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와 서울역 앞을 지난다.      지난주에도 Lotte Mart 에 다녀오느라 서울역에 들렀었는데 앞길이 대형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정말로 우연이겠지만 몇 년마다 서울에 들를 때마다 공사 중이다.      서울역 보수. 고가 정원 공사.      이번에는 앞길 대형 공사 중이다.      다음에 오면 더 멋있는 길이 되어 있겠지.

 

 

명동의 중국대사관과 중국 학교.      엄청 많은 인파로 뒤덮혀 북적거리는 명동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대사관.      따라서 경비도 대단하다.      적어도 8명 정도의 경찰 경비가 정문을 따라서 길게 담 옆을 지키고 있다.      사진에만도 3명의 경비가 보인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고 외교공관이니 어쩔 수 없으리라.      더 넓고 좀 한적한 곳으로 이제는 옮길 때가 아닌가 싶다.

 

 

4월 1일.      을지로 입구의 호텔 저녁 부페.      고맙게도 선물로 저녁 부페 카드를 받아서 왔는데, 젊은이들이 가득하다.      저녁에 2번의 부페가 있는데 언제나 예약 만원인 듯하다.      터무니없이 비싸고 (19만원, USD 140), 한없이 먹어대는 젊은이들이나 좋아할 듯.

 

 

20여 년간의 성장기를 보내서 언제 보아도 옛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을지로 입구 4거리의 밤 전경.

 

 

밤거리의 명동은 제일 분주한 때이다.      먹거리 포장마차까지 늘어서서 입추의 여지가 없다.       거의 모든 간판들은 영어 일색이다.      한글 간판도 없고, 일어 중국어 간판도 없다.      완전히 국제도시의 거리이다.      대부분 여러 나라의 방문객들로 섞여있는데 중국어, 일본어가 많지만 동남아, 서구의 방문객들도 많다.       한국어는 별로 들리지 않는 곳이다.

 

 

 

길거리 가운데에 늘어선 야간 포장마차에서는 아직도 한글이 좀 보이는데, 시간이 지나면 곧 영어로 모두 바뀔 듯.

 

 

늠름하고 싱싱한 잘 생긴 붕어들이 의장대 행렬처럼 반듯하게 정렬하여 서있다.      5개에 5천 원이니 착한 가격인 것 같다.

 

 

전병에 초콜릿 소스를 바르고, 바나나와 방울토마토 그리고 또 무슨 야채와 과일을 잘라 넣어서...    둥글고 길게 말아서 큰 컵에 넣어준다.      만 원이었던가, 1만 5천 원이었던가.       맛있게 생겨서 먹어 보았어야 했는데, 언제나 늘어선 줄 때문에 지나쳤던 포장마차의 새로운 음식이다.

 

 

해물매콤 핫바를 먹어보았는데, 매운맛이 대단했다.       이렇게 맵게들 먹는지...

 

 

옛날에 마구 만들어 쌓아놓고 손님이 오면 곧장 잘라주던 시대는 예전에 지났다.       지금은 손님이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싱싱한 김밥을 만들어 내놓는다.      좀 더 정성들여서 만들고 고급스러운 여러 가지 다른 김밥들이다.      값도 4,800 에서 6,000원까지.       1,000원 2,000원은 옛날 고리짝 가격이다.      값은 비싸졌지만 맛은 아주 좋아지고 즉석에서 만든다.      멸치 김밥, 참치 김밥, 멸참 김밥, 그리고 몇 가지 더 있다.      사진의 멸치 김밥 (4,800) 그리고 꼬치어묵 (3,000원) 을 여러 번 간단히 즐겨 먹었다.      김밥은 가격이 올랐어도 맛이 아주 좋은데, 꼬치어묵은 가격에 비하면 너무 엉터리이다.

 

 

4월 3일.      오늘은 뚝섬 건너편의 강남으로 넘어왔다.      강남 삼성동 부근이었나?      숙명여고.      강북에서 이사를 온 지 40년이 되어가는데, 쾌적한 환경에 아주 좋아 보인다.

 

 

1906년 순헌황귀비 엄씨가 설립한 118년 오랜 역사의 숙명여고.

 

 

 

한국에서 제일 비싼 아파트 동네로 일컬어지는 The Tower Palace 아파트 건물들.

 

 

그리고 그 동네의 커다란 건물 속 2층에 있는 안동국시집.      간판이 있는듯 없는듯하여 동네 주민들이나 애용하는 식당 몇 곳이 함께 있다.      수육, 토토리묵, 정말로 멋있고 맛있다.      안동국시집을 예전에는 국수를 먹으러 자주 다녔는데...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효자동 사돈 3자매들과 정신없이 떠들고 먹다 보니 사진 한 장 없구나. 

 

 

해물파전이 대단히 맛이 좋았다.       오랜만에 막걸리도 2병이나 해치우고...

 

 

여행 33일째.      토론토에 파견 거주하였던 동기 친구들과 방배동의 조그만 중국 맛집 방배반점.       항상 밖에서 몇 사람 대기 줄이 있다는데 오늘은 점심시간보다 아주 늦게 온 덕분에 기다리지 않고 한자리 겨우 차지하고 앉았다.

 

 

보통의 탕수육과 다르게, 가운데 손가락 크기의 곧은 튀김과 소스도 색다르고 아주 바삭하게 나온 탕수육.       그리고 왼편 접시는 가지 (Egg Plant) 튀김인데, 어떻게 튀겼는지 가지가 대단히 바삭거린다.      역시 서울은 무슨 음식이나 미식가들의 천국이다.

 

 

4월 5일.      여행 34일째.      광화문으로 가면서 을지로를 일부러 지나간다.      삼일로와 만나는 4거리.

 

 

저 멀리 남산 타워가 보인다.      삼일로에서 남산터널로 올라가는 큰길이 뚫려있다.      예전보다 좀 더 넓은 길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을지로 입구 가까이의 을지로 1가 거리.

 

 

을지로 1가와 을지로 입구 사이에 있던 골목길은 지금은 없어졌고 은행 본점들이 들어서 있다.      왼쪽의 흰색 고층건물이 들어서 있는 근처가 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성장기 27년간 살았던 곳이다.      올 때마다 기억을 떠올리며 한번은 꼭 다녀간다.

 

 

서울을 처음 방문한 우리 꼬마들이 환호했던 가게들.       명동, 을지로 입구 지하철 등 여러 곳에...

 

 

 

청계천.       서울의 중심에서 살면서 매일 지나다녔던 청계천.       그 청계천을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었다니 정말로 놀랍기만 한 곳이다.

 

 

청계천의 시작점 광교, 그리고 수표교, 어수선했던 서울의 중심지가 이토록 멋있게 변했다.

 

 

관훈동 삿뽀로에서 대학 친구들과.      신이사장 , 김박 (여수 기골장대), 이박 (James Dean) 들과 정겨운 시간.       올 때마다 신형이 즐겁고 과분한 모임을 주선한다.

 

 

먹고 마시고 떠들다가 옛 서울대학교 본부와 문리과 대학이 있던 동숭동 Campus 로.

 

 

옛 서울대학교 본부와 문리과대학이 있던 동숭동 Campus.      옛 대학본부 건물이었다.      학생들의 낭만이 살아있던 문리대 정문으로 들어오는 미라보 다리를 건너야 했다.      지금은 개천을 덮개로 막아서 대로변이 되었다.       봄이면 마로니에 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아름다운 캠퍼스였다.      캠퍼스의 상징은 시계탑.      문리대 학생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관악 캠퍼스로 옮겨간 후에 지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그리고 아르코 예술극장이 되어 있다.

 

 

대학로 건너편의 학림다방은 아직도 그 자리에서 같은 이름으로 영업 중이다.      주위의 많은 가게들은 전국 각지에서 서울대 병원으로 몰려드는 환자들로 곳곳에 약국이 되어 있고 몰라보게 북적이는 환자촌이 되어 있다.      점심을 잘 먹었으니 모두들 학림다방으로 왔다.      여기서는 아직도 신청곡을 받고 LP 음반을 돌려서 Classic Music 을 들려준다.      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예전에는 다방 내부에 2층이 없었던것 같은데 지금은 2층도 있다.       고전의 냄새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분위기이다.

 

 

 

여행 35일째.      이번 여행에는 서울에서 단출한 작은 마켓을 별로 다니지 않고, 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형 E-Mart 혹은 대형 Lotte Mart 를 찾아다녔다.      18조각의 Sushi 가 1만 6천 원. 북미에 비하면 착한 가격이다.       맛도 있고 보기에도 예쁘다.

 

 

손질이 잘 되어서 가져가서 끓이기만 하면 되도록 준비된 찌게들.      놀랍게도 1회용 용기 냄비에 담아져 있다.       그대로 올려놓고 끓이고 냄비까지 다 버리면 된다.       이것도 1만 6천 원이었던가?

 

 

종로 4가 광장시장 먹자골목,

 

 

대낮부터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린다.      먹자골목의 먹자판이다.      무엇이 그렇게 맛있는지...    언제나 대만원이다.

 

 

 

토요일 저녁.       서울의 식구들과 여러가지 생선회를 먹고 마시고 즐기며, 마구 대작 중이다.

 

 

서울에서의 아침상.      제일 맛있는 식사 시간이다.      매일 같이 조금씩 다른 죽으로 간단한 아침을 한다.      Canada 에서의 일상은 아침에는 팥죽이나 녹두죽으로 하루를 하고, 다음날은 Toast, Egg Fry, Vegi 로 번갈아 가며, 하루는 한식 하루는 양식이다.       서울에서는 매일 한식인데 매우 간단하지만, 제일 맛나고 편안한 음식을 먹는 때이다.

 

 

2024년 4월 7일.      여행 36일째.      많은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이 가장 근무하고 싶어 하는 대한민국 권부(權府) 의 심장이었던 청와대.       예전에는 정문은커녕 개미 새끼도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하던 곳이었다.       민주. 자유화의 물결로 20년 전부터는 청와대 앞길까지는 개방이 되더니, 이제는 드디어 '청와대, 국민 품으로'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완전히 개방이 되었다 (2022년 5월 10일).

 

 

한옥 스타일의 웅장한 청와대 본관.       광복이래 이승만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청와대는 대통령이 공무를 수행하는 대통령 집무실과 퇴근 후 기거하는 대통령 관저 기능을 가진 대통령궁이자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진 및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행정기구 대통령부 (大統領府) 를 의미했다.      1948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미군 군정사령관 관저로 사용되던 조선 총독부 관저를 이양 받아 대통령 집무실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다.       조선시대의 지명에 따라 경무대 (景武臺) 라 불렸다.       제2공화국 윤보선 대통령이 경무대 지붕이었던 청기와에 착안하여 청와대 (青瓦臺) 라 개칭하였다.

 

 

이후 제6공화국의 노태우 정부 임기 말에 민족의 자존심을 높인다는 이유로 한옥 스타일의 청와대 본관을 신축하여 1991년 9월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본관 건물은 전통 한옥 건물 구조에 팔각지붕을 올리는 궁궐 건축 양식을 따랐다.       전면 9칸 지붕 처마 끝에는 잡상이 11개가 올려서 황제의 격에 맞춘 지붕이다.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 지붕보다 2개의 잡상이 더 올라앉아 있다.       2층의 거대한 건물이 되다 보니 한옥의 전통 목조 건물이 아니고 콘크리트 석조 건물이 되었다.

 

 

저 국빈은 어디서 오신 분인가...    와우 ~ 나 여기 왔어요...

 

 

본관 현관 앞에서 바라본 넓은 정원.       국빈 환영식이나 중요한 야외행사에 쓰인다.

 

 

웅장하고 넓은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 2층으로 오르는 중앙 계단이 방문객들을 압도한다.

 

 

청와대 본관 1층에서 제일 먼저 들어온 곳이 왼편에 있는 무궁화실.      역대 11명의 영부인들의 사진이 방문객들을 먼저 반긴다.

 

 

무궁화실은 영부인이 사용하던 공간으로, 외빈을 만나는 접견실과 집무실로 쓰였다.

 

 

아주 멀리서 오신 오늘의 특별 외빈이시다 ~~      접견실과 집무실.      영부인은 어디 가셨나?

 

 

 

안내원의 지시대로 2층의 대통령 집무실로 올라가려는데, 여기가 'Photo Zone' 이라고 안내원이 친절히 순서대로 사진을 찍도록 배려해 준다.      오늘의 귀빈이 포토라인에 섰습니다!

 

 

 

2층의 대통령 집무실과 접견실.      대단히 넓은 공간이다.      출입구부터 책상까지 15m 에 달할 정도로 상당히 넓은데, 넓이가 70-80 평도 더 될듯하다.

