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슈여행 7일째 날이다.        토론토를 떠나서 부터는 여행 34일째 이다.        전쟁의 끝은 언제나 비극이다.         2차세계대전의 마지막 비극을 보여주는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던 2도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그나마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하였던 나가사키의 원자폭탄자료관 (Nagasaki Atomic Bomb Museum) 으로 가는 날이다.

 

 


오늘도 최고의 날씨인데 일기예보에서 미세먼지가 심하다고 하더니 조금 멀리 보이는 곳은 모두 청명하지 못하고 스모그가 잔뜩끼어 있듯이 뿌옇게 보인다.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가 바람의 영향으로 한국의 중부지방을 피해서 호남과 영남지방으로, 그리고 일본의 관서지방인 남동쪽으로 날아온다던 오늘 아침의 일기예보가 그대로 적중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미세먼지 영향이 없는 날이니 좋은 하루가 될 것이다.          산간지방에서는 항구도시로 가는 길은 대개 높은지역에서 낮은 해안가의 항구로 내려가는 길이 되어서 경치가 아주 좋다.        나가사키가 가까워지니 항구도시 나가사키로 내려가는 길도 역시 매우 아름답다.




나가사키 시내로 들어왔다.




아주 오래된 전차가 지금도 운행 중이다.          저렇게 생긴 전차가 서울에는 서울역사박물관 (옛 서울고등학교) 앞에 전시되어 있는데....     나가사키에서는 아직도 현역으로 운행 중이다.         이태리의 밀라노, 폴투갈의 리스본에서도 골동품 같은 전차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운행되고 있었다.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 도착했다.          원자폭탄의 피해를 학습할 수 있는 곳이다.        폭발 당시의 각종 피해상황을 다각도로 전시하여 놓고 있다.         크지는 않지만 구석구석 꼼꼼하게 원자폭탄과 전쟁의 피해에 관한 자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지하에 있는 일본 고유의 문화를 알려주는 전시실.

 









이제는 원자폭탄의 피해자료의 전시와 우라카미 성당의 측면 벽을 재현한 조형물 등이 있는 전시실로 간다.       유품과 피폭의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 영상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1945년 8월6일 오전 9시45분.           고도 9,600m 에서 투하된 원자폭탄이 나가사키 상공 500m 에서 폭발하였다.        원자폭탄이 터지자마자 즉시 7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그후에도 원자폭탄의 피해로 수만 명이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오래 전부터 Portugal 과 교역하며 무역항으로 번성한 나가사키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번성하였던 도시였다.       그러나 1587년 도요도미 히데요시에 의해서 기독교 금지령이 공포되고서 박해가 시작되었고 3백년이 지나서야 금지령이 풀렸다.         나가사키는 종교적 박해와 원폭피해등 여러 고난을 겪어온 지역이다.        그래서 원자폭탄피해 건물 중에는 천주교 교회건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전쟁이 길어지고 1945년에 들어서면서 미군기에 의한 일본본토 폭격이 격화되었고, 나가사키 시내에도 각종 전단지가 투하되기 시작하였다.         전단지에는 원자폭탄의 위력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는 사실, 시민들을 향한 피난 권유, 전쟁중지 권고 등이 적혀있다.  

  



천장에 달린 모니터에 의해서 모형 위로 화구, 열선, 폭풍, 화재, 방사선이 평면적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모습을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고 있다.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던 원자폭탄의 실물 모형.           나가사키형 원자폭탄은 둘레의 화약으로 플루트늄을 안쪽으로 폭축시켜 핵분열을 일으킨다.         원자폭탄은 핵분열성 물질인 플루트늄이 핵분열을 일으킬 때 발생되는 에너지를 무기로 이용한다.           또한 핵분열을 일으킬 때 발생되는 감마선이나 중성자선과 같은 방사선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인체에 심각한 장애를 가져온다.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은 길이 3.25m, 직경1.52m, 무게 4,500Kg 이었다.       생긴 모양 때문에 패트맨이라고 불렸다.        폭발했을 당시 고성능 폭약 21K 톤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방출되었다.         에너지는 폭풍이 약 50%, 열선이 약35%, 방사선이 약 15%였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서 나가사키 거리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다. 

 





작업복과 전투모.         폭격의 중심지로 부터 약 1.2Km 떨어진 미쓰비시 나가사키 제강소에서 피폭한 작업원의 작업복.         열선에 직접 노출된 부분이 검게 그을려 있다.






