에는 각각의 특색있는 요리가 있다.      와 ~  보기에는 먹음직스럽고 예쁘게 차려져 나왔는데 음식맛은 그저 그렇고.....   모기에 뜯기느라 정신없이 보낸 점심이다.         우리가 온 식당은 채식주의자 식당이 아닌데 Hue 에는 채식주의가 뚜렷해서 시내 곳곳에 채식전문 식당들이 있다.         불교의 믿음으로 한달에 2번 채식을 하는 전통을 가진 이곳의 Hue 지역 사람들이 채식전문 식당을 이용한단다.


 








완전히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서 이제는 뜨득 왕릉 (Tu Duc Tomb) 으로 간다.        


      


시내에서 7 Km 정도 떨어진 반 니엔 산에는 응우엔 왕조를 가장 오랫동안 통치했던 뜨득 왕의 왕릉이 있다.          그가 살아 있을때에 건설을 시작했으며 살아서는 휴식처로, 죽어서는 영생을 위한 안식처로 삼기 위해 3년에 걸쳐서 1864년에 완공된 곳이다.


















많은 인력과 자금을 들여서 호화롭게 지어져서 백성들의 원망이 자자했고, 심지어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왕은 이곳을 자신의 무덤으로 건설하였으나 정작 그의 시신은 도굴을 막기 위해 제3의 장소에 묻혀졌다.         또한 도굴을 막기 위해 비밀 무덤을 만든 200여명의 인부를 모두 죽여버렸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뜨득 왕의 진짜 무덤의 행방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다.


 


독특한 문양으로 장식된 지붕들....


 






손 위의 형을 제치고 왕위에 오른 뜨득 왕은 베트남 응우엔 왕조의 4대 군주로 (1847 - 1883) 보수주의와 쇄국정책을 고수했다.         기독교를 매우 탄압했고, 유럽과의 무역에 반대하고, 외교에는 철저한 쇄국정책을 펼쳤다.


  
















이제는 다시 자동차로 다음 행선지인 카이딘 왕릉 (Khai Dinh Tomb) 으로 이동을 한다.



2019년 9월27일,여행 4일째 아침이다.       오늘은 베트남의 고도 (古都) 인 Hue 로 가는 날이다.        한국의 이조시대처럼 베트남의 마지막 군주시대의 도읍인 Hue 로 간다.          약속대로 아침 일찍 호텔로 우리를 데리러 온 운전기사가 애를 먹이고 있다.        Da Nang 에서 하루 종일 보내는지 알았지, Hue 로 가는지는 몰랐다면서 돈을 더 내라고 생떼를 부린다.       분명히 Hue 라고 했는데 아침에 나타나서 엉뚱하게 애를 먹이고 있다.        급하면 돈을 더 내놓겠지 하는 수법이다.        얌전하게 운전하는 친구라고 소개를 받아서 예약을 했는데...      관광객을 적당히 등치는 수법은 그대로이다.         같은 값이면 호텔의 차를 그대로 이용을 할까하다가 그냥 적당한 선에서 양보를 해주고 Hue 로 그를 앞세우고 떠나게 되었다.






3시간 정도의 긴 이동시간이라서 운행중에 지나치는 몇군데의 사진을 담고 싶었지만.....   Dash Board 위에 찰싹 붙여져서 떡 버티고 있는  이놈들 때문에 사진의 구도를 잡기도 힘들다.       더구나 유리에 노란색 반영까지 나타나서 사진은 포기한 상태이다.          촬영불가 ! 하며 낄낄대는 모습들이 더 재미있다.

 



하이반 패스.         6.3  Km 의 터널을 지나서....


    


9년전 베트남의 북부지방을 여행을 할때에 Hanoi 에서 Halong Bay 로 4시간을 이동하면서 쌀농사를 하는 논을 많이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산악지대도 많이 보이고 밭은 보이는데 논이 없더니 주유를 하러 잠시 멈춘 주유소 뒤로 시원한 논이 펼쳐진 농촌 풍경이 나타난다.
