 

본관이 완공된 후부터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한 본관과 비서실이 위치한 여민관이 너무 멀어서 (차로 5분, 도보로 최소 10분) 소통의 문제점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수시로 조언을 구하고 지시를 해야 할 비서실 직원들과 동떨어진 공간이다.      청와대 내의 같은 경내임에도 불구하고 2개의 초소를 따로 통과해야 하고...    노무현 정부 때 비서관들과 소통을 위해서 여민관 3층에 간이 집무실을 만들면서, 본관 집무실은 귀빈 방문 및 행사용으로만 쓰이는 보조 집무실처럼 되었다.

 

 

같은 건물 안에서 대통령과 비서관들이 수시로 만나 국사를 의논하는 백악관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2층의 계단 정면 벽에는 공심여일월 (公心如日月).       나무판에 자개로 만들어진 서예품.

 

 

공심여일월 (公心如日月).       서예가이자 전각가인 이기우의 1959년 작품.       옻칠한 큰 나무판에 자개로 '공평한 마음은 해와 달과 같다' 라는 뜻으로, 모든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공정하고 평등한 국정운영을 기원한다는 내용이다.

 

 

서쪽의 별채와 연결된 방은 서양식으로 꾸며진 인왕실이다.      간담회나 오찬, 만찬이 열리는 소규모 연회장, 그리고 외국 정상 방한 때 공동 기자회견 장소였다.      그리고 동쪽 별채의 충무실은 대규모 인원의 임명장을 수여하거나, 대규모 만찬과 공연하던 공간이었다.      지금은 내부에 무슨 전시를 준비 중이라서 닫혀있다.      그리고 보니 역대 대통령들의 사진도 1층 어디에 걸려있다는데, 찾아보지 못하고 본관을 나선다.

 

 

(빌려온 사진)  현재는 용산의 대통령실에 대통령 집무실, 비서실, 안보실, 경호실 등 청와대의 모든 부서가 한 곳에 모여있다.

 

 

이제는 다음 코스인 관저로 가는 길.      여러 군데에 안내원들이 대기하면서 다음 코스를 친절히 가르쳐 주고 있다.      생각보다도 너무나 넓은 곳이라서 약도만 들고 다니면서 찾아다니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오늘 날씨가 아주 좋은데, 초여름처럼 덥기까지 하다.      관저로 가는 길은 가깝지 않아서, 물도 마시고, 쉬어가야만 한다.

 

 

중간에 나타나는 청와대 구 본관 (경무대) 이 있었던 자리에 기념석이 있다.      초대 이승만 정부부터 전두환 정부까지 사용하였던 청와대 구 본관의 옛터이다.

 

 

청와대 본관에서 관저까지는 내려가고 올라가고, 상당히 멀다.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고, 도보로 12분 정도의 언덕 길을 올라가야 한다.

 

 

대통령 관저로 들어가기 직전에 나타나는 산책로.      30분 정도가 소요되는 산책로인데 중간에 통일 신라시대의 불상이 있다.

 

 

대통령 관저로 들어가는 인수문.      전통 한옥 양식의 건물이다.      본채와 별채, 정원과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관저는 전통 목조 구조이며 812평으로 거대하다.     궁궐 건축 양식인 별채가 'ㄱ' 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고, 사랑채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념 식수하였다는 관저의 인수문 앞 소나무 2 그루.

 

 

오늘은 날씨도 아주 좋고 기온도 많이 올라 있어서 초여름 날같이 좀 덥기도 하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방문객들이 상당히 많은듯하다.

 

 

청와대는 왜 이리 넓게 잡았는지...    약 7만 7천 평이다.      미국의 백악관은 2만 2천 평.      비효율적일 정도로 넓은 부지와 경복궁 뒤편에 세워진 특성상 정치의 중심지로서는 너무 외진 곳에 세워졌다.

 

 

 

이제는 청와대를 나가면서, 영빈관을 마지막으로 들린다.      청와대로 들어오면 바로 왼쪽으로 영빈관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청와대 경내의 현대식 건물 중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로 45년 전인 1978년 말에 준공되었다.      겉모습은 경복궁의 경회루를 많이 닮았는데, 실제로 정면 앞에서 본 건물은 상당히 거대하다.      석조로 건축된 건물로 대규모 회의 혹은 국빈을 환영하는 연회, 만찬 등을 여는 장소이다.

 

 

 

국빈들을 환영하는 대연회장으로 쓰이는 영빈관.      청와대 완전 개방 이후에도 여전히 대통령실에서 지금도 사용 중이다.

 

 

 

와~  영빈관의 돌담 안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으로 심은 나무가 멋있게 자라고 있다.

 

 

이제는 청와대를 나선다.      멀리 보이는 경복궁의 후문인 신무문.      청와대는 이제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문화의 공간으로 만들어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청와대의 대부분 시설은 국민들에게 전면 개방하고 영빈관 같은 부분적 실용적 시설만 회의 행사용으로 사용된다.

 

 

청와대 앞길과 마주한 경복궁 후문 신무문 (神武門).

 

 

그리고 멀리에 효자동 4거리가 보인다.      30년 전에는 효자동 4거리까지만 일반인들의 접근이 허용되었고, 지금처럼 자동차나 버스는커녕 아무도 다니지 못하는 통행금지 구역이었다.

 

 

청와대 앞길에 만발한 벚꽃.      오늘이 4월 7일, 토론토에서는 4월 24일에 벚꽃 촬영 동호회가 있었으니, 2주 먼저 피어있다.       서울의 이상저온으로 벚꽃이 늦게 피었나 보다.

 

 

 

그리고 나타나는 춘추관 정문.      청와대 Press Center, 출입 기자실과 기자 회견장 그리고 청와대 극장이 있는 곳이다.      500여 명의 비서실 직원들과 행정요원들이 있던 3개 건물의 여민관은 더 윗쪽에 있다.

 

 

다시 마지막으로 지나가는 명동은 언제나 북적인다.       밤낮 가릴 것 없이 언제나 대만원이다.

 

 

 

 

북적거리며 재미가 넘쳐나는 서울의 거리들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고 있을 것이다.

 

 

4월 9일.      서울을 떠나 Canada 로 떠나기 이틀 전이다.      광화문에서 신형과 또 만나서 오후 한나절을 보냈다.      놀랍게도 아직도 현역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친구다.      신임이 매우 두텁고 유능한 신형을 누가 마다할 것인가.      재단이사장을 끝없이 이어가는 동문이다.

 

신형의 지시대로 광화문을 활보하는 사진을 한 장 남기며 서울의 여행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40일간의 여행을 끝내고 이틀후에는 Canada 로 돌아간다.

 

2024년 3월 24일 (일).      여행21일째이다.      북적대는 서울을 빠져나와서 잠시 후쿠오카에 다시 왔다.      후쿠오카 (福岡) 의 하카다역 (博多駅) 은 규슈 여객철도 (JR 규슈), 서일본여객철도 (JR 서일본), 그리고 후쿠오카 시의 철도역이다.      규슈 지방과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규슈 최대의 역이다.      주요 도시를 묶는 신칸센, 특급열차, 후쿠오카 도시권을 달리는 지하철 등 많은 노선이 다니는 역이다.

 

 

부산-후쿠오카의 거리가 오직 200Km 이다.      서울-부산의 430Km 보다 훨씬 가깝다.      부산에서 전남의 광주 혹은 부산에서 경북의 안동까지의 거리이다.      한국과 일본은 매우 가까운 이웃이다.      평화롭게 서로 공존하고 협력하는, 영원히 친선의 이웃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거대한 하카다역은 지하에서 사방팔방으로 상가가 끝없이 펼쳐진다.      역사 안에는 Hankyu 백화점, Tokyu Hans 등 대형 상점들이 들어서 있고, 9층과 10층에는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음식점들이 들어있다.      지하에는 간편하고 편리한 음식점들이 가득하다.      이렇게 유동인구가 엄청 많은 철도역이 언제나 휴지 조각이나 버려진 쓰레기 티끌도 찾아볼 수 없도록 깨끗하다.      길에 떨어진 종잇조각이 혹시나 있으면 곧 지나가던 사람이 주워서 가져간다.      투철한 시민정신이 놀랍기만 하다.

 

 

 

지하에는 대중음식점들이 가득한데 집집마다 먹음직스러운 음식 모형 (Donteat 食べるな) 들이 너무 많아서 고르기조차 힘들다.

 

 

먹어보면 다 비슷비슷한데...    보기에는 너무 맛있어 보이고 예쁘게 보여서, 이집 저집 기웃거려 보다가...    바둑에서 흔히 보는 장고 끝에 악수를 두기도 한다.

 

 

 

예쁘고 화려하게 장식한 음식점들이 어찌나 많은지, 올 때마다 어느 집으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음식 맛에 워낙 둔감하다보니 너무 음식 종류가 많으면 더욱 혼란스럽다!

 

 

 

1주일 사이에 이집 저집 다니며 먹어보았지만 다 비슷비슷하다.       음식점 밖에 걸린 사진과 모형 (Donteat) 을 들여다볼 때가 제일 맛나게 보인다.       첫날 들어간 식당의 튀김우동.

 

 

매일 아침 호텔에서 먹는 조식이 제일 즐거운 시간이다.       예전에도 후쿠오카 이 호텔의 조식을 즐겼는데 지금도 다름없이 행복한 아침상이다.

 

 

여행 22일째.      오늘은 7년 전 이곳에 왔을 때 들러보지 못했던 Canal City Hakata 로 왔다.      Rent Car 로 10일간 규슈의 지방 도시들을 돌아다닐 때여서 후쿠오카에서는 그리 시간의 여유가 많지 않았다.      캐널시티 하카타.     운하도시 하카다는 하카다역에서 서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 있다.      거창한 이름이 붙어있는데 실제로는 지상 8층, 지하 2층의 복합 쇼핑몰이다.       건물 동들 사이에 조그만 물길을 만들어 놓았다.      사무실, 호텔, 백화점, 가게 등의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으며 극장, 스튜디오 등 오락시설도 있다.

 

 

별로 흥미롭지 않은 곳인데, Canal City Hakata 는 왜 크게 소문이 나 있는지 모르겠다.       이 건물을 시공한 건설회사가 한국의 대우건설인데, 대우에서 시공한 큰 규모의 건물 중의 하나로 알려진다.      원래는 가네보 공장이 있던 자리였는데 재개발하여 1996년에 오픈했다.

 

 

여기가 30분마다 열리는 분수쇼를 하는 곳.

 

 

빗속에 호텔로 돌아오며 거주 지역의 동네 마을에서 만났던 신사인데....    일본에는 대도시에도 개인 소유의 옛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 같다.      오직 상업적 가치만을 계산해서 헐어버리고 높은 새 건물이 들어서는 경우도 좀 있겠지만....

 

 

 

3월 26일.      여행 23일째.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명실상부한 후쿠오카시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쿠시다 신사 (kushida Shrine) 를 찾아가면서 골목길에서 만나는 옛 가옥들.

 

 

 

거주 지역의 넓지 않은 길 앞에 나타나는 쿠시다 신사 (Kushida Shrine).      입구 바로 앞에는 석재 토리이와 함께 여러 깃발이 나부낀다.      붉은색의 토리이가 아니고 회색이다.      다른 신사들과 같이 붉은색의 토리이가 아니라서 어딘가 모르게 좀 엄숙하게 보이기도 한다.

 

 

쿠시다 신전 (Kushida Shrine) 은 서기 757년에 창건된 오랜 역사의 신사이다.

 

 

 

신사에 들어가서 신에게 기원하기 전에 손과 입을 정갈히 하라는 의미로 손과 입을 씻는다.      더우면 꿀꺽할 수도 있는데 마시는 물이 아니다.

 

 

쿠시다 신사는 불로장생과 번성의 신을 모시는 신사이다.

 

 

 

손뼉을 크게 소리 나게 치고, 그리고 기도를 드린다.

 

 

역시 이곳 쿠시다 신사에도 부적을 파는 곳이 있다.      불로장수, 가내안전 등 이것저것 있는데, 신사를 방문하는 일본인들에게는 빠트릴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일인가 보다.

 

 

 

신사의 본전에는 일본 신화 속에 등장하는 태양의 신(아마테라스) 과 바다의 신(스사노) 이 모셔져 있다.

 

 

본전 건물의 천정에 매달린 12주기의 동물들.

 

 

 

본전 앞의 인공 샘물과 학.       한 입 마시면 자신의 불로장생, 두 번 마시면 가족들의 불로장생을, 세 번 마시면 누군가의 불로장생을 어쩌구저쩌구...