원자폭탄이 바로 옆에 떨어졌던 우라카미 천주교회의 벽이 잔해로 남아있다.          우라카미 천주교회는 1873년 천주교 탄압의 금지령이 풀려서 자유를 얻은 신도들이 33년에 걸쳐서 건축되었다.         당시에는 동양 최대의 성당이었다.           파괴되었던 교회는 전쟁이 끝나고 14년 후인 1959년에 재건되었고, 1980년에 벽돌로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당시의 나가사키는 인구 24만 명이었는데 사망 73,884 명, 부상자 74,909 명이었다.     (1945년 12월31일까지의 추정치)






매우 처참한 원자폭탄의 피해.          오른쪽 위에 보이는 사진은 구조, 구호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설 구호병원이 된 신코젠 국민학교이다.            시내에서 가장 큰 구호소로서 수많은 피폭 환자들이 수용되었다.          처음 경험하는 원폭 특유의 증상으로 인해서 사망자가 속출하였다. 

 



나가사키에 살았던 한국인 피해자.         1만3천~1만4천 명.




외국인 피해자 중에서 나가사키에 살았던 한국인 할머니가 한국어로 당시의 피해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이 코너에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판이 투하되기까지의 사건들이 자세하게 전시되어 있다.








사망자를 추모하고 영원한 평화를 기원하면서....




침통했던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을 나와서 다시 화창한 날씨에 높은 곳에 올라서 나가사키 항구를 보러왔다.       나가사키 항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이나사야마를 힘들게 겨우 운전해서 올라왔다.         경찰의 도움으로 제대로 된 목적지를 GPS 에 입력을 하고나서 정말로 어렵게 올라왔다. 












홍콩과 더불어 동양의 항구 중에서는 조망이 좋은 곳으로 알려져있어서, 힘들게 묻고 묻다가 급기야는 경찰서로 들어가서 제대로 된 주소를 GPS에 입력을 해서야 겨우 올라왔다.       구불구불 옛 산동네 길을 돌고 돌아서 정말로 힘들게 왔다.        화창한 날씨라서 기대가 컸는데.....     미세먼지의 위력이 정말로 대단한 것을 곧 실감하게 되었다. 




온 세상이 뿌옇게 보이는 전망대에서 어느 곳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든지 제대로 된 사진을 얻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바다가 가로지르는 풍경과 산중턱까지 올라와서 밀집해 있는 시가지 풍경이 멋있는데 시야가 좋지 않아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항구를 통해서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기독교를 받아들이던 나가사키는 조선통신사가 오고간 곳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문화가 일본에 전파되는 규슈의 항구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높은 곳에서 다시 내려오면 이렇게 화창하고 좋게 보이는 날씨인데.....    미세먼지의 위력은 정말로 대단하다.






년중 최대 최장의 휴일이 몰려있어서 전 일본열도의 국민이 움직인다는 5월 첫째주인데 더구나 토요일이니 더욱 붐빈다.




일본의 산간지역 지방인 규슈의 조그마한 고속도로 휴게소가 몰려든 내국인에 더해서 중국대륙의 단체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서 대인파로 아비규환 상태이다.




조그만 편의점 수준의 가게가 하나 있고 건물 입구에 작은 먹거리 좌판이 몇개 있는 시골의 휴게소에 대인파가 몰렸다.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대형버스로 속속 도착한다.          그리고 모두들 편의점의 도시락 판매대로 몰린다.       십여명 정도면 북적거릴 가게 안이 수백 명이 열차표를 사려고 아우성치듯이 빼곡하다.         도저히 발을 들여놓을 수도 없다.         한국으로 가려던 여행객들을 갑자기 일본으로 돌려놓았으니....      인사동이나 광화문, 동대문에 있어야 할 중국여행객들이 갑자기 일본의 시골 규슈로 몰려서 난리가 나고 있다.          수백 명씩 단체로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 식당도 없으니 그냥 휴게소에서 도시락으로.....   여행 중에 굶을 수도 없고 단체로 다니니 무엇이든 먹을 것을 챙기고 버스에 다시 올라야하니....     난리법석이다.








아비규환의 편의점에서 몇가게 떨어진 곳에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조그만 식당이 있다.          단체 관광객들은 시간에 쫒겨서 들어올 엄두도 내지 않으니 그리 붐비지 않아서 맛있는 식사를 하게 되었다.        여러종류의 우동, 덥밥 등의 메뉴가 있는데 일본에서는 드물게 다꾸앙, 백김치를 자유로이 가져다 먹게하여서 마음에 흡족한 식당이었다.           내일은 다시 후쿠오카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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