고속도로라고 돈을 받는 Toll Gate 를 2번이나 지난것 같은데....    Interchange 같은 것도 없고 단지 중앙선을 몇군데 막아놓은 정도이다.        자전거도 다니고 사람들도 건너 다니고.... 










Hue 시로 들어오면서 차량이 부쩍 늘어나고 갑자기 북적거리는 거리를 지나서 왕궁의 입구로 간다.   

    





왕궁의 입구에 도착하니 오른쪽은 기념품가게들이 줄지어 늘어섰고 오른쪽은 주차된 대형버스와 자동차로 가득하다.           펑펑찌는 더위에 이제부터 하루종일 이곳 왕궁과 여러곳에 각각 위치한 3개의 왕릉을 돌아다니게 된다.        많은 역사적 기념물과 건축물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Hue 는 인구 45만명 정도의 중소도시이다.






1802년부터 1945년까지 143년간 13대에 걸쳐서 이어진 응우엔 왕조의 왕궁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벽의 길이는 가로 세로 각각 2 Km 이고 높이는 거의 5 m 정도이다.       이 성벽은 다시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입구인 남문의 정면에 중국의 자금성을 뽄떠서 지은 Dien Thai Hoa 가 있다.        왼쪽에 각 왕의 위패가 있는 사원인 현임각이 있다.










왕궁 안에는 왕족의 저택과 사원들, 황제를 위한 부속물인 중국의 자금성을 본 딴 자금성 (Purple Forbidden City) 이 있다.


 






Hue 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남부지역을 통치했던 응우엔 왕조의 수도로써 발전하였다.       1862년 자롱이 베트남 전역의 통치권을 받게 되자 Hue 는 베트남 전체의 수도가 되었다.       1945년 바오다이 황제가 퇴위 당하고 공산정부가 출범하면서 Hanoi 가 다시 베트남의 수도가 되었다.








한국이나 중국의 궁전 기와지붕에 보이는 원숭이 등의 동물은 없고 용 (Dragon) 을 연상시키는 조각들이 매우 이채롭다.






곳곳에 개보수가 시급해 보이는 것이 널려있고....    복원을 기다리고 있는 파괴된 유적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Hue 는 남 베트남 (월남) 에 속하여 있었는데 베트남 전쟁 당시 Hue 는 북쪽 공산정권인 월맹과 남쪽 월남정부의 경계에 가까이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새였었다.       1968년 구정 대공세때에 Hue 는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다.        폭격기의 피해로 많은 유적이 파괴되었고, 또 월맹에 의한 악명 높은 Hue 대학살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후에도 공산정권이 비난하던 '봉건시대의 유산' 이라는 이유로 복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방치되었다.          관광산업이 붐을 이루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면서 복원이 활기를 찾았으나 아직도 제대로 복원이 되려면 오랜 세월이 흘러야할 것 같아 보인다.


 












왕궁 안에는 왕의 여자들이 생활하는 공간, 대왕대비를 위한 공간, 크고 작은 사원들이 있다.         대체로 서울에 있는 경복궁과 비교하기 어렵게 훨씬 넓은 곳에 여기저기 많은 건축물들이 들어선 왕궁의 느낌이다.
















넓고 넓은 왕궁을 헤집고 다니면서 지치고...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불같은 더위에...   그리고 찜통같은 습기에 지쳐서 아이스크림으로 휴식중....


 








왕궁 안의 거주구역을 드나드는 곳마다 거창하고 화려한 문들이 눈길을 끈다.       모두가 옥상옥으로 만들어져 있고 기기묘묘한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태화전.        태화전은 Hue 왕궁의 정전이며 국사를 논하는 곳이었다.         왕의 공식 접견, 대관식등이 치루어지는 곳이다.         전쟁으로 심하게 훼손되었던 건물이 1970년에 재건된 모습이다.





태화전 앞뜰에 늘어선 화분들.