 

 

흐리거나 비를 뿌리던 지난 2-3일을 보내고, 오랜만에 날씨가 아주 좋으니 곳곳에서 봄 향기를 맡으며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일본 신사에 가면 술통을 쌓아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술통을 모셔두고 있는데 바로 신께 바치는 술이기 때문이다.

 

 

쿠시다 신사가 또 유명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일본은 많은 축제 (마츠리) 가 열리는데 각 도시마다 그 도시를 대표하는 축제가 있다.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축제 중의 하나가 '하카다 기온 야마카사' 로써 그 축제의 출발지가 바로 이곳 Kushida Shrine 이다.      축제 때 여러 종류의 가마들이 행진을 하는데, 가장 크고 유명한 것이 사진에 보이는 가마이다.      일본 신화 속의 신들을 본뜬 인형들이 가마 안에 여기저기 매달려 있다.      축제가 끝난 후 사용된 가마들은 거의 모두 해체되는데, 이 가마는 특별히 1년 내내 여기 Kushida Shrine 에 이렇게 전시된다.

 

 

이곳 Kushida Shrine 에는 일반에게 공개되지는 않지만 조선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보관된 곳이라고 알려진 곳이다.      명성황후를 시해했던 자객 3명 중 한 명의 칼이다.      칼의 이름은 히젠토, 한 면에만 날카로운 날이 서있는 칼이다.      마른 핏자국이 남아있는 칼을 들고 와서 저주를 두려워해서 신사에 1908년에 기증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여부는 명확지 않다.

 

 

쿠시다 신사 근처에 있는 가와바타 쇼핑 아케이드 (Kawabata Shopping Arcade).      아직 이른 시간이라 매우 한가해 보인다.

 

 

 

후쿠오카 시내의 일부를 지나가는 Fukuoka 강.      쿠시다 신사를 방문하고 나서 후쿠오카 Tower 로 가는 버스정류장을 찾아가는 길에 예정에 없던 여러 곳을 구경하고 있다.

 

 

 

여기는 또 다른 가와바타 상점가 (Kawabata Shotenga) 이다.       후쿠오카 Tower 가는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을 찾느라 여러 곳을 헤매고 다닌다.

 

 

너무나 친절한 어느 아주머니가 불편한 다리를 무릅쓰고 우리를 어느 버스정류장으로 데려다주고, 안내판을 찾아보고 하더니, 친절히 몇 번 버스를 타면 된다고 했다.      어느 정거장에 도착하니 버스의 승객들이 모두 내리고 우리만 남았는데, 운전사가 여기가 Ohori 공원이 있는 종점이란다.      Fukuoka Tower 를 가려면 길 건너의 어느 정류장으로 가서 한참 더 타고 가야 한단다.      아이고~ Ohori 공원은 내일 오려고 했는데 날씨도 매우 좋으니 오늘 여기서 놀다가 간다.      후쿠오카 Tower 는 잊어버리기로 했다.       바로 여기가 Ohori 공원 입구이다.

 

 

오호리 (Ohori) 공원은 후쿠오카 성을 쌓아 올릴 당시에 성을 보호할 목적으로 이 지역을 매립하여 성벽 밖 둘레에 판 구덩이 (오호리) 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수경 공원인 오호리 공원의 연못은 국가 등록 기념물이다.       주위에 산책로, 놀이동산, 일본 정원 등 산책과 휴식장소이다.

 

 

 

공원 연못에 떠있는 3개의 섬과 이 섬들을 이어주는 4개의 다리는 오호리 공원의 경치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매년 겨울이 되면 멀리 러시아의 시베리아 지방에서 흰죽지, 붉은부리 갈매기, 댕기 흰죽지, 물닭 등의 철새들이 날아오는 오호리 공원의 연못.

 

 

 

 

연못이 공원 면적의 거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공원이다.       원래는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판 것인데, 중국의 시(柴) 호수를 모방한 것이다.

 

 

3개의 섬이 있는 연못의 중앙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로 심어져있는 2Km 정도의 가벼운 산책로가 있다.

 

 

언제나 우리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하카다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 후쿠오카 여행은 온전히 후쿠오카 (福岡) 에서만 쉬엄쉬엄 지내다가 서울로 돌아간다.       우리의 호텔이 도보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으니 오고 가며 자주 들리는 곳이다.

 

 

오늘의 점심은 기어코 생라면으로 하려고 늦은 시간이 되었지만 여기로 왔다.       하카다역 지하상가에 있는 Ikkousha Ramen (一幸舍) 으로 왔다.       점심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여러 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면서 안을 들여다보니 음식을 만드는 주방은 큰데, 주방을 둘러싸고 놓인 좌석은 10석인가, 11석 정도뿐이다.

 

 

一幸舍 라면집은 (イクシャラーメン) 여기 말고도 Hakata 역 바로 동쪽 골목길에도 있다.       전자제품 전문점 Yodobashi 빌딩 바로 건너편이다.       그곳 一幸舍 라면집도 지나다니면서 보면 언제나 길게 늘어선 줄이 있다.

 

 

우리가 주문한 생라면이다.      가장 일반적 인기 메뉴이다.      오직 950엔짜리 생라면이다.      한화로는 약 8천 원, 미화로 $6.00.       일본 엔화의 환율이 기록적으로 오랫동안 낮은 때이라 무척이나 저렴한 가격이다.      맛도 좋았고 생라면 면발도 아주 좋았고, 돼지뼈 육수도 다 좋았는데, 우리에게는 좀 너무 짜게 느껴지는 맛이었다.       워낙 면류나 라면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음식 맛을 별로 잘 모르는지라 여행하면서 맛집을 찾아오기는 처음이다.

 

 

별로 사야 할 물건은 없지만 일본에 올 때마다 Yodobashi 상점에 들러서 카메라 구경도 하고, 전자제품들도 둘러본다.

 

 

 

와우 ~ 언제나 이곳에 들어오면 너무나 많은 종류의 제품들이 쌓여져 있어서 정신 차리기 힘들다.      카메라도 일본 여러 회사들 각각의 코너가 따로 구분되어 있다.      카메라 액세서리는 종류가 너무 많아서 무언가 사려고 해도 고르기조차 쉽지 않을 듯.      일본에 들릴 때마다 구경을 하고 간다.

 

 

 

3월 29일.      여행 26일째.      후쿠오카 여행 6일째.      호텔방의 유리창 밖으로 매일 내려다보이는 숲으로 뒤덮인 넓은 곳.      높은 건물들에 둘러싸인 공원같이 보이는 이곳이 스미요시 신사이다.

 

 

언제나 코앞에 있는 곳은 뒤로 미루다가 결국은 놓치기도 한다.      내일은 공항으로 가야 하니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드디어 코앞의 신사를 구경하러 들린다.

 

 

 

스미요시 신사 정문으로 들어가는 길.      아주 옛날 1,800년 전에 신사가 처음으로 세워졌던 시절에는 바로 여기 앞까지 바다로 덮여있었던 곳이다.

 

 

스미요시 신사는 악운을 제거하고 평온을 부르는 신, 항해 안전 및 선박 수호의 바다신 (海神) 을 모시는 신사이다.      일본 3대 스미요시 신사 중의 하나이며, 전국에 2천 개가 넘는 스미요시 신사의 시조로 여겨지는 가장 오래된 신사이다.      후쿠오카에서 어업이나 항해 등 바다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추앙을 받고 있는 신사이다.

 

 

 

후쿠오카 스미요시 신사의 본당 모습이다.      직선에 가까운 지붕의 모습은 불교의 건축양식과는 다르다.      불교가 일본에 전해지기 훨씬 전에 (서기 약 200년) 지어졌기 때문에 스미요시 스쿠리라는 양식을 따르고 있다.      1623년에 재건된 모습이다.

 

 

젊은이들 노년들 모두 방문객들은 아주 경건한 모습이다.       지나다가 우연히 들린 것이 아니라 소원과 기도를 가득히 안고 찾아온 사람들이다.

 

 

일본인들의 신사 참배는 특이하다.       박수를 크게 치고, 종을 치기도 하고, 기도를 올리고, 90도 굽혀서 깍듯이 절을 하고.

 

 

 

앗~  이 분은 누구이신가?       고대역사상 (古代力士像)?

 

 

일본의 신사에서는 빠질 수 없는 에마 (絵馬).       이 분은 지금 무슨 소원이 적힌 에마를 골라서 묶어놓으시려는지...

 

 

 

왠지는 모르겠는데 빨간 도라이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신사 안의 정원 주변에는 여기저기 작은 사당들이 보인다.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지고 가꾸어진 고목들.      스미요시 신사의 방문을 마지막으로 7일간 후쿠오카에서의 휴식(?) 을 마치고 내일 오후에는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후쿠오카 (福岡) 는 왠지 모르게 쫓기고 압박을 느끼는 거대한 도시와는 다르게, 언제나 포근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아늑한 도시이다.       Taipei 와 서울에서 지낸 20일을 합치면 벌써 27일째 여행 중이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서 13일을 더 보내고 Canada 로 돌아간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남산.      경치가 좋아서 예로부터 선비들이 거쳐하였던 곳이었고, 더위를 피해 골짜기마다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이곳은 신선이 사는 곳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자리였다.      그중에서도 남산골 한옥마을은 자연을 벗 삼아 독서를 좋아하던 남산골 선비들이 모여살던 지역이었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1998년 이러한 남산 자락의 옛 모습을 되찾고자 한옥 5채를 복원하여 개장했다.

 

 

정문을 들어서면 곧 나타나는 청학지 연못 앞에 있는 천우각.      정면으로는 넓은 전통 정원인 중앙광장이 있다.      계절마다 여러 가지 문화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넓은 정원에서 한옥마을로 들어가는 문.      이곳으로 옮겨온 전통가옥은 구한말에 신분과 직책이 달랐던 다섯 사람의 가옥으로 서로 다른 한옥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한양의 고관대작들 주거문화를 엿볼 수 있다.

 

 

남산골 전통정원 안내도가 보이고, 한옥마을로 들어가는 문에는 큼지막한 입춘대길 (立春大吉) 글자가 붙어있다.

 

 

 

제1호는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제1호는 도편수 이승업의 가옥이다.      도편수는 조선시대 건축공사를 담당하였던 기술자를 일컫는 말이다.      고종 때 대원군에 의해서 1867년부터 크게 증축되었던 경복궁 (景福宮) 의 중건을 이끈 수석 도편수 이승업의 가옥이다.       청계천이 시작하는 중구 삼각동에 있었던 가옥이었다.

 

 

1860년에 건축된 이 가옥은 안채는 위에서 보았을 때 'ㅜ' 자 모양으로, 사랑채는 'ㄴ' 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지붕은 크고 높은 팔각지붕이고 부엌이 있는 부분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도편수가 자신이 거주할 집을 어떠한 기술로 지었는지를 볼 수 있다.

 

 

안채는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외쪽에 안방이 있고, 꺾여서 부엌이 길게 있다.      건너방은 대청의 오른쪽에 있는데 앞과 뒤를 갈라서 2개의 방으로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지붕인데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은 모양을 하고 있다.      서로 길이가 다른 지붕면은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유형이었다.

 

 

원래는 대 문간채와 행랑채가 안채와 사랑채를 둘러싸고 있었으나,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 남아 있다.

 

 

가옥의 뒷부분, 마당에서 올라온 굴뚝이 보인다.

 

 

 

 

 

나는 여기서 사진을 한 장 남긴다.      이 집은 우리 외가의 친척 집이었는데, 우리가 살았던 을지로 입구 수하동의 바로 옆이 삼각동이다.      우리 식구들이 어렸을 때부터 성장기까지 오랫동안 드나들었던 많은 기억이 남아있는 곳이다.

 

 

한옥마을의 중앙에 있는 피금정 앞 공터에서는 간단하고 다양한 민속놀이를 체험해 볼 수도 있다.

 

 

 

제3호.      동대문구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재실 (齋室) 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묘 또는 사당 근처에 세운 건물이다.      이 집을 지은 해풍부원군 윤택영은 순종의 장인으로 조선의 마지막 부원군으로 여러 관직을 지냈다.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던 재실은 1907년 윤택영의 딸이 순종황제의 황후가 되어 창덕궁에 들어갈 때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한다.      재실은 사당과 본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재실의 배치가 전체적으로 '元' 자 (으뜸 원)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제4호 가옥은 종로구 관훈동 민씨 가옥이다.

 

 

민씨 가옥은 건축시기가 명확하지 않다.      이전에는 부마도위 박영효의 가옥이라 불렸으나, 조선 말기 관료이자 일제강점기에 은행장을 지낸 민영휘를 비롯한 민씨 일가가 거주하였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원래는 안채와 연결된 중문간채만이 남아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건너방을 복원하고 사랑채와 별당채를 새로 지었다.

