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5일째.       우리가 아침부터 둘러보려는 Split 의 전경이다.        바닷쪽 해안 지역이 옛 왕궁과 Old Town 지역이고 뒷쪽은 신 시가지이댜.

 

 

 

아침식사를 마치고 시원한 바닷가를 바라보며 잠시 사진을 찍어본다.        오늘도 어제처럼 하루종일 햇볕이 쨍쨍한 화사한 날이었으면 좋겠는데.....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것이 좋은 날씨는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한 두방울씩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더니 또 곧 그친다.

 

  

 

관광을 시작하려고 상당히 이른 시간인 9시에 도착했는데도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왕궁 근처.

 

 

 

 

 

궁전에 들어가기 전에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는 우리들을 하루 동안 안내할 Local Guide.


  

 

궁전의 밖에서 보이는 외벽이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고 훼손이 심하게 되어있는 것 같다.


 

 

몇세기 동안 궁전 내부에 주민들이 이주해 와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집을 짓고, 장사를 하고 살면서 이제는 그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여기저기에 TV 안테나도 보이고 전기줄도 보인다.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디오클레티안 궁전은 축구장의 약 4배 크기의 정사각형이다.        로마의 디오클레티안 (Diocletian) 황제가 은퇴 후에 10년간 머물며 죽을 때까지 지냈던 곳이다.        지금은 궁전이라고 불리지만, 원래는 황제의 저택겸 별장이었다.       한때는 군대가 주둔하기도 했으므로 요새이기도 했다.         정사각형의 궁전에는 4개의 문이 있는데 바다쪽의 남문은 청동의 문, 북문은 황금의 문, 동문은 은의 문, 서문은 철의 문 이라 불렸다. 

       

  

 

남문을 통해서 성 안으로 들어간다.       옛날에는 여기는 바다를 통해서 들어오는 물자들이 성 안으로 들어오는 문이었다.        이제는 바다물을 메우고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인도가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대리석이 깔리고 야자수 나무가 양 옆으로 들어선 Split 최고의 해안길이 되었다.


 

 

 

 

 

 

연결을 시켜서 궁전 안의 수로로 사용되었던 돌조각들.


 

 

 

 

 

 

로마의 디오클레티안 황제가 명령하여 4세기에 지어진 궁전은 처음에는 화려하고 웅장했었다.         그러나 몇세기 동안 그대로 방치되다가 주민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으나 디오클레티안 황제가 사용하던 방들과 목욕탕의 흔적은 1,7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1,700년이나 되는 오랜 역사가 쌓인 이 궁전은 현존하는 오래된 궁전 (Antique Palace) 중에서 제일 크고 잘 보존된 로마 건축양식의 궁전이다.


 

 

올려다보이는 1,700년이나 나이를 먹은 천장의 모습.


 

 

 

 

기독교를 가장 박해한 로마 황제 중의 한 명이었던 디오클레티안 황제.


 

 

 

 

꼬마들도 학습을 나왔나 보다.      옆 방에 선생님들과 함께 가서 한참 동안을 설명을 듣고 오더니 손에 하나씩 과제물을 들고 선생님 지시에 따르고 있다.       이 꼬마들이 무엇을 배웠는지 대단히 궁금하구나.


 

 

 

 

디오클레티안 황제는 이 궁전에서 10년간을 살다가 죽은 후 이곳에 다시 묻혔다.        그후에 박해가 약해지고 기독교인들이 힘을 얻는 시대가 오자 기독교인들은 그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서 묘를 들어내고 그곳에 St. Domnius 성당을 지어버린다.        그의 시신은 이들에 의해 어디론가 버려져서 찾을 수 없게 된다.       St. Domnius 성당의 종탑.


 

 

 

 

 

 

4세기에 지어졌던 궁전은 그후로 몇세기 동안은 폐허로 방치되다가 7세기 경에 Venetian 의 공격에 대비하여 궁전의 외벽을 성벽처럼 활용하여 그들을 피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많은 주민들이 궁전 내부로 이주하여서 현재까지 그들의 거주지가 되어있다.