 


2019년 9월24일 Air Canada 로 Toronto 를 떠나서 13시간만에 도착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Vietnam 의 Da Nang 으로 떠나는 아시아나 항공에 오르기 직전이다.       긴 비행에 지치기도 했지만 밤낮이 바뀌어서 걱정이 조금 되기도 한다.       얼마나 빨리 적응이 되려는지....      우리를 태우고 Da Nang 으로 갈 항공기는 아시아나 점보 747 이다.         세계 대부분의 주력 항공사들은 이미 퇴역시킨 노후 기종이다.        화물수송에는 지금도 747 을 많이 사용하지만, 승객 수송에 지금도 747 점보기를 사용하는 항공사들이 아직도 꽤 있는가 보다.  

 



잠시 거쳐가는 인천공항에서 또다시 만나는 조선시대의 임금행차 행렬이다.        








다시 5시간 비행후 도착한 Vietnam Da Nang 공항에 도착하니 박항서 축구코치의 큼직한 사진이 걸린 전광 광고판 2개가 걸려있다.         이곳에서 얼마나 인기있는 유명 인사인지.....   Custom Area 안에는 오직 2개의 전광 광고판이 있는데 모두 박항서 코치의 사진이다.    

   









우리가 머무는 호텔의 방에서 수시로 내려다 보았던 Dragon Bridge (용다리) 앞의 4거리.       곡예의 경지를 넘어서 마술을 하듯이 오토바이와 차들이 엉키고 마구 엉키면서도 교묘히 잘 빠져나가는 신기를 자주 내려다보던 곳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쳐있는 베트남 국토의 중부지역에 있는 Da Nang 은 옛부터 작은 어촌이었다가 18세기부터 항구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중국, 일본등으로 무역선이 드나들었던 곳이다.        그후에 프랑스 식민시대에는 Tourane 라고 불렸고, 베트남 전쟁시대에는 미군 주둔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Da Nang 은 호치민(Saigon), 수도인 Hanoi, 그리고 Haipon 다음으로 4번째로 큰 도시이다.         Da Nang 이라는 도시의 이름은 큰 강의 입구라는 뜻이다.          인구는 1백만이 넘는데 최근에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도시이다.


 


Toronto 를 떠나서 시간이 바뀌고 날짜가 바뀌어서 벌써 여행 3째날이 되었다.         첫번째의 방문지가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현지인들의 시장인 Han 시장을 찾아나섰다.          사람들이 걸어다녀야할 인도는 가게에서 늘어놓은 물건들, 주차된 오토바이, 자전거, 왜소한 크기의 테이블과 의자들로 가득차 있어서 길가로 나가서 걸어야 한다.        그런데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들이 뒤엉켜서 걷기가 매우 힘들다.       곧 이곳의 사정에 어느 정도 숙달이 되겠지만....    정신을 홀딱 뺏긴듯 어벙벙한 상태이다.        힘들게 Han 시장에 접근중이다.






아래층은 식료품들, 윗층은 옷가게, 구두가게, 기념품가게들로 가득하다.        어찌나 빼곡한지 통로는 한 사람만이 지나다니기 적당할 정도로 좁다.      흥정하는 손님과 주인들이 뒤엉켜서 좁은 통로는 어디나 막혀있다.        통로가 너무 비좁아서 조금 돌아다니면 쉽게 지치게 된다.          이곳에서 최고의 인기상품은 베트남 전통 여자옷인 아오자이를 파는 곳이다.        맞춤 아오자이가 오직 15불이다.        그 자리에서 맞추고 대략 2시간후에는 완성이 된단다.      혹은 운송료를 추가로 지불하면 택시로 호텔에 배달을 하기도 한단다.         아오자이를 맞추어 입고 고적지 관광을 나서는 여성들을 상당히 많이 만나게 된다.








맛있는 식당은 언제나 밖에서 기다리는 줄이 길다.        후덥지근하고 끈끈해서 견디기 힘들어도 아랑곳 없이 차례를 기다리는 맛집 Mania 들....










대서양이 가까운 북미의 동부에서 태평양을 건너고, 다시 멀리 동남아로 이동을 하고 한나절을 보내니 벌써 3일째 밤이 되었다.       내일은 여기 Da Nang 에서 남쪽으로 3시간 떨어진 옛 수도였던 Hue 를 다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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