 

 

 

제5호.      종로구 옥인동 윤씨 가옥.

 

 

옥인동 윤씨 가옥은 1910년 무렵에 지어졌으며 소유자는 순종 황후의 큰아버지이자 중추원 부의장을 지냈던 윤덕영이다.      가옥은 전체적으로 'ㅁ' 자 모양이며 가운데에 안마당이 있다.      대저택의 남아있는 일부 건물을 옮겨왔다.      보통의 민가와는 달리 높낮이를 활용하여 공간을 구분하고 있는 점이 당시 상류층 가옥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제2호 가옥 (빌려온 사진).      종로구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궁궐을 수호하는 무관 김춘영의 가옥이었다.      사괴석과 전돌을 높게 쌓은 방화벽으로 보안에 신경을 쓴 것이 특징이다.      삼청동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했던, 기능적으로 잘 구성된 가옥이다.      제1호 삼각동 전통가옥의 바로 뒤에 있었는데, 어찌하다가 그만 지나쳐서 들어가 보지를 못했다.      고종 때인 1890년 무렵에 지은 집이다.

 

 

한옥마을 가운데 피금정 앞의 공터에 거창하게 전통공예관이라 이름을 붙여놓은 기념품 가게.

 

 

한옥마을을 떠나면서 찍어본 새신랑 신부의 사진.       앞에 그려 놓은 새신랑 신부의 모델이 더 크게 그려져 있어야 제대로 사진을 얻을 수 있겠구나.

 

 

우리가 머무르는 숙소가 바로 정문 너머로 보인다.       바로 코앞에 있다고 오늘 내일 미루다가 이제서야 드디어 구경하고 간다.

 

 

저기 어디 16층 창문이 열려있는 곳.       매일 한옥마을의 정원을 내려다보며 내일 내일 하며 뒤로 미루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왕순대 집.       매운 순댓국 그리고 백 순댓국.      와우.

 

 

3월 23일.      산으로 간 고등어.      가족들과 함께 분당 미금역에서 7~8분 자동차로 갔었던 곳.      더구나 토요일의 점심시간이라 대기번호 105번을 받고 50분을 기다렸던가...    어마어마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중에도 언제나 대만원인 곳이란다.      가성비 좋고 엄청 맛있고, 장사는 이렇게 해야 한다.      옆집 음식점들은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조용하고...

 

 

 

산으로 간 고등어 그리고 삼겹살볶음.

 

 

저 멀리 또 한 집, 곤드레 밥 집도 인기가 좋단다.      먹자판 좋아하시는 분들은 서울이 천국일 듯....    딸네 가족들은 봄방학이 끝나서 오늘 아침 Canada 로 돌아갔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 일본의 후쿠오카로 여행 중의 여행을 1주일 다녀온다.

 

 

2024년 3월 20일.      퇴계로 북쪽의 필동으로 건너 올라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에 오른다.      해는 쨍쨍하게 비추지만 제법 쌀쌀한 날씨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팔각정으로 잠시 오르는 계단에는 자물쇠들이 가득히 채워져있다.       온갖 색깔의 고리들과 함께 묶여져 있어서 알록달록하게 장식되어 있다.

 

 

이렇게 굳건하게 증표를 남기고 갔는데 모두들 변함없는 사랑 중인가?      산산조각 부서진 사랑도 꽤나 많을 터인데 다시 와서 지우고 가야 하는가?      몇 년 전에 신문에서 보았던 기사가 떠오른다.      서울의 남산 위 어디에 연인들이 사랑의 증표로, 파리의 센 강변 다리처럼 자물쇠를 묶어놓는 곳이 있는데, 미국에서 날아온 젊은 여성이 오래전 여기에 연인과 함께 묶어두었던 자물쇠를 잘라버리고 떠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한 맺힌 파경을 잊으려고?      아니면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의지가 대단하다.       태평양을 건너서 비행기를 타고 와서...

 

 

팔각정에서는 서울시내를 조망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서, 이번에는 다시 전망대로 올라가는 승강기에 오른다.      아주 잠시 오르는데 성인은 2만1천원.      타고 왔던 케이블카 요금까지 합치면 거의 4만원.      대단히 비싼 요금이다.

 

 

 

Seoul Tower 라고 불리는 전망대에 섰다.      예전에는 스모그로 멀리 보이지 않던 곳까지 보인다.      아직도 더 좋아져야 하지만 지금은 아주 공기가 많이 좋아졌다.

 

 

오른쪽 끝으로 윗부분으로는 경복궁, 청와대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는 한강의 동쪽, 성동구의 다리들이 보인다.

 

 

마포인지 어디인지...

 

 

오른쪽 산턱 아래에 청와대가 잘 보인다.

 

 

와, 서울의 남산 전망대에 모두 섰습니다.       유리창에는 Canada 의 Toronto 까지 10,728.44Km 라고 쓰여있다.

 

 

유리창 위에 옛 지명도 쓰여 있고, 남대문시장, 장충체육관, 안중근 기념관 등의 위치도 표시돼 있다.

 

 

오후에는 용산의 전쟁기념관으로 (The War Memorial Of Korea).

 

 

6.25 전쟁 당시에 국군과 북한군으로 맞서 싸우던 형제가 전쟁터에서 극적으로 만난 실화를 조형화한,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염원을 표현하는 형제의 상.

 

 

 

 

 

전쟁기념관 왼쪽에 보이는 전사자명비 (The Roll Of Honor).      6.25 전쟁 및 베트남전쟁 등에서 전사한 국군, 경찰관, 유엔군 전사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6.25 전쟁 참전국 기념비.

 

 

Canada 참전비.      그리고 참전국 기념비 뒷쪽의 넓은 정원에는 실제 비석의 크기를 그대로 재현한 광개토대왕릉비가 있다.      제3연평해전 당시 교전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참수리 357호정 안보전시관도 있고....    6.25 전쟁 당시에 사용했던 B-52 폭격기, T-34 등의 탱크, 장갑차들을 보여주는 야외전시장도 있다.

 

 

호국전당 (護國殿堂) 이라 명명된 기념관 건물.

 

 

1층 복도에 전시된 커다란 거북선 (Turtle Ship).       1592년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 장군이 여러 해상의 전투에서 왜선을 격파하고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전투함이다 (Wardship).      거북선의 실물 크기는 지금 여기 있는 거북선 모형의 2.5 배이다.       전시실은 1층의 전쟁역사실부터 3층의 기증실, 해외파병실까지이다.      우리는 2층의 6.25 전쟁실만 자세히 둘러보았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야 !!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 적에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

 

 

70여년 전 당시의 6.25 전쟁 때의 무기들.

 

 

1950년 남한을 침공하는 6.25 전쟁을 명령하는 북한군 제4사단 전투명령 1호 문서.

 

 

남으로 마구 진군한 북한군은 경상도를 제외한 모든 곳을 점령하였다.      마지막 저지선으로 포항, 영천, 대구, 창녕, 마산을 사수해야 하는 매우 긴박한 상황이다.

 

 

인천 상륙작전 (Planning Of Incheon Landing).       수로가 좁고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하여 대규모 함대의 이동이 어려운 조건의 인천항.      이러한 악조건 때문에 미국의 합동참모본부와 극동의 해군은 반대를 하였으나, 맥아더 장군은 전략적, 심리적, 정치적인 이유로 서울을 단시일 내에 탈환하기 위해서는 인천 상륙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8월 28일 인천상륙작전인 크로마이트 (Chromite) 작전 계획이 승인되었다.      9월 12일부터는 적을 교란하고 고립시키기 위해 인천과 주요 항구에 폭격이 가해지는 가운데, 7만 5천 명의 상륙 병력이 탑승한 261척의 함정이 부산항 및 일본의 항구들을 출발한다.       9월 14일 밤이 되어 모든 함대가 인천 외항에 집결하였다.       그리고 15일 새벽 2시에 팔미도 등대가 밝혀지면서 드디어 역사에 길이 남을 상륙작전이 결행되었다.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마침내 수도 서울을 탈환하고, 국군이 중앙청 앞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어, 저기 계신 저 분들 누구시더라?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오직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당시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참전 유엔군 지휘관들이 함께.

 

 

귀한 문서의 사본들이 몇 개 보인다.      히로히토 일왕의 2차 세계대전 항복조인서 (Surrender Instrument of Japan).      1945년 9월 1일.

 

 

 

오직 한반도의 온전한 통일을 염원에 둔 한국측의 반대로, 한국측 서명없는 6.25 전쟁의 정전협정 조인서.       북한의 김일성, 중공군 그리고 유엔군의 Mark W. Clark 대장이 서명하였다.

 

 

혹한의 겨울에 꽹과리를 치며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서 내려왔던 인해전술의 중공군 모습.

 

 

22개 유엔군 참전국 전사들의 영령을 기리며...

 

 

유엔군 22개 참전국들의 기념관.

 

 

 

카나다의 참전 기록과 당시 카나다군의 전시물품들.

 

 

버튼을 누르면 자세히 알려준다.       Canada 는 1950년 7월 25일부터 1957년 7월 6일까지 7년 동안, 1개의 보병여단과 8척의 수송대 군함 등 모두 26,791명을 파병하였다.      1,212명이 부상을 당했고, 516명이 전사하였다.      태평양 건너의 이역만리에 참전한 이름 모르는 젊은이들의 값진 희생으로 자유한국이 지켜졌다.

 

 

한국을 돕고자 긴급히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인천 상륙작전을 마치고...    맥아더 장군.

 

 

 

 

다음날인 3월 21일.       오늘은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현대식으로 잘 조성된 넓은 지역에 새로운 건물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잠시동안 대나무 숲이 나타난다.

 

 

남산이 시원스럽게 보이도록 건물의 가운데가 뻥 뚫어져 있는 현대적인 모습의 박물관이다.

 

 

 

1층에서 3층까지 역사적 순서대로 전시실이 위치해 있다.

 

 

 

1층은 선사시대, 고대관이다.       그리고 삼국시대, 통일 신라, 고려, 조선 이조시대를 거치는 중세, 근세관이다.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부터.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 토기들.

 

 

 

 

청동기실에는 농경문 청동기.

 

 

 

 

 

전시실들 중간에는 아늑한 쉼터도 잘 준비되어 있다.

 

 

 

충남 부여 왕흥사의 치미 (魚尾).      치미는 백제시대의 기와 건물 양 끝에 자리한 큰 장식 기와이다.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의미를 지닌 새 또는 물고기의 형상에서 비롯되었다.      왕흥사에 있는 치미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치미이다.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것으로 추정되는 4세기 백제 때의 청자 양모양 그릇.      청자 양모양 그릇은 중국 남경 주변 동진시대 묘에서 많이 출토된다.

 

 

 

 

신라 금관.      금관은 머리띠에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의 장식이 세워졌다.      나뭇가지 도안에는 통치자이자 국가를 주관하는 최고 지도자와 그의 가족의 정체성과 세계관이 내재되어 있다.      금 허리띠는 물고기 모양, 손칼, 옥 등이 매달려 있는데 일상생활에 필요한 연모를 의미한다.

 

 

삼국시대 4세기.       신라의 목가리개 (Gorget) 그리고 판갑옷 (Armor)

 

 

신라시대 5세기.      금 새날개모양의 관꾸미기 (Gold Wing-Shaped Crown Ornament) 그리고 고깔모양 관 (Gold Cowl Cap).

 

 

 

서울의 북한산 비봉에 있었던 (서기 16년) 신라 진흥왕 순수비.      신라의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에 지역을 둘러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새운 비석이다.      국보로 지정되어 지금 이곳의 국립박물관으로 옮겨왔다.      진흥왕의 영토 확장과 순수에 참여한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다.

 

 

고려 1348년.      경천사 십층석탑 (Ten-story Stone Pagoda).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대리석 탑이다.      고려의 전통과 중국의 원나라 (元朝) 에서 유행하던 양식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저녁에 예정된 일정 때문에 시간에 쫓겨서 2층의 서화관, 기증관을 지나치고 곧장 3층의 분청사기, 백자, 청자실로 왔다.

 

 

매병.      작약꽃 (Peony) 으로 덮여진 항아리 병인데 작약은 구리 안료를 사용해서 더 섬세하게 그려졌다.      구리 안료 (Copper Pigment) 를 그릇 전체에 발라서 짙은 갈색을 표현하는 것이 동채기법이다.      구리 안료는 높은 온도에서 휘발되기 때문에 다루기 어려운 재료였지만, 고려의 장인들은 청자의 동채 기법을 세계 최초로 사용했다.

 

 

 

청자 상감 매화-대나무-학무늬 매병.       서정적이고 우아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12-13세기의 고려청자이다.       여유로운 공간 배치와 붓으로 그린 듯 섬세한 상감무늬가 뛰어나다.       전라북도 부안 유천리 가마에서 주로 만들어졌다.