 

 

왼쪽에 보이는 둥근 건물이 St. Dominus 성당이고, 왼쪽에 종탑이 있다.         디오클레티안 황제의 시신을 끌어내고 그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다. 


 

 

 

 

오랜 세월동안 궁전은 민가와 하나가 되었다.       파괴된 궁전의 돌을 가지고 자신들의 집을 지었고, 일부는 아예 궁전의 벽에 붙여서 집을 지었다.         현존하는 옛날의 궁전에 이렇게 민가들이 지금도 생활을 영위하는 곳은 이곳 뿐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이곳의 민가의 집값이 폭등하였다 한다.        초록색 창문이 보이는 이 집은 약간의 개수를 하였다는데 집값이 미화 230만 불이란다.       믿거나 말거나....       로마시대의 궁전 안에서 묵을 수 있는 Palace Stay 라고 선전하면서 방을 빌려주는 것이 큰 유행이 되었단다.         매우 협소하고 열악한 공간에...    볼품없는 주위환경에....      이리도 허름하고 조그만 방이 하루밤에 $150~200.         먼 외국에서 뭔지 모르고 예약해서 오는 사람들 말고는 이곳 현지에 와서 직접 보고 들어가는 사람들은 찾기 어렵단다.

   

 

 

거의 허물어져가는 건물들인데도 TV 안테나도 보이고....   사람들이 모두 거주하고 있다.


 

 

 

 

 

 

 

 

 

 

 

 

이곳 Dalmatia 지방의 전통음악 몇곡을 멋있게 들려주고 있는 남성중창단.       보통은 밖에 있는 황제 알현대기실에서 공연하는데 오늘은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니까 바로 문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마추어들이 가끔 나와서 멋있는 음악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같이 나와서 부르고 CD 를 팔고 있는 프로들이다.


 

 

남문으로 들어와서 여러곳을 돌아보고 계단을 올라오니 이렇게 기둥으로 둘러싸인 열주광장  (Peristyle) 이 나타난다.      로마시대 건축물중 기둥으로 둘러싸인 광장을 흔히 일컷는 열주광장이다.        디오클레티안 황제가 이곳에서 집무를 보고 활동도 하였던 곳이다.


 

 

 

 

 

 

 

 

광장을 지키고 있는 검은 스핑크스.            3천5백년이나 오래된 것으로 고대 이집트에서 가져다놓은 것이다.          이 궁전이 1천7백년이 되었으니 당시에 벌써 1천8백년이나 오래된 스핑크스를 이집트로부터 여기까지 옮겨놓은 것이다.


 

 

 

 

 

 

 

 

 

 

북문을 지나서 밖으로 나오니 Gregory 주교의 큰 동상이 서있다.     900년대 말까지 크로아티아는 Dalmatia 지역을 중심으로 일부는 작은 국가, 부족들, 또 일부는 도시들로 작은 공동체가 난립해 있었다.        그런데 1000년 전후에 국가형태를 이루게되는 통일 Croatia 를 첫번째 국왕 토미스라브가 이루게된다.     이때에 이곳의 주교였던 Gregory 가 이때까지 라틴어로만 진행되었던 미사를 자국어인 Croatian 으로 미사를 드리려고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것이 그후로 Croatia 언어, 문화 그리고 역사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였다 한다.       엄지 발가락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Gregory 동상.        어느 관광지를 가든지....  어디를 만지면 소원성취 한다는 ....   구태의연하고 허접한 속설이 여기에도 있구나.


 

 

 

 

최근에 복원된 북문의 모습.       북문은 황금의 문 이라 했는데 어디에도 황금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완전히 궁전을 벗어나서 Split 해안길도 걸어보고,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수산시장 구경도 하고 그곳에서 점심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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