 

 

 

조선 왕실의 분청 항아리.       조선시대의 이조 왕실에서는 왕자나 왕녀가 태어나면 건강과 복을기원하며 태를 항아리에 담아 태실에 묻었는데, 조선 초에는 상감분청사기와 인화분청사기를 태 항아리로 사용했다.

 

 

분청사기 상감 인화 구름-용 무늬 항아리.      15세기 전반 이조시대 분청사기의 정수이다.      국보 259호.     역동적인 용무늬와 작은 국화무늬가 그려진 항아리.       왕실의 의례에 쓰였다.

 

 

15세기 후반.      분청사기 박지 모란 넝쿨무늬 항아리.      그리고 분청사기 박지-철채 모란무늬 자라병.       매우 긴 이름이 붙어있는 전시품들이다.

 

 

 

 

2층의 반가사유상, 단원풍속도, 청동투구 등 그리고 3층에서도 백자 달항아리, 아미타삼존불 등의 유명 전시품들을 관람하지 못했지만, 다음에 다시 찾아오는 기회이기도 하다.       매일 쉬는 날이지만...    내일은 좀 쉬어야 하는데, 바로 코앞의 남산 한옥마을을 다녀온다.

 

 

2024년 3월 9일 (토).       여행의 첫 기착지였던 Taipei 에서 이제는 서울로 간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로는 첫 방문이 된다.

 

 

음, 음.  서울로 들어와서 다음날인가 지나다가 다시 들어간 칼국숫집.      언제나 기다리는 줄이 길다.      칼국수 생각에 올 때마다 들리는데, 생마늘을 점점 더 쓰는지...    와우.

 

 

여행 9일째.      오늘 또 을지로 입구의 호텔 맨 위층 34층의 일식집.      서울에 들를 때마다 아저씨께서 예전의 을지로 입구에 있던 우리집터가 보이는 곳이라고 여기에 또 불러주신다.

 

 

아저씨는 수원에서 통학하기가 너무 불편해서, 3년간 우리 집에서 함께 화동으로 학교에 다녔었다.       나는 중학생이었고 아저씨는 고등학생이었다.       여기에 앉으면 내려다보이는 을지로 입구를 바라보며 옛날 얘기로 끝이 없다.

 

 

오마카세 식사.

 

 

음식이 몇 가지 더 있었는데, 옛날 이야기에 빠져서...

 

 

 

언제나 지나면서 유심히 둘러보는 청계천인데, 이제는 물고기들만 사는 게 아니라 놀랍게도 백로 (Egret) 가 놀고 있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 다리가 불편해서 Zenia 가 3번이나 다녔던 정형외과.      머무르고 있는 바로 같은 건물에 있어서 편히 이용을 했는데 아주 친절하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Clinic 이다.

 

 

신기한 것이 또 있다.       우리가 머무르는 퇴계로 숙소에서 바로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있는 Stainless 재질로 되어 있는 Bench 가 아주 따뜻하다.       전기로 열을 낸다.       버스가 좀 늦어도 따뜻한 의자 덕에 별로 지루하지 않을듯 하기도 한다.

 

 

강남의 고속버스터미널은 몇 년 전부터 새로이 내부가 개축되어서, 세련되게 다시 태어났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넓은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다.       문화 이벤트로 오늘은 두 분의 유명 Pianist 의 연주가 있는 날이란다.

 

 

대문짝보다도 큰 어지러운 간판들 그리고 돌출 간판들이 사라지고, 조그맣고 예쁜 세련된 간판들이 유럽의 상가 거리를 닮은 듯 보기에 좋다.       올 때마다 여러 가지가 눈부시게 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여기는 강북보다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지역으로 분류되는 분당의 어느 4거리인데, 빌딩을 완전히 도배하고 있는 간판들이 매우 어지럽다.       각종 병원 간판이 어찌나 많은지, 종합병원 2개 정도는 족히 들어서도 될 것 같구나.

 

 

3월 16일.      봄 방학을 이용해서 홍콩과 북경을 거쳐서 마지막 기착지 서울에 온 꼬마들.      넓은 호텔 공간이 흡족한지 매우 즐거운 표정들이다.

 

 

3월 17일.       서울에서의 첫 방문지는 광화문.       꼬마들과 세종대왕 앞에서.

 

 

서울의 식구들과 함께.

 

 

 

늦은 오후의 명동.

 

 

 

 

인사동은 한산해지고 명동은 예전보다도 훨씬 더 붐비는 듯.      약간 쌀쌀하지만 그래도 쾌청한 서울의 날씨가 아주 좋다.      기온이 떨어져 있는데도 명동은 엄청 붐비고 있다.      저녁시간이 되려면 아직 이른데 포장마차들이 벌써부터 분주하다.

 

 

2024년 3월 18일 (월).       경복궁에 딸네 식구들과 함께 가는 날인데, 기온도 좀 올라있고 아주 화창한 날이다.       여행중 이보다 더 좋은 날씨는 없었다.      지하철에서 경복궁 출구로 나가는 5번 출구의 벽에는 화려한 옛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멋진 장식이 되어 있다.

 

 

한복으로 예쁘게 치장을 하고 경복궁 관람을 하려는 것은 여자들뿐이 아니다.       이 분들은 삿갓 영감에, 대감 감투에...

 

 

경복궁 입구 양옆의 뒷골목 거리는 한복 대여와 여자들 머리 꾸미기, 손질 등으로 매우 바쁘다.      수없이 많은 대여점들이 있는데, 오늘 같이 화창한 날에는 예약 손님만 이용 가능한 대여점들도 있다.

 

 

한복 물결이 출렁대는 현대판 이조시대의 거리.

 

 

정면에서 바라본 광화문 (光化門).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 기능을 하는 문이다.       다른 궁궐들의 정문과는 달리 돌로 놓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중층구조의 누각을 세워서 성곽의 성문과 같은 구조로 지어졌다.

 

 

지하철 5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국립고궁박물관 옆으로 나온다.       광화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멀리 떨어져서 위치해 있다.

 

 

경복궁을 방문하며 모두들 한복으로...    경복궁 (景福宮) 이라는 이름에는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할 것' 이란 의미가 담겨있다.

 

 

너도 나도 예쁜 한복으로 멋있게, 찰칵찰칵, 마냥 즐거운 관광객들.

 

 

흥례문 앞에서.        광화문에서 들어오면 경복궁의 정전으로 들어가는 흥례문이 먼저 나온다.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이다.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서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7년 대원군이 다시 확장해서 중건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또다시 왕궁의 일부 건물들이 철거되고, 총독부가 들어서고 하는 고난을 겪었다.       그러다가 최근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 사업이 꾸준히 추진되어 경복궁의 모습을 되찾았다.

 

 

흥례문 앞에서 기다리던 동료 여행객들을 앞에 드디어 검은 코트에 회색 모자의 여자분 가이드가 나타났다.       이제부터 영어 투어를 시작한다.

 

 

흥례문을 지나고 다시 나타난 근정문을 지나야 비로소 정전인 근정전 (勤政殿) 이 나온다.      벌써 3개의 문을 지나고 있다.

 

 

드디어 근정전이 나타났다.      경복궁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 과거 및 외국사절의 접견 등 국가의 공식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천하의 일을 부지런히 하여 잘 다스리다' 라는 뜻이 담겨있는 근정전 (勤政殿).

 

 

국사를 행사하고 다스리던 이조시대 왕들의 권좌.

 

 

 

구경도 좋지만 자신들의 한복을 입은 사진이 잘 나왔는지 궁금한 관람객들.      찰칵! 찰칵!      남녀노소 누구나 마구 찍어댄다.      필름도 필요 없고 현상도 필요 없고, 마구마구 찍고...    마구마구 지우고...    Smartphone 사진의 대 폭주 시대이다.

 

 

1392년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는 3년 후인 1395년에 새로운 궁궐에 입궐하면서 개국공신 정도전에게 궁궐과 주요 건물의 명칭을 짓도록 하였다.       이때에 경복궁의 명칭을 비롯하여 경성전, 근정전, 근정문, 광화문 등 주요 건물의 이름이 지어졌다.

 

 

구경이나 가이드의 설명은 뒤로하고, 우선 멋있는 사진들을 챙기기에 바쁘다.      시간과 돈을 들여서 예쁘게 차리고 나왔으니 당연히 추억의 사진부터 남겨야지...    한류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예쁘게.

 

 

 

왕비의 침전이 있는 교태전의 뒤뜰에 있는 아미산 굴뚝.       계단식으로 쌓아 올린 화단이 있는데 여기에 4개의 굴뚝이 서 있다.      굴뚝에는 덩굴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노초, 바위, 새, 사슴 등의 무늬가 그려져 있다.      아주 멋있는 6각형의 굴뚝이다.

 

 

그리고 담을 넘어서 왼쪽에는 국보로 지정된 경회루가 있다.       왕이 신하들에게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과거시험이나 기우제 등이 열리기도 했던 곳이다.

 

 

 

 

경회루에서 흥복전을 지나고 함화당, 집경당으로...    모두들 한복으로 차려입고 있으니, 수 백년 전 이조시대의 왕궁 길을 걷는 기분이다.

 

 

침전, 접견실 등 여러 용도로 쓰였던 함화당, 집경당.       둘러싸고 있는 벽담들이 매우 아름답고, 기와지붕들은 깔끔하고 예쁘다.

 

 

경복궁 궁내에 있는 민속박물관.

 

 

마침내 제일 뒤편인 향원지 연못까지 경복궁 관람을 마치었다.      이제는 경복궁을 빠져나가면서 근정전 앞에서 우리들의 사진을 마지막으로 한 장을 남긴다.

 

 

늦은 점심을 하고 다시 북촌 한옥마을로 향한다.      아직도 오래된 한옥들이 잘 관리, 보존되어 있고 지금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동네이다.      그런데 어디로 동선을 잡아야 효과적으로 구경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지나면서 동네의 가게들에 물어본 대답들도 각각이다.      오르락내리락 굴곡진 동네를 다니며 헉헉한다.       꼭 7년 전에도 여기에 왔었는데, 그때에도 어디로 다녀야 제대로 구경하는지도 모르고 헤매며 다녔었다.

 

 

 

 

북촌에서 걸어서 인사동으로.       와~  젊은이들이 환호하는 기념품 가게...    그런데 인사동이 몇 년 전보다 눈에 띄게 한산한 거리로 변해 있다.      쏟아져 들어오는 관광객들이 이제는 모두들 명동으로만 몰리는 추세인가 보다.

 

 

인사동에서, 그리고 다음 날은 강남에서...

 

 

 

꼬마들 덕분에 지나다가 나타난 오락실에 잠시 들린다.       보드게임 Cafe 이라고 불리는 신종 오락실인가 보다.

 

 

덕분에 Zenia 가 Sports Car 의 운전대를 잡고 마구 폭주를 하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즐거워하고 있다.

 

 

생전 처음 운전해 보는 경주용 차들이 매우 신기하다.       마구 밟아보고, 마구 부닥쳐보고...

 

 

Zenia 와 둘이서 먹었던 아주 맛이 좋았던 어느 식당의 간편 저녁상.       내일은 남산에 오르고, 오후에는 용산의 전쟁기념관으로 간다.

 

 

 

여행 5일째.      오늘은 양명산 (陽明山) 으로 가는 날이다.      집합장소인 MRT Zhongxiao Xinsheng Station 에 출발시간 보다 25분이나 이른 7시 35분에 도착했다.      어제의 투어가 밤사이에 갑자기 취소되어서 오늘도 약간은 긴장이 된다.      다른 행선지로 가는 가이드는 모두 보이는데 우리의 가이드만 보이지 않는다.       어찌 된 일인가 물어보니 곧 도착할 것이라며 안심 시켜준다.       와우~  오늘은 제대로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는구나!

 

 

Taipei 의 지난 며칠 간의 날씨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좀 낮았다.       조금은 더울 줄 알았는데 거꾸로 약간 쌀쌀한 기후였다.       구름과 비를 간간이 뿌리던 지난 3일간의 날씨와 달리 오늘은 해가 나오려나 모르겠다.      큰 나무 기둥에 접목해서 자라는 활짝피어 있는 란 (Orchid) 꽃이 보인다.      타이페이는 겨울에도 포근한 날씨가 틀림없어 보이는데, 요 며칠은 이상저온인가?

 

 

시내를 빠져나가서 북으로, 북으로.

 

 

양명산은 대만의 수도인 Taipei 의 서북쪽에 있는 화산이다.       양명산이라는 이름은 본래 하나의 산이 아니라 Taipei 북부의 여러 개의 산을 함께 지칭하는 이름이다.       그중에서 칠성산의 봉우리가 해발 1,120m 로 가장 높다.

 

 

양명산에서 첫발을 내디딘 곳이 칠성산의 해발 700m 친티엔강 (秦天剛) 초원으로 올라가는 안내센터.

 

 

양명산에 넓은 초원이 형성된 이유는 화산이다 보니 지열 작용으로 지면의 온도가 높아서 큰 수목이 자라기 힘들다.      그리고 Taipei 지역은 11-12월의 겨울에는 대륙에서 강한 북동풍이 불어와서 큰 나무가 없는 넓은 초원이 형성되었다.      일본 식민시대에 총독부가 고산지대에 목장을 개발한 곳이다.       게시판에 의하면 2,000 헥타르 (약600만평) 의 넓은 초원에는 약 1,600두의 와규 (和牛) 불리는 일본 개량소들이 방목되고 있다.

 

 

 

칠성산 등산로 (Qingtiangang Circular Trail) 의 일부를 돌아오도록 40분간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날씨가 고약하다.

 

 

멀리 가지는 않고 언덕의 목장까지만 Trekking 을 하고 돌아온다.      아이고, 날씨가 전혀 협조를 않는다.        경치는 좋은데 안개가 끼어있고 바람이 세게 분다.

 

 

해가 나고 청명한 날이면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여유로운 등산로가 많이 있는 곳이다.

 

 

 

Milk Pond 라고 명명된 물 색깔이 우유빛의 연못.       화산의 유황 성분으로 물색이 우유빛 처럼 하얗게 되었다.

 

 

우리 관광객들을 두번째로 내려준 곳은 냉수갱 (冷水坑) 공원지역이다.       냉수갱 온천 (Hot Spring) 으로 가기 전에 잠시 자유시간을 준다.      시간이 있으니 여기저기 좀 둘러보고 싶은데, 남쪽나라 Taiwan 3월의 날씨가 이렇게 으스스한 지 몰랐다.

 

 

냉수갱 현수교를 지나고...

 

 

바람이 불고 으스스하니 움직이고 싶지 않지만, 산속에 내려진 관광객들은 어디든지 찾아다녀야 한다.      가까운 100m 만 가면 Lengshuikeng Ecological Pond (냉수갱 생태 연못) 이 있다니 찾아가 본다.

 

 

 

 

아이고 ~ 이것이 전부이네~       물이 따뜻한지 손을 넣어보지는 않았다.

 

 

드디어 냉수갱 (冷水坑) 온천으로 왔다.      Trekking 의 피로를 확 날려버릴 수 있는 족욕체험이다.     따뜻한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족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름처럼 시원한 물은 아니고, 양명산에서 솟아나는 다른 온천수에 비해서 좀 낮은 온도의 온천수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냉수갱의 온천수 온도는 섭씨 19-21도이다.

 

 

위에서 흘러내려오는 온천수.       다수의 유황이 포함되어서 돌들의 색이 붉은색으로 변해 있다.

 

 

차가운 물, 냉수갱 (冷水坑 ) 온천이라 이름 지어 있지만, 따뜻한 물속에 발을 담그고 모두들 흐뭇하다.      이렇게 음산한 날에 이게 웬 호강이냐 싶은 듯이...

 

 

 

 

게시된 개방시간이 제한적이지만, 바로 위쪽에는 온천장이 있는데 무료이다.

 

 

다음으로 옮겨온 곳이 소유갱.      한자로 소유갱 (小油坑) 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말 그대로 '유황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작은 굴' 이라는 의미이다.      양명산은 약 70년 전에 마지막 분화가 있었던 휴화산이다.      소유갱 분화구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코를 자극하는 강한 유황 냄새가 진동을 한다.

 

 

지금도 소리를 내면서 유황가스가 펑펑 튀어나오고, 산기슭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유황 연기를 볼 수 있다.      냄새에 지극히 둔감한 내가 유황 냄새에 잠시 동안이지만 코를 막고 있을 정도로 심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양명산의 화산지대인 소유갱은 멋있는 배경의 산에 둘러싸여 있다.      화산지대에서 조금씩 뿜어대는 간헐천들을 여러 곳에서 보기는 했는데, 유황가스가 이렇게 펑펑 신비롭게 뿜어 나오는 지역은 처음이다.      양명산은 통상적으로 휴화산이라 불리지만, 유황가스가 활발히 분출하고 있는 특색을 지니고 있어서 휴면 활화산으로 분류된다.

 

 

 

 

 

산기슭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유황.      Taiwan 은 지진이 잦은 환태평양 지진대에 있지만, 본 궤도에서 약간 비껴서 위치해 있어서 지진은 많지 않다.

 

 

이게 웬일인가?      유황 냄새에 취하고 신비로운 광경에 잠시 빠져서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새 눈부시게 쾌청하고 화창한 날씨가 되어 있다.

 

 

점심을 하려고 들린 양명산의 작은 동네 마을.

 

 

우리 일행이 가이드를 따라서 들어간 식당은 허름하지만 규모가 크다.       유명하고 이름난 맛집이라 파킹장에는 주차요원이 정신없이 매우 바쁘다.      맛집이지만 음식값은 저렴하고, 음식량이 후하기 그지없다.      아마도 Taipei 방문 중 제일 맛있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사진은 한 장도 없다.       모두들 관광에 지치고 늦어진 점심에 시장하여서...

 

 

무슨 특산품인지...    현지인들이 열심히 들여다보고 간다.

 

 

양명산의 특유한 유명 백합.      Calla Lilly (흰 백합).      곧 다가올 양명산 Calla Lilly Festival 을 위해서 농장들마다 준비 중이다.

 

 

Calla Lilly.

 

 

점심 후에 찾아간 곳이 장제스 총통의 양명산 별장이라는데...    들어가는 입구만 보인다.      길 옆에 별도로 건물을 지어놓은 전시실이라는 건물에 들어갔는데...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듯 매우 구식의 건물에다가 구경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그나마 눈길을 끄는 것은 오늘 우리가 돌고 있는 양명산의 지도뿐이다.      붉은 간선도로의 북쪽을 제외한, 양명산 2/3 정도의 지역을 하나씩 방문 중이다.      이제는 중앙에 위치한 양명산 국립공원으로 간다.

 

 

넓은 양명산 지역에서 이곳이 국립공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아침부터 반세기 전에 들렀던 양명산의 기억을 더듬어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아~ 여기였었구나 하는 기억이 떠오른다.       2월 초의 음력설을 지나고 다음다음 날인가 했는데, 그때도 보슬비가 오락가락했었고 바람도 불었는데도 매우 많은 현지인들이 놀러 왔던 곳이다.

 

 

 

 

그 시절에도 꽃과 나무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엄청 큰 거목들이 보인다.

 

 

 

고목들 사이로 인증 사진도 남기고...

 

 

한국보다는 3-4주 먼저 벚꽃, 진달래, 철쭉이 핀다고 하는데, 이상저온 기후로 이제야 만발하여 우리를 맞이한다.

 

 

지금은 아침나절과는 완전히 다른 날씨가 되어 있다.      기온도 상당히 올라있고, 바람도 없는 화사하고 청명한 오후가 되었다.       며칠 만에 "좋아요" 가 마구 터져 나오는 날이다.

 

 

 

 

아하, 여기에도 꽃 시계가 있네.       나이아가라에 있는 꽃 시계와 거의 비슷한 모양의 꽃 시계.       거의 1시간 이상이나 늦어있네.

 

 

북투 (Beitou) 지역의 지열계곡 (Thermal Valley).       베이터우 공원 바로 위에 위치해 있는데 2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유명 온천지이다.      일제강점기에 집중적으로 개발된 지역이라 일본식 건물들이 지금도 많이 있다.      초기에는 관광객들이 음식을 계곡에 집어넣어서 간단한 요리(?)를 하기도 했었다.

 

 

지열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은 매우 번잡하지만 가까운 거리이다.

 

 

 

도보로 5-7분 정도의 짧은 거리이다.      올라가는 길 옆에는 흘러내리는 계곡의 온천수에 손을 담가보도록 잘 준비되어 있다.      아주 따뜻한 물이 흐르고 있다.

 

 

와~우~  은은한 유황 냄새가 퍼지고...    뜨거운 온천수 위로는 유황가스로 뒤덮여 있다.      매우 뜨거운 온천수가 틀림없어 보인다.

 

 

 

큰 연못 같은 곳의 온천수에서 뿜어내는 유항의 냄새와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대단하다.       예전에는 이 계곡에서 지열을 이용해서 요리도 하였다는 것이 수긍이 된다.       부글부글 뜨거운 온천수와 유황 냄새가 멋있는 조합을 이루는 곳이다.

 

 

 

 

어, Zenia 가 저기 계곡의 돌 위에 앉아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흐르는 계곡을 중앙에 두고 양옆으로 돌로 만들어진 자리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아하~ 나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니 따뜻한 돌 의자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따뜻한 정도를 넘어서 뜨거울 정도이다.

 

 

매우 뜨거울 수도 있으니 각자 소심하게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문이 걸려있다.

 

 

한국 단체관광객 한 명이 착석해서 놀라는듯하더니, 동료 여행객들을 무더기로 몰고 와서 금방 만석이 되었다.

 

 

시내로 흘러내려가는 지열계곡의 온천수.

 

 

그리고 바로 밑에는 북투 (Beitou) 온천 박물관이 있다.       예전 일제강점기에 유명했던 온천장이었는데 지금은 박물관이 되어 있다.

 

 

옛 일본의 온천장 건축양식 그대로인 건물이다.

 

 

 

 

 

온천 박물관 건물과 뒤 정원.

 

 

일본의 관광객들인지 아니면 대만 현지인들인지...    기모노 차림으로 매우 즐거운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이 바로 베이토우 공원 옆에 있는 도서관이다.

 

 

녹색 건축 도서관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주위의 환경이 좋아서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알려졌다.

 

 

 

내부는 다른 어느 도서관과 다를 바 없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주위의 환경이 매우 아름다운 도서관이다.

 

 

이제는 타이페이 시내로 들어와서 아침에 모였던 집합장소로 돌아가서 하루의 일정을 끝낸다.      중간에 나타나는 야시장에 아직도 원기왕성한 일부 동료 여행객들을 내려준다.      매우 이른 아침 8시부터 시작한 일정에 휘둘린 우리는 그대로 호텔로 간다.

 

 

서울의 강북지역처럼 타이페이도 구시가의 재개발이 되지 않은 많은 지역은 좁은 도로와 몰려다니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로 매우 번잡하다.

 

 

음. 음.  포장마차는 동양의 어느 나라, 어느 곳이나....    그리고 언제나 재미있어 보이고 먹음직스럽다.       내일은 정오에 떠나는 비행기로 드디어 서울로 간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꼭 4년 3개월 만의 방문이 된다.

 

 

 

2024년 3월 7일.      여행 4일째.      오늘은 아침부터 약간 일이 꼬여진 날이다.       오래전에 예약하고 미리 지불된 Taipei City Full Day Tour 가 예정된 날이다.       집합장소인 Taipei Main Station M3 에 30분이나 먼저 와서 기다리는데도 우리 Tour Agent 나 가이드가 보이지 않는다.      다른 목적지로 가는 2개의 다른 Tour Agent 들은 분주하다.      Tour 회사는 다르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아 달라고 부탁을 한다.      매우 친절하게도 바쁜 중에 여기저기 전화로 알아본다.      알아본 결과는 황당하게도 우리 투어는 취소되어 있단다.      E.Mail 로 어제 알려주었단다.      도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예정되었던 코스를 우리 스스로가 찾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투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Taxi 로 이동하는 호사를 누린다.       멀지 않은 거리이고 Taipei 의 택시는 그리 비싸지도 않고 매우 친절하다.

***

첫 번째로 들린 곳이 방카 룽산사 (용산사 龍山寺).      룽산사는 18세기 푸젠성 (福建성) 에서 대만으로 온 이주자들이 신앙생활을 위해 고향에 있는 안하이 룽산사의 관세음보살 분령을 모셔와서 1738년에 건립하였다.      1919년 일본 통치 시대에 대규모 재건축이 시작되어 1924년에 현재와 같은 규모로 되었고 1957년에 다시 개축하였다.      이주민들에게 깊은 신앙의 명소이다.      타이페이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의 관음보살과 도교의 여러 신들이 함께 모셔져 있는 사원이다.      그리고 마조, 관우와 같은 중국신들을 모시기 위한 제단도 있다.

 

 

무슨 행사가 진행되는지 알 수는 없는데 여러 가지의 글들이 보인다.      평심 (平心). 안신 (安身), 평안 (平安) 을 기원하고...    그리고 여러 가지 소원을 비는 글들이 보인다.

 

 

틀림없이 매우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검은 교복의 일본 고등학생들 백여 명이 그룹으로 몰려왔다.

 

 

사원 자체가 매우 섬세하고 화려한 건축물인데, 사원의 입구부터 더욱 화려하고 강렬한 색깔의 구조물들로 가득해서 첫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얼떨떨한 기분이다.

 

 

 

본전.      먼저 나타나는 본전 건물은 입구의 역할과 기도를 위한 공간이다.

 

 

 

본전에서 후전을 향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정사각형의 정원에 둘러서 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인지 함께 불경을 읽고, 다시 기도하고 매우 진지하고 경건한 모습들이다.

 

 

본전을 지나서 정원의 가운데에 서서 후전을 향해서 합장을 하는 여인.

 

 

룽산사는 총면적이 약 1,800평 (6,000m2) 이다.       건물은 회자형의 사각 구조에 지붕은 팔각지붕의 모양이다.

 

 

후전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불경을 읽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이들이 행사를 인도하는 것 같아 보인다.

 

 

 

불교 사찰로 출발하였지만 이후에 도교와 결합이 되고, 대만 특유의 다종교 민속신앙의 성지가 되었다.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 불교 보살뿐 아니라 마조, 태음성공 등 도교의 신들까지 다양한 신앙 대상을 모셔놓은 사원이다.

 

 

룽산사는 건립 당시에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전체적으로 목조 용상이 사원을 호위하는 듯한 모습이다.       용상을 비롯하여 곳곳에 장식된 조각들이 매우 섬세하다.

 

 

후전의 뒤편으로는 제물을 놓고 기도를 드리고, 함께 책을 펴놓고 읽고 또 기도하고...    매우 진지한 모습들이다.

 

 

 

제단의 위에는 음식물과 점괘가 놓여있다.      각자의 소원을 비는 것이다.      그리고 한 쪽 바구니에는 붉은색이 칠해진 반달 모양의 나무토막 점괘가 있다.       소원을 빌고 이 점괘를 던졌을 때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면 소원성취가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평온하고 절실한 표정으로 합장을 하며 소원을 빌고 있는 건장한 젊은이.

 

 

경건한 분위기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백여 명의 일본 고등학교 학생들이 조용하게, 그리고 매우 절도 있게 움직이고 있다.

 

 

태평양 전쟁 와중에 본전이 소실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관세음 보살상이 훼손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지면서 더욱 현지의 시민들에게 룽산사는 유명해졌다.      유명 관광지이지만 관광객들보다 현지인들이 훨씬 많이 찾는 곳이다.      밤과 낮으로 언제나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모두들 책을 꺼내놓고...    이보다 더 진지할 수는 없는 듯하다.

 

 

 

용이 휘감고 있는 모습으로 장식된 본전의 기둥들.       룽산사는 국가지정 고적으로 등재되어 있다.

 

 

룽산사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중정기념당으로 왔다.      자유광장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중정기념당 정문이다 (Chiang Kai-Shek Memorial Hall).       국민당 정부를 이끌고 중국 대륙에서 대만으로 도피한 장제스 (蔣介石 1887-1975) 의 사망 후에 그를 기념하기 위해서 건립되었다.       원래는 육군본부와 헌병사령부로 쓰였던 장소였는데, 1980년 4월 5일에 개관하였다.       4월 5일은 5년 전 그가 사망하였던 날이다.       명나라 시대의 Arch 형 정문이 매우 아름답다.

 

 

중정기념당은 높이가 70m 에 달하는 흰색대리석 건물이다.      본당 위층에는 거대한 장제스 동상이 있다.      올라가는 계단도 장제스의 생전 나이를 기리기 위해 89개로 만들었다.      건물은 서북쪽의 중국 본토 대륙을 향하도록 설계되었다.      그의 대륙 수복 의지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오늘도 아침부터 먹구름이 많이 끼어있고 약간은 음산한 날인데...    드디어 비가 내리다가 그치다가를 반복한다.       화산섬인 대만의 날씨는 대체로 1년에 약 250 일은 구름이 가득하거나 비가 내리는 습한 날씨이다.      화창한 해가 나는 날은 3일에 한 번 정도뿐이란다.      날씨가 왜 이러나!       내일은 양명산에 가는 날인데 그래도 좀 좋은 날씨가 되었으면 한다.

 

 

 

들어오던 정문을 향해서 되돌아본 자유광장.      왼쪽에는 국가희극원, 오른쪽에는 국가음악원 건물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국가희극원 (國家戲劇院) - 국립극장

 

 

국가음악청 (國家音樂廳) - National Concert Hall. 비를 뿌리기도 하고 바람도 불고.      왜 이리 날씨가 고약한가...

 

 

 

 

장제스 총통 동상이 있는 곳은 제일 높이 위치한 4층이다.      윤리 (倫理), 민주 (民主), 과학 (科學).      그가 주창하였던 구호를 뒤로 하고 앉아있는 장제스 총통.

 

 

개관 당시에는 그의 아들인 장징궈 (蔣經國 1910-1988) 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였기 때문에 미국의 링컨 기념관을 모델로 하여 그보다 더 큰 규모로 웅장하게 만들었다.

 

 

중정기념당에는 총 3개의 문이 있다.       정문(A) 과 더불어 2개의 문이 (D) (E) 더 있다.       이곳은 본당 높은 곳에서 바라본 북동쪽 문(E) 이다.

 

 

 

북동쪽의 계단에서 올려다본 본당의 모습.      아주 오래전에 건립된 역사적인 건물이 아니고 비교적 최근인 44 년전에 지어진 건물이다.      고풍스럽기 보다는 현대적이면서 웅장한 멋진 건물이다.

 

 

본당의 1층에 있는 기념관 내부의 유물 전시관.       장제스 생전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장제스가 Taiwan 현대사에서 최고의 비극으로 불리는 2.28 대학살 사건의 배후 주역 중 한 명으로 밝혀지면서, 중정기념당은 존재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대만 원주민들과 진보적인 민진당이 집권하고 있는 현재는 2월 28일 하루 동안은 기념당을 휴관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장제스 동상 철거, 명칭 변경, 용도 변경 등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2.28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2.28 추모공원이 공교롭게도 중정기념당 바로 근처에 있다.       Taiwan 안에서는 독재자이며 학살자로 Taiwan 독립파인 Taiwan 현지인들을 철저히 탄압한 장제스를 추앙하는 중정기념당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중정기념당 개원식 날 자유광장에서 연설하는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

 

 

유명 인사들의 유품에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승용차들.      옛 시절에는 어느 나라든지 대부분 미국의 캐딜락이 국가수반의 전용차량이었다.

 

 

장제스 총통이 생전에 사용하였던 유품들.

 

 

The oath signed by Chiang Kai-Shek on Februray 25, 1963.

 

 

생전에 집무실에서의 장제스 총통.

 

 

다음으로 우리가 옮겨온 곳이 Taipei 101 빌딩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쭈위안이 설계한 건물로 여러 해 동안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타이페이의 Landmark 이다.       탑을 계속 쌓아서 올려진 모양으로 설계되었다.      번잡한 시내에 위치하여서 건물을 전부 카메라에 잡기가 매우 어렵다.       더구나 오늘처럼 구름이 가득하고 비까지 오락가락하는 날은 건물의 윗부분은 전혀 잡히지 않는다.

 

 

건물의 내부로 들어오니 온통 관광객 상대의 가게들과 명품가게들로 가득하다.      101빌딩 방문 인증 사진을 찍는 곳이 여러 군데 보인다.      우리도 별로 할 일이 없으니 잠시 기다리는 줄에 서 있다가 인증샷을 먼저 챙겨 놓는다.

 

 

101층의 높은 건물이라서 그런지 구조물들이 단단하고 견고해 보인다.      101층의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Ticket Booth 에 줄을 섰는데, 3명의 아가씨들이 각각 창구를 맡고 있다.      옆 창구에서는 표를 부지런히 팔고 있는데, 정작 우리의 창구 아가씨는 웃으면서 정말로 올라가기를 원하느냐고 묻는다.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서 전혀 보이는 풍경이 없을 텐데 오늘은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고 하며 웃는다.       제일 싼 88-91층의 1인 Ticket 이 Taiwan Dollar 로 600 (USD $20)이다.       101층까지는 $32 그리고 급행 Ticket 은 $40 이었다.       잠시 생각해 보니 이 아가씨가 정말로 정직하고 고맙다.       이곳 전망대에 오르면 아름다운 타이페이의 전 지역을 조망할 수 있고, 멋있고 시원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 같은 날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리라.       청명한 날에는 대개 5시 30분쯤 도착하면 낮의 사진과 야경을 모두 촬영 가능한 좋은 시간이라고 알려져 있다.

 

 

벌써 점심시간이 마구 지나간 오후 2시가 다 되어가니 시장기가 대단하다.      지하에는 무지하게 큰 Food Court 가 있는데, 구역별로 나뉘어서 잘 꾸며져있다.      한류의 음식들이 인기가 대단하다.      여러 종류의 비빔밥만을 하는 비빔밥 전문점, 한국식 바베큐 전문점 등 한식 전문점이 많이 보인다.      넓은 Food Court 를 잠시 돌아보니 온갖 나라의 음식들이 모두 있는 듯하다.      바쁜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는 시간인데도 자리를 잡기 어렵게 엄청 붐비는 곳이다.

 

 

나오는 길에 다시 한번 카메라로 잡아본 101 빌딩.      (오른쪽 사진은 : 빌려온 사진).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역시 건물 전체를 담아내는 일은 불가하다.

***

내일은 금요일인데 양명산 투어를 신청하여 놓은 날이다.      해가 나는 날씨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리고 오늘의 경우처럼 투어가 갑자기 취소가 되어있는 불상사가 없기를 바란다.      2년 전 Greece 의 Porto 에서 몇 달 전 예약하여 놓은 Dorou Valley River Cruise Tour 의 집합장소인 관광객 안내소 앞에 이른 아침 7시에 도착했는데....    무언가 이상해서 안내소에 들어가서 알아보아 달라고 요청을 했더니,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갑자기 투어가 취소되었고 다음날은 있단다.      자리가 남아 있으면 다음날로 다시 잡아달라고 요청을 하여서 결국은 다음날 더 좋은 날씨에 투어를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다행히 여행의 마지막 날을 비워둔 경우였다.      타이페이에 도착해서 2일간 먹구름과 보슬비가 뒤섞인 날씨를 보냈다.      그러니 내일 하루는 해가 나는 좋은 날이 오는 것이 Taiwan 의 전형적인 기후 패턴이리라.      내일은 해가 내려쪼이는 청명한 좋은 날씨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2024년 3월 4일 (월).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공항으로 향한다.      9시 20분 출발 인천으로 직행하는 항공편 시간에 맞추려 6시 10분경에 Uber 를 부르니까 3분 만에 나타났다.      이른 새벽이라 요금도 평상시보다 더 싸다.       오직 48불. 직행하는 공항버스의 Senior 요금은 4불 정도로 매우 저렴하지만 정류장까지 택시로 움직여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10여 년 전부터 Uber 가 생기면서 매우 편하고 저렴한 교통편으로 환영을 받는다.       일반 택시보다 40% 정도는 더 저렴하면서도 최적의 편리한 서비스이다.       오늘은 그동안 여러 해 동안 이용해 오던 Air Canada 가 아니고 대한항공이다.       10년 전 인도네시아 Bali 로 갈 때가 마지막 대한항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에 하와이에서 서울로, 그리고 다시 몇 년 후 서울서 다낭으로 갈 때에 Asiana 를 이용했던 것 외에는 거의 항상 Air Canada 였다.       서울로 직항하는 대한항공, Air Canada, 모두가 항공기 기체는 보잉 787 이다.       대체로 조용하고 상대적으로 다른 항공기들보다 좀 더 편안하다.       그동안 코로나 바이러스로 긴 여행을 하지 못하고 대부분 15일 전후의 여행에 몇 년간 익숙해 있다가 약간은 긴장이 되는 40일간의 여행을 시작한다.       첫 기착지는 서울을 거쳐서 곧바로 Taipei (4박 5일)로 간다. 그      리고 서울로 와서 15박 16일, 그리고 일본의 후쿠오카에서 6박 7일,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12박 13일.       4월 11일 캐나다로 돌아온다.      오고 가는 시간을 합쳐서 꼭 40일간 여행의 시작이다.

 

 

여행 3일째.      타이페이는 아침부터 구름이 가득하고 찌부퉁한 날씨에 비까지 예보되어 있다.       머무르고 있는 구시가 중심지 Daan 에서 자동차로 약 25분 걸리는, 타이페이 교외 북쪽에 위치한 국립고궁 박물관에 도착하니 가느다란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가 더 심하게 내리고 고약한 날씨가 되기 전에 서둘러 몇 장의 사진을 남긴다.       듣던 내로 거대한 지역에 아름답고 웅장한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고궁박물관은 원래 1925년에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가 물러나면서 북경의 자금성에서 개원하였다.       그 후 1928년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북벌에 성공하면서 고궁 박물관을 접수하게 된다.       그리고 중일전쟁이 터지자 문화재 약탈을 우려하여 소장품들을 1933년에는 상하이로 옮겼고, 4년 후에는 다시 난징 (남경) 에 보관소를 확보하여 다시 옮겨갔다.

 

 

그러나 1945년 국민당 정부와 공산당의 국공 내전 전황이 국민당 정부에 불리하게 돌아가자 1948년 12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3개월 사이에 3차례에 걸쳐 대만으로 옮기게 된다.       전쟁 치하에서 공산당의 압박으로 원래 예정되었던 소장품의 22% 정도만 옮길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1965년 11월 12일 타이페이 북쪽의 교외에 국립고궁박물관이 개원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갑자기 비가 더 세게 쏟아지기 시작해서 급히 박물관의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첫 번째 마주하는 것이 중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쑨원의 동상이다.      - 한없이 넓은 사랑 - 이라는 박애 (博愛) 의 휘호 아래의 쑨원 (손문).

 

 

박물관의 소장품은 약 70만 점이나 되어서 3개월에 한 번씩 순환 전시하면서 소장품을 교체하고 있다.       모든 소장품을 전시하는 데 대략 8년이 걸린다.       그러나 고대 청동기와 자기 유물들과, 그리고 대표적인 소장품들은 상설 전시된다.      명나라 시대나 청나라 시대의 유물들은 소장품이 엄청 많아서 주로 순환 전시된다.

 

 

시작은 신석기 시대부터.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       서기 550년에서 577년 사이의 북방 Qi Dynasty (북제 시대) 의 무사들.

 

 

 

소장품의 대부분이 고대의 청동기와 명나라 시대와 청나라 시대의 유물들이 주를 이룬다.       청나라 황실이 아끼던 유명한 서예 나 그림들, 그리고 명나라, 청나라 시대의 아끼던 궁궐 유물들이라 아름다운 색감과 문양 등이 매우 호화롭고 아름답다.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문서들과 서예작품들도 가득하다.

 

 

 

 

명실록 홍격본과 자금성에 있던 사고전서 문연 각본도 지금은 국립고궁 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섬세하고 생동감 넘치는 동양화.

 

 

한국 관련 동양화 유물도 (동란국 그림인 동단왕출행도) 가끔 전시된다고 한다.       지금 여기에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과거에 잠시 순환 전시되었다가 소장품 창고에 보관 중이리라.

 

 

Zou Heng's Verdant Fragrant Spring.       푸른 향기로운 봄 - 명나라 시대 (1448-1505) Zou Heng 의 1497년 유명 서예작품.

 

 

 

비가 그치고, 잠시 동안 검은 구름도 약간은 사라져서 조금은 밝아졌으니....    관람을 잠시 중단하고 다시 밖으로 나와서 주위의 사진을 몇 장 더 담아본다.       들어온 정문을 바라보며....    오른쪽에는 부속 건물이 보인다.

 

 

가까운 거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국립고궁박물관.

 

 

왼쪽의 부속 건물도 거대하다.       예술원이라고 하였던가?       듣기는 했는데 어우~ 벌써 잊어버렸다.

 

 

국공 내전에서 베이징 함락 직전 자금성의 유물들 중에서 중요한 3천여 상자만 추려서 대만으로 옮겨진 것이 지금의 소장품이다.       중국 전통문화에 애착이 많았던 장개석의 의지였다.

 

 

중국 역사와 전통이 가득한 유물들을 빼앗긴 지금의 중국 입장에서는 통탄할 일이다.       그리하여 국공 내전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유물들을 반환하라고 요구하였고, 대만은 물론 이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오히려 이 유물들이 자금성에 있었으면 홍위병들의 문화대혁명 때 다 파괴되었을 것이라 주장한다.       최근에 들어서는 반환 요구가 잠잠해졌다.      하나의 중국을 주창하는 중국이 자기의 영토에 있는 유물의 반환 요구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정문 밖으로 나가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국립고궁박물관의 모습은 매우 웅장하고 거대하다.

 

 

삼국시대였던 Northern Wei 왕조시대의 금불상.      477년.      약 1,600 년 전 작품이다.

 

 

청나라 시대의 황실 건물의 전형적인 스타일, 그리고 출입문의 전형적인 모습.       Imperial Architects - The Lei Style Architecture.

 

 

 

침술의 저서.

 

 

명나라 시대의 고대 중국 서예 그림.

 

 

불교 문서.      불설 아미타경.

 

 

와~우 ~ 글자인지 그림인지....    한 페이지 정도의 글 문장을 한 글자 안에 모두 집어넣으려 하였는지....

 

 

중국 고전의 Feng Shui Book (풍수지리 책).

 

 

유명 소장품 앞에는 언제나 투어그룹을 이끄는 가이드들의 설명이 이어진다.       가이드들이 설명을 하는 곳이나, 많은 관람객들이 모여 있는 곳은 틀림 없이 특별한 소장품이 전시된 곳이다.       상대적으로 유명 박물관들과 비교하면 오늘은 매우 붐비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지만 관람객들이 예상보다는 많은 것 같고, 단체 그룹도 상당히 많이 보인다.      대부분 한국 단체 관광객 그룹이다.      일부 중국의 단체 그룹도 보이는데 대만인들인지 아니면 대륙에서 방문 온 중국인들인지는 모르겠다.       예전에는 상당한 대륙의 중국 방문 그룹들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양안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은 시기라서 지금도 대륙의 방문객이 많이 오는지는 모르겠다.

 

 

가이드가 없어도 각국 언어의 오디오 기기를 대여하여 유물 앞에 붙어있는 음성해설 번호를 입력하면, 상세하고 명료한 해설을 들을 수가 있다.      워낙 유명한 박물관이라 금요일부터 주말은 대단히 붐빈다고 알려져 있다.      어마어마한 인구의 중국 대륙 여행객들의 인파 물결과 소란을 만나면 매우 힘든 날이 된다고 한다.       박물관 관람을 제대로 하려면 평일, 그리고 오전에 일찍 방문하는 것이 좋다.

 

 

매우 꼼꼼하게 제작된 상아 (Ivory) 의 9층의 파고다.       각층에는 여러 개의 작은 종들이 달려있다.

 

 

 

명나라 시대의 청둥오리.

 

 

청새치

 

 

명나라 시대의 작품.

 

 

Mrs. Hong Min - 기증된 개인 소장품.       500여 년 전의 붉은 산호.

 

 

24K Gold.       9-Story Wenchang Tower.       풍수지리상 (Feng Shui Statue).

 

 

 

Bi-zun. 청나라 시대의 옥 조각품들.      1736-1820.

 

 

Qing dynasty.      청나라 시대. 19세기 작품이다.      윗부분이 녹색, 아랫부분이 흰색의 자연 옥을 이용해 여취와 메뚜기가 앉아있는 배추를 조각한 취옥백채 (翠玉白菜 - 옥으로 만든 배추).       옥은 경도가 강해서 칼로 깎는 것이 불가능해서 실로 갈아서 만든 작품이다.       청나라 말기에 광서제의 왕비인 서비가 혼수로 왕궁에 가지고 온 예물이었다.      1928년 동릉의 도굴사건 때에 서태후의 관에서 나온 보물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3대 걸작품 중의 하나이다.

 

 

이곳 박물관이 소장한 또 하나의 3대 걸작품 중 하나인 Meat Shaped Stone.      고기 모양의 돌 (육형석).      옥이 아니고 Banded Jasper (줄 무늬의 벽옥) 이다.       벽옥은 고대에 가장 선호된 보석으로 알려진다.

 

 

Wooden Screen with Jade Panels.      옥 패널로 짜인 나무 스크린.      어디서 이렇게 거대한 옥들을 발굴해 내고, 기묘하고 섬세한 조각을 하고....    놀랍기만 하다.       서태후의 옥 병풍.

 

 

 

 

 

Guo - Zuo 왕과 제나라의 번영을 위해 왕에게 바쳐진, 1,500년 전 Qi Dynasty (북제시대) 의 유일한 포도주 그릇(Wine Vessel).       항아리 주위에 52개의 글자가 10줄로 쓰여 있다.

 

 

매우 섬세하고 정교한 청동 그릇들.

 

 

Song's Wine Pot. Dragon 으로 장식된 동으로 만들어진 포도주 병.       기원전 1046-771. 서쪽의 Zhou Dynasty 시대의 작품이다.       약 3,200년 전에서 2,900년 전의 작품이다.      똑같은 152개 긴 글자들이 Rim 안과 밖으로 기재되어 있다.

 

 

모공정 (Mao Gong Ding). Ding of the Duke Mao.      서주 선왕대의 정이다.      취옥백채, 육형석과 함께 국립고궁박물관의 3대 보물로 알려진다.       그릇 안에는 500개의 글자가 32줄에 새겨져있다.       역시 서쪽의 Zhou Dynasty 시대 약 3,000여 년 전의 작품이다.

 

 

 

 

Bronze Kui.

 

 

18세기 청나라 시대의 옥으로 만든 필기구 통 (Jade Writing Utensils Box).      화려함의 극치이다.      명필가들이 이렇게 호사스럽고 비싼 옥필통은 구경도 못했을 것이고...    황제들이나 고관대작, 부호들의 수집품이었으리라.

 

 

붓과 벼루에 따르는 물품들도 모두 옥으로 치장되었다.       16~17세기의 명나라 시대의 부호들의 붓과 벼루이다.

 

 

기원전 570-376.      약 2,800-2,600년 전의 춘추전국시대 후기의 상감 청록색 청동칼,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인 100년 후의 호랑이 무늬 청동칼.

***

무지막지하게 많은 전시품들 가운데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의 사진들 중에서 일부를 담아보았다.      모두 둘러보려면 대략 6시간 정도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4시간 정도 박물관 안을 돌아다녔다.       넓은 들판이나 공원의 푸르른 환경을 즐기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매우 힘들고 지치는 시간이다.       조명으로 일관된 박물관의 내부 환경도 그렇지만, 모든 소장품들은 섬세하고 정교하여서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Taiwan 은 나에게는 57년 만에 다시 방문하는 곳이다.      1967년 2월에 음력 정월을 이곳에서 8일간 보내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개장을 하고 꼭 1년 4개월이 지난 때였다.       우리를 안내하는 이곳의 친구 대학생들이 박물관의 개장 소식과, 웅장한 박물관의 사진도 보여주면서 가슴 뿌듯이 즐거워했으나 우리를 그곳에 데려가지는 않았다.      아마도 자신들에게도 첫 개관한 당시에는 만만치 않은 곳이었으리라 생각되었다.      그 후로 언제나 Taipei 이야기가 나오면 국립고궁 박물관을 꼭 방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떠오르곤 하였다.       오늘 드디어 반세기가 넘어서 그동안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곳을 찾아보는 기쁨을 맛보았다.       반세기 전의 대만 방문은 너무 오래되어서 거의 모든 것이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따뜻하지 않은 2월의 음력설 휴일 어느 날 이곳의 친구들 오토바이에 매달려 간간이 뿌리는 빗속에서 양명산을 다녀오던 기억은 뚜렸하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은 기어코 양명산에 다시 오르리라.

 

 

(빌려온 사진)  2015년 12월에 대만 남부 자이 (嘉義) 에 국립고궁박물관 남부 분원이 개원되었다.      대만 남북의 문화격차를 해소하는 목적과 함께 본 박물관의 수장고에서 잠자는 소장품들을 더 많이 순환 전시를 하는 정책이다.

 

 

기진맥진하여서 다시 되돌아온 구시가지 Daan 지역.

 

 

바로 우리 호텔에 가까이 있는 Taipei 시내 전철인 MRT 6호선의 Daan 역 (대안역).      지상으로 나와있는 전철이다. Taipei 에는 6개의 전철 노선이 있다.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Daan 의 Park Hotel.      시내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서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내일은 몇 달 전부터 예약하여 놓은 Taipei All Day 시내 투어가 있는 날이다.      룽산사 사원, (손문) 국부기념관, (장개석) 중정기념관, 전통 재래시장, 그리고 Taipei 101 을 방문한다.      매우 바쁘고 기대가 되는 날이다.      아침 9시까지 집합장소인 Taipei Main Station M3 로 가야 하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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